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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과 무의식의 정치학』을 활용한 단편소설 발표

크리슈나 2018.06.25 21:44 조회 수 : 120

 

 

 

 

녹 채(廘砦)

 

지젝과 무의식의 정치학을 활용한 단편소설 발표: 왕진희(6.25.18)

 

 

 

 

 

 

“한 달에 사천씩, 가만...... 일 년에 그니까 사억이 넘어?” 통장을 넘겨보던 E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통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드레스룸에서 막나온 지영을 쳐다보았다.

“지영아, 그 옷 너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

“그래?” 지영은 거울을 쳐다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S백화점 아르마니 매장 매니저가 익숙하게 마지막으로 매무새를 점검해주자, 지영이 눈짓을 하며 “저 베이지랑 블랙으로 같이 주세요.”

“고객님 머플러도 좀 전에 무척 잘 어울리시던데요. 같이 넣어드릴까요?”

“그래요”

지영과 E는 센트럴 시티 안에 있는 S백화점 2층 명품매장에서 나와 지하층에 있는 일식집에서 초밥을 먹고 근처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갑자기 미술을 한다고 영국유학까지 다녀와 예술만 하던 네가, 어떻게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잘 나가는 기업들의 세무컨설팅이며 주식이동과 가업승계, 기업공개인 IPO 증권사 업무까지 하니? 물론 전문가 영역은 네 말대로 각 전문가들과 서로 연계해서 한다지만”

“그러게, 말하자면 좀 길어. 정말 아이러니한게 난들 이러리라고 꿈엔들 상상이나 했겠니? 이것저것 원래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서 한 곳을 오래 파지 못한 것도 있고 나름 사정도 있었지.”

“그렇구나.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내키면 해줘.”

“그럴게, 그러다가 홍대에 미술학원을 하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서 영석이를 만났어. 9호선 신논현역에 있는 교보문고. 영석이는 원래 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근무하다가 증권사 IB업무로 갔었거든. 그런데 그 팀 본부장이 골드만삭스 한국법인 지사장으로 스카웃되면서 영석이를 같은 파트너로 데리고 간 거지. 그래서 업무상 사모펀드 회사들을 많이 아는데 그 중 하나를 나에게 소개시켜줬어. 그곳에서 근무하다가 개인고객을 상대하기보단 기업이 훨씬 사이즈도 크고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기업전문회사로 적당한 시기에 옮겼지. 이 업계에 발을 담근 지 벌써 8년째야.” 지영은 캐모마일을 한 모금 더 음미하며 말을 이었다.

“다른 곳 CEO들과는 달리 우리 회사 수장은 현장감각과 이론실무에 능통하시고 업계에서 존경과 선망을 한 몸에 받는 알아주는 대가거든. 그건 너도 아니까 날 찾아 이런 게 만난 거고. 열심히 한번 해봐. 너 정도 경력이면 나보다 훨씬 더 잘 할 거 같아.”

E는 설렘과 걱정이 교차되는 눈빛으로 고맙다며 의자를 바짝 더 당겨서 궁금한 눈빛으로 지영의 다음 이야기를 재촉 했다.

“어떻게 되기는 네가 내 통장을 봤듯이 돈도 많이 벌고, 그만큼 일만 하며 보람도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살고 있지.”

“그래서 나도 너의 회사에 입사가 가능할까? 같은 금융이라도 분야가 달라서 그래. 이 업계에서 십년을 근무 했지만. 지금은 S사 사내에서 교육만 담당하거든.

“괜찮아. 너 정도면. 우리 회사가 구조적으로 완벽한 지원을 해주고 교육시스템까지 잘되어 있어서. 지금은 사내에 회계사, 변호사들은 물론 세무사만 200명이 넘어. 그런데 너희 아버지께서 원래 섬유관련 회사를 운영 하지 않으셨어?”

“응, 여성 브레지어에 들어가는 부속품 납품을 하는 조그만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는데, 요즘은 좀 힘드신가봐”

“그렇구나, 나도 아버지가 사업을 하셔서 그런 상황이 뭔지는 알겠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면서 스피커에서는 영화 '미션'의 주제곡이 은은하게 들려왔다. 로버트 드니로가 자연스럽게 생각나고, 그가 회개를 하며 원주민들과 죽음을 함께하며 싸운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 지영은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를 같이 떠올리며 창밖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유종은 아버지가 가구 회사 ceo로 큰 돈을 벌었고 그의 어머니는 미술을 전공한 고관대작 딸이다. 부모님이 예술을 좋아해서 많은 골동품과 예술작품을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사들였고 몇 년 전에는 인사동의 이름난 전통 있는 화랑까지 인수해서 어머니와 큰 형수가 운영하고 있다. 회계사가 되고 그 덕으로 굵직한 회사들과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주변 거부들이 많아 회계법인을 차려놓고 넓은 고급인맥으로 요즘 같은 불황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대학 때부터 양성애자였던 그는 행동반경도 넓고 운동능력 등 체력도 친구들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건장하고 좋다. 키 크고 근사한 미남에 든든한 재력까지 갖추고 머리까지 받쳐주니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유쾌남이다.

