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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워크숍

첫날에 늦게 도착해서 강의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 놀랐는데, 둘째날에도 역시 수많은 분들과 뜨거운 열기 속에 함께 했습니다. 역시 도미야마 선생님은 결론을 지연시키며-_- 많은 고민들을 안겨주었어요. 이날의 화두는 겁쟁이들의 말(수다)였습니다. 요약보다는 제가 했던 생각들 위주로, 오히려 질문만 많이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해가 있거나 보충이 필요하면 꼭 얘기해주세요.

 

겁쟁이와 관련해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늘어놓겠습니다. 지금도 자다가 하이킥할 만큼 부끄러운 일인데, 중학교 때 학기초 친했던 친구가 아마도 위 수술을 받고 난 후에 안좋은 냄새가 많이 나면서 멀어지게 되었어요.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 냄새 때문에 싫어지다니 참 부끄러운 짓이다 했는데, 이게 겁쟁이의 예감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때 5번 넘게 전학하면서 겪었던 전학초기의 따돌림에 대한 감각이, (냄새나는) 쟤와 계속 친하게 되면 또 그때처럼 취급당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되었던게 아닐까하고^^; 묻지마 폭력 앞에서 오키나와인의 개성을 이야기하며 대만 원주민이나 아마미와 차별성을 강조했던 겁쟁이 이하처럼 말이죠. 그리고 1920년 이후 소철지옥으로 상징되는 오키나와 경제위기를 겪으면 서 바뀌는 이하가 있습니다. 저임금으로 오사카, 남방군도의 저임금 노동력으로 팔려나가는 오키나와인들을 보며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이제 더 이상 배제를 회피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드디어 오인 받을 때가 왔다고 하는 이하. 이제까지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왔던 영역을 구성된 것으로서 안다는 영위에서 다시 <산리즈카의 여름>이라는 다큐가 겹쳐옵니다. 공항반대 투쟁에 나선 농민들이 무장 궐기를 할지 말지를 얘기하는 순간 속에서, “무기를 들면 죽이거나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고, 대부분 겁쟁이 같은 말들이 다수지만 어쨌든 그 속에서 상황을 새롭게 정의하고 언어로 붙들려는 풍요로운 말’(수다)가 등장한다는 점. 그런 속에서 일상적으로 쓰던 삽, 낫이 어떻게 무기가 되고, 늘 가던 길을 어떻게 봉쇄할 것인가 생각하며, 일상을 다시 보게 되는(재구성하는) 순간. 비록 아직 무기를 들지 않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아니 혹 무기를 들고 폭력을 썼더라도 그렇게 말로서 묻지마 폭력을 다시 정의하고 붙들어 새로운 세계를 확보해 나가는 작업. 그런게 도미야마 선생님이 확보하고 싶은 말의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번 시간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런 구분짓기, 배제, 혹은 묻지마 폭력이 발동하는 아슬아슬한 경계 속에서, 그 경계를 구분과 배제가 아닌 매개로 이해하려는(만들어가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조선인이 아니다”,“아랍인이 아니다는 식으로, 오인받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속에서 배제해나가며 구성되는 공동성이 아니라, 언제나 깨질 수 있는 경계속에 있기에 오히려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구성되는 새로운 공동성 말입니다. 폭력에 노출된 신체로서 스스로를 사물로 만든파농처럼 말이죠. 그러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말이 정지된 지점에서 말을 다시 출발시켜야 한다는 것. 냄새나는 친구를 말없이 피했던 저처럼 나는 아랍인이 아니다라고 회피하는게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서 말을 다시 출발시키는 것. 하지만 이건 너무 어렵습니다. 그 순간이 회피인지, 말을 출발시키는 순간인지, 기회주의의 공간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후적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실 저는 겁쟁이에게 기회주의자의 모습이 겹쳐옵니다. 어쩌면 기회주의에서 조차도 말의 공간과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걸까요? 하지만 앞서 언급된 산리즈카 투쟁 다큐에서 겁쟁이 농민들 역시 투쟁을 이야기하고 무기를 들지 말지를 얘기하며 저항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로도 선생님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결기에 찬 투쟁의 모습은 아닌지. 겁쟁이라는 말 속에서, 상황을 옮겨가며 자신의 욕심(권력, , 명예)을 채우는 기회주의가 은폐막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계속 따라 붙습니다. 아니 그런 자들은 그렇게 가도록 내버려 두고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가야 하는 걸까요?

 

여러 가지 생각들을 두서 없이 적어 나갔습니다. 이 글은 도미야마 선생님에게 몇 퍼센트의 예스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 외에도 의미있는 질문들이 많았는데, 벌써 퇴근과 세미나가야할 시간이 되었네요. 일단 여기까지 쓰고 질문은 다음에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큰콩쥐

2015.02.26 10:07:11
*.209.152.157

*^ ^* 건학샘 후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산리즈카의 농민들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겁먹은 신체들이 풍요로운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순간이야말로

그들이 무장하게 되는 순간이며

여기에서 수다는 곧 무장(혹은 저항으로서의 폭력)이 된다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어제 건학샘과 잠깐 나누었던 이야기를 상기해보니

수다의 장(場)에서는 이미 수많은 겁쟁이들의 '결단'과 '결의'가 중첩되어 있는 거 아닌가..

대충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도미야마 샘께서 겁쟁이 개개인의 '결단'과 '결의'를 언급하지 않는(좋아하시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이미 집단이나 개인을 전제로 한 시공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어제 강연 말미에 집단과 개인을 전제로 한 시공간을

비스듬히 횡단하는 영역으로 재구성해 나가는 '연합적 신체'라는 말씀을 덧붙이시면서

(저항으로서의) 폭력은 무장의 문제가 아닌 비스듬히 횡단하는 것이다..

라는 언급이 떠올랐습니다.


이 와중에 출퇴근이라니... 너무 힘드시겠지만 오늘 저녁에도 꼭 뵈어요~ ^ ^

  




 

꽁꽁이

2015.02.26 11:25:22
*.231.52.203

어제 술자리에서 도미야마 선생님께 여쭤본 바로는, 겁쟁이에게 중요한 감정 중 하나가 유머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겁쟁이의 정동이 두려움이나 공포 뿐이겠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강의록이나 강의에서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버리는 일에 대해 논하다 보니 이러한 유머의 차원을 놓치고 있는데요. 전 겁쟁이이라는 방법론이 두려움 앞에 비겁하다기 보다는 두려움을 직시하는 것, 겁쟁이임을 그대로 온전히 체험하는 일, 그래서 이 모든 상황에서 잠시 떨어질 수 있는 여유(유머)를 찾는 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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