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워크숍
<실미도> '적기가'의 유래와 역사를 찾아서 | |||||||||||||||||||||||||||||||||||||||||||||||||||||||||||||
[민경찬 교수 특별기고] 독일민요 '소나무'가 영국·일본 거쳐 한반도로 유입·변형 | |||||||||||||||||||||||||||||||||||||||||||||||||||||||||||||
| |||||||||||||||||||||||||||||||||||||||||||||||||||||||||||||
서울대 음대와 일본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한국근·현대음악을 전공한 민 교수(48)는 북한 음악과 일본 음악에 대해서도 꾸준한 연구를 수행해 온 전문가로서, 지난 90년대 '항일가요 및 북한 혁명가요와 일본 노래와의 연관성'을 천착한 연구 성과로 학계의 반향을 부른 바 있습니다. 2001년에는 KBS 제작진과 북한을 방문해 6·15 1주년 특집 프로그램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2001년 6월10일 '일요스페셜' 방영)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청탁에 응해주신 민 교수께 감사드립니다. 본문에 링크된 네 곡의 음원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디어오늘 편집국이 별도의 경로를 통해 입수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일본 곡[악보 3]과 북한 곡[악보 4]의 경우, 보도 목적을 위해 앞부분만 편집해서 올렸습니다. [편집자 주] 안보상 논란이 되고 있는 <적기가>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최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실미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래의 첫 부분이다. 이 노래의 제목은 '붉은 깃발의 노래'라는 뜻의 <적기가>(赤旗歌)이며,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극적인 최후의 장면 못지않게 특수부대원들이 "민중의 기 붉은 기…"라고 노래하는 비장한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로 말미암아 영화감독이 보안법 위반혐의로 피소를 당하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좌경·용공적'이라고 지적을 당하는 등 안보상의 논란이 되고 있어 많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아마 노래가 문제가 되어 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하거나 국회에서 국무총리와 관계부처 장관이 답변하게 된 일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이 아닌가 싶다.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어 주목을 끌게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응 또한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우선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반응이 다르고, 영화를 분단현실에 비추어 보고자하는 사람과 영화를 영화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의 생각도 다를 것이다. 그 중에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많은 피를 흘리게 한 끔찍한 적(敵)의 노래라는 생각을 떠올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순히 영화에 등장하는 주제가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반응은 다양한데 비해 실제 <적기가>가 어떤 노래인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즉 북한 노래인지 아닌지, 세계공산주의자들의 혁명가인지 아닌지, 영국의 노동당가인지 아닌지, 작곡은 누가했고 가사는 누가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고 언제부터 누가 무슨 목적으로 불렀는지, 한반도에서는 언제부터 불렸고 또 어떤 상황에서 불렸는지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등에 관하여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영화 <실미도>의 내용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논란이 제기되면서 그동안 사실 확인과 진실 규명작업이 상당히 진척되었는 데 비해 아이러니하게도 안보상의 논란이 되고 있는 가장 큰 핵심인 <적기가>가 어떤 노래인지 정작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적기가>란 어떤 노래인가! <적기가>를 난생 처음 들어 본 사람도 이 곡의 선율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하다는 친숙함과 친밀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선율을 금방 외우고 말 것이다. 곡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우리와 음악적 정서가 비슷한 북한사람이 만든 것이라서 그럴까. 이도 저도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많이 들어 본 노래라서 그럴까. <적기가>가 낯설지 않은 이유에 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본 사람이 의외로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적기가>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는 <소나무>(또는 <전나무>)라는 노래의 선율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라는 가사로 우리에게 널리 애창이 되었던 <소나무>의 선율로 만든 것이 바로 <적기가>이다. <소나무>라는 노래는 오랫동안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수록되어 우리나라 국민이라고 하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애창이 되었던 노래이며, 현행 중학교 음악교과서에도 가사는 약간 바뀌었지만 똑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곡은 한국 사람이 작곡한 것이 아니라 '전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탄넨바움>(Der Tannenbaum)이라는 독일 민요에 한국어 번역 가사를 붙인 것이다. 독일민요 <탄넨바움>은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용되고 있는 '전나무'를 찬양한 노래로, 지금도 독일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노래로 애창이 되고 있다.
