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쎄이

2015.07.21 00:17

소영 조회 수:430


2주 동안 다시 썼는데 결국 완성은 못 시켰네요... 미완성인데 올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시간이 다 되었기에.

완성하지 못했는데도 십 분 넘게 늦은 건

태블릿이어서 파일 첨부 실패 -> 복사해서 붙여넣기 했더니 금칙어가 있다고 해서 골라내느라 그랬어요.



1

눈을 감아도 떠올릴 수 있다. 다를 것 하나 없는 비슷한 복장들을. 연한 아이보리색 셔츠. 검은 바지. 모자. 호루라기. 넥타이. 혹은 형광 연두색 조끼. 경광봉. 혹은 방패. 진압복. 팔 각판. 다리 각판. 전투화. 헬맷. 헬맷에 가려진 무표정, 그 빈틈없이 단단해서 도무지 깨질 것 같지 않은 무표정을 한 비슷한 얼굴들을.

  경찰에 대한 각기 다른 두 장면에서부터 시작하자.

  한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작년 여름, 시청과 광화문 사이에서 비정규직 철폐 집회가 있었다. 거긴 광장이 아니라 길이었다. 흡연 공간이라기에는 넓은, 그렇지만 한쪽 끝에서 누군가가 담배를 피운다면 다른 쪽 끝에 선 이가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공터가 딸린 길. 애초에 주최 측이 장소를 거기로 잡은 것인지, 아니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지, 혹은 애초 예상 참가 인원이 적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공간이 부족했다. 주최 측은 길에 라인을 쳐서 행인들이 지나다닐 만한 공간을 남겨 두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하려 애썼다. 라인은 별 효용이 없었다. 집회에 온 이들에게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주기에도 좁았던 길은 물론 행인들에게도 좁았다. 경찰은 도로 하나를 막아 통로를 만들었다. 시청을 거쳐 광화문에 가는 중이었던 내가 그 앞을 지나친 것은 통로가 만들어진 후였다. 난 집회 참가자 속에 있는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도로로 가기를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던가. 옆에 서 있던 경찰(A)이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언뜻 보기에도 이십대 중반, 넉넉히 잡아도 이십대 후반을 넘기지 않았을 앳된 얼굴이었다. 광화문에 가는 중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이쪽으로 가시면 된다고 했다. 이어 자신이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난 얼떨결에 감사하다고 말했고, 결국 경찰의 안내를 받아 통로를 건넜다. 길지 않은 통로 끝에 다다랐을 때 그는 조심히 가시라고 말하곤 뒤돌아섰다.

  다른 한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 겨울,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이 있었다. 4박 5일간 쌍용자동차 구로정비사업장에서 출발해 국회, 주한인도대사관, 대한문을 거쳐 마지막 날 청와대로 가는 일정이었다. 이미 서울 번화가에 들어서면서부터 격렬한 제지가 있었다고 했다. 광화문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청운동 가까이에 갔을 행렬은 광화문 광장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점심 시간을 가진 뒤에 다시 시작된 행진은 세종문화회관까지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가는 데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번화가가 아닌 곳, 가령 대림이나 광명에서는 경찰이 신호를 바꾸고 교통 정리를 해주어 행진단이 무사히, 빠르게 길을 건널 수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광화문에서 경찰(B)은 신호를 바꾸지도, 교통 정리를 하지도 않았다. 수없이 몸을 굽혔다가 펴는 행진이 빠를 리 없었다. 경찰은 행진단이 빨간 신호에 걸리기를, 차를 막아서기를, 교통 흐름을 방해하기를, 행인들이 짜증내기를,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기를 기다렸고, 그 모든 것을 방치했고, 행진단을 억지로 들어 세종문화회관 앞에 내려놓았다.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 때문에', 그것이 이유였다.

