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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워크숍

 

 

 

<수유너머 위클리> 창간호에서  http://suyunomo.net/archives/177

 

이주자들의 공동체

왜구들의 ‘동아시아’를 위하여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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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일본의 시인이자 혁명가, 사상가인 타니가와 간(谷川雁)은 자신이 활동하던 큐슈(九州)를 ‘도마뱀의 머리’라고 지칭하면서 혼슈(本州)포함한 일본의 북부지역, 다시 말해 도쿄를 비롯해 일본의 중심이라고 간주되던 지역을 ‘도마뱀의 꼬리’라고 지칭한 적이 있다. 촌구석의 지방인 큐슈가 새로운 일본 역사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랬던 것일 게다. 더불어 조선을 그 큐슈의 공범자로 불러낸다. 물론 이처럼 자기가 사는 지역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는 것은 흔히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타니가와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이는 이런 소박한 관념과는 아무상관이 없다.

 

 그가 모리사키 카즈에(森崎和江), 우에노 에이신(上野英信) 등의 동료들과 함께 활동하던 큐슈와 치쿠호(筑豊)는 당시 일본 최대의 탄광지대였다. 그는 거기서 광부들의 노동운동에 참여했고 노동자들이 직접 자신들이 글을 쓰는 써클들의 네크워크를 조직했으며, 광부들 및 빈농, 어민, 피차별 부락민 그리고 조선이나 오키나와 출신 이민자들 등의 ‘유민(流民)’들의 코뮨을 만들어 함께 살고 함께 행동했다. 그에게 큐슈란 노동자와 빈농, 그리고 식민지 출신의 유민들이 모여들고 합류하는 지대였던 것이다. 큐슈가 역사의 새로운 중심이 되리라는 것은 그곳이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들어 공존하는 혼성의 지대고, 그런 점에서 이민족적 에너지들이 거대한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선, 중국, 대만, 일본으로 둘러싸인 황해와 동지나해가,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로 둘러싸인 지중해처럼 이 이질적인 지역, 이질적인 사람들을 연결하며 새로운 세계,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모태가 되어주길 상상한다. 조선을 큐슈의 공범자로 불려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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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또 다른 역사를 구성하는 새로운 역사의 공간을 상상하게 해준다. 타니가와처럼 큐슈에서 역사를 본다면, 큐슈에서 역사를 쓴다면 어떤 역사가 만들어질까? 그것은 필경 권력의 장소를 중심으로 쓰여지는 통상적인 역사와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중심을 큐슈로 옮겨서 서술한, 그런 점에서 입지점을 달리하는 또 하나의 역사, 지역상대주의에 따른 또 하나의 지역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타니가와의 생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큐슈에서 역사를 쓴다는 것은 그의 말대로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이고 공존하면서 만들어지는 세계로서 역사를 본다는 것, 그런 양상이 펼쳐지는 시간적 계열화로서 역사를 쓴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게다. 그러한 이질성의 공존과 혼합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문화의 창조를 가시화하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러한 혼성을 저지하고 동질화하며 그려내기 위해 이질적인 것을 분리하고 배제하는 그런 힘과 대결하는 역사가 될 것이다.

 

 그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모리사키 카즈에는 이를 좀더 밀고나간다. 그는 우리가 흔히 일본인 해적이라고 알고 있는 ‘왜구’를 통해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찾는다. 사실 왜구는 그 명칭과 달리 일본인 해적이 아니라,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 오키나와인은 물론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인들까지 포함된 말 그대로 혼성적인 집단이었고, 대부분 자신의 국가에 의해 쫓겨나거나 거기서 살기 힘들어 벗어난 ‘탈주자’들이었다. 그들은 단지 ‘해적질’만 한 게 아니라 해상교역을 하며 살아갔던 사람들이었다. 해양을 가로지르며 소위 ‘동아시아’라고 불리는 지역을 연결했던 바다의 노마드 집단이었던 것이다.

 

 모리사키는 민중 속에서 평생 살았지만, 그렇기에 민중들에 대해 잘 안다. 민중의 내향성과 배타성을 파괴하기 어렵다는 점, 이런 전통적인 공동체적 감각이 이질적인 상대를 억압하거나 침략한다는 것을. 그는 이에 반하여 이질적인 시간성을 갖는 집단들간의 만남을 더 밀고나갈 것을 강조한다. 거기서 새로운 공동의 시간이 구성될 때, 그에 비례하여 이질적 집단 간의 평등감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시간의 차이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이 함께 공동의 리듬을 만들며 공존하게 되는 것, 이를 통해 새로운 공동의 시간이 탄생하는 것. 이를 그는 왜구에서 발견한다.

 

 왜구의 입장, 왜구가 된 조선인의 입장에 서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아는 조선의 역사, 혹은 그 이전의 역사는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일부라고 주장하면서도 사실상은 적이었던 미국 이상으로 더 참혹하게 동원하고 죽이고 묻어버렸던 오키나와인에게 통상적인 일본의 역사라는 것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처럼. 이처럼 이질적인 집단들이 모여서 새로운 공동의 시간을,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왜구’를 통해, 이 비국가적이고 외부적이며 소수적인 입장을 통해 동아시아의 역사를 쓴다면, 혹은 일본의 역사나 조선의 역사를 쓴다면 어떨까? 그들의 시점에서 지금 우리를 관통하고 있는 사건들을 본다면 어떨까?

