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너머N웹진
[음악 혹은 세상 이야기] 한여름 밤의 꿈 / Antony and the Johnsons, Epilepsy is Dancing
조회 수 2289 추천 수 0 2010.06.30 16:53:14
'보이콧' 할 수 없던 경기
2010년 6월 한달은 월드컵 마케팅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유난스런 협찬사들은 지하철 한 칸에 통째로 잔디시트를 깔았고, 붉은 옷을 입은 스타들을 내세워 너도나도 서울 광장으로 응원 가라는 광고를 골목길 버스정류장 마다 붙였다. 월드컵 시작 전부터 서울시청 선점 문제를 두고 '붉은 악마'와 기업들은 떠들썩하게 옥신각신했고, 모 방송국은 독점 중계권을 무기로 이 기회에 한탕 벌어보겠다는 야욕을 부끄러운 줄도 모른채 대놓고 드러냈다. 물론 이제까지 있었던 각종 스포츠 행사마다 지나친 상업주의에 따른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유독 그 수위가 심하지 않았나 싶다. 하도 요란하니, 이 모든 광풍이 꼴보기 싫어지는 일종의 반발감(?)이 들어, 지난 한국 대 그리스전 경기도 '일부러' 보지 않았고, 예년 같았으면 밤새워 챙겨보았을 스타플레이어들의 경기들에도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티비를 틀어 중계 방송을 지켜보게 나라가 하나 있었으니, 이들은 다름아닌 '북한'의 대표팀이다.
(지하철에 설치되었던 모 기업의 월드컵 광고)
북한의 경기를 주시하게 된 건,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나 포르투칼과의 전반전에서의, 즉 전통적인 축구의 강호를 깜짝 놀라게 한 그들의 경기력때문은 물론 아니다. 또한 한 민족으로써 그들을 응원하라는 민족주의적 감상에 기대고 싶었던 것도 역시 아니다. 선수명단 표기의 오류를 두고 '북한 선수 4명이 이탈했다'고 떠들어대던 언론이나, '빨갱이'라며 북한 나아가 북한 사람들 모두를 이레 적대적인 괴물같은 존재로 상상하게 하는 한국 정부의 획책에 대한 반감 때문이였을까? 단순한 호기심이란 이유 때문에 보기 시작한 북한의 경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리만치 묘한 감동을 선사했다. 비단 최근의 천안함 사태가 아니더라도, 알게 모르게 북한의 이미지라는 것은 자칫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소위 '김정일'스럽게 뇌리에 각인되어버리곤 한다. 무언가 보편적이지 않은 '괴물'처럼, 우리와는 다른 존재들로 여겨지는 것이다.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 선수들의 표정과 땀방울은 이러한 이미지가 그동안 그 얼마나 덧씌워진 편견이였는지를 다시한번 새삼 느끼게 했다.
보이는 것만 보고 싶은 '한여름 밤의 꿈'
'안토니 앤 더 존슨스'는 2000년 동명의 앨범 "Antony and the Jonsons"으로 데뷔한 밴드이다. 이들을 두고 기존의 슈게이징 사운드나 트립합 계열 같은 '약물음악'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소리를 '우왕우왕' 울리게 하는, 소위 '와우' 이펙터의 사용이 연주에서 배제된 것은 아니기에, 이러한 세간의 평가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토니'의 음악에서는 기존의 '뽕스러운' 음악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느껴진다. 그 주된 원인은 보컬 안토니(Antony Hegarty)의 가히 순수하다 싶을 만큼 절제된 목소리때문이다. 첫 앨범 이후 발매된 2005년 'I am a Bird now'나, 2008년 'Another World EP'에서 보컬 안토니의 목소리는 점점 더 침잠하는 형태로 발전된다. 보컬의 바이브레이션은 갈수록 절제미를 더하고 있고, 이로써 그의 사랑 이야기는 좀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도대체 어떤 사랑을 해왔길래,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보컬 안토니는 이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일까? 호소력있는 목소리는 당연하게도 청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그들의 프로필까지 찾게 만든다.
'안토니 앤 더 존슨스'의 보컬 안토니는 밴드의 활동과 동시에 양성애자임을 '커밍아웃'을 한 인물이다. (또한 "Epilepsy is Dancing" 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워쇼스키 감독 역시 동성애자로 익히 알려져있다.) 문제는 이같은 주변적인 정보를 접하게 됨과 동시에 기존의 감상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안토니 앤 더 존슨스'가 선사하던 서정성은 그들의 신분(?)때문에 급속히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서정성을 오롯히 무책임한 '풍광'의 측면에만 두고 싶어하는 다수에 속한 자들의 이기심은, 이 과정을 묘하게도 섭섭함으로 인식케한다.
흔히 서정과 감정은 한 개인의 내면의 영역일 뿐이라 여겨진다. 다분히 정치적인 색채가 강한 장르의 예술이 한 시대를 이끌게 되면, 곧이어 '서정성의 회복'을 주창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러한 전제때문일 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서정을 오롯히 개인적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 아무리 소소하더라도 역사가 없는 개인이란 없고, 이야기가 없는 인생이란 없을텐데... 이러한 삶의 여정을 토해내는 서정의 영역에서 완전히 현실 참여적 혹은 정치적인 것들을 배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것이 자연이든 사랑이든 '있는 그대로만' 존재한다는 관점은 일종의 허구이자 환상일 수 있는 것이다.
'안토니 앤 더 존슨스'의 음악은 듣는 이에게 한없이 가라앉는 비애의 감상을 선사한다. 그 순간, 듣는 이가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들은 '아픈 것은 우리 뿐이다'라는 개별적인 비애를 '우리 모두 아프다'라는 보편적인 비애로 표현함으로써,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이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빨간 괴물'처럼 무언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일 것만 같던 북한 선수들이 알고보니 우리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땀을 흘리고 똑같이 기뻐하며 똑같이 아쉬워함을 알게되었을 때 느껴지던 감정들처럼, '안토니 앤더 존슨스'는 그동안 특별하다고만 여겨져왔던 소수자들의 사랑을 누구나 동의할 법 한, 극한의 아름다운 소리로 표현함으로써 그 경계를 녹아내리게 만든다.
"고립된 나라라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요"
많은 누리꾼들은 북한 선수들의 경기력을 두고 '경기에서 지면 아오지탄광으로 끌려가기에 저렇게 죽어라 뛰는 것'이라 농담을 던졌고, 유니폼이 부족해 경기 후 상대 선수들과 셔츠를 교환하지 못하는 걸 두고 그들의 가난을 비웃기도 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뛴 흔적인, 선수들의 몸을 두고 '초콜릿 복근'을 운운했고, '못먹어 마른거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일교포 출신인 '정대세' 선수의 "이번 월드컵에서 북한 팀을 통해 북한이 고립된 나라라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던 인터뷰 내용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들이 경기를 통해 보여준 것은 비단 이들의 땀이 섞인 꿈과 열정 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해 던지는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월드컵 광풍으로 다른 모든 경기를 '보이콧'해야하는 서글픈 현실 속에서도 나는 이들을 있는 힘껏 응원했다. 승패를 떠나 그들이 감내해야하는 그 모든 서러운 목소리를 맘껏 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글/ 김은영(수유너머N)




우와 대박~ 멋져요. 음악도 잘 듣고.. 글도 잘 읽고 가요. 은영언니. 하트를 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