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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계단: 통합진보당 사태에 관한 단상 (이진경)
 
 

 

devil.jpg   악마가 악행을 할 때, 그는 자신이 하는 짓이 악행이라고 생각하고 할까? 아니면 악행이란 생각 없이 할까? 만화, 영화에 등장하는 악마들을 보면, 대개는 그게 악행임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 악행에 남들이 괴로워하는 걸 즐기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혹은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유명한 사례들처럼, 자신이 악마임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악마임을 안다함은, 자신이 본성상 악을 행하는 자임을 아는 걸 뜻하니,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악마는 사실 선한 신의 보충물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고, 신의 선함을 증거하기 위해 악행을 한다. 그가 악마임을 잘 알고, 악행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가령 악마와는 다르지만 드라큘라는 자신이 남의 피를 빠는 것을 ‘악행’이라고 생각할까? 호랑이가 토끼를 쫓으며 달릴 때, 그는 자신이 악행을 한다고 느낄까? 아니, 인간은 자신이 먹기 위해 소나 돼지를 먹을 때, 악행을 한다고 느낄까? 본성상 남의 고기를 먹어야 하는 존재는 자신이 남의 고기를 먹을 때 악행을 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본성상 남의 피를 빨아야 하는 존재라면, 남의 피를 빨 때 그걸 악행이라고 느낄 리 없다. 마찬가지로, 악마가 정말 본성상 악한 존재라면, 그가 하는 행동은 한결 같이 악행이겠지만, 그는 어떤 경우에도 그걸 악이라고 느끼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반대방향에서 생각해보면, 사실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불행 가운데, 악한 의도로 행해지는 것은 아주 드물다. 반대로 선의를 갖고 행해지는 불행이 오히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에게 불행을 야기한 행동에 대해 ‘나쁘다’고 느끼고, 그런 행동을 ‘악행’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그런 행동 가운데 대부분은 악의를 갖고 행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에게 나쁜 결과를 야기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악행이라고 간주한다. 행한 자의 ‘선의’는 악행에 대한 이해가능성을 높이고 그에 대한 분노를 줄여줄 수 있지만, 그 행동의 ‘나쁜 결과’를 없애지는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오래전 영화지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래취드 간호사가 그렇다. 정신병원의 가장 유능한 간호사고, 환자들에 애정을 갖고 있는 성실한 간호사다. 그 성실함이 맥 머피를 병원에 더 붙잡아 두고, 자신의 친구 아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빌리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여기서 간호사의 선의나 애정을 부정해선 안될 것이다. 반대로, 그의 선의가 자신의 생각 안에서 어떤 것을 집요하게 고집할 때, 그것이 맥이나 빌리에겐 참을 수 없는 최악의 고통을 준다. 그 선의에 의한 고집이, 자기가 믿고 있는 것과 다른 생각에 닫혀 있는 고지식한 성실함이 빌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맥이 그이 목을 조이며 덤벼들었던 것은, 그의 행동을 악마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어떤 악의에 따른 것이 아니었음을 안다고 해도 말이다.

 

  사실 본성이 악한 자가 어디 있을까? 그런 악마란 신화 속에나 있는 것일 게다. 하지만 자기와 다른 생각, 자기가 보는 것과 다른 세계가 있음을 부정하는 고집스런 생각이 선의를 동력으로 집요하게 행사될 때, 본성에 없는 악마적 사태가 야기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악마의 계단, 본성적인 악이나 악의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선의와 아집, 독단과 편협함 속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고집스레 추구하는 자들이 집요함을 더함에 따라 올라가게 되는 계단을 이렇게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지옥으로 가는 계단’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선의와 독단, 고집이 야기하는 나쁜 결과’, 간단히 말해 악의 없는 악행과 악의 있는 악행 가운데, 혹은 악행임을 아는 악행과 악행임을 모르는 악행 가운데, 어떤 게 더 나쁠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악행임을 알고 하는 악행은 그걸 알기에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있게 마련이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지속되기 어려운 반면, 그걸 모르고 하는 악행은 모르기에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고, 쉽게 반복되거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의도나 목적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믿고 행하는 것 또한 그럴 것이다. 그것은 많은 비난을 사는 경우에조차, 자신의 의도나 목적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지속되거나 반복되기 쉽고, 악행의 강도도 쉽사리 증가하며 악행의 전염이나 확산의 범위도 쉽게 확장된다. 혹은 너무 익숙하여 나쁘다는 생각 없이 쉽사리 행하는 악행도 그렇다. 악마의 계단에는 비약의 통로들이 널려 있는 것이다.

