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읽었던 글, 주권 개념에 대한 서설에서부터 이어지고 있는 발리바르의 문제 의식은 유럽을 구성하는 데(EU)에 있어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조건에 의해 야기된 이민자의 시민권’, 거주의 시민권에 대해 어떻게 새롭게 사유할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지난 글에서 주권의 문제를 통해 이를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시민권의 문제를 통해 그 실마리를 찾고 있습니다. ‘국가국민에 한정되지 않는 시민권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먼저 잠시 생각해보아야할 점은 발리바르가 이야기하고 있는 시민개념입니다. 발리바르가 시민을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정치적 권리 주체로서의 시민을 이야기합니다. 즉 이들은 자신의 해방을 추구할 수 있는 주체인 것이죠. 때문에 시민권 문제를 사유하는데 있어서 주권의 주체로서의 인민, 인민주권의 문제가 강하게 결부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왜 인민주권은 명확히 드러나는 개념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정치적 공간에서 배회하고 있는가를 밝히는 일입니다. 인민주권은 현실적인 그 실체를 포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늘날 유럽에서는 그다지 선호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 민주주의적 원리와 제도들에 대한 참여라는 의미로 이해되는 민주주의적 시민권이라는 개념이죠.

 

하지만 발리바르는 민주주의적 시민권으로 인민주권을 대체하게 되면 곤란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democracy', 즉 그 개념에 이미 데모스의 집합적 역량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민주주의 절차와 제도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은 국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공동체라는 인민들의 간의 상호 제안과 상호 부과라는 계기가 작동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적 시민권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결코 인민주권에 대한 준거, ‘총체성의 차원뿐만 아니라 인민적 차원또한 중요합니다. 때문에 발리바르는 인민주권이라는 관념은 계속해서 시민권에 대한 우리의 정의에 유령처럼 들러붙어’(235)있다고 표현하는 것이죠. 달리 말하면 시민권의 헌정은 민주주의에서 제도, 객관성의 측면을 포착하며, 인민주권의 주체는 그 속에서 주관성, 인간학적 측면을 포착해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중의 차원이 보여주고 있는 아포리아는 무엇일까요? 발리바르는 시민들의 공동체공동체들 중의 공동체임과 동시에 공동체 없는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 두 표현은 아포리아의 두 항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데요, 먼저 그 첫 번째 항은 개인적 독특성과 집합성 사이에서 확립되는 관점들의 상호성입니다. 이는 각 개인이 인민 속에 동일한 자격으로 존재하는 시민으로 투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고유한 실체가 없는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을, ‘공동체 없는 공동체여야함을 의미합니다. 두 번 째항은 여기서는 일종의 갈등이 배제됨으로써만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 즉 공적 공간에 기입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봉기적 계기의 순간에 드러나는 우리라는 수행적 언표행위가 잘 보여주는데요,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그것이 긍정하는 정체성이 만들어지며, 개인의 고유한 삶의 공간은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공동체는 그 앞에서 다른 소속과 원리가 상대화되어버리는 공동체들 중의 공동체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봉기적 계기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 그리고 이를 통해 형성된 헌법이란 개인적인 것과 집합적인 것의 대립을 극복하는 권리들, 관개인적인권리들을 표시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때의 권리들은 개인에 의해 담지되는 것이지만, 그것의 획득은 언제나 집합적인 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권리들은 개인들이 서로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발리바르는 여기에서 인민주권의 토대를 발견하는데요, 따라서 국가의 유출물에 불과한 인민뿐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공동체를 통해 만들어지는 인민 또한 사유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민이란 국민과 동의어로 사용될 수 없으며, 인민주권이 곧 국민주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리바르가 국가를 통해 구성되는 공적 공간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국가, 그리고 대의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통해 갈등을 제도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때 갈등을 제도화 한다는 것은, 모종의 세력관계가 강제하던 억압으로부터 이런 갈등을 빼내와 공동의 정의를 위해 활용할 수 있게끔 드러내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적 대표는 사회적 갈등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갈등이 포함되지 않고 그저 제거되어 버린다면 자칫 전체주의와 같은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죠. 