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5강은 지난 4강에 이어 발리바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는 발리바르의 글이 상당히 압축적이고, 난해(?)하여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발리바리안인 강사님의 의중이 담긴 강의 진행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발리바르의 논의에 있어서 언제나 아포리아를 찾아 그것의 숨겨진 작동방식을 밝혀내고, 이를 생산적으로 사유한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그의 사유가 현실에 천착해서 이루어진다는 점, 즉 현 정세에 기반 하여 자신의 이론을 구축해간다는 특징은 학문하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본 받을 만하다.

 

 


지난 4강에서 살펴본 주권 개념에 대한 서론에서 발리바르는 주권의 아포리아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이는 유럽구성이라는 현재적 맥락에서 마주하는 시민권 문제, 예컨대 이민자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인종주의 및 민족주의 그리고 극우화 경향 등을 주권의 문제 속에서 사유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발리바르는 ① 「정치신학에서 대지의 노모스로 이어지는 슈미트의 논의를 자신의 시각에서 검토함으로써 주권론이 갖는 난점, 즉 인민주권과 관련해 인민이 통일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주권의 아포리아를 밝혀낸다. 그리고 보댕의 주권론을 통해서는 주권의 징표, 이른바 종교(이데올로기)와 경제 영역을 포섭해야만 하는 주권의 한계를 설명하면서, 전일적 주권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루소의 일반의지가 갖는 문제, 다시 말해 인민=주권자라는 등식이 국가 구성의 민주적 토대여야 한다는 논의는 국가 형태를 갖출 수 있게 해주나 그 자체로 한계를 내포한다고 지적한다. 국가를 아무리 민주적으로 잘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를 충실히 반영할 수 없기에, 국가의 정지 가능성이 언제나 상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인민=주권자라는 등식, 즉 명령을 내리는 자와 복종하는 자의 일치가 갖는 모순 때문이며, 그로 인해 일반의지를 실현하는 과정 속에서 남겨질 수밖에 없는 국가 형태 해체의 가능성이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상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이러한 아포리아가 주권론의 한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발리바르는 지난 20세기에 인민의 비통일성을 국경 체제, 국적=시민권 등식으로 해결하려는 방식과 종교와 경제를 코포라티즘적 방식에 따라 주권 국가 안으로 포섭하는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며, 그 결과 (발리바르의 표현에 따르면) 국민사회국가가 주권의 아포리아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했다고 본다. 그러나 주권의 아포리아는 다시금 새로운 변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국경 체제의 약화, 전 세계적 인구이동, 인종과 종교를 넘어서는 다양한 문화의 뒤섞임 등의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따라서 발리바르가 보이게 이렇게 전위된 주권의 아포리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민사회국가에서의 시민권 개념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해체되어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코소보 사태와 같이 혼란과 참상을 빚어낼 뿐이다. 발리바르는 시민권 헌정의 변화 가능성을 주권의 아포리아로부터 도출함으로써, 그 내부 모순으로부터 비롯되는 국가 형태의 지속적 변화가능성에 주목한다. 요컨대, 아포리아의 생산적 작동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국경과 국적에 기반 한 종래의 시민권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민권 헌정을 수립해야 하며, 유럽 건설 과정은 이러한 민주적 활성화 모색의 작업장, 민주주의의 작업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주권의 아포리아에 기초하여 발리바르는 유럽 헌법 논쟁에 대한 성찰을 시작한다. 민주주의적 시민권인가 인민주권인가?에서 발리바르는 두 가지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자를 벗어난 새로운 답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논의는 유럽 건설 과정에서 논의되는 유럽적 시민권의 불가능(=+)한 필연성(=+++)을 지적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발리바르가 보기에 유럽적 시민권은 국민사회국가의 성립과정이라는 역사적 장애물들의 축적으로 인해 그리고 인민주권이라는 모순 속에서 나타나는 사고의 장애물들로 인해 불가능한 실현물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는 그러한 모순으로 인해 오히려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것이며, 유럽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의 변화 때문에 그리고 이를 통해야만 민주주의 발전과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필연성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리바르는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여러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성립된 국경체제를 넘어 하나의 유럽이라는 새로운 정치체를 구성하기 위한 전환점에서 나타나는 각종 문제, 예컨대 인종주의, 이민자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불가능한 필연성의 역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기존의 인민과 국가 사이의 긴장 관계에서 도출된 국민국가 형태와 결부된 시민권, 현재 국민국가 안에서 본질적으로 실현되어 있는 시민권,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이나 지위로서의 시민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불가능한 필연성의 역설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시민권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단순한 포함관계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시민권을 국가에 의한 지정 바깥에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시민권 자신의 내적인 동역학에서 출발해 국가를 형성하거나 국가에게 특정한 형태를 부과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하버마스의 말을 빌어서, 인민 주권의 전체주의화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민주권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시민권, 이른바 정치적 의미의 소속을 뜻하는 시민권, 국민이라는 역사적 공동체에 속한다는 사실에 토대를 두는 시민권에 주목해야 한다는 기존의 논의를 설명한다. 물론 인민주권의 이념이 약화된 것은 타당하다. 사실적으로는 정치적 단위들이 사회적·문화적으로 다양화 되는 것에 따라 유기적 통일성이 낮아졌기 때문에 그리고 규범적으로는 동질성의 과도한 추구는 오히려 전체주의의 위험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리바르가 보이게 인민주권 없이는 시민권은 성립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개념적으로 인민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며, 민주주의의 원리, 이른바 민주주의의 절차와 작동 또한 인민의 참여와 동의에 기초하기 때문이며, 민주주의는 인민들의 관개인적 권리를 통해 정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민주주의는 순수하게 절차적으로 정의되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인민에게 부여되고 보장되는 권리들을 척도로 삼기 때문이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공동체라는 인민의 집합적 통일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며, 불가능한 필연성 위에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하에서 시민권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때에 우리는 계속해서 인민주권 논의의 유령적 신들림에 사로잡히고 만다. 민주주의적 공동체는 실재적으로 (모든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로서의) 공동체들 중의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비실재적으로 (특정한 정체성을 갖지 않는) 공동체 없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문제, 인민주권이 제기하는 딜레마에 마주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불가능한 필연성에서 발생하는 부단한 변증법을 밝히고 이를 생산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1. 국가 속에서 다중의 환원이나 보존의 문제