그런데 그에게 언제부턴지 미묘한 설렘이 생기기 시작 했다. 중견 게임업체 김회장이 불러서 동행한 골프에서 처음 만난 지영이 자꾸 눈에 아른거리는 것이다. 안성 골프장에서 특별히 긴장되고 즐거웠던 그날의 라운딩을 끝내고 사우나를 하고 나온 그녀를 골프장 로비 프런트근처에서 마주쳤을 때였다. 지영은 도표중 곡선의 아름다움과 똑같은 대수학적 완벽한 육체의 조화를 다크블루 정장으로 적당히 가렸으나 유종에겐 어딘지 모르게 묘한 신비감을 주었다. 호리호리한 실루엣이 지닌 아름다움은 단발머리와 함께 묘하게 어우러졌다. 마치 자연스런 살 붙음을 거부하지 않다는 듯 그늘집에서의 털털한 먹성과 대화 중의 재치 있는 응답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일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몇 번의 만남을 가졌고 잘 통하는 면도 많았다. 그런데 최근엔 지영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다. 몇 번 연락을 했는데 흐지부지 못 만났다. 불길한 징조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눈빛은 좀 수상했다. 그녀는 늘 알듯 모를 듯 양파 같은 구석이 있다. 양파처럼 겹과 결이 많다. 그녀의 탄력이 넘치는 흰 피부는 유종의 유독 까맣고 각질이 잘 생기는 피부와는 다른 뭔가가 있어 주눅이 들게 했다. 때로는 화려한 별장이나 외딴 오두막 같기도 하고 아름다운 최신 오페라 의상만큼 개성 있고 미묘한 그녀를 읽는 법을 배우는 건 꽤 까다롭다. 하지만 유종의 부드러운 감상의 선과 사랑의 안내도를 따라 지영은 차가운 듯 적절한 반응을 했다. ‘나에게 반응하지 않는 곳은 그녀의 뇌의 회로가 꺼진 부분이지. 다행히 그녀의 사고력은 미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어. 부드럽고 친절하긴 한데 문제는 내가 다가간 만큼 내게 오지 않는게 문제지. 5월의 지옥같이 바쁜 종소세를 끝내니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나네. 바보같이 이 무슨 생소하고 비통한 심정이람? 이럴 때를 대비해서 토끼 굴을 두세 개는 기본으로 유지하고 파놨어야 하는데’ 너무 바쁜 건 핑계고 용서할 수없이 게을렀다고 생각한 유종은 최근 바꾼 페라리 켈리포니아 T 컨버터블 스포츠카에 무심코 머리를 찧다가 ‘윽’ 하고 목을 감쌌다. 그는 회사법인 명의의 업무용차보다 최근 뽑은 자신의 페라리 스포츠카를 더욱 즐긴다. 그나마 한국의 정서를 생각해서 가끔 스포츠카를 타고 업체미팅을 가는 날은 업체 주차장에 차를 세우지 않고 멀찌감치 세워두고 걸어 들어간다. ‘이걸 타고 나갔을 때 사람들과 특히 여자들의 눈빛은 나를 더욱 흥분시키고 거인이 되게 하지. 이 정도 불편함 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한다고.’ 다 좋은데 유종에게는 늘 스포츠카는 어딘지 모르게 세단보다는 몸이 안 편한 것이 딱 하나의 흠이었다.

2년 만에 지영과 연락이 닿아 오랜만에 반포한강에서 바람이나 쏘이자고 해서 저녁 6시쯤 만났다.

“유종! 잘 지냈어? 많이 달라졌다. 살이 좀 붙은 거 같기도 하고.”

“지영이는 늙지도 않는 거 같아, 여전히 예쁜데.”

“그래? 기분 좋은데. 배고프지? 손이 왜 이렇게 차 남자가?”

“차안에서 계속 에어컨을 켜고 있어서 그렇지. 머리했어?

“머리? 그냥 뭐 항상 비슷한데.”

“비슷하긴? 항상 단발머리에서 지금의 달달한 긴 생머리는 대 변신이지!”

“흐흐 쑥스럽게......유를 위해서 난 좀 일찍 도착해서 한번 둘러보고 좋은 카페도 알아놨지”

“난 여기 처음 온다. 진짜 반포로 이사 온지 2년 됐는데도 말이야”

“원래 그래. 김밥 사왔는데 음료수랑 같이 먹을래?”

“응, 지금 이 시간의 한강변이 날씨가 매우 시원하고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역시 탁월한 선택이야. 강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 지잖아. 나 살쪘어?

“너? 많이 안 쪘어. 저 쪽으로 가자 거기가면 음료수도 있고 파라솔에 잔디도 있고 좋잖아.”

유종과 지영은 나란히 걸으며 한강에 늘어서있는 현대적인 카페와 레스토랑을 지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지영은 참깨라면을 한눈에 찜하고는

“라면!”

“라면? 아.... 그래, 그래. 국물이 있어야 하니까.” 함께 라면과 감자 칩을 사서 편의점에서 펼쳐놓은 파라솔 밑 나무의자에 둘은 사이좋게 앉았다.

“어떻게 지냈어?”

“엄청 바빴어. 니가 이 업계를 떠나고 그때부터 더 졸라 바빴다. 일이 많으니까, 사업이란 게 기다려야 되잖아.”

“넌 뒤에서 밀어주는데도 많잖아.”

“어, 다 지인들 소개지 뭐, 표정이 평화로워 보여.”

“나? ㅎ~”

“다행히 차가 많이 안 막혀서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십분 정도 늦었어. 나는 이렇게 늦게 끝날 줄 몰랐어. 오너가 한말 또 하고 또 하고 답도 안 나오는 걸 가지고 계속 붙들고 늘어지니까”

“아산에 무슨 회사인데?”

“건설.”

“건설? 건설회사 요즘경기가 괜찮지 않을 텐데?”

“그렇긴 한데, 나를 자주 보는 사람들은 경기가 괜찮은 사람들이야. 돈을 벌어야 세금을 내니까.”

“그렇긴 하지. 근데 너 왜 자꾸 김밥 옆구리를 터트리니? 먹기 싫어서 데모 하는 거야? 이왕이면 예쁘게 먹지. 젓가락질 똑바로 해”

“내가 먹을 건데 나라고 김밥 옆구리 터트리면서 먹고 싶겠니? 나쁜 남자 좀 좋아해라.”