즉 <적기가>의 선율은 북한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며 공산주의자가 만든 것도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독일 민요인 것이다. 독일민요 <탄넨바움>에서 북한의 <적기가>가 되기까지 그럼, <탄넨바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적기가>가 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독일민요 <탄넨바움>을 영국에서 <레드 플래그>(The Red Flag)라는 노동가요로 만들어 불렀으며, 이것을 다시 일본인이 <아까하타노 우타>(赤旗の歌)라는 민중혁명가로 번안을 하여 불렀고, 이 노래가 또 다시 북한으로 유입되어 <적기가>라는 혁명가요가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선율도 약간씩 변형이 되었다. 원곡인 <탄넨바움>은 4분의 3박자의 못갖춘마디 곡이며(악보 1 참조) <레드 플래그>는 원곡과 마찬가지로 4분의 3박자 못갖춘마디로 되어 있다(악보 2 참조). 그런데 일본의 <아까하타노 우타>로 바뀌면서 4분의 3박자의 못갖춘마디의 곡이 4분의 4박자 못갖춘마디의 곡으로 변형이 되었고(악보 3 참조), 북한의 <적기가>로 바뀌면서는 4분의 4박자 갖춘마디의 곡으로 변형이 되었다(악보 4 참조). 그러면서 차츰 원곡이 가지고 있었던 서정성은 상실이 되었고 그 대신 비장한 행진곡풍의 투쟁가로 변모가 되었다. <적기가> 가사의 오리지널은 영국의 '래드 플레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곡은 독일 민요이지만, 가사는 영국에서 만들었다. 1889년 영국의 사회주의자인 짐 코넬(Jim Connell)이 런던 도크에서 발생한 스트라이크를 격려하기 위하여 <레드 플래그>라는 가사를 만들었다. 그는 이 가사를 샤링 크로스로부터 뉴 크로스까지의 차 중에서 15분만에 썼다고 한다. 짐 코넬은 이 가사를 효과적으로 보급하기 위하여 당시 영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던 <탄넨바움>의 선율을 차용하여 <레드 플래그>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었으며, 이 악보집을 1889년 크리스마스에 <저스티스(Justice)>라고 하는 영국의 사회주의 출판사에서 간행하였다. 악보 출판과 동시에 <레드 플래그>는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리고 대표적인 공산혁명 투쟁가가 되어 전 세계에 보급이 되었다. 후에 이 노래는 영국 노동당의 송가(頌歌)가 되어 오랫동안 불렸는데 이 때문에 영국노동당의 공식 당가(黨歌)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1945년 8월 1일에 있었던 선거에서 노동당이 대승했을 때에는 이 노래가 영국 하원에서 불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영국 노동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적기가>의 모체가 된 일본의 <아까하타노 우타>(赤旗の歌) 1920년 영국의 노동가인 <레드 플래그>가 일본에 소개가 되었다. 이때의 곡명은 <노동자여 단결하라>(勞動者團結せよ)였는데, 유감스럽게도 곡과 가사의 운율이 맞지 않아 노래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아카마쯔(赤松克마(麻+呂))라는 사람이 7·5조의 번역으로 고쳐, 일반 노동자들에게도 노래할 수 있도록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곡명도 <레드 플래그>를 직역하여 <아까하타노 우타>라고 지었다. 이 곡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동경의 노동자들에게 보급이 되었고 또 삽시간에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7·5조로 번역으로 고쳤다'는 점인데, 이로 말미암아 원곡의 3박자의 리듬이 붕괴가 되었고 4박자의 행진곡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4박자로 된 <아까하타노 우타>는 일본 전국의 노동조합원과 사회주의자들에게 마치 자신들의 주제가인양 널리 애창이 되었다. 그리고 각종 시위현장과 학생운동의 현장에서도 많이 불렸다. 이 노래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된 이유에 대하여 작사자인 아까마쯔씨는 "심한 탄압의 아래에 있었던 당시의 사회운동의 감정과, 이 노래가 갖는 비장한 멜로디가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회고한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런 한편 4박자로 바뀐 <아까하타노 우타>는 1930년대에 바다를 건너 한반도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파르티잔 투쟁을 전개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많은 투쟁가를 필요로 하였다. 그렇지만 가사를 만들거나 외국 가사를 번역할 만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작 곡을 지을 사람들은 없었다. 이에 택한 방법은 주로 일본의 군가나 투쟁가, 공산혁명가와 같은 노래를 번역하여 부르거나 아니면 기존 곡에 새로운 가사를 만들어 붙여 노래하는 것이었다. 이 노래들 대부분 4박자 또는 2박자로 된 행진곡풍의 노래였으며, <아까하타노 우타> 역시 그런 노래 중의 하나였다. 만약 <아까하타노 우타>가 일본에서 4박자로 바뀌지 않았다면 조선에 건너오지 않았거나 아니면 생명이 매우 짧았을 것이다. 북한의 <적기가> <아까하타노 우타>는 한반도로 건너와 곧 <적기가>로 바뀌었다. 가사는 물론 일본의 <아까하타노 우타>를 직역한 것이며, 지금의 북한 지역과 만주에 널리 유포가 되었다. 정확히 언제 수입이 되었고 누가 번역을 하였는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각종 문헌과 기록을 살펴보면 1930년대부터 불리기 시작하였고, 주로 파르티잔 투쟁을 벌여 온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애창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기가>는 북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역사 속에서 동화가 되었고 선율도 못갖춘마디에서 갖춘마디의 행진곡 풍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이 노래를 들으면 도미야마 선생님이 '폭력의 예감'에서 겁쟁이(비겁한 자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를 옹호하는 식으로 말씀하셨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특히 그 후반부에서 일본의(일본만은 아니겠지만) 구좌파에서 신좌파 정당/정파로 이어지는 타자성의 결여와 폭력으로의 층동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문제점을 듣게 되네요. 전반부까지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사실 저는 한국의 운동가요 '바위처는럼'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뭔가 수세적이고 무겁고 움직임이 없는...운동이 안되는 국면에서 불리는 노래인 뜻. 좀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 안 되는가? 바위처럼 되려면 거의 수행을 해야 되는데 그런 것을 하자라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인간이 바위가 되나? 갈대일 수는 있지. 암튼 저는 세로운 적기가가 혹은 바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 물론 차태서님이 말씀하시는 역사가 많은 생각을 주는 것임은 분명하고 그것을 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혹시 오해하실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