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공방

달팽이 공방 통신 21호: 엄마의 손

조회 수 1519 추천 수 0 2010.06.29 16:51:09
물범 *.144.103.157

엄마의 손

얼마 전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머위 장아찌를 보낸다는 말씀이셨다. 아는 친구의 텃밭에서 머위를 따다 이틀밤을 꼬박 새며 껍질을 벗기고 간장을 부어 장아찌를 담그셨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팔을 다쳐 잘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왜 또 무리를 하냐고 약간은 짜증 섞인 소리로. 내가 좀 살갑지 않은 성격이라 그런지 여는 집 엄마와 딸들과는 비교가 될 정도로 난 엄마와 그리 친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다. 사실 별다른 일 없으면 난 친정엄마와 전화통화를 하지 않는다. 주로 엄마가 나에게 전화를 할 때는 집에서 뭔가를 보낼 때다.

지난 번에는 고추장을 담가 스티로폼 상자 가득 보내시더니 이번엔 머위 장아찌란다. 원래 손이 큰 엄마는 항상 작은 박스 하나가 도착할 거라 하는데 막상 받고 보면 작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크기의 상자가 배달되어 온다. 김치, 고춧가루, 가래떡, 찹쌀떡, 들깨가루, 얼린 생선, 말린 야채 등, 멀리 사는 딸내미의 살림살이가 걱정되다 보니 이것저것 보내기 시작하다가 우리가족이 연구실에서 주로 끼니를 해결한다는 걸 아시고는 연구실 식구들 것 까지 챙기다 보니 그 양은 더욱 많아졌다.

머위 장아찌 (10킬로그램이 넘는다)

엄마는 손이 큰 만큼 요리솜씨도 뛰어난 편이다. 그래서 가끔 서울에 올라오실 때면 엄마랑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가는 것이 정말 곤혹스럽다. 왠만한 한식당의 음식이 엄마 입에 맞을 리가 없으니 식당 찾기가 정말 하늘에 별 따기다.

IMF이후 줄어든 일자리 문제의 해결 대책의 하나로 뜬 창업 열풍 속에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늘면서 음식맛도 평준화되어서 어딜 가나 그럭저럭 수준의 음식점들이 넘쳐 나기 시작했다. 한 끼 정도 편하게 밖에서 해결하기위해 적당한 식당을 찾는 게 너무나도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각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는 맛집조차도 막상 가서 맛을 보면 실망할 때가 많다.

이전엔 여성의 노동 해방의 측면에서 가사노동에서 여성을 해방시키자는 말에 깊은 공감대를 느꼈었다. 요리 또한 여성에게 있어서 큰 노동의 일부분이고 마트에서 손질되어진, 조리된 반찬들로 상차림을 하는 게 얼마나 경제적이고 여성에게도 편리한가에 대해 맞장구를 치기만 했다. 하지만 요즘은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가 수년의 가사활동을 통해 터득한 기술에 대해 내가 단지 노동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나와 엄마사이의 불편함의 작은 씨앗이 되지는 않았을까. 삶 속에서 필요한 기술을 공방활동을 통해 익혀나가면서 매일 먹는 밥상차림에 대해선 좀 무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저녁은 뭘 해먹을까? 엄마에게 전화해서 한 번 물어봐야겠다.

고추장 (너무 양이 많아 냉장고에 넣지 못하고 식탁아래서 숙성 중)

추신: 머위장아찌 맛을 보고 싶은 분이 계시면 나눠 드릴게요.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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