  이 두 경찰은 얼마나 다른(것처럼 보이는)가. 날 안내해주었던 경찰은 그것이 직무 수행이었던가 아니면 개인적으로 베푼 친절이었던가. 당시에 나는 전자라고 느꼈다. 때문에 같은 해 겨울에 다른(것처럼 보이는) 경찰을 마주했을 때 당혹감을 느꼈다. 어째서 경찰(A)는 길을 열어주고 경찰(B)는 길을 막아서는가. 어째서 경찰(A)는 시민의 안전에 관심을 기울이고 경찰(B)는 기울이지 않는가.

  그렇지만 여기서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시민'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경찰(A)에게 나는 시민이었다. 경찰(B)에게 나는 시민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작년 여름엔 집회를 지나쳐 갔고, 겨울엔 집회 행렬 속에 섞여 있었다. 말하자면 두 경찰 모두 자신의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시민의 보호. 설혹 경찰(A)가 개인적인 친절을 베푼 것이었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같은 친절을 베풀지 않았으니까. 다시 말해서 경찰(A)는 집회 참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회에 넓은 공간을 확보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그렇지만 그 앞을 지나쳐야만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게 공간을 확보해주기 위해 거기 서 있었고, 경찰(B)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비약적인가?

  그렇다면 지난 4월, 세월호 1주기 집회에서 경찰이 보인 태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사람 키 높이의 네다섯 배에 달하는 강화 플라스틱 벽이 광화문 광장 앞을 틀어막았던 날, 차벽이 종로 일대를 전부 차단했던 날, 전철역 출구마저 경찰이 겹겹이 둘러쌌던 날, 경찰은 종각역에서 빠져나가려는 나를 막아섰다. 여기로 나갈 수는 없다고 했다. 돌아가라고 했다. 그런데 한 남자, 아마도 외근을 나갔다가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길을 열어주기를 청했다. 길이 열렸다. 그리고 내 앞에서 다시 닫혔다. 나는 내가 저 사람과 무엇이 다른지 물었다. 경찰은 대답하지 않았다. 답변 없이도 알 수 있었다. 무엇이 나와 그 남자를 구분 지었는지를. 난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었다. 손엔 (채증에 대비한) 마스크를 들고 있었다. 남자는 정장 차림에 사무용 가방을 들고 있었다. 5월에도 경찰은 행인들 앞에서 길을 열었다. 유가족들 앞에서는 길을 닫았다. 이유를 묻자 경찰은 "저분들은 일반 시민이 아닙니다"라고 대꾸했다.

  시민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대체 누구였나. 단지 해산 명령에 수없이 불복한 불법 시위대였나? 아니면 더 나아가 폭도였나? 태극기를 불태우고, 경찰버스를 부수고, 경찰에게서 방패를 빼앗았기에? 바로 그랬기에, 우리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하는 시민이 아니었기에 경찰은 그렇게 서슴없이 방패를 휘둘렀던가. 교통정보 수집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의 사용이 금지된 CCTV로 움직임을 쫓았던가. 증거를 보전할 긴급한 필요가 있을 경우에만 써야 하는 채증을 일상적으로 하고, 물대포를 쏘고, 캡사이신을 쏘았던가.