“나쁜 남자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니? 너가 생각을 해봐!”

“왜? 나름대로 매력 있다.”

“나름대로 매력 있으면 뭐해? 그게 끝인데. 인간은 있지 결국에는 인간성에 끌리는 거야. 다른 거는 순간뿐이고 다 지나가는 거지. 나쁜 남자는 잠깐 호기심이고. 잠깐 호기심에 던져져서 잊히고 싶니?”

“갑자기 굵은 소나기 목소리로 말 끝났나?”

“아니요.” 지영이 씩 웃으며 모기소리로 대답했다. “먼저 하세요, 양보할게요.”

“나쁜 남자라는 게 처음엔 나쁜 남자인데, 반전의 매력이 있는 게 나쁜 남자야.”

“아 그래? 요즘 나쁜 남자의 정의가 그렇게 바뀌었어?”

“뿅 간다니까.”

“아 진짜? 그럼 그 반전의 매력이 뭔데?”

“알면 반전이 아니지.”

“그래? 나쁜 남자답네. 말하는 거 보니까.”

“하하하! 뭐 또 하수같이 그래 엉?”

“엉? 그런 거 몰라 나는. 아~하 그런 거 야한 거 말하는 거야? 식스 팩 이런 거?”

“하하~ 어어”

“울퉁불퉁 근육 그런 거? 얘들이 찾는 거?”

“그건 아니고”

“그럼 뭐야?”

“요가를 최근에 2년 정도 빡 세게 했거든. 자세히 보면 알거 거든.”

“오호 근육운동은 근육이 울퉁불퉁 나온다고 해. 요가는 뭐가 좋지? 남자한테?”

“아우 근육운동 그거는 보기만 좋지 실익이 없어. 요가는 내부근육하고 다르더라고 유연성하고.”

“아 그래? 남자한테 유연성과 내부근육이 좋아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알고 싶나?”

둘이서 박장대소를 하는데 신나는 음악소리와 함께 스무 명쯤 되는 젊고 발랄한 이 삼십 대로 보이는 마라톤 팀이 힘차게 앞을 지나갔다.

“그래서 2년 동안이나 끈기 있게 요가를 했단 말이야?”

“최근에 좀 빠져 있었던 게 요가였다고.”

“음 참 특이해 남자가 요가에 빠지는 게 쉽지 않아. 그치? 너의 이미지만 봐도 그렇고.”

“점점 추세가 강남을 필두로 남자들이 요가를 많이 하는 추세야.”

“그러니?”

“좋은 것 아냐?”

“그치 사실은 여자들이 아무리 좋다고 남자한테 권해도 안하는 것이 요가 아니야? 원래는.”

“가면 여자 밖에 없으니까 뻘쭘 해서 그렇지 뭐.”

“아 그렇지. 요즘엔 세태가 바뀌어서 오히려 예쁜 여자 쳐다보는 그 상황도 좋은 거지? 다이돌핀도 막 솟고.”

“그렇지, 그렇지. 요가는 원래 좀 했었고 해외사업을 좀 해. 중국과 동남아시아. 일단 거기 거래처들이 있어가지고.”

“아 기존 회사의 일을 봐주면서 진출 하는 거야?”

“어어 부동산도 좀 샀고.”

 

 

 

 

 

 

 

지영은 커다란 화면의 다이어리를 점검하며 화요일 있을 미팅을 생각했다. 서초동에 사무실이 있는 중동의 플랜트건설을 주로 하는 중견업체의 m&a와 그 업체 자회사의 주식소각문제로 H와의 접촉이 필요했다. 다른 금융회사도 많았지만 그동안 두 회사 사이에 많은 인연과 도움을 주고받았기에 더욱 그렇다. 맨 처음 H를 만난건 (주)대성 연료펌프 주차장에서 였다. H는 약간 긴 앞머리가 바람에 살짝 흐트러지자 자연스레 머리를 옆으로 살짝 쓸어 올렸다. 그의 그 모습을 지영이 봤다. 지영의 시선이 한참동안 고정되었고 이 시선이 결국 그녀를 지배하게 될 줄을 아무도 몰랐다.

