세미나
현재 서양철학사 세미나에서는 데이비드 흄의 책 <오성에 관하여>를 읽고 있습니다.
이번 주까지 흄의 책과 함께 당대 수학의 인식틀을 확인하기 위해 <수학의 몽상>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새로 동동 샘이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샘의 활발한 논의 참여 덕분에 철학사 팀은 부흥회 분위기!
<표지와 달리 무지무지 재미있습니다>
<수학의 몽상> 5장에서 17~18세기 수학적 배치(기하학/대수학/보편수학//해석학)를 보았고
미적분학을 기반하으로 한 해석학이 기하학적 공간에 대한 개념 자체를 새롭게 열어 놓았다는 점,
하지만 해석학이 들여온 무한 개념이 다시금 수학의 엄밀성 자체를 흔들었고 그것을 복원하려고 한 자가 바로 가우스였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가우스는 '모든 대수방정식은 적어도 하나의 근을 갖는다'고 하면서 수학에서 하나로 똑 떨어지는 답을 찾느라 아등바등하지 않고
그 근이나 식은 반드시 모순 없이 존재한다는 말로 수학적 기반 자체를 다시 세웠고요,
또 '한없이 가까워진다'는 범위 설정을 통해 해석학을 산수의 문제로 바꾼 시도도 볼 수 있었고요,
수학적 불변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8장 '판도라의 상자-집합론의 상상력'에까지 가서 더듬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수학은 우주의 질서를 연구하거나 표시하는 단순한 계산 기술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 그 자체였다."(수학의 몽상, 196)
무한 개념에 대한 당대의 논쟁들을 살펴본 이후에야 우리는
흄이 <오성에 관하여> 에서 말한 제2부 '공간 관념과 시간 관념에 관하여'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지요.
특히 2절 '공간과 시간의 무한분할 가능성에 관하여'에서 나오는 그의 말
"무한히 분할될 수 있는 유한한 연장은 결코 없다"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연장은 실제로 그 관념에 상응하게 존재한다는 점, 그래서 높이와 폭, 면적 등 실제로 연장을 갖지 않는다는
수학적 점의 개념적 정의 자체를 그는 반박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냥 읽었을 때는 '뭐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네' 했는데
당대 무한개념이라는 수학적 발견이 여기에서 논의되고 있구나~
수학적 엄밀성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 사상에도 심도 깊게 영향을 뻗쳤구나~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합리주의자들이 말했던 실체, 연장, 신 개념을 흄은 어떻게 자신의 철학적 체계 내에서 반박해가는지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어요.
사실 이 부분은 몇 번을 더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완전히 이해했다는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는데요,
아무튼 수학 공부와 철학을 함께 하니 확실히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인연인데 월요일에 수학 세미나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정말 다음 주부터 모이기로 했어요. (참 무모하지요?)
<이 역시 안타까운 표지와 달리 짱 재밌습니다>
다음 주는 [서양철학사] 세미나는 흄의 <오성에 관하여> 3부 지식과 개연성에 관하여 중 11절~16절까지 읽을 것입니다.
페이지는 142쪽부터 192쪽까지입니다.
발제는 동동 쌤/ 바벨/모범천사 님이 각각 두 장씩 해오시기로 했습니다. 모두모두 화이링!
그리고 [수학 세미나]는 아직 시작 일정 미정이고요( 조만간 연구실 이사가 있어서)
어쨌든 첫모임 때 이진경 선생님의 <수학의 몽상> 1, 2장을 가볍게 읽기로 했습니다. 모두모두 오세용^^
오늘 함께 보았던 흄 책의 발제문 첨부합니다. 흄 7-10.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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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N/ 서양철학사/ 인간의 오성에 관하여/ 유심/
7절 관념 또는 신념의 본성에 관하여
나는 어떤 명제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 회의와 신념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는 관념들을 서로 다른 수백가지 방식으로 혼합해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상황들 속의 하나를 결정하는 어떤 원리가 나타날 때까지 실제로 어떤 의견도 가질 수 없다. 이 원리가 먼저 있던 관념들에 어떤 것도 덧붙이지는 않는다. 이 원리는 우리가 관념들을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의견이나 신념을 가장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그것은 현전하는 인상과 관계되거나 연합된 생동적 관념이다. (114) 우리는 한 대상의 인상에서 다른 대상의 관념, 신념으로 생각을 옮길 때 그 결정을 습관이나 연합의 원리에 의해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신념은 단순히 관념일 뿐인 것 이상의 그 무엇이다. 다시 말해 신념은 현전하는 인상과 관계함으로써 산출된 생동적 관념이(lively idea)라는 결론에 이른다.
신념은 한낱 관념이지만, 그 관념이 생각되는 방식에서 허구와 다르다. 동의 받은 관념, 이는 허구적 느낌과 달리 우세한 힘, 생동성, 견실성, 확고함, 불변성 등이라 일컬을 수 있다.
