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문학


토요일에 만나는 인문학(1/7-3/18) "처음 만나는 맑스, 『자본』을 읽자" 강사 인터뷰!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이래 <자본>을 부단히 읽어왔다."  


루이 알튀세르, <자본을 읽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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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구실에서 공부하다 보면 주로 현대 철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게 되는데요

요즘의 시대를 사유하는 현대 철학자들이 아닌 맑스를 기획하게 된 이유를 듣고 싶어요.

 

2007bbc 설문조사에서 맑스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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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자본의 위기에 대한 관심으로 맑스의 <자본>이 더 많이 읽혔다고 하죠.

약 맑스주의자라면 맑스 이전과 맑스 이후로 시대 구분을 하겠지만,

비단 맑스를 좋아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맑스를 싫어하는 사람도 맑스의 영향력은 크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매번 다시 읽게 되는 맑스는 같은 맑스는 아닐 겁니다. 맑스주의 내에서도 굉장히 다양하게 맑스를 읽어왔던 길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맑스라는 거대한 '숲'을 향하는 길이 아니라 맑스라는 좁은 '오솔길'을 내는 작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루이 알튀세르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1960년대에 한 작업이 그런 것이었죠.

스탈린주의에 잠식된 맑스가 아니라 새로운 맑스로 난 오솔길을 내었던 것처럼요.

그 오솔길을 따타 현대 정치철학들은 각자 더 많은 구불구불한 길들을 내고 있습니다.

지젝은 자신이 맑스주의자라고 하고, 바디우와 랑시에르도 알튀세르의 제자로서 맑스주의자의 오솔길을 만들고 있죠.

발리바르 역시 알튀세르의 가장 성실한 제자로서, 스승의 오솔길을 따르면서 그 옆에 또 구불거리는 길을 내고 있습니다.

네그리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알튀세르 등 등.png



알튀세르 이전, 그러니까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전통에 있는 맑스는 '정통성'의 맑스였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단 하나의 맑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스탈린은 하나이길 원했지만 말이죠.

알튀세르는 <자본을 읽자> 서문에서 지금까지 맑스를 어떻게 읽어왔고, 또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간략하게 서술했습니다. 굉장히 인상적인데요.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이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죽어서나 살아서나 우리에게 <자본>을 읽어줬던 사람들

즉 엥겔스, 카우츠키, 플레하노프,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스탈린 그리고 그람시 등과 같은 

노동자 조직의 지도자나 그 지지자 또는 반대자

요컨대 철학자, 경제학자, 정치가들의 저술이나 연설을 통해 <자본>을 부단히 읽어왔다.”

 

, 맑스주의 내에서 알튀세르 이전과 이후로 맑스의 독해는 아주 달라지게 됩니다.

그만큼 알튀세르는 맑스의 독해를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읽었고, 그 영향력이라는 것은 맑스 독해의 방향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자본론 읽는 맑스.png 9-1알튀세르.jpg




그러니까 알튀세르 이후 우리는 거대한 맑스라는 숲을 형성하려는 독해가 아니라 다양한 오솔길들로 더 멀리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알튀세르는 맑스에게 없는 것을 맑스의 것이 아닌 사유들-가령 정신분석이 그렇죠-을 통해 과감하게 공백을 드러내고

그 공백을 맑스 사상과는 이질적인 것들로 채우면서 새로운 독해를 시도합니다.


그런 알튀세르가 전통적인 맑스주의들, 심지어 스탈린까지 포함해 자신에게 <자본>을 읽어줬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자본>을 부단히 읽어온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 <자본>을 부단히 읽어 왔으며, 읽어갈 것이다. 라고 선언하는 듯 합니다. 

맑스를 계승하거나, 변형하거나 심지어 왜곡하는 것 역시 맑스의 독해이고 그러한 '읽기'의 역사위에 자신의 '읽기'를 놓는거죠.

보통 자신의 주장을 쎄게 말하기 위해서 과거의 다른 사상가들의 사유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런면에서 알튀세르의 <자본>읽기는 맑스주의의 역사를 복원하면서 동시에 그 위에서 자신의 독특한 읽기를 위치시킵니다.

그리고 그 후 맑스 읽기는 굉장히 멀리 나아가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맑스를 읽는다는 것은 현대 철학자들이 멀리 나간 맑스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Q. 토요인은 처음 시작하는 인문학이 모토인데요. 텍스트는 맑스의 원전을 다루고 있더라고요

맑스 사상에 입문하려는 수강생들에게 이것이 부담이 되진 않을까요? 책이 너무 두꺼워 겁이나요.

