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상영회01: 이수정, '시 읽는 시간'

조회 수 2911 추천 수 0 2017.03.12 01:55:53


공동체상영회01: 나를 읽는 시간, '시 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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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시 읽는 시간'



시골 잔치

3월 7일 화요일 여섯시 저녁 시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흥행예감? 진석쌤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곧 발간될 진석쌤 책 제목에 대해서 고심하는 중(PPL :) 구경하느라 늑장을 부렸더니 줄은 벌써 주방부터 입구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맛있는 냄새도 솔솔 나고, 앞뒤 사람들이랑 얘기도 나누고. 연남동 마을회관(?)이라고 하면 얼추 비슷한 느낌일까 싶다. 공기가 흥성흥성했다. 늦어서 몇 가지 반찬은 벌써 동이났지만, 가지밥이 얼마나 맛있던지. 요리 해주신 선생님들의 음식이 남지 않아서 죄송했지만 저녁부터 흥성흥성. 얼핏 내 귀를 스쳐간 누군가의 표현을 리자면 그랬다. "어머 시골 잔치 같아"



104늬우스

영화 보기 전엔 광고가 있어 줘야지. 티켓팅도 있어야 겠고. 공동체 상영회 입장료 오천원, 이어지는 광고 타임. '수유너머104'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이사 준비도 하고 있다고. 우리는 백사고지로 갑니다, 점령하러 가는 건 아니구요, 탈환하러요, 뭘요?, 뭐든요, 즐겁고, 재미난 일들을요, 어떻게 재미나게요? 플라톤과 들뢰즈와 니체와 함께요! (광고)

그러는 와중에도 관객은 계속 모여들고, 기대는 배가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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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읽는 시간, '시 읽는 시간'

  영화엔 다섯 사람이 나온다. 출판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다는 30대 여성, 수입이 일정치 않은 일러스트레이터, 공황 장애를 앓는 50대 남성, 도망갈 타이밍을 놓쳐 10년 째 투쟁하고 있다는 해고 노동자,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당찬 아티스트. 언뜻 낯설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  그 많은 시간에 어쩔 줄 몰라했다는 '백수' 3개월 차의 이야기도, 10년째 투쟁을 하고 있다는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도, 아내와 함께 작업실에 '미장'하러 가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삶도.


  아침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면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오하나 씨. 그녀는 안정제까지 먹어가며 버텨보려 하다가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회의가 들어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동시녹음기사를 했다는 김수덕씨는 이십여 년 간 밥벌이에 매진하다 어느날 빛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 그는 불안감이 엄습하여 차를 탈 수 없게 되었다.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이 한국에 많아 한국말을 배웠다는 하마무로 미사토 씨. 하마무로 불리는 그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 영상, 그림, 사진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그들의 삶을 엿볼수록 익숙함이 느껴졌다. 이 익숙함이 나는 좀 곤혹스럽다. 왜 그럴까. 모른 척하고 싶던 것일까.


  카메라 밖에서 어떤 목소리가 묻는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원하던 삶인가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요. 목소리가 물을 때마다 나는 아닌 줄 알면서도 대답을 했는데, 그래서 영화는 두 번 봐야만 했다. 그런데 두 번 봐도 그렇다. 목소리에 답하게 된다. 내 삶은 어떤가, 내가 그리던 삶일까. 이렇게 대답하느라고 자꾸 인물들의 말을 놓친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다. 나의 웅얼거림과 화면 속 저 다섯 사람들의 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 인물에 대한 낯섦과 익숙함 사이의 괴리는 무엇일까. 익숙함이란, 우리를 지치게 하는 많은 것들, 그 위에 우리가 함께 올라타 있음에서 오는 공감일 테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엇비슷한 일상, 그 일상 속에서 우리는 엇비슷한 얼굴이 되려고 무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왜 나는 저들의 얼굴을 낯설게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인물들이 '무표정의 행렬'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면 많은 것을 잃지 않을까, 더 성장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불안하고 머뭇거리면서도, 한 발 살짝 체념의 행렬에서 비켜나는 것, 남들과 반대로 가지 못해도 밀려 가는 발걸음을 멈추는 것, 차를 타지 않는 것, 내 속도대로 내 몸으로 움직이는 것, 부당한 것들에 대해 그림 그리고, 시를 쓰면서, 항의하면서, 웃고, 화내고, 절망하는 표정을 짓는 것. 나는 표정을 가진 얼굴에서 낯섦을 느꼈다.


  화면 속 다섯 사람은 모두 시를 읽는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왜 하필 '시'일까 궁금했다. 영화를 보고 단박에 알았다. 그래그래, 시를 읽을 수밖에 없지. 시란, '그'도 '그녀'의 이야기도 될 수 없는, 관찰자도 전지자도 될 수 없는, 오직 '나'를 위한 노래니까. 시간의 제약 없이 객관의 세계를 압도하면서 오직 '나'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으니까. 그것이 시니까. 그래서 멈춘 사람들, 자기 얼굴을 가진 사람들, 저 다섯 명의 인물들은 모두들 시를 읽는다. 내가 좋아하는 시도 낭송되었지만, 글쎄 나는 어떤 '시'를 읽는가가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그리던 삶인가요,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요. 카메라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어눌하고 수줍게 웅얼웅얼하는 그 대답이 이미 시가 아닌가.  그러니까 시를 읽은 사람은 저기 익숙하고 낯선 다섯 사람이 아니라 나다. 몇 번이나 영화를 놓치며 딴생각('내'생각)을 한 나였던 것이다. 그래, 그래서 '시 읽는 시간'이구나. 그래그래, 감독은 나에게 시를 읽혔구나.