 인간의 시각이 독립적 기능이 아니라 빛의 기능에 의존하듯 예정된 운명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거나,  고대의 에피쿠로스학파가 언급한 클리나멘이 우연히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그 날 두 시간 이상의 긴 미팅에서 오로지 지영에게 생각나는 건 그가 미팅도중에도 웨이브 앞머리를 간혹 쓸어 올리는 모습이었다. 늘 업무상 딱딱한 사람들만 만나다가 그의 색다른 모습은 지영에게 묘한 감성을 자극했다. 그동안 너무 건조한 생활을 했나보다 하고 새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업체 미팅 때문에 지영은 H를 1년 만에 다시 만났고 점심식사까지 함께 했다. 그날 식사도중 H는 다음 주중에 저녁식사를 제안했고 지영은 싫지 않아서 약속에 응했다.  지영이 H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s대에 초고속 승진에 뒷배경까지 있다고 듣긴 들었으나 별 생각이 없었다. 일상이 너무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와 저녁을 같이 한날, H는 지영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저녁 식사시간에는 시종일관 엄청난 웃음을 선사했고 매우 사려깊이 배려하는 모습과 엔터테인먼트기질을 동시에 보여준 것이다. 지영은 온몸에 감싸인 자신의 유리장막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이란 의식적인 꾸밈말보다는 무심코 한 말에 진심이 드러나는 법이다. H는 지영과 가까워진 후 어느 날 차안에서 무심코 자기는 세상의 어떤 여자라도 세 번만 만나게 해준다면 다 꼬실 수 있다고 했다. 지영은 점점 그가 싫어졌다. 이유는 정확히는 모르나 처음에 좋아했던 바로 그 이유가 돌이켜보면 싫어하는 이유도 되는 절묘한 상황이다. 그가 쓰는 단어는 늘 외설적이다 못해 원초적인 경악을 드러냈고 특히 무심코 뱉은 말일 수록 더욱 그렇다. 지영은 H와 일과 바꾸고 회사근처에서 그가 퇴근시간에 기다리면 초조함에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다음 미팅 준비도 완벽히 해놓지 않고 뛰는 걸음으로 달려갔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마음의 공허감은 점점 깊어갔고 그 무엇으로 채울 수도 없었다. 지영은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만큼 남들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또한 타자에게 진심으로 깊은 공감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문득 자신이 싫어지고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하게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듯 착각을 주는 강박증적 쇼핑에서 1초의 시간을 아까워하는 것만큼이나 타인에게도 관심을 주는 것을 아까워 한 즉물적이고 마음의 회로가 오그라 들대로 오그라든 병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단호하고 당당하고 확신에 차있던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고 실존적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토요일 오후 사무실에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자신도 모르게 이수 교차로에서 신세계 강남점 쪽으로 차 방향을 돌렸다. 강남고속 터미널 옆 백화점 입구보다는 늘 이용하는 메리어트 호텔 쪽 입구를 택했다. 호텔정문을 살짝 통과해서 우회전을 하면 바로 신세계백화점 명품관으로 연결되는 vip전용 발렛 파킹 서비스를 해주는 곳이다. 두 시간 정도 둘러보며 종이 백 5개에 담긴 쇼핑으로 인해 기분은 살짝 흐뭇했다. 하지만 대학 다닐 때 학교와 오 분 거리여서 자주 갔던 영국 런던의 옥스포트 스트리트의 셀프리지 백화점을 생각하면 한국은 명품관이라 해도 눈에 들어오는 상품이 별로 없어 늘 찜찜하다. 나오는 길에 메리어트 호텔에서 머리도 하고 스파도 하니 한결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십분 정도 운전해서 집에 도착한 후 지영은 다음 주 있을 미팅 스케줄을 보며 준비를 하다가 새벽이 넘어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일요일은 분주했다. 영국에 있을 때 무척 친하게 지냈던 노리꼬라는 친구가 방문을 해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공항마중을 했다.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지하 주차장에서 핸드폰을 보니 벌써 열시였다. 서둘러 돌아서서 현관 쪽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나타난 벤이 스르르 옆에 멈추더니 지영을 순간 덮쳤다. 차에 실려서 어디론가 하염없이 달렸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지영은 숨조차 쉴 수 없었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벽돌로 지어진 외딴 곳이었다. 지영은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느낄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주사를 맞고 있다는 사실과 엷은 노란색 액체가 어마어마한 양으로 끊임없이 몸에 주입되지만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의식은 흐릿했다. 몸이 묶여있지는 않았으나 꼼짝 달싹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벗어나고 싶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희미하게 들었다. 아프다. 주사가 또 들어온다. 약물이 투입된다. “아니야! 아니야!! 안돼!..........으으...... 아...... 악!!! 지영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새어나오는 건 엷은 신음소리와 무기력한 육체뿐이었다. 다시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힘없이 아 아 아 아 안....돼.....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지영은 익숙한 자기 방안이란 걸 천천히 알 수 있었다. ‘아 꿈이었구나. 그런데 이렇게 생생할 수가 있다니’ 지영은 식은땀이 흘러 온몸이 축축이 젖어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고통스러웠던 꿈속과는 반대로 안심이 되는 무엇과 함께 머릿속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면서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1시간 후면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 착륙이다. 마음도 몸도 뭔지 모를 해방감으로 더욱 차분해진 것이 아이러니 했다. 나일강을 따라서 구석구석 둘러보니 신비와 미스터리의 고대나라 이집트에 온지 벌써 열흘째가 됐다. 일행을 실은 낡은 봉고차는 후루가다 바다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여정하는 배로 돌아가는 중이다. 벌써 황량한 사막을 열 시간째 달리고 있었다. 사막 한 가운데 쭉 뻗은 직선도로만 있고 간혹 모래에 검은 빛이 섞여 있어 모래의 색상만 조금씩 바뀔 뿐 변화라고곤 없었다. 신문 같은데 아랍지역에 무장한 탈레반등이 나타나 사상자를 냈다는 보고가 많아서 걱정도 되는 긴장감 때문에 지루할 틈은 없었다. 지영은 손에 들고 있는 읽고 있는 책에 집중하며 간간이 창밖을 주시했다.

 무사히 사막을 탈출해 드디어 해안가를 달린다. 어둠이 어느새 내려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다는 점점 검은 빛이 되어갔다. 어느 순간 무심코 바다 쪽을 바라보니 까만 바다에 달빛이 환하게 비추어서 반짝이는 하얀 비단 길이 열렸다. 그 모습을 넋을 잃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영은 갑자기 엉치뼈 쪽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하고 머뭇거리는데 순간 온몸이 투명하고 끈적거리는 무엇으로 감싸졌다. 어느새 몸은 자유로이 날수도 있었고 헤엄도 치고 다녔다. 주변은 온통 환하거나 어둡고 이불을 들추듯 한 겹을 들어 올리면 바다가 커튼처럼 열려서 하늘이 되었다. 저 너머에는 친구처럼 친근해 보이는 아저씨가 하늘구름이 섞인 한 우주를 마치 빨랫줄에서 빨래를 개듯이 걷고 있었다. 그사이에 그 너머에 도대체 몇 겹이나 존재 하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다채로운 우주들이 눈에 사진 찍히듯 계속해서 열리고 있었다. 한참을 유영하며 다니다가 얼음 기둥이 화려하게 높이 솟은 바다에 멈추었다. 얼음기둥에 몸을 비춰본 지영의 모습은 마치 캡슐에 쌓인 라멜라 같은 형상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얼음기둥에 사다리가 있었다. 그 너머로 올라가보니 마치 커다랗고 신비로운 무지개 우주선형상을 닮은 것 같은 건물에서 신비한 빛을 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느새 뚫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창고 같은 건물이 보였다. 지영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창고 문을 살며시 열었다.