발리바르는 봉기적 계기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위험성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시급한 문제, 국민이 아닌 자의 시민권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이 시민들의 공동체가 그들에게도 보편적인 것으로 작동해야합니다. 이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발리바르는 이 문제를 사유하기 위해서 헤르만 판 휜스테렌의 운명 공동체라는 개념을 빌려옵니다. 이는 어떤 정체성에 기초한 공동체가 아닌 동일한 영토 혹은 동일한 도시와 정치체 안에 함께 던져져있다는 사실에 비롯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일치할 수 없겠지만, 이러한 갈등을 제도화함으로써 공존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는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초민주주의적인 허구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시민들의 공동체를 사유하는 데 있어서 매우 좋은 상상적, 이론적 자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리바르가 시민성을 재규정하기 위해 두 번째로 살펴보는 것은 헌정의 역사입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정치적인 것의 역사는 완결되지 않았으며, 그것은 시민권 제도와 인민의 권력이 맺고 있는 관계라는 문제가 계속해서 전위되는 조건들에 의해 제기되기 때문에 완결될 수 없습니다. 먼저 고찰되는 것을 헌정에 대한 올리비에 보와 지아코모 마라마오의 독해입니다. 고대 도시국가에서 헌정은 권력들 사이의 균형으로 정의됩니다. 하지만 근대 국민국가로 넘어오게 되면 헌정은 기본법으로서의 헌법의 의미를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사회국가로의 전환은 사회권 및 몇 가지 권리들을 헌법에 집어넣게됩니다. 발리바르는 이들의 논의에서 두 가지 한계지점을 발견하는데요, 하나는 관국민화 되는 현실은 국민국가라는 조건을 넘어선 새로운 헌정을 요구하게 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시민권이라는 통념에 대한 새로운 전환에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헌정이라는 질문을 국가 형태 자체의 전화들 속에 기입해보아야 하며, 그를 통해 누가 시민들이고 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아야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발리바르는 시민에 대한 통념을 물려준 고대 도시국가에서 공적권력과 시민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고찰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을 살펴봅니다. 여기서 발견되는 것은 Politeia, 시민권 헌정이라는 개념과 그 안에 담겨있는 Isonomia(법앞의 평등) 사이의 강한 긴장입니다. 고대의 시민권 헌정이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시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한정, 즉 배제와 제한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위계적 계기가 드러나죠. 하지만 그안에 법 앞의 평등이라는 평등주의적 계기가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전적으로 위계적인 헌정도, 전적으로 평등한 헌정도 작동될 수 없으며 이 둘 간의 획득할 수 없는 균형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한 저항들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란 고대의 도시국가에서든 군주제에서든 모든 헌정에 평등적 계기로서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문제가 우리에게는 정치 바로 그것의 기원에서부터 제기된다’(254)는 것이죠. 따라서 헌정이라는 관념의 역사성이란 곧 민주주의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항들을 주기적으로 재정식화해야 할 필연성’(254)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대국가에서는 민주주의적 계기가 그 토대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봉기로부터, 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국가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국가가 아닐 지라도, ‘인민 주권에 토대를 두는 이상, 모든 국가들은 민주주의적으로 재정초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민과 그의 권리들이 생산되는데, 발리바르는 여기서도 이중성을 포착해냅니다. 이 이중적 생산 중 첫 번째는 그가 군주주권의 인민주권으로의 위험한 도약이라고 부르는 수직적 계기입니다. 즉 인민이 주권자이자 신민이 되기 위해서는 신민의 복종이라는 덕목을 자율성의 능력들로 내면화시키는 과정, 쉽게 말하자면 인민의 자발적 복종이라는 관념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는 규율을 자율성과 합치시키는 모순을 발생시키는데, 이 덕분에 법은 군주나 국가의 초월성으로부터 분리 됩니다. 즉 인민이 국가 속에서 법을 내재화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들이 시민이 됩니다.