  그런데 깜빡 속은 건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영화에 나오는 '나'는 모두 여섯이다. 다섯 인물과 여섯 '나'라니 싶지만, 영화엔 숨겨진 '나'가 한 명 더 있다. 감독의 목소리와 자막이 바로 숨겨진 '나'다. 화면 사이에 등장하는 텍스트들은 '감독-나'가 인물들을 어떻게 만났는지, 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는지 알려준다. 그렇담, '시 읽는 시간'은 다섯 인물의 '시'를 읽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감독의 '시' 그 자체이기도 하다. 미끄러지고, 멈추고, 어긋나는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이 아마 감독이 그리던 삶이었을 것 같다. 그러니 영화는 감독 스스로가 자신의 물음에 응답하는 '시'인 것이다. '시 읽는 시간'엔 시가 참 많다. 영화를 보는 동안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와, 다섯 인물들의 음성과, 그리고 영상으로 빚은 감독의 시까지. 시 읽는 시간이다. 


  난 거울을 잘 본다. 어릴 때 거울을 너무 많이 봐서 미스코리아 나갈거냐고 이모부가 놀렸다. (웃고있는 거 다 안다) 그런데 요즘은 외출하기 전에만 본다. 나는 어느새 남에게 비춰질 나의 얼굴만을 보고 살고 있다. '무표정의 행열'에서 발각되지 않기 위한 무장이랄까. 영화를 보면서 문득 내 얼굴이 궁금해졌다. 집에 돌아온 뒤, 오늘도 나를 잘 간수했나, 오늘도 나는 나를 잘 살았나, 나의 삶은 어땠나, 하고 들여다 보는 얼굴 말이다. 내 표정이 기억나지 않았다. 오늘 밤에 나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기로 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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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사회 김효영, 출연자 하마무, 감독 이수정, 출연자 오하나

많은 대화들이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하마무, 블루 컬러 너무 좋아" "서대문 여자 축구단에게 이 영광을"




뒷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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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풀이에서 감독님께 들은 이야기로,  심보선 시인도 본래 촬영했는데 고민 끝에 편집을 하셨다고.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럼 다음에 심보선 시인님의 '시 읽는 시간'을 준비하면 될 것 같다. 감독님 그때 특별감독판 가능할까요^^

뒤풀이 때 수용쌤, 유미쌤, 아정쌤께서 신나게 전을 구워 주셨고, 나는 고사리, 숙주를 전으로 부친걸 처음 먹어봤다.  뒷풀이에서는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인들의 인사도 있었고, "가리~가리~ 가리~" 아직도 멜로디가 귀에 쟁쟁한 랩퍼와의 만남도 있었다. 다음에 라이브를 꼭 들어볼 수 있길! 시를 쓰고 계신다는, 분홍색 후드를 입고오신(죄송합니다~ 이름이 기억이 안나요. 댓글로~^^), 뭔가 멋져 보이는 분들이 많았는데 수줍어서 인사를 많이 못했고, 카게가 하마무와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 매우 어색했다. 상영회에서 처음 본 하마무는 나와 이웃사촌이었다. 큰 길을 사이에 두고 딱 맞은 편에 사는 듯했다. 하마무 덕에 술꾼인 나는 지하철이라는 것을 타고 귀가. 가는 길에 하마무랑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언제 늦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생강

2017.03.12 16:14:05
*.73.143.213

후기 넘 재밌어요! 저녁식사에서부터 상영, 뒤풀이, 꼼꼼한 리뷰까지 풍성한 느낌^^

전 그날 한봉다리씩 싸준 가지밥 집에서 맛있게 먹었는데, 마지막 남은 숙주고사리 빈대떡 한장 싸간 카게상도 잘 드셨겠죠? ㅎㅎ


큰콩쥐

2017.03.12 20:32:46
*.36.102.31

*^ ^* 지은~ 후기 잘 읽었어요.

시읽는 시간이 '나를 읽는 시간'이었다는 말에 공감공감....

저도 화면 바깥에서 들리는 수정샘의 목소리가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리고 하나의 물구나무 서기도 잊을 수 없다는,,, ^ ^

절망한 자리에서 '융기'하는 느낌이랄까. ㅎㅎ

암튼 좋은 시간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래퍼엄마

2017.03.13 16:53:59
*.192.46.222

후기 잘 읽었어요~~

영화보고 아들넘들과 이야기 했는데 그들도 지은씨가 말한 낯섦과 익숙함을 같이 느낀 것 같아요.

그리고 더 이상 밀려가기를 멈추고 시를 읽는 것으로 넘어서는 등장인물들에게  용기를 얻은 것 같고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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