 

  가령 이명박은 자신이 행한 수많은 행위들에 대해, 심지어 내곡동 사저구입처럼 남들이 ‘비리’라고 부르는 그런 악행들에 대해서조차 악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매일 하던 일인데 공연히들 트집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전국토를 파헤치고 삽질하는 것 역시, ‘다 해 놓고 나면 다들 좋아할 거야’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에, 수많은 반대가 비판이 있어도 생까고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정부를 “역사상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한 정부”라고 한 말은, 그가 자신이 하는 악행이 악행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의와 독단, 편협함과 고집스러움이 사태를 더욱 나쁜 지점으로까지 밀고 간 것이다. 그의 명령을 열심히 실행하는 관료들 역시 자신이 악행을 한다고 생각할 것 같지 않다. 악행임을 의식하지 않는 이런 악행의 경우에는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것 같은 극단적인 악행에 대해서조차 쉽게 문턱을 넘게 된다. “국가의 명령으로 참전한 게 죄인가?”라며 군사적 악행에 대한 비난을 반박하는 이른바 ‘참전용사’들이 그렇다. 용산에서 철거민들을 죽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여기에 적대감이 끼어들면 사태의 등급은 한 단계 더 올라간다. 소련이나 북한에서 정치적 반대파들에 대해 행했던 숙청이나, 일본의 전공투 말기에 우치게바로 반대파나 동료조차 죽였던 것이 이런 종류의 악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때의 동지들조차, 정치적 적대 속에서 ‘적’으로 간주하거나 ‘간첩’으로 간주하여 죽이는 것. 이 경우에도 스탈린이나 김일성, 우치게바의 당사자들이 자신의 ‘숙청’을 악행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조금 유감스런, 그러나 피할 수 없었던 정당한 일이라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 더, 감정적인 비장함이 더해질 경우 또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막강한 적 앞에서 느끼는 위기감이나 희생을 감수하게 하는 비장함은 극단의 선택조차 쉽게 하도록 떠민다. 혹은 자신들이 오랜 기간 간난신고의 세월을 고통스런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비장함의 정서가 더해질 때, 흔히는 생각하기 힘든 행동조차 주저 없이 할 수 있게 된다.

 

  최근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거의 부정을 두고, 당사자인 당권파 당원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혐의에 대해 억울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 말대로 부당한 비판 또한 있을 게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이미 드러난 부정선거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부정선거 이전에 그들이 당이나 조직을 운영하고 움직이는 방식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의 감정을 지울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러하다. 문제된 사실을 두고 다른 당에선 사실 더 대규모로 행해지는 것이라거나, 그동안의 관습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사람들이 용인하고 받아들여주길 기대한다면,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100% 완벽한 선거’를 잣대로 자신들을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부정선거보다 더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은 그 결과 보고서가 나온 이후의 자신들의 행동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그들의 언행을 보건대, 확실히 이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고 있다. 자신들의 선한 의도를 지나치게 믿고 있으며, 자신들이 목적이 자신들이 택한 ‘약간’ 편의적인 방법을 충분히 정당화해주리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진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숱한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이 악행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의문도 갖고 있지 않을 게다. 그 대신 고집스레 자신들의 신념과 의도의 선함을 강변하고 있을 것이다.

 

  좀더 인상적인 것은, 부정선거에 대한 진상보고서가 발표되었을 때, 자신들이 그 동안 간난신고의 세월을 보내며 확보한 것을 이런 모욕적인 방법으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당권파의 비난이었다. 그랬을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반북이데올로기의 억압 속에서 긴 시간의 인생을 바쳐왔을 것이다. 그렇게 쌓아온 것이, 더구나 국회의원이란 자리까지 확보한 바로 그 성공의 순간,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리게 된 데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실을 까발리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더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못할 일이 없게 된다. 그들 또한 중앙위원회에서 예전의 ‘용팔이들’을 능가하는 난장판을 만들고, 이후에도 당의 대표나 중앙위원회 회의, 당의 조직과 기능 전체를 정지시키는 대대적인 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다.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악행으로 비난하는 행동에서 그들은 어떤 악행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마도 쉽사리 자신들의 고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들이 빠진 ‘진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자기들이 무력화된 당이란 무의미한 것일 테니까. 그렇게 그들은 악마의 계단을 단숨에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자파의 '동지'들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진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운동을 해왔고, 그들 못지않게 헌신적으로 고통스런 삶을 버티어온 수많은 동지들의 삶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한바탕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렸다. 비록 지지자가 적어도 ‘운동’이나 ‘진보’라는 말에서 스스로 느낄 수 있었던 모든 긍지와 자부심마저 한 주먹에 날려 버렸다. 운동하던 사람들 각자를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로부터 버티어주던 떳떳함 대신에, 우리가 하는 것이 악행이었던 것은 아닌지, 악행임도 모르는 채 악행을 행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안겨주었다. 저들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일부라고 한다면, 저런 마음으로 운동을 할 거라면 차라리 운동을 안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근본적 의문을 던져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간난의 세월’ 끝에 얻은 국회의원 자리 몇 개에 미쳐 벌인 저들의 난장판은, 적어도 우리들에겐, 그것이 박살내버린 그 모든 신뢰와 긍지를 대가로, 어떤 소중한 어떤 시선을 되찾도록 해준 것인지도 모른다. 악마의 계단에서 벗어나게 해 줄 작은 열쇠를.

