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지형학] 5강 후기입니다.(2)

2015.04.02 17:31

knightwill 조회 수:219

이제 발리바르는 인민주권의 아포리아를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롭게 검토한다. 하나는 시민권 헌정 구성이라는 객관적·제도적 측면이며, 다른 하나는 인민적 주권의 주체라는 주관적·인간학적 측면이다. 이와 관련하여 발리바르는 두 가지 측면의 접합점을 표상하는 헌정에 대해서, 특히 헌정의 역사성에 대해서 성찰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 또는 무엇보다 중요한 테제는 발리바르에게 정치적인 것은 완결되지 않을 것이고 아마도 완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시민권 제도 및 인민의 권력이 맺는 관계라는 문제는 그것이 제기되는 조건들 속에서 계속해서 전위되지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민주권의 아포리아에 대한 질문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아포리아를 구성하는 모든 항들의 의미는 변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리바르는 헌법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헌정 자체의 의미의 새로운 전화라는 문제, 제도적 형태들과 주체성, 정치적 참여 내지 활동의 모습들 사이의 변증법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전화들이 역사적으로 항상 중요한 쟁점이었으며, 이런 전화들이 전개되는 것을 사유함으로써 그것들을 해석하고 방향 짓는 일이 정치적으로 결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하버마스의 논의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더 이상 헌정의 문제, 헌정과 관련한 새로운 유형의 실천은 주요한 쟁점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실현물들을 새롭게 발명하기 보다는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헌정의 관념이나 인민 및 주권 관념의 변동보다는 유럽적인 공론장의 출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입장도 존재한다. 헌정에 대한 올리비에 보와 지아코모 마라마오의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고대 도시국가에서 헌정은 권력들 사이의 균형으로 정의되고, 근대 국민국가에서 헌정은 기본법으로서의 헌법의 의미를 가지며, 마지막으로 국민사회국가로의 전환 속에서 사회권이 헌법에 기입된다고 설명한다.


발리바르는 하버마스의 공론장 논의와 달리 이들의 논의가 헌법의 역사성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보지만, 두 가지 한계점을 또한 지적한다. 하나는 관국민화라는 현실 속에서 국민사회국가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따라서 새로운 헌정을 요구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 시민권이라는 통념에 대한 새로운 전환으로까지 논의를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헌정 문제를 진정으로 역사화 시키기 위해서는 (객관적·제도적 측면) 국가 형태 자체의 전화 속에서 헌정을 사유해야 하며, 이를 통해 (주관적·인간학적 측면) 시민활동의 기능 및 실행 양상의 전화 속에서 누가 시민들이고 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연결시켜야 한다는 두 가지를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발리바르는 다시금 헌정의 역사성에 대해 검토를 시작한다. 우선 국가와 시민권에 대한 고전적인 논의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통해 살펴본다. 무엇보다 발리바르는 기존의 다른 해석들과 달리, 폴리테이아를 시민권이나 정체로 번역하지 않고, ‘시민권 헌정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 이 개념 속에 이미 헌정 문제의 모종의 불변항이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즉 시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한정이라는 포함과 배제의 문제, 공적인 문제들의 숙의할 수 있는 인민대중의 권리와 함께 관직을 통한 권력행사라는 상호성이라는 통치자에 대한 위임과 통치자에 대한 피통치자의 심의 문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관직을 배분함으로써 인민주권의 위험성을 피하는 문제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등적 계기와 함께 평등적 계기 또한 존재한다. 이는 폴리테이아(시민권 헌정)와 이소노미아(법 앞의 평등) 사이의 매우 강한 긴장으로 표현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헌정의 획득할 수 없는 균형의 이상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폴리테이아로 표상되는 헌정의 구성원리가 이소노미아로 표상되는 시민권 헌정의 해체 원리로 작동가능하며, 따라서 이 둘 사이의 균형은 달성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문제는 고대 도시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현재까지 계속해서 전위는 형태로 제기된다. 요컨대, 헌정은 언제나 이 둘 사이에서 불안정하게 존재하며, 불평등(안정화의 계기)과 평등(봉기의 계기)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내적 모순이 헌정 형태의 역사적 전화 가능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리바르에 따르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헌정의 역사성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항들을 주기적으로 재정식화 해야 한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문제는 근대적 관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근대국가들은 평등의 계기에서 비롯되는 인민들의 독립과 봉기라는 아래에서부터의 토대를 가지며, 만약 위로부터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인민들에게 주권의 징표를 부여하거나 부여한 것처럼 가장한다. 한 마디로 근대국가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민주적 토대, 인민주권 위에서 정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로 시민들과 그 권리들의 이중성이 영속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중성은 혁명을 수행하고 권리선언을 헌법에 명문화하는데 성공한 혁명의 당사자들이 갖는 두 형태이며,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접합시킴으로써 시민을 평등한 자유의 담지자로 설립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두 형태이다. 이 두 형태는 군주 주권의 인민주권으로의 위험한 도약이라는 수직적 계기 속에서 인민이 주권자에 복종하는 신민이 되는 한 형태와 주권의 보유자로서의 인민이라는 역사적 허구의 다른 한 형태가 존재한다. 즉 인민은 주권자이자 신민이며, 명령자이자 복종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직적 계기 속에서 인민은 신민이 되기 위해 복종을 자율성의 능력들로 내면화시키게 되고, 규율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는데, 이러한 규율로서 법은 군주나 국가의 초월성으로부터 분리되고 인민들 속에서 내재화, 내면화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렇게 탄생하는 시민만이 근대적 시민의 유일한 형태는 아니다. 수평적 계기로서 자유와 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유는 자기 신체와 정신의 자율성과 독립을 의미하며, 평등은 절차와 제도에 있어서의 평등이라는 동등한 지위와 함께 능력을 발전 및 실현할 기회의 평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헌정을 구성하는 (대표/대의, 위계성이라는) 수직적 차원에 대해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집합적 결집 또는 관개인적 권리라는) 수평적 차원이 우위에 있다는 점이다. 즉 수평적 차원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수직적 차원이 요청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양자의 관계는 서로 상충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수평적 차원은 직접 전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국면 그리고 상황에 따라 상이한 정도로 실현되며, 개인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들의 척도 사이의 갈등과 조정을 통해 매개적으로 생산된다. 그러므로 평등의 계기가 불평등의 계기에 억압받고 부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처한 조건 속에서 충분한 힘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수평적 차원을 회복하고자 했던 노력이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적 투쟁의 발전 과정에서 드러난다. 즉 자본주의의 출현에 따라 헌법에 기입된 권리들이 배제되고 부정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적 투쟁이 발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사회권이라는 이름으로 시민권을 획득 및 보장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발전 과정은 개인들이 기본권 보장을 획득하고 시민들로서의 책임을 수행하는 구체적 과정은 항상 전체적인 사회적 조건들을 고려함으로써 진행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마치 언제나 부여된, 부여되어 있던 것으로, 그리하여 불변하는 권리로서 이해하는 것은 시민권 내의 모순과 갈등 그리고 변화 가능성을 사유하지 못하는 한계를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헌정의 역사성 속에서 시민권을 사유할 때에만 새로운 시민권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헌정의 역사성을 논의함으로써 발리바르는 인민주권의 아포리아가 시민권 헌정 구성과 인민적 주체 사이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그리고 시민권 헌정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민권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즉 발리바르는 유럽 건설 과정에서 핵심 문제인 유럽적 시민권의 불가능한 필연성의 해법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준 것이다. 정치체에 대한 권리의 동역학을 사유함으로써 그리고 개인적 차원과 동시에 집합적 차원에서도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자율성의 획득을 살펴봄으로써, 미리 결정되지 않은 새로운 발전을 향해 시민권의 역사가 개방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하여 발리바르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 새로운 시민권, 이른바 유럽적 시민권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작업장을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세 영역은 주권의 징표, 종교(문화 또는 이데올로기)와 경제의 영역과 관련된다.