 

<자본>이 좀 뚱뚱한 책이죠^^.

우리가 이번에 읽을 분량은 자본 1, 2, 3권 중 1권만 읽습니다. 그런데 1권도 워낙 두툼해 2권으로 출판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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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자본의 집필의도, 그리고 자본을 읽을때 염두에 두어야 할 지점들은 강의때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길잡이 삼아 읽는 것은 저와 여러분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처음이기 때문에 오히려 맑스와 직접 만날 것을 제안드립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훌륭한 해설서도 맑스 자신만큼 풍부하게 씌여있지는 않으니까요.


예고편 많이 보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는건 당연한 것이죠. 저는 <자본>이 여전히 살아있는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을 누구와 함께 읽느냐에 따라 자본의 메시지가 매번 다르게 와닿는 지점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 역시 이번에 읽는 <자본>이 너무 기대됩니다.

맑스 뿐만 아니라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함께 읽을 친구들이 매우 중요하죠. 처음 읽기 때문에 무엇보다 함께 읽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또 하나, <자본>은 맑스가 당대의 노동자들을 위해 쓴 책입니다.

처음 가치문제가 나오는 상품편을 제외하고는 어렵다고 항변하지 말라고 서문에 쓸 정도니까요. (물론 다 읽고나서 항의하는 사람 꽤 봤습니다만..^^).

그러나 함께 읽는 친구들을 밑천삼아 꾸준히 읽어 나간다면 그리 난해한 텍스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맑스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편견 중 하나는 맑스가 모든 문제를 경제의 문제로 환원시킨다는 점입니다

그런 편견 때문인지 맑스는 정치, 경제를 공부하는 사람 외에 철학이나 예술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강사님은 어떤 사람이 맑스주의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엄청난 오해군요. 맑스는 모든 문제를 경제 문제로 환원하지 않았습니다. <자본> 표지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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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부제가 딸려있죠.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부제는 <자본>의 의도가 오늘날 경제학을 의미하는 정치경제학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당대의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의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자본>을 서술했습니다.

그런데 맑스가 수행한 비판이 매우 중요하고 또 독특합니다. 그건 강의때 자세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맑스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며 자본주의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분석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경제적인 영역만이 아니듯이 - 자본주의는 경제적 시스템을 넘어 우리 삶의 양식들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죠

 <자본>은 역사적으로 등장한 생산양식이라는 구조가 우리의 의식 바깥에서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규정하게 되는가를 분석합니다.


여기에는 혁명의 문제가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만으로 새로운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죠.

또 자본주의를 붕괴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곧 우리가 희망하는 세상을 열어주지는 않습니다.

물론 혁명은 경제적인 영역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영역을 아무리 파헤친다고 하더라고 혁명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맑스는 혁명을 위해 <공산당 선언>을 썼고, ‘혁명이 가능한 조건을 분석하기 위해 <자본>을 썼습니다.

혁명을 위해 자본의 심층으로 들어간 것이죠. 그래서 그것은 자본의 바깥에서 쓰여진 자본에 대한 책입니다

 

정치와 철학,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그 시대의 지배적인 통념들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어떻게 예술이 되며, 철학이 되고, 정치가 될 수 있을까요?

당대에 각광받을지라도 단언컨대 <자본>처럼 오래동안 사람들에게 사유의 재료가 되지는 못할 거에요. 

모든 것을 혁명의 수단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철학, 예술의 고유한 정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지배적인 예술의 바깥에서 예술을 창안할 때 한 시대의 문제의식을 뛰어넘는 급진적인 실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맑스의 사상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지적인 영감을 불어넣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살았던 근대, 자본주의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시대와 대결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그 시대성을 뛰어넘는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는 단 한번도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하는 근대의 주체철학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유에는 근대의 주체적 기획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자본>을 '철학적'으로 독해하려는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이 있는 것이죠.

 

Q. 이 강좌를 듣게 될 수강생 중에는 맑스의 이론이 생소한 수강생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 분들이 맑스와 친숙해질 수 있도록 추천해주고 싶은 텍스트가 있으신가요?

 

무엇보다도 <자본>이죠^^. 우선 강의가 시작하기 전에 <자본>의 서문을 눈으로 훓어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맑스의 전반적인 사상이나 맑스 이후 맑스주의의 전개를 알고 싶다면 한형식 선생님이 쓴 <맑스주의 역사 강의>와 같은 책이 있습니다.