 

 

 

 

 

 

 

지영의 팔엔 수박 두 덩이가 들려있었다. 조르바 아저씨는 수박을 가장 좋아하신다. 익숙한 이 건물에서는 여전히 음악이 흐른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이 나오는 중이다. 이 창고 건물은 지영에게는 보물창고다. 좋아하는 책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조르바 아저씨는 지영이가 붙여준 이름이다. 그와는 어떤 대화도 가능하고 같이 클레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것도 오백평이 넘는 거대한 창고라니 지영에겐 다른 어떤 콘서트장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원주에서 4일은 자연과 함께 지내고 3일은 창고에서 조르바 아저씨 일을 거들어 준지 벌써 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조르바 아저씨랑 처음 대화는 음악으로 시작했었지, 생각이나’

“선생님 전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데요 어떻게 하면 친해져요?”

“그럼 베토벤부터 시작을 해봐요.”

“베토벤이 교향곡 9개,

협주곡은 피아노 협주곡 5개와 바이올린 협주곡 1개,

현악사중주가 16개,

철로 소나타 변주곡과 피아노 3중주,

피아노 소나타

이중에서 좋아하는 곡 한 개를 선택해서 외우면 좋고 아니면 흥얼거릴 정도로 들어보세요. 그러면 음악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돼요.“

“저도 영국에 있을 때 로얄 패스티벌 홀에서 밤마다 학생표 끊어서 많이 갔거든요. 학교 기숙사가 템즈 강변에 있는 세익스피어 글로벌극장 바로 옆에 있어서 거기서 연극을 보거나 클래식 음악을 들으러 콘서트 장에 자주 갔었어요. 친구들은 펍 같은 데 가서 즐기고 춤추는 걸 좋아하는데 저 보러 참 특이 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휘자는 주로 누구를 들으세요? 교향악단은요?”

“카라얀과 번스타인은 잘 안 듣고 주로 프루츠 벵글러나 낼손스, 체리비 다케의 지휘를 많이 들어요. 보통 유튜브에서 좋아요가 싫어요의 20배이상 누른걸 들으면 실패를 잘 안 해요. 아무래도 대중 지성이 무시할 수 없는 면이 있어요.”

“카라얀 dvd를 소장하고 있는 게 많아서 영상이 지지직거릴 때까지 많이 들었어요.”

“카라얀은 지그시 눈을 감고 지휘를 하잖아요? 그래서 봉사거나 장사꾼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가 클레식 음악을 녹음을 해서 대중화를 시킨 공로도 있는 반면 비즈니스 감각도 뛰어나서 사람들이 비꼬는 거죠? 정말 늘 지그시 눈을 감고 지휘를 하더라고요.”

“눈을 지그시 감으면 본인 스스로는 음악에 대한 집중력을 높일 수는 있지만 오케스트라와의 교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그렇겠네요.”

“니카르도 샤이도 말러는 잘해요. 사실 말러는 누가 지휘를 해도 다 들을 만 해요. 말러가 워낙 변덕스런 면도 있고요. 트럼펫 앞을 막아 여리거나 변형된 형태로 소리를 내기도 하고 또 많은 종류의 다양한 악기들이 동원이 되서 음악이 화려하기 때문에 마치 최고급호텔의 뷔페처럼 시간가는 줄 모르는 재미가 있어요.”

“부르크너도 전 좋던데요.”

“부르크너는 어마어마하죠. 흔히 신의 음악이라고 하죠. 신앙심이 매우 깊고 신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간 작곡가였어요. 깔끔한 한정식 같다고나 할까요?

“그렇군요. 쇼스타코비치는 정말 인상적이에요.”

“맞아요.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이번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평화 회담에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가지고온 ‘평양냉면’ 같이 깔끔하면서 깊은 맛이 나요. 마치 깊은 산에 핀 야생화 같은. 1905년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만 교향곡 11번과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는 꼭 들어볼 필요가 있어요. 음악의 신이라 할 수 있는  첼리비다케나 볼레로 지휘로 들어보시면 좋아요.

“네. 음악의 신은 체리비다케라 할 수 있고 신의 음악으로는 브루크너라는 말씀은 매우 의미심장해요. 지젝이 자신의 책에서 첼리비다케 교향곡 5번과 11번에 대해 언급한 것도 매우 흥미로워요.”

“음악을 들으려면 생활이 단순하고 체력이 좋아야 해요. 음악을 듣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외워서 음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있어요. 같은 곡을 들어도 지휘자 악단은 전 세계에 수만 수천이 있는데 그 판단을 어떻게 하느냐는 거죠. 그래서 자기의 음악관이 분명해야 그 판단이 가능해요. 둘째는 그냥 즐기는 것이 있어요, 유행가처럼.”

“전 주로 바렌보임 지휘를 많이 들었던 거 같아요. 카라얀은 dvd영상을 소장한 게 많아서 영상을 즐겨며 많이 들었어요. 영상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 각 악기의 연주모습과 지휘자의 교감 등이 콘서트 홀 합창석에서 지휘자를 마주보며 영국에서 들었던 그 감동이 고스란히 상기되거든요.”