 

반면 시민의 생산에는 수평적 계기도 존재합니다. 이는 스피노자와 로크적인 의미로 자율성을 사고하거나, 근대 국가에 존재하는 조건의 평등의 실행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사상이 민주주의적 권리 옹호나 항의를 위해 사용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힘을 획득해야한다고, 그리고 그를 위해 수평적 차원이 수직적 차원보다 우위에 있음으로서 수직적 위계를 감축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때의 수평적 차원은 조건과 국면에 따라 상이한 정도로 실현됩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출현과 그에 따른 사회적 투쟁의 발전은 이러한 갈등의 차원을 극대화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수평적 계기의 작동을 방해하는 강력한 요소로서 등장했기 때문이죠. 그 속에서의 투쟁은 계급의 개념을 출현시켰는데, 이는 개인들이 기본권 보장을 획득하고 시민들로서의 책임을 수행하는 구체적 과정은 항상 전체적인 사회적 조건들을 고려함으로써 진행된다’(259)는 점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때의 전체적인 사회적 조건들의 차원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다다다음주에 읽을정치의 세 개념이라는 텍스트에서 좀 더 자세히 제시된다고하네요!) 그렇다면 국민사회 국가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의해 해체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거주의 시민권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조건들을 사유해야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 같습니다.

 



발리바르는 현재의 조건에서 그 고찰의 지점을 3가지 영역으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자본의 탈영토화가 일어나는 세계화된 경제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로부터 자본과 재화의 이동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이동, 즉 이주민의 문제 또한 수반하게 되기 때문이죠. 두 번째 지점은 이데올로기적 영역을 어떻게 민주주의의 작업장으로 바꾸어낼 것인가입니다. 발리바르에게 이데올로기란 한 주체가 외부의 조건과 관계 맺을 때 그 관계를 표상하는 방식, 대응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따라서 그러한 방식의 획일화와 그를 통한 배제와 억압의 작동을 막는 이데올로기의 정치가 중요합니다. 세 번째 지점은 주권의 가장 비민주주의적인 측면인 국가적 폭력의 문제를 사유하는 것입니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어떻게 당당하게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 질서를 생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모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시민권의 재구성, 즉 유럽 시민권의 민주화의 방법 또한 사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엄청 기네요 ...

사실 후기라기보다는 텍스트가 정리가 잘 안되어서

제 나름대로의 논리로 정리해본 것이었습니다.

읽지는 않으셨겠지만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발리바르는 역시 멋있지만 어렵네요.


   

이렇게 해서 4주의 걸친 주권의 지형그리기가 끝났습니다~!

앞서 살펴본 아감벤은 슈미트를 통해 주권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비정립적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으로서 주권의 변화를 이야기했었죠.


반면 발리바르는 주권에 대한 어떤 규정도 정의도 내리지 않죠.

그는 오히려 주권은 완결불가능한 것이다! 라고하면서,

주권의 변화는 그 속에 내재한 민주주의적 계기들을 이용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감벤이냐, 발리바르냐!

물론 글 솜씨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단연 아감벤의 뒤를 따르고 싶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서 아포리아를 찾아내는 발리바르가 좀 더 멋있긴 하네요.

발리바르에게 아포리아를 사유한다는 것은

곧 모든 것에서 변화의 지점을 사유한다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겠죠.


이런 점에서 아감벤이 이야기하고 있는 비정립은

훨씬 크고 어려운 일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나의 삶을 잠재성으로서의 --형태로 바꾸어내는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지, 어떤 형태가 될 수 있을지

아무래도 잘 와닿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다음 주에 읽을

벤야민의 신적폭력에 대한 글과 연관해서 생각해보면

그냥... 왠지 느낌적인 느낌에...

왠지 좀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ㅎㅎ

 

하지만 지금은 그 세세한 정세적 조건 속에서,

어딘가 내재해있을 민주적 계기들을 찾아 헤매이는 발리바르의 눈이

제게는 더욱 현실성있고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발리바르 세미나는 수요일 저녁 7시 30분에 세미나B실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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