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워크숍
너무 길면 지겨워서 두 부분으로 나눴습니다.
이진경선생님 글 발표와 그에 대한 질문이 끝나고~
바로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가면” 1,2,3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1장은 흑인과 언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파농은 앙띨레스에 사는 흑인들은 불어를 하는 능력에 따라 백인화의 정도를 평가받고, 인간 됨됨이가 가늠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식민지인들의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고 덧붙입니다.
“식민지인은 자신의 흑인성 혹은 자신의 원시성의 폐기를 통하여 백인화되어 가는 존재인 것이다.”(p.25)
이 부분 보고 굉장히 씁쓸했는데요. 지금 저, 그리고 우리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로 2장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 과 3장 유색인 남성과 백인 여성을 비교해보는 지점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는데요.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의 관계를 보면, 유색인 여성은 철저히 백인화되려고 합니다.
백인과 결혼하여 신분상승을 하고 완전히 백인세계에 편입되기를 원합니다.
만약 유색인 여성이 흑인 남성으로부터 구애를 받는다면, 유색인 여성 즉 물라토는 흑인 남성을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유색인 남성과 백인여성의 관계는 이와 다릅니다.
유색인 남성은 백인이 되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백인여성의 사랑만 있으면 가능할까요?
책에 나오는 유색인 남성 장 브뇌즈는 백인 여성 앙드레 마리엘의 프로포즈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에게는 검열이 필요합니다. 그녀의 백인가족의 인준이 필요합니다.
왜 “유색인 여성과 백인 남성의 관계”와 “유색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관계”에 비대칭성이 존재할까요?
장 브뇌즈는 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구애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증거를 필요로 했을까요?
그가 유색인 남성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의 시작일까요? 장 브뇌즈는 끝내 백인 여성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책에서는 장 브뇌즈가 포기 신경증 환자임을 내세웁니다. 장브뇌즈는 고아로서 이미 고국에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기억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사랑받을 수 있을지를 의아해합니다.
3장 마지막에 파농은 자신이 설명한 소설의 인물들의 구체적인 예들이 유색인과 백인의 보편적인 관계로 일반화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쓰고 이러한 예를 든 것은 논리적인 모순에도 불구하고, 설명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얘기 속에서 시간이 늦어서 막차시간의 압박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2주차 때 제가 시험공부하느라 못갔는데 어떤 이야기가 펼쳐졌는지 궁금하네요. 4장부터 뒷부분이 레알이잖아요.ㅎㅎ
후기가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파농의 다음 책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도 기다려지는군요.
12월 12일 금요일 저녁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