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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비르노, 『다중』 발제문: 3강~4강

발제자: 박준영

 

3강 주체성으로서의 다중

앞서 서문~2강에 걸쳐 비르노는 다중의 성격을 몇 가지 핵심 개념과 진술로 설명했다. 그것은 첫째,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이분할이 형해화되는 지점에 다중의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이는 필연적으로 다중의 성격을 양가적으로 정의하게 되는데, 그것은 주로 포스트-포디즘적 사회의 포획 대상이자 일의적인 공공성을 기반으로 일반지성을 발휘하는 진정한 정치적 주체라는 형상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다중은 예술적 감각을 지닌 탁월한 기예를 가진 일반지성으로 정의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탁월한 기예의 ‘암시적’ 실천으로서 엑소더스를 제기하였다. 요컨대 이 세 개의 장에서 비르노는 다중의 ‘정치철학적 상’을 잡아 나갔다.

이제 비르노는 본격적으로 다중을 ‘주체성’으로, 그의 말을 빌리자면 ‘존재양식’으로 파악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앞서의 장들과 대별해서 다중의 ‘존재론적 상’을 잡아 나가는 작업이라 할 만하다. 우선 그는 다중의 주체규정을 ‘개체화 원리’라는 “아주 오래된 철학적 물음”에서부터 시작한다(126). 다중은 무엇보다 다수성(pluralité=being-many)이며, “개별자들(individuals)의 연결망 (...) 단독성(singularity)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핵심적인 세 개의 개념에 대한 전통적인 규정이 아니라, 하나의 단독성으로의 개별자, 즉 다중이 어떤 원인의 형상을 가지는 것이라기 보다, “점진적인 분화(différenciation)의 복잡한 결과”라는 점이다. 이것은 분명 시몽동-들뢰즈의 개념이다. 즉 개체화 과정은 ‘전-개체적’(pre-individual) 특이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다중은 이 시몽동-들뢰즈 테제에 의해 그 존재양식을 시험받아야 한다.

이렇게 생물학적 규정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다중은 필연적으로 ‘신체성’을 기반으로 한다. 즉 “무엇보다 전-개체적인 것은 유(genre)의 생물학적 토대 - 감각기관, 운동기능 장치, 지각 능력들 - 이다”(128). 개체 이전의 이런 잠재적이 감각능력들은 메를로-퐁티의 논의를 통해 어떤 ‘집합적’ 사실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때 다중은 “익명의 사람들(on)”의 감각작용의 덩어리며, 그들의 “기본자산”(donation)의 형태로 이해된다(129). 이러한 집합적 신체성의 역량으로 다중의 존재론적 기반이 설정된 후 비르노는 ‘언어공동체’로서의 다중의 속성을 제시한다. 그런데 비르노에게 중요한 것은 랑그라기보다는 빠롤이다. 랑그가 일반지성이 가지는 공적지성의 역할을 충분히 드러내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것의 전-개체적 기반, “존재발생”(ontogenesis)의 측면을 밝히지는 못한다. 랑그는 일차적으로 “말할 수 있는 역량”이지만 개체화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빠롤이라는 독립적인 요소가 필수적이다(130). 이렇게 해서 두 가지 전-개체성의 연속적인 과정이 설정되는데, 그것은 첫째 “지각적(신체적) 전-개체성”(전-개체적 지각 역량, the pre-individual perceptive faculty)이고 둘째, 언어적 전-개체성(전-개체적 언어 역량, the pre-individual linguistic faculty)이다. 이때 개체화 과정에서 단독성을 형성하는 토대는 특히 언어적인 것이다. 이 두 존재발생의 단계를 거친 잠재적 다중은 생산관계로 이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다중의 현행적 모습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포스트-포디즘 시대의 “생산력의 총체는 전-개체적인 것”이며, 앞서의 장들에서 말한 ‘일반지성’의 내밀한 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역량인 것이다. 언어와 지각.