이러한 변증법과 관련하여 발리바르는 우선 우리라는 표현의 모순성에 주목한다. “우리가 인민이다,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라는 민주주의적 권리 선언에 대해 논의한다. 발리바르가 보기에 이런 모순된 표현은 한편으로는 개인적 독특성과 집합성의 상호성(ex. 우리인 나, 나인 우리)을 보여주며, 그리하여 각 개인에게 인민이라는 동일한 자격을 부여함과 동시에 각 개인은 스스로를 인민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하나의 시민으로 생각하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수행적 언표 행위는 우리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우리라는 것이 긍정하는 구성적 속성들을 설정함으로써, 그것과 갈등하는(배치되는) 다른 속성들 및 그 담지자들을 자신의 고유한 삶의 공간내외부로부터 배제한다. 요컨대, 민주주의의 권리 선언 속에 등장하는 우리라는 표현은 인민주권의 아포리아, 구체적으로 말해 인민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동질화 하는 것과 동시에 인민들의 정체성에 포함되지 못하고 갈등하는 것들을 배제하는 모순(ex. 국적=시민권=주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성을 갖는 인민주권은 그 속에 '봉기적 계기'를 가진다. 이는 인민주권은 권리들을 개인들이 모두 함께 획득함으로써 서로에게 부여한다는 관개인적 권리를 토대로 삼고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인민주권은 국가주권과 동일하지 않고 나아가 국가주권 없이도 인민주권이 성립할 수 있다. 즉 국가가 주권을 인민에게 부여 및 보장하지 않더라도, 인민들 스스로 서로에게 부여하고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2. (단지 다원성이 아니라) 갈등의 대표/표상의 문제

그러나 발리바르에게 이러한 봉기적 계기는 직접민주주의와 연결되기 보다는 대의민주주의와도 밀접한 연관을 가질 수 있다. 즉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봉기적 계기의 위험성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발라바르가 보기에 대의민주주의가 없이는 실제적인 인민주권도 존재할 수 없으며,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주권의 위험성을 제어함과 동시에 보완해줄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대의민주주의도 인민주권과 마찬가지로 모순적이다(대의민주주의 아포리아).

대의민주주의에서는 대표를 선출하고 (인민이라는 집합적 역량의 덜어내기), 인민이 대표를 통제함(집합적 역량의 더하기 내지 보충)으로써 인민주권의 위험성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표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의견의 다원성을 보증하고 활성화 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대표하는 것이며, 그러한 갈등들이 억압받지 않고 공동선을 위해 충분히 활용될 수 있게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갈등의 구성 및 해소라는 갈등의 제도화, 갈등을 제도 속으로 표출하고 집약하며, 정책으로 산출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에서 중요하다.

이렇게 볼 때, 대의민주주의는 다시금 우리에게 아포리아를 보여준다. 자율적인 우리를 정립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항상 계속해서 다양체로 머물러야 한다는 것 또는 다양체로 다시 생성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바로 이렇게 자기 자신을 대표/표상해야 한다는 아포리아 말이다. 다시 말해, 인민주권에 토대를 두는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우리로 표현되는 공동체는 계속해서 동일성과 다양성 사이의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일상적인 삶과 동시에 인민의 상징적 정체성과도 관련되어 있는) 공화주의적 제도들의 기능 작용에서 타자의 배제와 포함의 문제

지금까지 인민주권의 아포리아를 근대적/역사적 맥락에서 보여주었다면, 마지막으로 현재적 맥락에서 그것을 검토한다. 즉 시민들의 공동체의 내포적인 또는 배재적인 성격을 인민의 이름으로정의를 실행하는 기관들(정부, 국민사회국가)에서 모든 대표/표상으로부터 배제되는 외국인과 이민자들 문제(아감벤에 따르면 호모사케르와 같은 존재들), 외국인 또는 이민자들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인종주의 문제를 통해 살펴본다. 이는 이러한 문제들이 다민족 사회의 맥락에서 긴급한 현재성을 갖기 때문이며, 인민주권의 아포리아를 해소하는 기존의 방식(국적에 기반한 시민권 부여)에 따른 구조적인 배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민주주의적 시민권 논의에서 인민적 주권이 배제되지 못하고 유령적으로 복귀하는 것은 시민권이라는 통념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긴장 내지 모순의 환원 불가능한 성격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시민권이 더는 미리 존재하는 실체나 권위, 예컨대 국민국가가 부여하는 지위로 존재하지 않고, 다시금 자율성의 획득이나 설립이 되는 순간, 이른바 관개인적 권리에 토대를 두는 순간 바로 드러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적 시민권이냐 인민주권인가?”라는 양자택일의 질문은 인민주권과 시민권 사이의 긴장, 인민주권의 아포리아 속에서 지양되며, 새로운 답을 요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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