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강 후기

2015.06.15 14:11

yj 조회 수:123

늦어서 죄송해요!!


이번에 다룬 발리바르의 텍스트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 평등과 자유의 현대적 변증법은 인간과 시민,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일반적인 그러나 잘못된 모순을 되짚어 봄으로써 논의를 시작한다. 이 둘은 언뜻 보면 서로 간 제약으로 작용하는 모순관계로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시민, 자유=평등이라는 동등 관계가 성립한다. 이러한 동일성은 매개적 특성을 취하는데, 이때의 매개는 소유와 공동체이다. 즉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소유, 민족주의 또는 공산주의적 공동체의 모습이 자유와 평등의 동일성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탈현대시기에 들면서 그간 줄곧 은폐되었던 매개적 모순의 또 다른 측면이 드러난다. 성적 차이 지적 차이가 그것으로, 이는 기존의 평등자유명제와 그에 따른 제도 구축으로 설명, 보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발리바르는 권리선언을 기초짓는 언표들의 단순성, 혁명적 발본성이 안정적 질서 속으로 투여되는 것을 금지하는 모순을 내포한다고 보았다. 즉 선언은 제도의 모습으로 안정화되는 순간 내적 모순에 봉착한다. 꾸준히, 부단히 자유와 평등을 추구해야 하는 선언은 특정 제도로 영속화할 수 없는 변증법의 형식인 것이다. 또한 권리선언에서 시민들은 긴간의 자연적이고 양도될 수 없는 신성한 권리, 즉 자연권을 선언한다. 이러한 선언된 자연권은 선언의 혁명적 계기와 사회-정치적 투쟁의 경과 속에서 효력이 드러나는 것이 본질적이다. 이는 언표의 물질성이 모든 인간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하는 실효성을 제공하고 동시에 선언에 효력을 부여하는 것은 사람들의 혁명적 실천 그 자체임을 의미한다. 이처럼 언표는 비결정적이다. 평등자유를 위한 제도를 만든다고 해서 선언에서 언표된 평등자유와는 결코 일치할 수 없다. 둘 사이에는 영속적 긴장이 존재하는데 이를 통해서만 권리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여성, 유색인종, 외국인, 장애인 등)이 자신의 권리를 위한 선언을 반복할 수 있다. 따라서 선언은 정치적 주체화의 기원을 열어낸 계기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정치적 권리를 갖고 행위하는 자를 시민이라는, 포지티브한 방식으로 시민성을 규정했다면 선언 이후에는 인간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존재로서 권리를 갖게 된 것이다. 때문에 부르주아지는 선언의 가장 큰 수혜자였음에도 자신들의 지배 통제를 선언 속으로 원칙화 할 수 없었다. 프랑스혁명의 다양한 구성원이 하나의 힘으로 결집할 수 있었던 것은 곧 평등자유의 보편성 아래에서 가능했고, 이는 부르주아지적 이념이 아닌 프랑스혁명의 보편적 이념이었다. 혁명의 이념은 누구나 시민이 될 수 있음을 전제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유와 평등의 구체적 내용이 아닌 형식이었다.

 

그러나 탈현대에 들어서면서 평등자유명제는 새로운 지평과 맞닿는다. 인류 역사에서 성적 차이와 지적 차이는 이미 권력관계 속에 각인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등과는 다른 것들이라는 부정적 공통점을 갖는다. 인류는 인간을 남성, 여성으로만 표상했다. 이는 단순한 차이를 표상하는 것 같지만 결국 이 차이가 무수한 불평등한 제도들의 기초가 되었다. 육체와 정신의 차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불평등들의 배후에서 평등의 제도화에 의해 제거될 수 없는 어떤 차이가 존재한다. 이에 대해 발리바르는 차이를 중립화 함으로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방식이 아닌, 특이성의 상호성에서 기인하는 어떤 새로운 평등모델을 만들 것을 주장한다. 평등자유명제는 동일성의 논리에 기초한다. 하지만 앞에서 제시한 새로운 문제는 명백한 차이에 근거한다. 따라서 이를 어떻게 하면 동일성의 논리로 풀어나갈 수 있는가 하는질문이 남는다. 인간과 시민성의 문제를 어떻게 제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사유가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발리바르 또한 이에 명백한 답을 주고 있진 않다.

 

발리바르의 이 텍스트는 인간의 보편적 정치 권리, 보편적 시민성 문제와 더불어 이를 보편적인 것으로 작동하게 하는 동일성과 차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과 시민, 자유와 평등 간의 도식과 남성과 여성, 정신과 육체의 도식은 그 기반을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인류는 인간 공동체를 분류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남성-여성의 구도를 내세우고 고대 철학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 우열을 따지는 관계로 기입한 것일까. 그리고 이 과정에서 권력과 지배의 위계가 형성되는데 이 둘 사이에는 어떤 부분 집합적 요소 없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완전히 대립되는 존재로 표상된다. 하지만 인간과 시민, 자유와 평등은 이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둘은 모순관계에 처할 지라도 명백한 대립관계에 있다고 볼 순 없다. 발리바르가 말했듯 자유를 제약하는 평등, 평등을 제약하는 자유는 없고, 시민이 아닌 자는 인간, 인간이 아닌 자는 시민 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권력은 매개적 동일성이라고 표현되는 소유, 공동체에 대한 구현 방식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남과 여, 육체와 정신은 그 대립 자체에서 곧바로 권력이 구현된다. 때문에 이러한 명백한 차이를 무화하고 법적으로 평등한 제도를 구축한다고 해서 불평등이 사라질 수는 없다. 그래서 발리바르는 특이성의 상호성에 기인하는 새로운 평등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순수한 특이성 위에 역사적으로 덧칠되어 온 권력 관계는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 것인 지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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