다중에 대한 이 세 단계의 존재론적 발생과정(존재규정)은 시몽동의 두 가지 테제에 의해 보다 섬세하게 정당화된다. 첫째, “개체화는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131), 둘째, 집단적인 것이 단독성의 풍부한 토대라는 것(133)이다. 이중 전자는 개체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잡종성(뒤섞임)이 개체성 자체를 무한히 연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독화된 것은 합성물이다. 다시 말해 ‘나’이지만 그러나 또한 ‘사람들’이기도 하다”(132). 이것은 개체화 과정 자체에 끊임없이 따라붙는 어떤 준안정성(metastability)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시몽동의 두 테제는 비르노의 다중 존재론을 심층에서 또 표면에서 감싸고 있다. 다중은 그 심층에서 무한한 개체화 과정이지만, 이미 집단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체화 과정을 통해 다중은 자신의 미분화된 신체성을 표층으로 밀어 올리면서 무한히 반복하고 현행화되는 동시에, 심층과는 전혀 다른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화)’으로서의 다중의 구성. 이렇게 해서 비르노는 맑스의 「기계에 대한 단상」이 제기한 역설적인 개념, 즉 ‘사회적 개인’(The social individual)을 헤겔적인 방식으로부터 훔쳐내서 유물론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134-6 참조).

시몽동과 더불어 두 번째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은 푸코다. 특히 푸코의 ‘삶-정치’(bio-politics) 개념은 노동-역량(labror power) 개념과 관련하여 설명된다. 후자의 경우 철학적으로 일종의 가능태(dynamis)로 바라봐야 포스트-포디즘에서의 노동이 어떤 것인지 확실해 진다는 것이다(137-38). 여기서 비르노는 우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노동-역량과 실질적 노동(travaile effectif)의 차이”에 주목한다(138). 잠재적인 것으로서의 노동역량은 자본가와의 관계 속에서 하나의 ‘노동력 상품’이 되며, 이로써 노동자의 “살아 있는 신체”와 그의 일상이 권력 관계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살아 있는 신체가 통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것이 지닌 고유한 가치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유일한 것 - 극히 다양한 인간 능력(말할 수 있는 능력, 사고능력, 기억능력, 행위능력 등등)의 총합으로서의 노동-역량 - 의 근본 토대이기 때문이다”(141). 따라서 푸코의 삶-정치는 자본으로서는 완전히 탈취되고 소진되어야 할 노동역량을 전유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며, 다중의 입장에서는 그 활력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자본과는 다른 방향으로 탈주시키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이 논의 이후 비르노는 다중의 철학적 주체규정 작업을 다소 벗어나 ‘다중의 감정’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다음 절에 이어질 하이데거의 개념들을 사전 조율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여기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은 다중의 ‘편의주의’(기회주의, opportunism)와 ‘냉소주의’다. 이 두 ‘감정상태’를 살펴 보기 전에 비르노는 명시적으로 이를 “나쁜 감정”이라고 규정한다(147).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로부터 “존재양식”을 도출하는 것이다.

우선 포스트-포디즘 생산양식 하에서 편의주의는 마냥 부정적이지 않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기술적 중요성을 획득”하는 능력(재능)이다. 왜냐하면 이는 “추상적이고 호환 가능한 기회들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중립적으로 이해했을 때 도구적 감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 즉 이것은 “항상 호환 가능한 가능성들의 흐름”에 스스로를 적응시켜야 하는 수동적인 다중의 처지를 일컫는 것이기도 하고, 자본의 추상기계에 의해 절취되고 자본의 시공간에 배치될 경우에는 ‘자발적 복종’의 상태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언급된 바, 그 ‘가능성들의 흐름’을 편의대로 좌우할 수 있는 “날카로운 감수성”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147).