“그래요. 카라얀처럼 20세기에는 주로 악보를 암보해서 지휘를 많이 했어요. 레코딩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한 거였죠. 예를 들어 그 이전 시기는 암보를 하고 싶어도 레코딩 기술이 없어 콘서트현장에 가서 많이 들어야하는 한계가 있어서 그래요. 악보만 암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암보가 불가능했죠.”

“그러네요. 흥미로운 사실이에요.”

“토스카니니가 암보로 무대에 섰는데 중간에 잊어버려서 그 무대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했어요. 20세기의 안보의 대가는 첼리비 다케예요. 지휘가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저 사람은 암보를 해서 지휘한다는 느낌보다 음을 만들어 내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휘자가 암보와 악보를 보고 지휘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어요?”

“악보가 있으면 장점은 정교하게 지휘가 가능해요. 사람이기에 중간에 잊을 수도 있으니 그런 부담감이 일단 없다는 것도 장점이 될 수 있죠. 그래서 21세기 작곡가들은 악보를 보는 것을 많이 선호해요. 여러 가지 이유로요.”

 

 

 

 

 

 

 

 

 

 

장난기가 발동한 대학선배 G는 어릴 때 추억이 생각이나 약속 장소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영이의 하늘거리는 드레이프 풍 원 숄더인 검정색 원피스를 보자 가까이 다가가 치마를 살짝 쳐드는 시늉을 했다.

“선배! 못됐어!”

“하하하! 미안”

“초딩 때 학교에서 놀고 있으면 훼방 놓고 도망치는 개구쟁이 녀석들하고 똑같아요!”

“아~ 그래가지고 내가 몰표 나와서 반장됐잖아. 내가 그런 애들 그땐 다 막아 줬거든.”

지영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눈을 흘기자 G도 웃으면서 안으로 안내하며 편백나무 향이 나는 테라스 정원이 있는 카페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둘은 창가에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앙증맞은 연보랏빛 꽃들과 장미과 조팝나무인 하얀 설유화가 조화롭게 핀 뜰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G가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받아왔다. 둘은 빨대로 조각얼음을 빙빙 돌리며 커피 색상과 꽃들을 이리저리 감상하며 서로 안부를 묻다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G에게 지영이가 먼저 뭔가 생각난 듯 얘기를 했다.

“하기야 아버지가 경찰이셨으니 얼마나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을 보며 막내아들에게 인생의 많은 노하우를 전수해 주셨을까요?”

“다른 건 모르겠고 아버지와 같이 나살던 부산에 있는 서면을 나갔는데, 그 뒷길에 양아치들 많거든. 구루마 같은 거로 팔고 하는....... 아버지랑 같이 나가면 아버지한테 아이고 형님 나오셨습니까?”

“아버지도 설마 양아치? 흐흐 미안, 농담이에요”

“아니지 아버지는 거기를 다 관리하는 사람이었던 거지. 내가 깜짝 놀랐지. 아버지 저 아저씨들이 왜 아버지한테 인사하는 거예요? 물으니, 아버지가 ”저 새끼 내가 감옥소에 다 넣으려다 참았다“고 하셨지. 하하하~.

“우리 아버지는 사업하셔서 제 눈엔 항상 멋진 지휘관 같으셨는데 그런 것만 나한테 전수해 주셨나?”

“내가 언젠가 인간의 정의가 뭐라고 얘기 한 거 생각나?”

“뭐라고 했는데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그렇지. 불완전하다는 의미를 조금 더 내가 보충한다면 인간은 비논리적인 종교와 이성적인 논리를 동시에 갖고 있는 동물이야. 비논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인간은 별 수 없는 그냥 알고 보면 동물이라는 거지. 예쁜 여자 보면 발딱 서고, 근데 그게 나쁜 거야? 아니야 인간이 갖고 있는 인자일 뿐이야 그런데 그런 걸 가지고 이러면 안 된다 등등 의견이 갈리는데 왜 인간을 퍼팩트 하게 만들려고 해? 아니야? 아침에 일어나면 발기해 있는 게 인간이야.”

“그럼 여자는요?”

“여자도 마찬가지지 그냥 인간 아니야? 좀 더 잘나고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완벽한 걸 요구할 필요가 없어. 예쁜 여자가 여성 인권 운동하는 거 봤어? 난 못 봤어.”

“봤어요. 제 눈엔 다 예쁘던데요. 못생긴 여자만 여성인권 운동을 한다? 그럼 잘생긴 남자는요?”

“잘생긴 남자는 다 힘이 있고 잘살고 있기 때문에 못생긴 남자들이 꼼짝 못해.”

“그럼 예쁜 여자는 힘이 없고, 못생긴 여자는 힘이 있다는 얘기예요?”

“아니지, 예쁜 여자들은 다 남자 품에서 잘 살고 있거든. 내 얘기는 남자와 여자는 그냥 다른 존재라는 것이야. 남자와 돌고래처럼.”

“아, 여자와 거미의 차이요? 요즘 직장에서 선배가 상사한테 많이 치였나보네. 갑자기 남자여자를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시고. 남자들은 어디서 당한 거 그런 식으로 풀면 기분이 좀 나아지는지 모르겠어요. 암튼 그 남자도 결국 돌고래에서 나왔으니 결론은 같네요. 여성인권운동으로 불과 지난 몇 십 년 만에 여성인권이 많이 신장한 것도 사실 아니 예요?”

“그래가지고 올려놓고 여자들한테 다 투표권을 줬더니만 여자들이 반 정도는 저 새끼가 잘생겼느니 못생겼느니 투표를 하니 마니 그 타령을 하고 있어요.”

“그래요? 전 처음 듣는 얘기네요.”

“내 생각에 반은 그래.”