맑스가 정말로 처음이라는 분은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이라는 최근 나온 책도 추천합니다. 그 외에도 <자본>에 대한 훌륭한 책들은 정말 너무 많죠.

맑스주의 역사강의.jpg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jpg



강의 때마다 추천할 예정이지만, 무엇보다 <자본>을 드문드문 들춰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저 잡지 책 뒤적거리듯이요^^





Q. 마지막으로, 이번 강의를 통해 수강생들의 맑스 입문을 돕는다는 취지도 있겠지만

강사님 스스로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이번 강의에 걸고 있는 기대가 있으신가요?

 

 

시절이 하수상하니 모든게 새롭게 보이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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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투쟁이 이렇게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자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읽었을 것입니다.


<자본>을 다시 읽어야 하는 시점에서 다시, 민주주의라는 구호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다시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또 다른 삶의 조건 속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계부채가 1300조를 돌파하고 있고, 신자유주의는 신고립주의로 변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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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제적인 문제는 삶의 양식을 바꾸고도 남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경제의 위기는 자본과 노동 사이에 그어지지 않고 이주민과 소수자들을 향해 더 많은 분할과 차별의 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정치와 경제의 문제를 함께 사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탄핵 정국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 글로벌 경제위기 담론이 또 다시 한국사회의 촛불을 꺼뜨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자본>을 읽되, 맑스가 혁명을 위하여 자본을 서술했던 것처럼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하여 <자본>을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정치경제학 비판으로서의 <자본>, 비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좀 더 염두에 두면서 읽어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본>에서 전면적으로 쓰여지지 않은 국가의 문제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강좌는 오는 1월 7일 토요일을 시작으로 10주간 매주 토요일 3시에 시작된다.

해 맞이! 주저 말고 수유너머N 토요인 강좌 <처음 만나는 맑스, 『자본 』을 읽자!>를 클릭하시길!





망설이는 질문

2016.12.12 20:35:19
*.255.33.0

정치  경제를 공부해야 된다는 건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건지 너무 헷갈려요@.@


그럼 경제학이나 정치경제학은 자체가 성립할 수도 없고, 예술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늘 해왔듯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그 분야의 지배적인 통념들을 뛰어넘기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고유의 급진적인 정치성도 획득하게 된다는 말씀처럼 들리는데요.

너무 죄송하지만 솔직히... 우왕좌왕? 횡설수설?하시는 것같아 믿음도 안가고 쫌 그렇네요.

suyun

2016.12.13 05:45:21
*.124.214.100

이크... 에둘러 대답한다는게 그렇게 전달되었다니 미안합니다! 저는 이번 강의를 맡게 된 전주희입니다.
관련 질문은 <자본>은 경제학 책이니 철학이나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먼 분야가 아닐까? 라는 거였죠. 
물론 철학이나 예술을 좋아하더라도 <자본>을 읽는 것을 권합니다. 하지만 <자본>이 '경제학'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 아니라 맑스가 품은 사유의 급진성을 읽기 위해서. 라는 단서가 붙겠군요. 
우선 <자본>은 경제학 책이 아니며, 당대의 부르주아 경제학이었던 '정치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자본>을 경제학에 대한 책이라고 한정하는 것은 맑스의 의도가 아닐 뿐더라 맑스의 급진적인 사유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따라서 경제학이나 정치, 철학, 예술이라는 분야에 대한 구별보다는 맑스의 사유에 대한 급진성에 주목하면서 <자본>을 읽기를 권합니다. 그러니 철학이나 예술을 좋아하더라도 이러한 맑스의 사유를 쫓아가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얼마든지 <자본>에서 유의미한 사유를 캐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조금 걱정되었던 것은 마치 '맑스주의'를 읽지 않고서는 철학이나 예술의 급진성이나 정치성을 말할 수 없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해될까봐 좀 더 부연해서 설명한다는 것이 혼란을 초래했나봅니다. 낡고 오래된 주장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예술의 정치성을 주장했던 논의의 흐름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저는 예술이나 철학의 고유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곧 '분야'에 한정해서만 사유를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맑스의 목표가 정치경제학의 '혁신'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의 '비판'에 있었던 것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는 '혁명'이라는 정치경제학을 초과하는 물음으로, 정치경제학의 문제설정 자체를 비판한 것이죠. 마찬가지로 철학이나 예술 역시 그 시대의 고유한 문제설정을 전복하려는 시도로부터 새로운 철학이나 예술은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또다시 장황하게 설명하게 되었습니다만, 이러한 '비판'의 문제설정은 이번 <자본> 강의 내내 반복해서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짧은 지면을 통해 미쳐 다 설명드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두꺼비

2016.12.13 12:01:07
*.218.24.136

처음에는 마르크스 읽기를 거부하셨던 강사님이

나중에는 그를 좋아하시게 되었다는 글이

인상깊었습니다^^

 

???