다음으로 냉소주의는 일반지성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즉 냉소주의는 “일반지성에 반응[반작용]할 수 있는 가능한 방식들 중의 하나”다(149). 왜냐하면 일반지성 자체가 척도 없는 심급이며, 이것이 다중의 활력으로, 또는 탁월한 기예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포디즘의 “주요한 생산력으로 전환된 사회적 지식”이 될 때에는 어떤 근거도 정당화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소주의는 일단의 자기긍정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최종적으로 “위계성과 불평등(및 유연화)”에 다중 자신의 처지를 내맡기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 간주곡 같은 진술들을 벗어나 비르노는 초기 하이데거의 개념틀로 들어선다. 그것은 바로 잡담(Das Gerede)과 호기심(Die Neugier)인데, 하이데거는 이를 통해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의 일상성(세인, das Man), 즉 비본래적 상태를 규정한다. 첫째로 ‘잡담’은 일종의 포스트-포디즘의 일반화된 소통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대중매체에 의해 매개되고, 그것을 통해 사실을 의사(pseudo)-선취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이것은 하이데거가 “사실을 앞서 먼저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고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한것에 정확하게 부합한다(154). 플라톤이라면 ‘손님’의 입을 빌어 이를 소피스트적 장광설이라고 표현했을 법한 잡담은 비르노에게 “새로운 담론의 창안과 실험을 가능케”하는 계기가 된다. 이런 식으로 잡담이 논의될 수 있는 근거는 잡담의 ‘무한증식성’과 ‘무기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155). 자세히 보면 이것은 언어적 기반을 가진 것이고, 따라서 비르노는 잡담이 “포스트-포드주의적 탁월한 기예의 일차 소재”를 이루고 있다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 화자는 사물의 이러저러한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빠롤에 의해서 새로운 사태를 결정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잡담에 몰두하는 사람들. 이런 잡담은 수행적이다. 즉 말이 사실, 사건, 사물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이다.” 특히 비르노는 잡담이야말로 현재 아주 중요한 생산의 원칙이 되어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포스트-포디즘의 작업장은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의 구분을 무화시켰고, 이로 인해 유연한 정보소통이 생산력과 직결되는 문제가 된 것이다. 오늘날 사무실이나 공장이나 회사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 ‘회의의 물결’을 보면 알 수 있다.(거기서 특별히 상당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비르노는 이에 대해 “사실 중요한 것은 ‘뭔가가 말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단순한 ‘말할 수 있는 능력’(pouvoir-dire)”이라고까지 언급한다.

둘째로 호기심에 관한 논의에서 비르노는 하이데거와 벤야민의 주장들을 가져온다. 이 둘 모두 호기심이 대상과 인식의 근접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이며, 이 속에서 인간은 비본래적인 삶을 계속해 나가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에게 호기심이 ‘퍼스펙티브의 파괴’라면 벤야민에게 그것은 오히려 ‘퍼스펙티브의 확장’이라 하겠다(160-61). 다른 한편으로 하이데거와 벤야민은 호기심이 ‘산만함’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전자가 “총체적인 뿌리뽑힘”을 여기서 본다면, 후자는 “인공물에 관한 감각적 배움”이라고 말한다.(161-63)

 

제4강 다중과 포스트-포드주의적 자본주의에 관한 열 가지 테제

이 장은 비르노가 그간의 논의를 종합하고 포스트-포디즘이라는 현대적 생산양식을 테제화하면서 ‘다중’의 정의를 요약하고 있는 지점이다. 어쨌든 비르노에게 포스트-포디즘과 ‘다중’은 1848년에 맑스가 불러냈던 산업 프롤레타리아와는 달리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라고 하겠다(165). 이러한 자신만만한 주장은 그가 소위 정치경제학의 관점을 서둘러 채택하지 않고, 지금/여기 진행되고 있는 생산과정과 양식의 변화양상을 이러저러한 개념틀을 사용해 설명하려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탐구의 와중에 그는 현재의 문제가 “포이에시스와 언어, 생산과 소통 간의 점진적인 동일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비르노가 ‘다중’을 정의 내릴 때 정치경제학의 이면에서 보다 심오한 존재론과 유물론의 설명을 길어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다중이 “근본적인 생물학적 배치(configuration)”이며 “역사적으로 결정된 존재방식”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의 발생 자체이며, 인간이 지닌 변별적 특징인 인간발생 그 자체를” 시사한다고 규정짓는다(166). 왜냐하면 “현대 자본주의의 주요한 생산적 자원이 바로 인류의 언어적-관계적 능력들에, 인간을 특징짓는 소통과 인식능력(가능태, 역량)의 총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비르노의 테제 정리는 다음과 같다(168-91).

