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의 철학교실

  몸살에 비실비실거리다 일어나보니 곧 다음 세미나군요.. 후후....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지난주의 후기를 써보겠습니다

 

  5월 10일 세미나는 제가 발제를 맡았기도 했지만, 학인의 일원으로서도 배운 것이 많은 세미나였습니다. 세미나에서의 논의를 풀어내기는... 힘들 듯 하니 제가 느낀 바 만이라도 써보겠습니다. 그럼 이제 키보드는 제 무의식에게 넘기도록 하지요.

 

 우선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는 1,2,3종 인식에 관한 것입니다. 혼자 책을 읽을 때는 '1,2,3을 보면 다음 수가 6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요상한 예시에 가로막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만,  학인분들과 토론하다보니 깔끔하게(!) 이해가 되더군요. 역시 철학교실 답게 3종 인식과 선불교의 '돈오'를 연관시킨 점이 특히 인상깊었네요. 한편, 3종 인식이 '돈오'와 비슷한 것이라 전제하다면 해석의 폭이 많이 넓어질 것입니다. 몇 주 전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토요일 강의 시간에 이진경 선생님께서 '혁명에 있어서  감각적 각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신게 기억납니다. 여기에 주관적인 해석을 더해보면 '감각적 각성'이야말로 3종인식에 가장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논리적으로 옳기 때문에 따르는 것(2종 인식에 가깝겠죠)을 넘어, 나의 감각이 자연스레 그것에 익숙해지고 지향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3종 인식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불안' 등의 근본감정들과 통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며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종교적 실존' 과도 연결지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렇게 3종 인식에 집중하여 읽은 이유는, 제 경험과 와닫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 친구가 제게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는 논리적으로(?)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설명했지만, 저는 결국 그 친구에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화를 낸 이유는 친구의 설명이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오히려 친구의 설명은 매우 논리적이고 타당했습니다). 그저 그 친구가 미웠기 때문에 제 화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자연스레 친구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오히려 잘 알지도 못한 채 화를 낸 제 자신이 부끄러워 지더군요.

  친구에게 화를 냈을 때의 제 인식은, 1종 인식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의 인식'이었죠. 저는 아직도 제가 1종 인식을 저질렀던(?) 것에 후회하고 있습니다. 한편 친구가 논리적으로 자신을 변명한 것은 2종 인식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친구의 상황이 어땠고, 어떤 일이 있어서 어쩔수 밖에 없었고 등등...... 매우 타당하고 옳은 설명이었지만, 그 상황에서 저를 설득하지는 못했습니다. 반면 시간이 지나서 친구의 상황의 본질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갖게 되자 저는 자연스럽게, 즉 직관적으로 옳은 행동(친구에게 사과하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1,2,3종 인식에 대한 제 해석이 잘못됐을 수도 있지만, 스피노자의 인식에 관해 토론하고, 그것에 대해 나름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제일 강렬하게 떠오른 기억은 이와 같습니다.

 

  공통개념과 일반적 개념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누군가 제게 공통개념에 대해 말해보라 한다면 어물쩍거리며 아무 말 못할 것 같지만, 일반적 개념에 대한 스피노자의 비판지점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 스피노자는 앞서나간 사유을 가진 철학자라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세미나실과 부엌에서 승환님과의 relationship이 각각 다르다는 유미샘의 아름다운(!) 예시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또한, 공통개념을 리듬, 개체화와 연관지어 풀어내신 이진경 선생님의 해설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에티카를 읽는것도 벅찬데, 이렇게 딱딱한 철학서를 유연하게 삶에 대한 성찰로 이끌어내시는 모습을 보니...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네요.

 

  후훗... 급하게나마 기억의 파편을 모아봤습니다. 전 지금도 누군가 제게 에티카에 대해 질문한다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기에 벅찬 내용이 많고, 이해했다 하더라도 말이나 글로 풀어내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가 세미나에 기쁘게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이 비어있는 만큼 많이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일은 필연적이고, 신이란 것은 무한한 것이고 등등... 이런 사유들, 제가 생각 해 본 적 없던 생각들을 배우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이제 이철교의 절반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좋은 추억이 차곡차곡 잘 쌓인 것 같네요. 바뀐 세미나 조에서도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5월 10일에 있었던 승환, 의현 조의 세미나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koreanzorba님의 후기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보다 상세하고 깔끔한 후기를 맛보실 수 있습니다.


의횬

2015.05.19 18:10:23
*.225.79.191

힘든 몸을 이끌고 온 승헌씨~ ㅎㅎ

아팠다더니 이렇게 후기도 올려주었었군요 ㅠㅠ 감덩


감각적 각성을 3종인식과 연결시킨 부분이 눈에 띄는데요,

논리적 과정을 거쳐서 "그래 맞지!" 요렇게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행하는 것이

2종인식에 따른 행동이라는 것은 매끄러이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감각적으로 자연스레 익숙하고 끌려서 그에 휩쓸려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그것을 1종인식이 아니라 3종인식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감각이라, 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새로운 행동을 만들어내니까??

승헌씨의 주장이 더 자세히 듣고 싶네요 ㅎㅎ


늘 성실히 '적어도 세번' 꼼꼼히 읽고오는 승헌씨덕에

요즘 <에티카> 세미나를 알차고 재미지게 하고 있어요 ㅎㅎ


저도 열심히 읽고 갈테니, 이번 주도 같이 열공해보아요! 캬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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