2017.01.22 05:15:39
*.223.35.179

그나저나 강사님은 Marxist이긴 하신가요?



님이 설명하고 계시는 것들은 그냥 흔해빠진 비판철학이고 관념(론)적 급진주의일 뿐입니다.


전반적인 이해도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고 자기 좋은대로 이해한 Marx와 Marxism에 대해서조차 그 고질적 기질로서의 다중인격적 양가감정과 이중적 태도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냥 요즘 돈 좀 되는 것 같아서 몸소 강의까지 나서신 건 아닌가요? 


...

2017.01.22 13:36:19
*.73.1.220

이건 딱 봐도 걍 시비와 근거 없는 비난에 불과하네요. 근거도 없이 '이해도가 높아 보이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익명에 기댄, 비겁하고 무책임한 비난에 불과해 보입니다.

???

2017.01.22 19:32:11
*.70.51.37

애초에 인터뷰 글을 너무 늦게 보기도 했지만 영업성 광고글이라 신청 끝나고 강의 시작할 때까지 오래 참고 고민하다 적기 시작한 글입니다. 이제 강의도 중반을 향하는 데다 이제 이 인터뷰는 보실 분들은 웬만큼 다 보셨다고 판단해 일단 서두만 그냥 끄적거려 놓은 것이었는데 빨리도 읽고 반응해 주셨네요.
곧 체계적인 실명 비판을 다 게재하던가 일정 상 여건이 허락치 않으면 전체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다만 본 인터뷰는 몇가지 심각하고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어 공론화의 필요성이 충분히 있고, 그러나 강사님의 대중공론장에서의 태도 등등 그간 참을 만큼 참아오기는 했음에도 우애가 훼손되는 강을 건너지 않고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에 고민이 깊습니다.




이후 삭제하더라도 이 글을 시작하게 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직접적 동기이자 반드시 전달되어야만 하는 최대 논점 한 가지만 간단히 언급드리면,
원래 모든 사상, 이론, 해석, 비판 등의 관념 생산은 자유이지만 그것이 진실로서 검증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들이 반드시 수반되어야만 하는데 그 중 가장 강력한 검증 수단의 하나는 바로 그 관념의 열매로서의 ’실천’입니다.
그런데 강사님의 자의적인 Marx 이해가 귀착하는 실천은 ’알량하고 비루한 혁명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말연시의 축제분위기와 혹한 속에서도 굳건히 광장을 지켜주고 계시는 여러 선생님들과 묵묵히 평생의 투쟁을 이어오신 견결한 Marx주의자들 등등 그 모든 분들 뵙기에 ’사이비좌파 궤변론자 학원’이 되어가는 것 같은 모습의 수유너머는 너무나도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현 시국과만 관련해서도 사태의 핵심은
   "이구동성으로 탄핵가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또 차이는 그것을 '무엇의' 시작이라고 보는가에 있다. 당신은 이제 무엇을 시작하려고 하는가?"(조정환)인데 수유너머 사람들은 "야호! 이제 부담스런 투쟁은 모두 끝! 개인적인 일상의 시작!"이라 말하며, 현 정국을 그들의 공허한 혁명과는 거리가 먼 개량 국면으로 몰아가는 근원이 바로 이런 자기자신들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진정한 Marx주의자는 개량투쟁에서도 그 최선봉에 서서 가장 열렬히 투쟁함으로서 그 투쟁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혁명으로 이끌어가는 자이고, 심지어 대중들의 잘못된 투쟁에 대하여까지도 그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는 모든 비판을 가하다가도 일단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면 최선을 다해 같이 싸워줌으로써 희생을 최소화하는 자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세계에 대해 그렇게나 흐물거리는 액체-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왜 중노년의 (법대)교수님들조차 최소한 새 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이재용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 앞에서의 구속촉구집회 등 성실한 투쟁들을 이어 나가고 계시는 이 마당에
  "우리는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만으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죠. 또 자본주의를 붕괴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곧 우리가 희망하는 세상을 열어주지는 않습니다." 같은 소리나 하면서 그래봤자 바뀌는 건 없다고 짐짓 혁명주의자를 가장하며 자신의 나태와 안일과 이기주의를 정당화하는 변명이나 늘어놓고 있는 겁니까?