  집시법 제1조는 이렇다.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으로써 집회 및 시위의 권리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4월 18일, 시청 광장에서 추모 행사가 끝난 뒤 광화문 광장을 향해 가는 행렬을 막아선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신고된 장소를 벗어났기 때문에 위법함을 알렸다. 해산 명령을 내렸다. 경찰은 이날 차벽 전용 트럭 등 차량 470여 대, 172개 중대 1만3700여 명을 동원했다. 4월 11일에서부터 5월 1일까지 있었던 다섯 차례의 집회에서 8만 가까운 물대포를 쏘았다. 물에 섞여 살포된 최루액은 720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노동절 집회와 세월호 추모 집회가 동시에 치러진 5월 1일이 가장 심했다. 이날 살수된 물만 4만에 달했다. 합성 캡사이신(PAVA) 45가 살수차 3대에 섞여 들어갔고, 휴대용 분사기를 통해 캡사이신 123.34가 발사됐다. 적어도 공식적인 기록은 이렇다. 4만에 45가 들어갔다면 그 농도는 0.001%에 불과하다. 경찰은 진압 수위에 따라 0.5%(하)·1.0%(중)·1.5%(상) 농도로 캡사이신을 섞는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5월 1일 우리 머리 위로 날아온 물대포는 '하'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날 바닥에 고인 물은 우유를 연상시킬 만큼 탁했다. 물대포에 맞은 사람들은 기침, 호흡 곤란, 구토 증상을 보였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따르면 PAVA는 "심각한 과량 노출시 사망을 초래할 수 있음. 눈·피부 접촉시 매우 유해. 가려움증, 수포 생성을 초래"하는 등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PAVA 45를 쐈다. 사람들을 향해, 조준해서. 경찰 내부 지침인 '살수차 운용 지침'은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의 사용에 대해 이렇게 규정한다. "불법 행위자 제압에 필요한 적정 농도로 혼합해 쓸 수 있다." 적정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규정하지 않았다.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사용하든, 농도가 얼마나 짙든 이를 제지할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최루액 물대포를 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늦은 밤에 경찰 차량을 부수는 등 과격 양상을 보였다. 가정이지만, 경찰이 차단하지 않으면 (참가자들이) 경복궁에 방화할 수도 있고 청와대에 진입할 수도 있어 물대포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적어도 세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경찰은 집회의 목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집회 참가자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그들은 (가정이지만) 위험했다. 셋째, 그들이 위험했기 때문에 경찰의 물대포 사용은 정당했다. 즉, 물대포는 위험을 진압하기 위한 정당한 목적을 위해 정당하게 사용됐다.

  가정이지만.

  경찰권을 발동시키려면― 즉 470여 대의 차량을 동원해 종로 일대를 차벽으로 둘러싸거나 172개의 중대를 동원해 청와대로 가는 모든 길을 차단하려면 명백한 위험,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 한다. 경비과장은 어떤 명백한 위험을 보았는가. 그는 단어를 잘못 선택했다. 가정이라고 말해서는 안됐다. 가정은 현존하지 않음을, 단지 예상될 뿐임을, 일어날 수 있지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가리킨다. 경복궁을 방화할 수도 있고 청와대에 진입할 수도 있는 위험은 경비과장 그 자신도 가정의 형태로밖에 보지 못한 위험이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 어떤 위험은 가정의 형태로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위험"이란 결국은 사후적인 표현이다. 위험이 '현존'하려면 위험은 이미 들이닥친 것이어야 한다. 현존은 근접한 미래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곧 닥칠 일을 종종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 시제로 표현하듯이.

  그렇다면 이렇게 다시 물어야 한다. 경비과장은 근접한 미래에서 어떤 명백한 위험을 보았는가. 당시에도 알 수 없었고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다. 4월 18일, 시청 광장에 운집했던 시민 5만 명(주최 측 추산 참가 인원, 경찰 측 추산 참가 인원 1만 명) 중 대부분은 중·고등학생이거나 일을 끝낸 뒤에 분향을 하러 온 직장인들이었다. 시청 광장에서 추모 행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분향하기 위해 광화문에 갔다. 아니, 가려고 했다. 가려 했지만 가지 못했다. 4월 18일은 거대한 강화 플라스틱 벽과 차벽이 거리 곳곳을 틀어막은 첫날이었다.

  무슨 위험이 있었던가. 어째서 경찰은 거기 존재하지 않는 위험을 붙잡아두려 했던 것인가. 이 말에는 분명한 어폐가 있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이는 가정상으로만 범죄를 저지른 자를 미리 체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우리는 앞서 썼던 말을 이렇게 바꾸어 말해도 될 것이다. 경찰은 적법하지 않기에 집회를 보장할 필요를 내던져버렸던 것이 아니라 (오체투지 행진단이 교통 방해를 유발하기를 기다렸듯이) 집회가 적법한 영역을 벗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이미 가정 속에서 위험을 보았고 그것을 미리 잘라버리려 했으니, 이 가위질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이제 그 위험은 실제로 출현해야만 했다.