 


배익화

2012.05.16 14:09:59
*.176.37.204

"비밀글입니다."

:

배익화

2012.05.16 16:30:42
*.176.37.204

"비밀글입니다."

:

Jay

2012.05.22 20:32:39
*.178.162.207

요즘 통합진보당의 (구)당권파를 보면서 드는 생각.

1. 존버*의 끝을 보는 듯합니다. (*이외수선생이 개발한 '존나게 버티는' 정신)

2. 내 안의 파시즘에 대해 들여다봅니다.

진보생각

2012.05.28 02:37:16
*.209.171.47

단상이라는 전제하에 쓰여진 글이니 진심어린 참견으로 읽기에는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글속에 감추어진 칼날은 생각보다 많이 잔인해져 있는것 같습니다.

이미 결론내려진 것에 대하여 단정짓고 그들의 행위를 어떻게하면 더 추악한 모습으로 설명할까라는 고민의 흔적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몇십년이 지나도 당신의 글에는

아직도 깨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항상 2%의 부족함이 있었다는 것을 당신이 걸어갈 선의의 포장길에서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정치행위에 대해

평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당신은 그 자유속에서 살다 갈 것이고 아마 생의 마지막에는 '자유주의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에 대한 성찰이 붙겠지요.

사유하고자 하면서 결론부터 굳어져 버린다면 당신의 자유속에는 당신만이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몇몇 배운사람들의 울타리속에서 지켜지는 당신의

자유를 마음껏 비웃어주고 싶은 오늘밤입니다. 당신의 외로운 항해를 그래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터이니 당신의 이름석자가 만인에게 회자될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Jay

2012.05.28 11:37:18
*.178.162.207

0. [진보생각님]의 생각은...


[진보생각님]의 이 글 '악마의 계단'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이것인 것 같습니다.

'이미 결론 내려진 것에 대하여 단정짓고'...... '사유하고자 하면서 결론부터 굳어져 버린다' 

결국 [진보생각님]이 이 글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그들(당권파)의 행위'에 대해 '단정'없이 바라보라는 것이 아닐 런지요.

[진보생각님]의 생각은 2가지 점을 놓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1. 통합진보당 당권파에 대한 평가는...


먼저, 당권파에 대한 평가는 이미 진보진영 내부의 검토나 사유의 단계를 지나 

대중적인 단정과 결론의 단계로 가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이러한 대중적인 평가를 전제로 쓰여진 것입니다.

통합진보당 혁신비대위나 진보진영 내의 평가가 아니라, 대중적인 평가와 판단 말입니다.


당권파의 위기는 통합진보당 혁신비대위나 보수정당, 보수언론의 평가가 아니라,

당권파의 진정한 위기는 당권파가 잣대로 삼는 당원과 국민의 평가입니다.

[진보생각님]이 당권파의 긍정적 지지자라면 당원과 국민의 평가에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대중적인 '단정'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은 이 글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당권파입니다.


2. 이 글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 글이 진정으로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통합진보당의 당권파가 아닙니다.

당권파에 대한 비판은 이미 넘쳐나고 있는데 거기에 입 하나 보탠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 글의 대상은 진보의 이념 안에 있는 진보진영이고, 내 안의 적을 겨냥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진보적 의도로 행해지는 진보적이지 않은 행위에 대한 반성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악행이었던 것은 아닌지

악행임도 모르는 채 악행을 행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나아가 '저들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일부가 아닌지'


진보의 긍지와 자부심이 박살난 지금, 그 대가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반성적 검토와 자성을 촉구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악의없는 악행, 악행임을 모르는 악행'

즉 '악마의 계단'에서 벗어나게 해 줄 작은 열쇠입니다.