[[    추  기    ]]
2.
(그리고 도대체 L’Anti-OEdipe는 읽은 건지, Deleuzian은 맞는지도 의심될 정도로 기계론과 기계주의도 구별 못하고, 기계혐오적이신 듯한데 한가지만 첨언하면 너무 죄송하게도 Deleuze-Guattari에 따르면 액체 또한 기계입니다.)



3. 
이 뿐 아니라 강사님은 "경제의 위기는 자본과 노동 사이에 그어지지 않고 이주민과 소수자들을 향해 더 많은 분할과 차별의 선을 긋고 있습니다."라 말하고 있는데 정확히 바로 이 때문에 Marxism의 종차적 특이성이 (특히 현 시기에) 더욱더 강조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체계는 근본적 모순을 은폐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선을 분절시키고 전치시켜 나가면서 모든 차이를 적대적 관계로 전화시키는데, 이런 상황에선 이주민의 적은 선주민 내국인일 뿐이고, 소수자의 적은 다수자일 뿐이며, 여성의 적은 남성이고, 나의 적은 언제나 너와 너희들일 뿐입니다. 
이들은 각각 자신이 처한 이 분절된 전선들 속에서 그 부분적 정체성들에 기반한 국지적 해방이론들을 발달시키게 되는데 이렇게 도달한 주체화의 결과는 역사 상 한번도 실재한 적 없었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의 현실화일 뿐이기 때문에 적대적 근본 모순의 해결 없는 Heterotopia란 한낱 환상에 불과하며 이 때 실제로 도래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Heterodystopia와 Heterohell 뿐입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국지이론들의 대부분은 그 궁극적 목표조차 단지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바로잡는 평등’만을 추구하게 되기 쉬우므로, 이 평평한 운동장에서 만인간 투쟁은 그야말로 본격화, 일상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지이론들의 지평을 초월한 접합의 일반이론이 필요하게 되고, 이 접합 이론은 적대의 근원에 대한 해법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



4. 세계사상사의 최근 경향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낡음’과 ’새로움’의 식민지적 감각이상과 시대착오

세계사적 시대전환과 현대철학 전체의 반성 국면에서 제기되는 ’유물론적 전회/전향(;Materialist Turns)’*의 의미와 ’누빔점’의 중요성


이러한 혼란 속에서 지금 여기 우리의 당면 문제와 근본 문제에 대한 집중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사건과 진리에 대한 충실성 또한 ’새로움’만큼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흐물거리는 액체-근대에 왜 그 유명한 "신세대, X세대들의 88만원세대로의 회귀"와 같은 현상들이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 도저히 알 수 없게 될 것이며, 이와 유사한 ’새로운’ 현상들에 매번 과잉흥분해서 부화뇌동하던 전철을 계속 다시 밟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실재계의 폭력/난입’이란 기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특별한 ’순간’의 Trauma적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드넓은 우주를 향해 자유롭게 직선으로 날아가고자 하는 이런 무수한 탈주의 노력들을 끊임없이 강제소환해 영원회귀시키는 만성적이고 항상적인 Sisyphos 중력(장)으로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중력에 대하여 액체는 가장 순응적이고 굴종적입니다. 그러니 초등학생처럼 고체는 나쁜 것이고 액체는 좋은 것이라 말하기도 생각만큼 간단한 건 전혀 아닙니다.)



(5. 또한 정치  경제에 대한 최근의 강조도 오해하시는 것처럼 그 요지가 (단순한 복고로서의) ’문화예술보다 중요한 정치 경제’, 또는 ’문화예술을 결정하는 정치 경제’라기보다 (또는 최대한 신중히 말해서, 적어도 그런 흐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무관하게 고립된 개별자들로 바라보면서 분리주의적으로 매몰돼 온 그간의 현대사조들에 대한 역시 처절한 반성의 차원에서 제기되는 (접합이론적) 전회/전향의 하나로서의 Jessop과 강내희선생님 등의 CPE;문화정치경제학 같은 흐름들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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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회/전향은 사상 및 철학사에 획을 긋는 거대한 물결로서 비단 Marx주의적 유물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어서 소위 ’speculative (materialist) turn’이라 불리는 철학운동을 포함하는 ’new materialisms’를 또다른 축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크게 보면 신체화된(embodied) 유물/실재론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연장으로서의 affective turn도 이 물결에 포함되는 하위 운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유물론들은 본질적으로 (사변적 개인/개체주의 분리이론의 ) Feuerbach적 유물론에 해당하기 때문에 발달과 논쟁들이 진행될수록 (실천적 사회(역사) 유물론의 접합이론을 포함/기반하는) Marx주의(적/계열) 유물론이 주도권을 확립해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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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3 13:32:10
*.223.34.178