“전 못 봤는데요......”

“지영이가 안 그렇다고 있잖아 대부분이 다 안 그런 게 아냐.”

“전 솔직히 잘생긴 남자한테 별로 관심 없는데.”

“그렇게 얘기하면 안 돼. 내한테 옛날에 얘기 한 게 있어.”

“그냥 여러 가지 조건 중에 하나 갖췄으면 하는 거지 솔직히 잘생긴 남자보다는 좀 매력이 있고 철학이 있고 이런 남자가 낫지 않아요?”

“봐! 니가 옛날에 수영선수 금마 멋지다고!”

“언제요? 누구누구??”

“그 담에 골프코치 그 새끼 멋지다고 다 니 입으로 그랬었어!”

지영은 멋쩍은 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쪽 검지 손으로 머리를 계속 뱅글뱅글 꼬며 대답을 했다. “그게 뭐요? 그냥 거기서 끝인 거죠.”

“봐봐, 니가 거기서 성장을 한 거야.”

“뭔 성장요?”

“정신적으로. 근데 그렇게 안하는 여자들이 태반이야. 그라고 끝이야. 그라고 유증민이가 못생겼다고 표 안 찍어.”

“유증민이 뭐 못 생긴 건 아니죠. 못생겼어요?”

“아니야, 가족모임 때 누나들한테 내가 물어봤거든. 꼴배기 싫데.”

“못생겨서요?”

“어! 남자가 무슨 그렇게 쪽 제비 같이 생겼냐고.”

지영이 한참을 어이없이 웃었다. “전 그런 얘기 처음 듣는데요.”

“그니까. 유증민이 얘기 하는 거는 관심이 없어! 그냥 쳐다보면 기분 나쁘데. 그런 남자가 대통령되면 안된데.”

“그런 분도 있구나!”

“반 넘어!”

“진짜요?”

“그래서 내가 조금 더 과격하게 표현하면 여자들은 투표권을 안줘도 된다고 생각해. 그런 여자가 너무 많아.”

지영이 토끼처럼 놀란 눈으로 정색을 하며 “여보세요! 선배! 많이 난감하네요!”

“그래서 그런 거 까지도 안을 수 있는 잘생긴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G는 통쾌한 듯 박장대소를 하고서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살짝 눈치를 살피며 조용해진다.”

“문대통령처럼 이요?”

“문재인은 잘 생긴 건 아냐.”

“괜찮죠, 그 정도면.”

“발음이 새잖아! 말을 갔다가 씹고 앉아있는데.“

“성인들 치고 말 잘하는 사람 봤어요? 다 어눌하게 하지.”

“됐고요. 웃겨죽겠어 안타깝다 솔직히.”

“성인들 치고 말 졸졸졸 하는 사람 없고, 논어에도 나오잖아요. 얼굴 낯빛을 환하게 하고 말을 요리조리 잘하는 교언영색 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한명도 없다고.”

“누가 눈웃음치래?”

“많이 어이가 없네요. 여성들만 탓할게 아니라 남자들 책임도 있는 거 아니 예요? 결혼하는 순간 여자들은 가사 일에다 자녀 돌보랴 시댁 챙기랴. 남편들은 늦게 들어오지, 그러니 아내들은 드라마나 보고요.”

“언제 누가 드라마 보라고 했어?”

“솔직히 여자들만 탓할 것도 아니죠. 다 남편들이 아내가 드라마 보는 걸 방치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나요? 사회생활을 하면 남자는 보고듣고 하며 늘 생각에 발전이 있지만 여자들은 활동범위나 만나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어서 변화라든가 자아성찰이 쉽지 않잖아요. 저 같으면 투표권 어쩌고 저쩌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보다는 같이 손잡고 주말 같은 때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그런 거 옆에 끼고 유적지라도 같이 돌아보는 노력을 하겠어요. 감성과 지성이 자연과 함께 활발하게 자극받고 숨쉬고, 살아있는 역사도 같이 깨우치고요. 얼마나 외로우면 드라마보고, 낮잠 자고, 급기야는 우울증에 빠지고 그러겠어요?”

“예쁜 애는 그래도 돼. 못생긴 애가 그러고 있으면 때려죽이고 싶지.”

“아니?...... 농담이죠? 이건 단지 남자와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가 되면 자식이 다 생기잖아요. 그 엄마의 철학과 행동이 자식한테 다 고스란히 영향을 줄 텐데, 남편은 그런 아내가 있으면 아무리 예뻐도 방치하면 안 되죠.”

“그니까 남자들이 얼마나 힘들어? 다 관리해야 돼.”

“남자는 그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마술에 안 걸리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열정과 에너지를 아내에게 쏟아야지. 얼마나 불쌍해요 여자들은. 뭘 흘겨봐요! 맞는 얘기지.”

“몰라! 좌우지간 웃긴 거야. 이래 얘기 하면 안되지만 여자들은 투표권을 다 뺏어야해.”

“선배! 갈수록 위험한 남자네. 사회생활 하더니 너무 찌들고 속물이 된 거 아니 예요? 이런 속내는 한 번도 들어보지도 짐작도 못했어요. 예전에는. 누나네 집안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 예요? 누나를 증오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거나?”

“내가 볼 때 아까 반이라고 했지? 40프로는 돼. 주위에 한번 다 물어봐.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 찍었나 한번 물어봐.”

“기회 되면 한번 물어볼게요.”

“그 이유를 들어봐야 해.”

“근데 박근혜 효과 때문에 거의 다 문 대통령을 얘기하지 않을까요?”

“그니까 왜 찍었나 한번 물어보라니까? 그담에 왜 딴 후보는 안찍었나 물어봐.”

“알겠어요. 그런데 그런 선배는 누구 찍었어요?”