테제 1 이탈리아에서 포스트-포드주의(와 더불어 다중)는 일반적으로 ‘1977년 운동’으로 지칭되는 사회적 투쟁과 함께 출현했다.

우선 비르노는 이탈리아에서 다중의 출현을 1977운동을 기점으로 설명한다. 이 운동의 주체는 “일정하게 교육을 받은, 불안정하며 이동적인 노동-역량”이었다(168). 무엇보다 이들은 기존의 훈육질서(노동윤리)를 증오했으며, 포드주의적 노동자들과 단절했다. 이탈리아 자본주의는 이러한 길들여지지 않은 야만적 노동의 활력을 전문가주의 속으로 편입시켰고, 반혁명은 이런 방식으로 완수되었다.

 

테제 2. 포스트포드주의는 맑스의 「기계에 관한 단상」의 경험적인 실현이다.

포스트-포디즘 생산양식에서 우월한 기제가 ‘일반지성’이기 때문에 이것은 “지식의 경향적 우월성”으로의 진입이라고 볼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시기에 이르러 ‘가치법칙’이 붕괴되는 특이한 사건들이 시시각각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171).

 

테제 3. 다중은 그 자체로 노동사회의 위기를 반영한다.

노동은 ‘종말’한 것이 아니라 ‘위기’를 노정하며, 이것은 일반지성의 확대와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그러므로 테제2에서 말하는 가치법칙의 붕괴는 노동시간의 척도자격이 박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노동시간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는(en vigeur) 측정단위이지만, 더 이상 참된(vrai) 측정단위는 아니다”(173). 하지만 척도로서의 노동시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비르노는 덧붙인다.

 

테제 4. 포스트-포드주의적 다중에게서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의 모든 질적인 차이는 사라진다.

“포드주의적 노동자는 작업이 끝난 다음에야 신문을 읽고, 정당의 지부에 가며, 생각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포스트-포드주의에서는, ‘정신생활’이 생산의 시간-공간 안에 안전히 포함되기 때문에, 본질적인 균질성이 지배적으로 된다”(176).

 

테제 5. 포스트-포드주의에서는 ‘노동시간’과 훨씬 더 긴 ‘생산시간’ 사이의 항상적인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간극을 비르노는 ‘불균형’(disproportion)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이러한 불균형이 궁극적으로 맑스주의 잉여가치론에 균열을 낸다는 점이다. 맑스에 따르면 잉여가치는 필요노동과 전체노동일 간의 간극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데, 포스트-포디즘 시기에는 생산시간 자체가 측정되지 않는 삶의 시간이기 때문에, 이것과 노동시간의 간극이 보다 중요한 결정요인이 된다(179).

테제 6. 포스트-포드주의는 한편으로는 극히 다양한 생산모델들의 공존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본질적으로 동질적이라 할 수 있는 노동 외부의 사회화에 의해서 규정된다.

따라서 생산모델들의 군도를 이어주는 사회화 과정은 전체 사회적 노동자들의 에토스를 하나로 통합하며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저항지점이 될 수 있다(181 참조).

 

테제 7. 포스트-포드주의에서 일반지성은 고정자본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하게는 산 노동의 언어적 상호작용으로 제시된다.

비르노의 이 테제는 그도 밝히고 있다시피 맑스의 견해와는 다르다. 비르노는 일반지성의 고정자본화에 일정부분 반대하면서 일반지성의 ‘산노동적 특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글므로 일반지성은 공식, 비공식적 앎, 상상, 윤리적 기질, 멘탈리티, ‘언어 놀이’를 포함한다. 현대의 노동 과정들에는 기계적인 ‘신체’나 작은 정기 ‘정신’을 빌릴 것도 없이, 생산 ‘기계들’처럼 그 자체로 기능하는 사유와 담론이 있다”(182).

 

테제 8. 포스트-포드주의적 노동-역량 전체는 가장 숙련되지 않은 노동마저도 포함하는 지적인 노동-역량이며, ‘대중의 지성성’이다.