[의도치 않게 이 글을 보시고 혹 불필요한 오해를 하게 되실지 모를 외부인사분들께 송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본 논의는 그 숨은 맥락과 배경을 소상히 밝히지 않아 국외자로서는 이해하시기 어려운 역사가 좀 있으며, 거론된 구체적 각론들에 대하여는 명기된 것만큼 다양한 이견들을 수용치 못하는 바가 전혀! 아님을 양해해 주시고,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본 단위의 상황과 관련해서는 더욱더) 제1 논점에 대하여는 성급한 오해를 특히 삼가주시기 (바라며, 더불어 현재적 맥락에서의 Marx주의 핵심, 의미와 중요성에 대하여만은 웬만한 이견들은 진심으로 경청되기는 할지언정 수용되기 곤란한 정황정세임도 또한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예를 들어, 존경하는 어느 고명한 스승님께서 최근 주신 지적 등은 가슴 깊이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본 글은 위대한 Zygmunt Bauman에 반대하여 현대의 액체성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액체와 기계를 대립시켜 사고하는 허구적 발상의 구도와 특히 그와 관련된 언행불일치의 내적 모순에 대하여 문제제기하는 것이 그 취지였음을 이해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또 다른 유력한 선생님께선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주셨는데, 물론 당연히 그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없고, 본고는 가장 강력한 비판 전통 중 하나인 Marx주의가 다른 각다기한 비판 철학들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가지는 종차적 특이성이 더욱 강조되어야만 현재 역사 국면(에서)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는 논지이며, 촛불집회에서 한 여고생도 했던 불변전망 발언류는 본고 전단을 다시 한번 숙독 숙고하여 주시고, 본질적으로 개량과 혁명의 (전화) 관계, 진지전과 집중적 기동전의 관계 설정 및 배치 전략, 신속하고 유연한 정세 판단과 전환/이동 등등에 대한 통찰과 숙려가 결여되어 있는데다, 무엇보다 현재 본 단위 상황의 구체적 특수 맥락에 대한 이해를 기반하고 있지 않아 진지한 이견으로 검토가 어려워 보이기에 죄송한 말씀을 대신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역시 관심 갖고 견해를 피력해 주신 점 대단히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유너머 내부에서도 ’차이나는 반복’이라는 작은 답변이 제출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에 대해서도 동일 구도에서 Marxist Deleuzian 체계와 Marxist (Neo-)Gramscian 체계를 통합해 설명하면, 결국 Deleuze가 말하는 ’차이나는 반복’, ’차이를 생성하는 반복’이란 (문화-정치적으로) Gramsci적 (일상/생활 정치의) ’진지전’(, 그리고 Hegelian체계에서는 양적 변화의 축적)과 동일한 의미라는 각성을 촉구시킴으로써 상기 유력한 선생님에 대한 응답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현재 한국현대사에서 30년 만에 조성된 중기동전선의 반드시 달성되어야만 하는 전략적 최소 공통과제는

첫째, 앞으로의 모든 변화(폭)를 결정할 토대로서의 성역없는 철저하고 완전한 수색, 수사와 탄핵 및 구속처벌

둘째, 특검연장을 위한 특검법 및 선거결과의 최대급진화를 위한 선거법의 대선 전 (긴급) 개정.
        (특히 18세 참정-투표권 보장, 선거기간 유권자 언론자유 보장, 결선투표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통한 사표방지 과소대표문제 개선.) 

셋째, (민-진 연정 조건) 민주 정부로의 정권교체
         ((가능하다면 이재명 통령 + 심상정 총리))

넷째, 민주정부 임기내  ’87년 (정치-헌법)체제 및 ’97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철저한 비판 및 완전 종식과
         그를 대체할 새 민주공화국 (체제) 건설.
         특히 이것을 담보/보장할 최대한 진보적인 ’17년 헌법-운영체제[OS]로의 최대폭적/전면적 개헌(에 대한 개입과 기입)

이라고 사료되므로 여러 선생님들께 이에 대한 참고를 간원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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