하나는 세계화된 경제 질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탈영토화 되는 경제 행위자들의 문제, 다국적 기업이나 이주 노동자 문제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국민국가의 틀에서 벗어나는 이들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규제를 가하고 국가 안으로 포섭할 것인가라는 경제의 재영토화’, ‘관국민적 경제의 영토화문제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동에 대한 통제와 출생과 거주의 시민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과 이들 사이의 교류 그리고 사적 영역으로의 한정 또는 공적 중립성의 영역을 넘어 세계관들 사이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새로운 계몽의 프로그램, 신앙들이나 문화적 차이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이들을 무시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사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국가 폭력의 문제,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노골화되는 국가 폭력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의 여성화라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민주주의의 작업장을 통해서 새로운 유럽적 시민권을 사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큰 맥락만 잡고 이야기하려 했는데..........책에 대한 독해가 되어버렸네요.......

정리하면서 후회했지만..........이왕 시작한거 한번 정리해보자고 달려들었는데.........

여튼 제 말로 정리하면 발리바르의 논의의 치밀함을 다 지워버릴 것 같아 이렇게 해보았는데

오히려 더 정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프로포절 작성 안내 (꼭 읽어주세요!) 종견 2015.05.13 862
공지 *** 4부의 일정과 수정된 커리, 발제 순서입니다. [1] 종견 2015.05.13 692
공지 간식과 후기 순서입니다. 수유너머N 2015.03.04 496
공지 [과목1] 민주주의의 지형학 : 네 가지 쟁점들로 읽는 현대 정치철학(정정훈) 수유너머N 2015.01.26 1413
60 [쪽글] 6강 벤야민의 <폭력비판을 위하여> 쪽글입니다. file 의횬 2015.04.06 66
59 6강 쪽글입니다. file 팔로횽 2015.04.06 52
58 제6강 벤야민 <폭력비판을 위하여> 쪽글입니다. ^ ^ file 큰콩쥐 2015.04.06 100
» [민주주의의 지형학] 5강 후기입니다.(2) knightwill 2015.04.02 219
56 [민주주의의 지형학] 5강 후기입니다.(1) 팔로횽 2015.04.02 183
55 [후기] 5강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적 시민권인가 인민주권인가?」 [3] 의횬 2015.03.31 582
54 5강 쪽글 file 국희씨 2015.03.30 53
53 [쪽글] 5강 쪽글입니다 file 의횬 2015.03.30 68
52 쪽글 은선 2015.03.30 152
51 5강 쪽글입니다. file 팔로횽 2015.03.30 53
50 5강 파농<폭력에 관하여>, 아렌트<폭력론> 발제 [1] file id 2015.03.30 111
49 결석계 시문 2015.03.30 57
48 5강 쪽글 file 종견 2015.03.30 56
47 결석계 지원 2015.03.30 65
46 민주주의 4강 후기~!! 국희씨 2015.03.30 124
45 결석계 성현 2015.03.29 57
44 지각계 지안. 2015.03.27 80
43 [민주주의의 지형학] 4강 후기 입니다 file 팔로횽 2015.03.26 265
42 4강 후기 ;;; 흙사랑 2015.03.24 121
41 [쪽글] 4강 "주권의 아포리아" 쪽글입니다 file 의횬 2015.03.23 108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435 수유너머 104 / 전화 (070)8270-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