예전에 들뢰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해양적인 기원을 갖는다고 지적하면서, 그 유동성과 가변성, 노마드적 성격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왜구’야말로 이른바 ‘동아시아’를 해양적으로 횡단하면서 국가적인 삶의 방식, 자민족중심적 삶의 방식, 배타적인 삶의 방식, 내부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 다른 종류의 삶을 사유하게 해주는 해양적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해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어디서 왜구를 찾을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시대착오 아닌가! 하지만 ‘왜구’를 특정한 집단을 일컫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어떤 삶의 방식, 어떤 사유방식을 표시하는 특이성의 이름으로 이해한다면, 블랑쇼 식으로 말해 ‘비인칭적 특이성’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왜구는 그런 특이성이 출현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아니, 그런 종류의 특이성을 구성하고자 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새로운 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주의 시대, 동아시아만이 아니라 인도,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에서 버마, 필리핀에 이르는 광범한 지역으로부터 시작된 이주자들의 흐름이 아시아 전체를, 혹은 세계 전체를 횡단하는 시대에, 자국을 떠나고 자국의 동일성/정체성을 버리며 이질적인 새로운 상대와 만나고 섞이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 거대한 흐름에서 ‘왜구’라고 명명했던 어떤 특이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타니가와가 큐슈를 통해, 모리사키가 왜구를 통해 사유하고자 했던 것, 다시 쓰고자 했던 역사를 우리는 이 새로운 이주의 흐름을 통해 다시 사유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적시고 있는 이주자들을 통해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이 이주자들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제한하고 분리하고 비가시화하려는 힘에 대항하며, 역사를 치안이나 착취 아닌 정치가 가동되는 영역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동안 꽤나 오래 반복되어 왔던 ‘동아시아’라는 상투화된 주제가 국가적 사유를 넘어 정치적으로 사유될 수 있다면, 이런 방식을 통해서일 것이다. 국경을 넘는 이주의 흐름이 범람하는 시기에 필요한 새로운 국제주의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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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

2010.04.28 14: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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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제1회 국제워크숍 강사셨던 사카이 다카시 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안부를 물으며 최근의 관심사도 뭔지 알려달라고 하니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지요.

이제 보니 다니가와 간과 같은 문제의식을, 혹은 다니가와 간을 가지고 공부하고 계셨나봅니다.

  

 

from. 사카이 다카시            to. 수유+너머

'요즘의 저'

작년 여러분들에게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일본을 벗어나 최초로 경험하게 된 아시아의 도시가 바로 서울이 되었지요.
이는 수유+너머에서의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이는 더없이 익사이팅해, 이후 제 발상의 방법이나 생각방식 등도 다소간 변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코뮨’이라는 개념을 조금이지만, 이전보다 긍정적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여전히 대학에 물려있고, 한달에 한 번 현대사상지에 오오사카론을 연재하는 등의 일 때문에 매달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이에요.
도시론 덕분에 천천히 도시를 거닐 수도 없는 모순에 직면해 있지요.

최근 제 관심의 지도는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오오사카大阪론을 하면서 점점 관심이 서일본을 향했고,
최근에는 오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간사이, 세토나이瀬戸内 북큐슈 그리고
제주도, 조선반도 남부와 같은 지역 규모로 관심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출신지가 큐슈예요. 큐슈, 그 중에서도 저의 출신지인 북부 큐슈는 탄광이라는 일본 자본주의의 원시적 축적을 떠받쳐온 공업의 중심지입니다.
거기에서 아마미奄美 오키나와沖縄와 조선반도 그리고 중국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기반으로 한 사람들이 저가의 노동력으로 모집되었습니다.
그곳에 일본자본주의의 ‘원죄’가 있는 것입니다.
한편 큐슈는 조선반도, 아마미 오키나와와 근접해있어 일본이라는 틀로 수렴될 수 없는 독특한 지리감각을 가져,
이를 토대로 독특한 구상을 가지는 사상가와 활동가를 배출해왔습니다.
물론 이는 아시아에 대한 침략과도 이어지고 말았지만 한편으로 그런 침략적 체질도 포함해서,
일본이란 국가를 아시아라는 시점에서 철저하게 상대화할 지향성도 만들어왔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많은 사상가와 활동가는 이 두 요소를 아울러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 관심이 가는 것은 이런 ‘위험한 사상가’들입니다.
그런 점 때문에도 다시금 한국에 찾아가고 싶습니다.
어찌됐든 수유+너머에는 또 다시 슬쩍 들르고 싶어요.
저 언덕너머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광경은 좀처럼 잊기 힘든 구석이 있거든요.

                                                                                                                                        2009, 2월 사카이 다카시

 

1회 국제워크숍에서 열심히 번역했던 사카이 샘의 <자유론>도 그린비에서 곧 번역 돼 나올 예정입니다.

참~ 질긴 인연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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