솔라리스

2012.05.29 12:34:03
*.237.95.247

어, 언제 이런 댓글이...^^;; 비밀글만 있는 줄 알았더니.(남이 감추교 싶은 비밀은 저는 알고 싶지 않아서, 읽지 않았습니다.)

먼저, 써야할 글을 많이 줄여주신 Jay님께 감사를...*^^*

 

추가하면, 저는 결론 내리는 것에 신중하지만,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세세한 점에선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판단을 하지 않기는 정말 어렵지 않은 사건 아니었던가요?

 

자신들의 오류를 돌아보지 않고

성급한 결론이라며, 부정이 아니라 부실이라며 결론을 내리지 말라는 것은,

무언가를 쌌지만, 그게 정말 똥인지 확정될 때까지는

똥이라고 단정짓지 말라는 말이겠지요.

 

맞습니다. 그러나

똥임을 단정하지 않아도 무언가 쌌다는 결론은 내리기 충분하지요.

그리고 그 싼 것이 떳떳한 것도, 자랑할 것도 아니란 것, 아니 추하고 더러운 것이란 것은,

'명료하고 뚜렷한' 신중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것이지요.

 

철학자들은 그런 걸 직관적 판단이라고 하지요.^^

수많은 대중들이 느끼는 추함이란 바로 그런 직관적 감각이겠지요.

그런 직관은 항상 '성급'하고 빠릅니다. 빠르지 않은 건 생각이지 직관이 아닙니다.

글구 수많은 사람이 추하다고 느낀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걸 과연 성급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요?

반박하려면 그 직관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제시해야지요.

 

당권파가 제시한 반박의 이유는 그 직관을 뒤집기엔 턱없이 부족하지요.

--그걸 갖고 틀렸네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대중을 정말 졸로 보고 있는 거지요.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식의 대중관을 갖고 계신분들이라면 다를라나?

 

Jay님이 말씀하신대로,

자기가 사고를 내 놓고도 남의 탓을 하고, 남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고를 치지 않았어도, 어떤 사건을 자신의 문제로 돌려볼 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 아닐까요?

냉정히 보면, 이번 사건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멀리는 수많은 좌파조직 안에서 상이한 양상으로지만 반복되어 온 것이지요.

자신의 문제일수록, 그것이 추한 것이면

변명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세상에 핑계없는 무덤이 없지요)

그것이 추한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그 안에 잠재된 더욱 추한 가능성마저 보는 것, 그게 저 같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도 다시 그런 추한 일이 반복되는 걸 막기가 쉽지 않지요.

 

자유주의자라는 말로 그걸 피해갈 수 있다는 생각은, 종북주의자니 빨갱이니 하는 말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피해갈 수 있다고 믿는 넘덜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전에 빨갱이를 자처했듯이, 자유주의자를 자처하겠습니다.

비자유주의자들의 수많은 비웃음으로 제 이름이 만고에 남아 유명해지길...*^^*

 

저는 당권파나 주사파들의 추악함에 대해선 이미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정말 잘 알려진 관행이었던 걸요.)

그 추악한 일들이 그저 얼른 지나가 주길, 아니 얼른 사라져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는 분들이 더욱더 추하게 느껴집니다.

(국회의원 자리 지키기 위한 그 지저분한 행동을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아직도 믿고 있는 걸까요?)

그래도 제 묘사가 '더' 추악하게 느껴졌다면, 그래도 자신들이 추악하다는 것은 감지하고 있단 말인 듯해 다행입니다.

항상 하던 '관행'이라는 말로 추함을 덮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어느덧 그것이 추악하다는 것도 잊게 되고 마니 말입니다.

 

위장전입, 탈세... 관행처럼 하던 일인데 뭘 그리 비난하느냐는 사람들,

대통령이 되어서 경호실 예산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면서도

늘 하던 짓인데(관행이란 말은 이명박 정부 이래 가장 많이 사용된 말 중 하나지요) 뭘 그리 요란을 떠느냐고 하던 넘덜들의 무감각을 생각하면

아직 거기까지 가진 않은 분들도 있는 듯하니 말입니다.

 

그 감각의 불씨를 부디 소중히 되살려,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남 걱정 할 처지가 아닌 듯 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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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5 16: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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