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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을 읽다가 2강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3페이지 아랫부분의 <맑스와 리카도가 동일한 담론 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때문이다.......> 라는 부분에 대한 의문입니다.
<이들은 동일하게 '가격'과 구분되는 '가치'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고, 그 '가치'를 토지와 같은 자연물이 아니라 '노동'과 연계해서 사고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런 동일한 사유 스타일을 가져도 충분히 결론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동일한 자장 위에 있음은 푸코에게는 자명하다.> 고 하셨는데요.
이것이 가치를 사유의대상으로 삼는 담론에는 다양한 입장차들이 존재한다는 말을 하려는 의도는 알 것 같습니다.
예를 든 바와 같이 정신의학에서 해당 증상을 분열증으로도 편집증으로도 볼수 있고,
치료방법에 대해서도 다양한 입장들이 존재 할 수 도 있고 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얼마 안되는 기간동안 읽어낸 맑스는 뭔가 다른 느낌입니다.
맑스가 '가치'와 '노동'을 연계해서 사고하는 이유는, 노동을 가치로부터 빼내기 위해서 인것 같습니다.
중농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무한한 자연의 힘과 농부들의 노동의 결합이며,
곡식을 생산하는 토지의 힘은 지대로 환원되고 거기서 일했던 농부들의 노동은 생계유지비로 환원됩니다.
하지만 맑스가 노동 가치설에 동의하고 그에 입각해서 경제를 분석하는 것은
그 환원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자연이 가지는 생산력처럼 노동이 가치를 창조하기는 하지만
자연의 생산력이 가치로 환원될수 없듯이 노동 그 자체는 가치로 매겨질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하는것 같습니다.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드러내는려고 하는 그의 노력이
어떻게 해서 모든것을 가치로 환원하는 에피스테메와 동일선상에 놓이는지가 좀 의문입니다.
강사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제가 뭔가 잘못 이해하거나 오해를 한건가요? ^^;;;




아.....선생님, 잘 모르겠는데...곧 우리 세미나 하잖아요.ㅡ.ㅜ 다만, 제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조금만 말씀드리면, 리카도와 맑스가 공유하고 있는 에피스테메는 '모든 것을 가치로 환원하는' 에피스테메라기 보다는, '가치의 생산'에 주목하는 에피스테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즉 고전주의 에피스테메가(중농주의 포함해서) 가치를 이야기할 때 조차 '교환'을 중심으로 이해한다면, 근대 에피스테메가 작동하는 정치경제학은 가치의 '생산'을 고민합니다. 그때 주로 제시된 것이 '노동'이지요. 아마 노동이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것은 푸코도 동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치'라는 것, 즉 표상되고 있는 '부'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근대의 에피스테메는 이처럼 표상 자체보다 그 표상들의 생산되고 생성되는 근원적 영역에 주목을 한 에피스테메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맑스와 리카도는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다르게 독해할 수도 있지만요. ㅎㅎ 아! 그리고 '가치'라는 영역이 근대에서와서 주목되었다고 말한 것은 아무래도 오류인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ㅡ.ㅜ 그것 보다는 '가치의 생산'에 주목했다가 푸코의 의도에 더 부합하는 것 같네요. 그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