8절 신념의 원인들에 관하여
정신은 작용을 수행하며 대부분 정신의 성향(disposition)에 의존한다.
유사성: 우리는 관념에 생기를 불어넣는 유사성의 결과가 매우 일상적이란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인접성: 거리는 모든 관념들의 힘을 감소시킨다. 대상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곧 정신을 그 대상과 인접한 것으로 전이하게 만든다. 인과의 영향력이 유사와 인접이라는 두 관계와 같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새로운 추론이나 결론 없이 현전하는 인상에 따라 나타나는 신념은 모두 습관이라는 기원에서만 유래한다. 현전하는 인상이 그 순간으로만 제약되는 단순지각으로 간주되면 그 인상은 어떤 고유 능력도 가질 수 없다. 그 인상의 일상적 귀결을 경험했을 때야 비로소 이 인상은 신념의 기초가 된다. (신념=습관적 전이, 122)
습관은 우리가 반성할 여유도 갖기 전에 작용한다. 정신은 반성을 통해 관념들의 습관과 전이를 도울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습관 없이도 반성이 신념을 산출, 반성이 간접적이고 인위적인 방식으로 습관을 산출하는 것을 우린 볼 수 있다.
일상 언어 역시 같은 관점에서 서술 가능하다. 일상언어는 동일한 술어로 서로 유사한 것들을 모두 가리킨다. 따라서 정신의 작용들에 대해 완전히 적실한 표현을 하기란 매우 어렵다.
9절 다른 관계와 다른 습관의 결과에 관하여
우리는 인과관계를 제외하고도 유사, 인접이라는 두 관계가 사유의 원리들을 연합해, 상상력을 하나의 관념에서 다른 관념으로 옮겨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세 종류의 관계는 모두 동일 원리에서 유래한다.
우리는 직접적인 인상에 버금가는 생동성으로 인해 정신에 자극된 인상이나 기억의 관념에 대한 일종의 체계를 형성한다. 현전하는 인상과 결부된 이 체계의 각 부분들을 우리는 주저 없이 실재라 부른다.(126) 정신은 이 체계와 연관을 갖는 다른 체계 역시 발견하며, 그 관념들을 실재들이라고 이름 붙이고 새로운 하나의 체계로 형성한다. 이 체계들의 첫째는 기억, 감관의 대상이며 그 둘째는 판단의 대상이다. 우리는 판단의 대상인 두 번째 원리로 세상을 살고, 김관과 기억을 초월해 있는 존재들을 알게 된다.
-로마의 관념: 내가 믿는 것들은 모두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허구일 경우에도 생생하다는 증거.
유사성이 인과성과 결합됐을 때 그 유사성은 추론들을 강화해 준다. 유사성이 심하게 결여돼 있으면 추론들도 완전히 파괴된다. 특히 미래의 상태에 대해 전적으로 무관심하고 아둔한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나는 이를 보며 우리 미래의 상황에 대한 관념이 어렴풋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 현재의 삶에 대해 유사성이 결여되어 미래에 대한 병적인 회의가 나타나는 것이라 본다.
10절 신념의 영향에 관하여
철학이 교육을 어떤 의견에 의해 그릇된 동의를 유발하는 근거라고 간주해서 기각하더라도, 교육은 세간에 널리 행해지고 있다. 이는 신념에 관해 일구어 낸 것들의 운명일 것이다.(136)
모든 정신 작용들을 발원시키고 움직이는 주된 원리인 고통과 쾌락의 지각이 인간 정신에 뿌리내리고 있다. 쾌락과 고통이라는 두 가지 방식의 결과들은 서로 아주 다르다.
신념은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데 거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념은 때가 되면 신념과 매우 흡사하게 되며, 유쾌한 정서 그리고 고통의 정서를 주기도 하는데, 이처럼 정념은 쉽게 신앙과 의견의 대상들이 되곤 한다. (137)
판단과 정념 사이의 상호협력
신념이 정념들에 미치는 영향- 관념이 의지와 정념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조차도 진리와 실재는 그 관념들을 상상력에 집어넣기 위해 여전히 요구된다.
판단과 공상 사이의 상호협력
많은 경우 공상에서 산출된 생동성은 습관과 경험에서 발생한 생동성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생생한 상상력은 종종 광기와 아둔함으로 전락한다. 우리는 시심(詩心)에서 이러한 결과를 낮은 정도로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시심과 광기 모두에 대해서 공통적이다. 시적 열정->정서 환기->신념, 확신의 허깨비 양산. 감관들의 현상들을 교정하는 것은 오성이다.
우리가 이런 차이점을 가지고 조금만 반성하면 시심의 환상을 없앨 수 있고, 대상들을 그 고유의 형태로 조명하는 다소 낮은 정도의 시심의 결과를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홋! 수학.....단어만 들어도 손이 덜덜 떨리는......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