2

그렇지만 앞선 문장들은 몇몇 전제를 필요로 한다 : '위험'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경찰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위험은 진압되어야만 한다는 것. 어떻게 진압할지, 진압 수위가 어느 정도로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한 판단 역시 경찰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

  한 번 더 경찰(C)에 대한 장면에서부터 시작하자.

  지난 해 5월, 삼성전자서비스(이하 삼써) 노동조합 양산분회장 故 염호석 씨가 삼성의 노조 탄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신 곁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여러분께'로 시작되는 유서가 놓여 있었다. 그는 유서에 이렇게 썼다. "저의 희생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더 좋아진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이 선택이 맞다 생각합니다. …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주십시오. 지회가 승리하는 그날 화장하여 이곳(정동진)에 뿌려주세요."

  그중에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인이 죽은 지 하루 만에 무장한 경찰 수백 명이 장례식장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캡사이신을 쏘면서 들어와 시신을 탈취해갔다. 시신을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화장해버렸다.

  경찰은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했기에 그렇게 완벽한 인멸을 시도했을까? 무엇을 인멸하기 위해서?

  앞서 2014년 4월 11일, 삼성이 삼성SDI와 제일모직을 합병해 지배구조를 정비한 날, 삼써 노동자들은 폐업된 아산 서비스센터 앞에서 위장폐업 철회 및 부당 해고된 노동자의 복직, 부당 노동행위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 충남지방경찰청은 300여 명의 경찰병력과 경찰 버스 10대를 동원해 아산센터 입구를 봉쇄했다. 경찰은 캡사이신을 난사하면서 노조의 천막 설치를 막아섰고, 핵심 간부를 포함한 16명의 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해갔다. 그들은 "회사 측이 시설물 보호 요청을 해서 병력을 배치했다"고 밝혔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진압 행위였다.

  꼭 경찰 자신이 삼성의 사병이라도 된 것처럼. 그들은 노동자들을 연행해가는 대신 그 앞에 방패를 세워주어야 했다.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침탈해가는 이를 막아섰어야 했다. 자기 자신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어야 했다. 무엇 하나 행해지지 않았다. 집회를 보호하는 대신 집회를 막아서고,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물에 젖은 그들을 연행해갔듯이. 그들은 경계하고(警) 살피는(察) 존재이지 우리가 종종 오해하는 것처럼 정의가 아니다. 민중의 지팡이조차 아니다. 경찰police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politeia에서 왔다. politeia. 우리가 국가라 번역하는 말. 경찰은 국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국가로부터 왔다. 국가로부터 임금을 받는다. 경찰과 같은 국가 공무원들―행정공무원, 교사, 소방관 등에게는 파업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에게 파업권이 인정된다면 법은 제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말 테니까.

  법이 폭력을 독점하는 것, 오직 법만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법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다. 법 바깥에 폭력이 존재하는 순간, 즉 개인의 자연적 목적이 폭력에 이끌리는 순간 법은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그 태초의 법("사과를 따먹지 말라") 이야기는 한 편의 법적 우화처럼 보인다. 이들이 전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원죄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자연적 목적은 법적 목적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것, 법은 결코 법적 목적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사과를 함부로 따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금단의 영역 위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대체 사과가 무엇이었는지 또 사과를 따먹는 데 어떤 수단을 사용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금언과, 금언이 어겨졌다는 사실이다. 아담과 이브는 쫓겨나야만 했다. 훨씬 더 가혹한 세계, 사과를 따먹으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세계로. 이제 그들은 금언을 지키지 않을 것이므로. 그들이 있었던 세계에서 법은 제 효력을 잃었으므로.

