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 간략한 후기

2015.05.19 00:33

은선 조회 수:203


네그리: 산 노동은 점점 더 비물질적이고 협력적으로 되어가고 있으며 생산의 사회화는 노동이 창출해낸 가치가 이제는 화폐와 금융의 수준에서만 포획될 수 있는 정도로 진행된 상태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노동의 길이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금융의 법칙에 대한 분석이다. 이런 상화에서는 상대적 임금의 규칙들을 전복하는 경제적 투쟁이 곧 복지국가에서 소득의 금융적 분배를 지배하는 규칙들을 전복하는 사회 정치적 투쟁이 된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의 획득에도 비용이 든다. 자유와 평등은 독립적 가치들이지만 항상 구체적으로 규정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노동이 지적인 성격을갖게 되면서 자유가 노동에 필수불가결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동이 협력적이 되면서 평등이 노동의 특질이 된다. 오늘날 자유 없이는 그리고 혹은 평등 없이는 생산적 노동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평등자유론 관점에선 '공통적인 것'과 '자본의 코뮤니즘;을 구분하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한 문제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해 특이성에 의해 구성되고 다중만들기에 의해 생산되는 윤리 정치적인 것 전체와 사회적인 인지적으로 생산되어 축적되는 가치 전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있다. 임금과 복지 일반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현대의 자본의 세계 즉 자본의 코뮤니즘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없다. 



94 우린 새로운 주체의 형상이 등장했음을 주장할 수 있다. 이 주체는 자신이 관여하는 협력의 형태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작동시키는 노동력의 인지적 지적 관계적 정동적 물질성의 복합체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획득한 주체입니다. 이런 지형 위에서 노동 및 인간의 재생산 활동의 공통되기와 연관된 특수한 초과가 출현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것이 자율적 생산에 내재하고 있는 주체성을 소외시키기 어렵게 만들거나 그런 생산의 결과로 나오는 초과 생산물을 수탈하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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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통'되기와 '자본의 코뮤니즘'이 서로 동질적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때 특이성의 다중 만들기와 금융자본의 형태의 전지구적 지배가 서로 동질적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때 비로소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의 코뮤니즘'에 입각할 경우 단지 교환가치의 영역 안에서 움직일 가능성만을 즉 필요임금을 위한 투쟁만을 볼 수 있다. 이런 투쟁은 교환가치의 영역 안에서 파열을 낳을 수 있지만 가치의 본성은 동일한 것으로 남는다. 여전히 교환가치인 것이다. 임금 혹은 복지가 우리 요구의 목표인 경우 상품과 통화는 기존의 성격 그대로 재분배될 수 있다. 이런 투쟁은 가치 교환의 동학 안에 즉 교환가치의 동학 안에 완전히 함돌되어 있다. 발생한 파열이 존재적으로 중요해지는 유일한 지점은 앞서 말했듯이 그 파열이 노동력의 새로운 형상과 관련되는 경우, 즉 노동의 새로운 협력적 성격을 고양하는 생산적 관계 정동 언어 소통의 수준에서 초과를 생산하는 노동력을 부각시키는 경우뿐.  이로부터 출현하는 것이 바로 공통적인 것이며 여기서 파열은 교환가치를 새로운 가치로 전환시키는 방향을 향해 진행되고, 복지 수준에서도 인간을 위한 인간의 생산을 수행하는 생산 양식의 수립을 향해 진행되는 것이다. 사회적 임금과 시민 소득은 더이상 수량이 아니라 자본관계의 파괴를 향해 한 걸은 더 나아간 지점이자 노동의 자율이 가진 활력을 나타내는 이미지이다. 


--> 이렇듯 

네그리는 인지노동, 감정노동등 생산조건의 변화로 인해 다중이란 주체가 구성된다고 본다. 즉  착취의 조건이자 해방의 조건이라는 맑스의 논의가 지속된다. 

이에 발리바르가 결정론적 즉 갈등, "정치의 불확실성" 이데올로기적 담론과 실천이 없다하자 


--> 네그리는 100p 역사적 유물론과 그것의 존재론적 조건에 우연, 클리나멘, 대안적 주체성 생산, 양태들의 우발적 연결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함. 스피노자적 유물론의 지평을 통합하고 그것에 일정한 특질을 부여한다. 스피노자에게 공통적인것은 신과 같고 각 개체의 문제는 실체의 속성이다. 속성은 본질을 구성한다. 신의 본질은 신의 능력이다. 신은 수많은 본질을 무한이 가지고 있다. 속성들의 바다다. 


공통적인 것과 세계의 존재방식과 일치되어 있다는 말이다. 의식적으로 조직하면 이 힘을 해방할 수 있단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방해하는 요소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발리바르는 네그리가 왜 멀티튜드가 가진 반동성은 논의 하지 않는지를 묻는다.무페의 다원성과 자율성의 차원과 연결된다.  네그리는 제국과 공통적인 것의 전선을 만든다. 이는 마치 맑스가 PT BG의 관계 설정함과 다름이 아니다. 


무페

적대는기본적으로 절멸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적대라고 한다. 즉 제로섬을 이야기한다. 이것을 아곤(Argon)즉 웅변을 통해 차이를 경햡한다. 주체는 어떤 담론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260 일부 피지배 부문에서는 이런 단절을 좀 더 높은 정치적 합리성의 계기로 이행하는 것으로 종종해석했다. 19세기 전반의 민주주의는 무정형적 성격과 사회의 경제적 토대에 뿌리를 두지 못했으므로 취약했다. 그런 무정형적인 인민이 해체되고 노동계급이라는 견고한 사회적 토대로 대체될 경우에만 인민운동은 지배계급들에 대한 장기적 투쟁을 수행할 만틈 성숙할 것이었다.  

그러나 적대는 특권적이지 않고 어떠한 담론 속에 배치 되는가가 중요하다. Conjucture: 들뢰즈는 통접이라고 말한다. 여러 투쟁들이 접합되어 가야한다는 기획인데 이들에게 이 기획은 언어로 표상될 수 있다.  사회는 적대에 의한 관통 인데 이 간극을 접합하기 위해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 꼬뮌 뒤에 뒤켐의 사회학이 생겨났다. 사회라는 것은 위기와갈등을 봉합하기위한 기술이었다. 사회를 봉합하기 위한 것들이 바로 국가나 민족 따위라고 할 수 있다. 인민주권 자유 등은 텅빈 기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실체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그리에겐 실재계라고 할 수 있는 생산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랑시에르: 불가능한 동일시에서 오는 집합성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나도 진압당한 알제리인이다 라는 불가능한 동일시가 필요하다. 

권리는 구성하는 것인데 언제나 타자와의 공존과 협력에서만 가능하며, 정체성이 다른 존재들간의 협의를 가능하게 해야한다. 이것이 시민이다. 제도의 개방과 관련된다. 그 핵심에 시민권제도가 있다. 국민사회시민권이 국가적 차원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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