여기서 ‘대중의 지성성’은 뭔가 특별한 지적(혹은 지식인적)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사유한다/말한다 등의 능력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포스트-포디즘 양식 안에서 다중의 소통역량은 기존의 정치경제학적 척도를 벗어나기 때문에 중요해진다.

 

테제 9. 다중은 ‘프롤레타리아화 이론’과는 완전히 무관하다.

앞선 테제에서의 ‘대중의 지성성’으로부터 비르노는 프롤레타리아화와 다중의 변별점에 대해 논한다. 여기서는 우선 복잡노동과 단순노동에 대한 고전적인 맑스주의적 담론을 폐기하고, 노동의 언어적, 지적 역량이 산출하는 복잡노동(협력)은 단순노동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일반지성이란 협업 안에서 언제나 초과분을 가진다는 것으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화 개념은 이러한 초과분을 설명하지 못한다. 거꾸로 말하면 “‘프롤레타리아트’ 개념이 통상 내포하고 있는 일종의 뺄셈에 의한 동질성이 포스트-포드주의적인, 복잡하고 지적인 모든 노동-역량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88).

테제 10. 포스트-포드주의는 ‘자본의 꼬뮤니즘’이다.

자본의 꼬뮤니즘이라는 이 논쟁적인 개념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서구 사회체제 변화를 요약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본주의적인 주동성(initiative)이 꼬뮤니즘적인 전망에 확고한 현실주의를 보장했던 물질적/문화적 제반 조건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직한다는 것이다”(189). 포드주의가 러시아 혁명에 대한 반응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포스트-포드주의는 60년대와 70년대 유럽을 휩쓸었던 혁명의 새로운 주기에 대한 자본의 재합성 방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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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제는, 파올로 비르노, 김상운 옮김,『다중』, 갈무리, 2004와 영역본, A Grammar of the Multitude, trans. Isabella Bertoletti, James Cascaito, Antrea Casson(Semiotext(e), 2004)를 참고했다. 발제문에서 괄호 안의 페이지수는 국역본이며, 같은 페이지의 내용을 연속 인용할 경우 뒤 인용문의 페이지수는 달지 않았다. 국역본의 번역어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질 경우 괄호에 원어와 함께 발제자의 번역어를 병기하였다.

2) 사실상 비르노의 ‘개체화 원리’는 스콜라적인 의미의 개체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도 그럴 것이 스콜라철학에서의 보편-개체 논쟁은 신이라는 초월성과 이데아적인 보편성이 현실 안에서 어떻게 육화되는지에 대해 정당화하는 극히 형이상학적인 논의이기 때문이다. 비르노에게는 이러한 초월성과 보편성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내재적 장 안에서 ‘개체화’의 문제가 된다.

3) 비르노의 논지는 철저하게 내재적인 유물론의 방향에서 다중을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구도는 사실상 현행적인 양태들인 단독성이 그 지각과 언어의 측면에서도 심층과 평행성을 형성하면서 힘(puissance, 스칼라적이라기보다 백터적인)으로 존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앞서 말한 ‘준안정성’은 이중적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심층에서 전-개체적 특이성들의 준안정 상태, 사건화(개체화) 과정에서 힘의 준안정 상태.

4) 이러한 개념 분화는 노동력(또는 노동역량)을 가능태로 보았을 때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가능태는 들뢰즈-베르그송적인 개념에 따르면, ‘잠재성’ 외에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비르노는 이런 개념필연성을 바로 아래에서 맑스의 말을 번역해 옮기면서 밝힌다. “노동-역량의 구매자는 노동-역량의 판매자로 하여금 노동하게 함으로써 노동-역량을 소비한다. 반면 노동-역량의 판매자는 노동함으로써 이전에는 그저 잠재적(potentia)이었을 뿐인 것이 현실성으로 된다”(Marx, 『자본』, 1권, 283쪽-비봉판)

5) 이 ‘수동성’은 본문에서도 이야기되고 있다시피 ‘노동 외부의 사회화’(작업장 외부 사회화 과정, outside-of-the-workplace socialization)에 기반하고 있다.

6) 사실상 포스트-포디즘 생산양식은 이러한 다중의 잡담수행과정을 절취하는 기계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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