  이 세계에서의 법은 그들에게 한 그루의 사과나무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사과는 너무 높이 매달려 있어서 오직 소수만이 따먹을 수 있었다. 수군거림이, 분쟁이, 봉기가 일어났다. 법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들어졌을 때에서야 파업권을 허용했다. 이 이상 억누른다면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 자신을 전복시킬 가능성을 고려하면서, 그들이 적어도 숨(만) 쉴 수 있을 만한 구멍의 크기를 고려하면서. 이로써 "조직된 노동자 계급은 오늘날 국가 이외에 폭력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고 있는 유일한 법적 주체"가 되었다.

  달리 말해 파업은(허락되지 않은 어떤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집회는) '원래' 위험을 내포한 것이다. 법에 명시된 것이었다면 여럿이 모여 시위할 이유가 없잖은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법은 파업(집회)에 대해 모순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파업권이 지닌 폭력의 계기는 철저히 짓밟혀야 한다. 즉, 파업권(집회의 자유)은 인정하되 파업(집회)은 불허한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의 중단(파업)이 이를 전혀 무시하거나 표면적인 변화만 가져다주는 조건들 아래에서 이전과 같이 작업을 재개하려는 (사용자 측의) 태세가 갖추어져 있는 상태에서 발생할 경우 폭력의 계기는 더욱이 강요된 형태로 출현하게" 된다. 지난 76년간 어떤 노조도 인정하지 않았던 삼성은 AS 기사들이 노조를 만들자 즉각 반응했다. 그들은 먼저 노조 활동이 활발했던 센터들을 차례로 폐업했다(부산 해운대센터, 충남 아산센터, 경기 이천센터 등). 센터 사장들은 노조 미가입자와 면담을 하는 한편 가입자에게는 탈퇴를 종용하면서 일을 주지 않았다. 수당제였기에 타격이 컸다. 탄압은 계속됐다. 결국 한 사람이 죽었다(故 최종범 씨). 또 한 사람이 죽었다(故 염호석 씨).

  죽음은 언뜻 수동적인 멈춤, 혹은 어떤 받아들임처럼 보였다. 아니면 체념처럼. 마치 이제 더는 어쩔 수 없다는 표시인 것처럼. 싸움을 중단하는 것처럼. 故 최종범 씨는 유서에 이렇게 썼다. "전태일 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둘은 비슷한 죽음의 방식을 택했듯이, 비슷한 유서를 썼다. 같은 것을 바랐으므로. '저의 희생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더 좋아진다면.' '부디 도움이 되기를.' 시신은 싸움을 중단했다는, 혹은 싸움이 좌절됐다는 표시조차 아니었다. 차라리 증언이었다. 죽어서도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그리하여 안치될 때까지) 살아 있는 증언, 죽지 않는 증언이었다. 반 세기가 넘도록 어떤 노조도 설립될 수 없었던 삼성의 폭력에 대한 증언뿐만이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리 해고법을 통과시켰고, 노무현 대통령은 비정규직 보호법을 통과시켰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일어나고 있는가? 엄청난 외주화의 물결이 뒤덮었다. 땅을 견디다 못해 하늘 가까이로 올라가 시위하는 노동자들의 수가 사상 최대에 달했다. 법원은? 법은 무얼 했던가? 법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기업이 "심각한 경영상의 위험 없이도" 언제든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의 파업이 업무를 방해했으니 배상금 수십 억을 내놓으라고 판시했다. 시신은 동시에 국가 권력에 대한 폭로였다. 자본가와 밀회 중인, 이제 밀회를 숨기려 들지도 않는 국가 권력에 대한 폭로.

  경찰은, 자신이 국가에 고용된 노동자임을 한 번도 자각해본 적 없을 이들, 아마도 자기 스스로를 법에 대입해서 생각할 이들, 다시 말하건대 국가도, 법 자체도 아닌 경찰, 차라리 법의 그림자인 그들, 아니 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제 위법 행위도 서슴지 않는 그들, 이에 벤야민이 수치스럽다고 말한 경찰, 데리다가 벤야민에서 더 나아가 "법의 권리를 가로채고, 법을 침탈한다"고 말한 경찰은 시신이 화장장에 들어가기를 바랐다. 부패하지도 않고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증언이 유령처럼 떠돌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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