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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락 밴드의 성공
전통적으로 락 음반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흐름 중 하나는 영英-미美간의 대결구도였다. 영국에 비틀즈, 롤링스톤즈나 레드제플린이 있었다면, 미국에는 그레이드풀 데드, 제퍼슨 에어플레인, 딥퍼플이 있었던 것. 이러한 영-미간의 경쟁 구도는, 90년대 영국의 모던락과 미국의 그런지락간의 묘한(?) 신경전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음반사들의 상업적 전략이라고 치부하기에 앞서, '어느 곳이 락음악의 진정한 원류인가'를 두고 벌어진 라이벌의식은, 최근까지도 락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기존의 영-미, 즉 영어권 중심이던 락 음반 시장에 급속히 제3의 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은 람슈타인과 같이 독일어로 노래하는 밴드나, 프랑스의 에어를 위시로한 일렉트릭 밴드, 일본의 시부야케이의 유행 등, 비영어권 뮤지션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증명된다. 락 음반시장의 이같은 다국적(?) 흐름은 2000년대 이후 더욱 가속화되어, 아프리카 내지는 중동의 전통 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한 '베이루트'같은 밴드가 미국 인디 음반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밑걸음이 된다.
람슈타인, 그들은 '네오-나치스트'인가?
이렇듯 지역적인 인기 몰이를 넘어 세계적으로 상업적 성공까지 거머쥔 밴드의 대표주자로, 독일의 인더스트리얼 락 밴드 람슈타인을 들 수 있다. 1995년 'Herzeleid' 음반으로 데뷔한 이래, 최근까지도 신보를 발표할 만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람슈타인은, 특유의 마초적 이미지 때문에 '람슈타인=나치주의자'라는 오명을 데뷔초부터 달고 다녔다. 자신들은 결코 나치주의자가 아니라는 이들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많은 네오나치스트들이 람슈타인을 추종하고 있었고, 이때문에 람슈타인은 그 존재만으로도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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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단순히 군복을 입고 등장하거나 독일어의 'R'을 나치스타일로 굴려 발음하는 것 말고도, 람슈타인을 나치주의자 내지는 지독한 마초로 오해할만한 증거(?)는 여럿 있었다. 이들은 공연 중간에 수시로 '불쇼'를 벌였고(실제로 람슈타인 멤버들은 모두 화염방사기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Buck dich' 공연 중에는 인공 성기 노출이라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후 체포된 이력까지 있다. 또한 유례없는 '떼창'(집단 따라부르기)으로 매번 화제를 모으는 'Du Hast'의 공연 실황은 보는 이에게 집단 그 자체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까지 선사할 정도다. 제목부터 군대 구호인 'Link 234'라는 곡이 발표되었을 때, 이러한 지적은 극에 달한다. 곡 초반 사용된 군홧발 소리와 강렬한 기타리프는, 드디어 람슈타인이 네오나치스트임을 커밍아웃한 게 아닌가? 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곡의 뮤직비디오가 발표됨과 동시에 람슈타인의 정치적 이미지는 정 반대로 뒤바뀐다.
자신들의 음악에 세뇌되어 열광하는 개미들과 그 개미들을 통째로 학살하는 풍뎅이(?)의 이미지는 그동안 람슈타인이 어떠한 의도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고집했는 지에 대한 충분한 변명이 되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Link 234' 뮤직비디오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풍뎅이'의 권력에 저항하는 개미들의 모습이다. 권력을 전복시키고 혁명을 이뤄내는 개미들의 모습은 언뜻 보아도 나치스러운, 즉 기존에 그들이 세뇌된 방식 그대로인 것이다. 이는 람슈타인을 추종하는 이들이나 비판하던 이들 모두를 조롱하는 역설의 기법이다. 집단과 그 메커니즘에 대한 충분한 사유가 선행되지 않은 채 이어지는 나치에 대한 비판은, 그 역시 기존 권력이 의도한 대로 이용당할 수 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람슈타인은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었던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던 것이다.
'겨묻은 개'가 '똥묻은 개'를 욕할 권리가 없지는 않다만...
얼마 전, 올해 최고의 '개드립'이라 할만한 '대통령이 너만 보더라'라는 모 국회의원의 멘트를 두고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같은 편이라면 무조건 감싸고보던 보수 언론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선정적인 비판 기사들을 쏟아냈고, 재보궐 선거를 앞둔 여당은 서둘러 해당 의원을 당에서 제명했다. 이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신속했는지, 오히려 진보 측 인사들 사이에선 무언가 음모가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까지 불러일으켰을 정도였다.
(2010.7. 22. 중앙일보 보도 中)
물론 누가 봐도 불쾌할만한 해당 국회의원의 발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당 성희롱에 비판하는 자들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티비만 틀었다하면 쏟아져나오는 '꿀벅지'소녀들 혹은 '짐승남' 소년들과 그들에게서 야릇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대중들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생활 곳곳에서 난무하는 성적인 농담들과 희롱에 있어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자유로운가라는 문제다. 성적인 발언들에 느끼는 불쾌감이 개인별로 다를 수 밖에 없음에도, '그깟 가벼운 농담에 뭐 그리 예민하냐?'라는 일종의 집단적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어느 미친X의 발언에 대해만 죽일 듯이 비난을 하는 게 과연 어느만큼의 효과가 있겠냐는 말이다.
회식자리에 참석할 때마다 오늘은 또 어느 수위(의 성희롱적 발언들)까지 묵인해야하나를 고민하는 직장 여성부터,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고 장자연씨 사건까지, 우리 사회의 성적인 폭력들은 차고 넘치는 일이다. 어느 정도의 성적인 발언들은 심지어 쿨하고 호탕하다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 근본의 폭력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채, 행해지는 집단의 비판에서 람슈타인 'Links 234' 개미들의 혁명 대열이 겹쳐보인다. 물론 '겨묻은 개'에게 '똥묻은 개'를 욕할 권리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묻은 '겨'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면, 이 것 참. 아니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거다.
글/ 김은영(수유너머 N)




우와- 뮤비 진짜 멋지네요!!!! 온 몸에 도돌도돌 소름이 돋넹
보면 중간 중간 히틀러가 선전용으로 만들었던 <의지의 승리>라는 영화가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장면을 차용한 것도 보이고
뮤비에 신경과 머리를 좀 쓴 듯
ㅎㅎ이번 글에는 내가 1등으로 댓글달아서 더욱 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