“유증민!” 가장 논리적이야. 그니까 기본기가 서있는 사람이야.“

“그게 다예요?”

“그럼 대한민국의 정치하는 사람이 기본이 제대로 서있으면 되지 뭐가 필요해? 디테일 한건 있잖아, 전문가들이 하면 돼.”

“심석정은 어떻게 생각해요?“

“심석정은 나한테 걸렸으면 박살났을 거야. 세상을 퍼팩트 하게 만들려고 자꾸 달려드는 여자야. 아니라니까! 인간세상은 퍼팩트 하지 않아! 심석정 얘기로 하자면 정말로 있잖아, 아무 짓도 안하고 노는 새끼들 다 먹여 살려 줘야해. 말도 안 되는 얘기하고 있어! 그럼 죽어라고 일하는 사람들은 뭐야?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길 하고 있어. 알다시피 이쪽에 내가 자본주의의 최첨단에 선 사람이야. 증권회사가 자본주의 최첨단이야! 제일 앞이야. 여기 끝에서 저기 끝까지 내가 다 가본 사람이야. 잘 생각을 해야 해. 단지 기업들이 갖고 있는 서로 준비한 약정이 뭐냐면 100을 팔아가지고 30이 남으면 비정규직을 정규직 다해줘. 근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경쟁력이 100팔아가지고 5를 남긴다니까. 그런데 비정규직을 정규직 시켜가지고 국민연금에 의료보험 들어주고 뭐 들어주고 뭐 들어주고 비용을 회사가 다 해줘. 그럼 회사가 망하란 얘기야?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정규직까지 없어져야해.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약한 나라라니까.”

“그건 대기업들이 교과서 적으로 하는 얘기고요.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현금 유보금 쌓아놓고 낙수 효과 이런 거 안 하잖아요. 옛날 조선시대에도 마름이란 게 있었잖아요. 갑자기 마름이 생각나네요. 기업의 입장에서 마름 역할을 하는 기업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하는 에널리스트 출신 아니랄까봐......ㅎ너무 염두에 두진마시고요.” 지영은 슬쩍 웃으며 눈치를 보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럼 선배가 생각하는 어떤 대안이 있으세요?”

“정말로 기초과학이나 소재과학 이런 거를 키워야지. 그래가지고 국가 전체 부가가치를 키워야 돼. 내가 스칸디나비아 3국을 갖다 왔잖아. 그 나라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대? 돈을 많이 버니까 그 사람들이 세금을 많이 내고도 소비도하고 먹고 살 수 있는 거야. 왜? 산업이 부가가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런 산업들을 만들 생각을 해야지.”

“그니까 선배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해도 돼요? 예를 들면 그런 부가가치 있는 산업을 키워서 탄탄하게 해놓고 여력이 되면 그때 비정규직을 다 똑같이 정규직해도 된다는 얘기요?”

“쉽게 얘기해줄게 ‘김복남 포장마차가 한 달 동안 장사를 해서 30프로 남는다’ 그러면은 알바생 쓰는데 부담을 느끼겠어, 안 느끼겠어?”

“안 느끼죠.”

“근데 지금은 부담을 느끼겠어, 안 느끼겠어?

“느끼죠, 경쟁도 치열하고. 또 백종웬 같은 인물이TV에서 인기몰이하고 골목상권도 싹쓸이 하는 것도 안 좋아 보여요. 중소도시에 이마트 같은 거 어마어마 한 규모로 하나만 들어오면 재래시장 쪽에서 장사하는 가정들은 해체되고 이혼하는 부부도 많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누가 재래시장이나 골목상권 살린다고 비 오는 날 일부러 우산 쓰고 현금 챙겨서 일일이 장 보러 다니지 않잖아요. 자본주의의 매커니즘을 꽤 뚫고 있어서 생각이 있는 사람도 ‘편리함’ 때문에 잘 실천이 안되는 게 사실이고요. 선배 얘기는 그니까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고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30프로 정도 이익이 남는다면 그때 가서 정규직 고용이 다 가능하다는 얘기예요?”

“나라가 이만큼 벌어들이는 법파가 되면 다 정규직 시켜주지 왜 안 시켜주냐? 힘들어서 안 시켜주는 거야, 힘들어서. 그 담에 노조 새끼들이 지랄 지랄해서 노조도 틀린 거야. 왜냐하면 직장폐쇄하면 다 집에 가야된다니까.”

“그니깐 한 총은 완전 썩은 거고 민노총은 그나마 덜 썩었는데, 그나마 그것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순 없죠.”

“민노총이 더 쎄다. 물론 내가 얘기한 게 다 잘했다는 게 아냐. 잘못 한 것도 인정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노동자들이 있잖아 쉽게 말하면 이런 거야. 우리가 현상들을 잘 봐야해. 100명중에 80명이 열라 열심히 해. 50명중 40명이 대청소하면 열심히 바닥 닦고 청소해 10명은 뭐하냐? 놀아. 맞지? 10명 노는 놈 까지 다 먹여 살리자는게 심석정이야. 그건 틀린 얘기야.”

“하지만 인간은 개성과 능력이 달라요. 다윈 진화론의 핵심이 환경 적응론인데 사회학자 스펜서가 인간 사회도 자연 진화론을 대입시켜 인간 진화론을 주장한 것이 우생학으로 빠져 결국 나치와 같은 파시스트 등장으로 열등한 인간들을 제거해서 아리안족같은 순수한 혈통만 남기고 죽여야 한다는 것과 궁극적으로 큰 차이가 있을까요? 더구나 점점 AI가 모든 걸 대신하는 앞으로의 세계는 더욱 그렇고요. 실감나게는 전 사실 매운 걸 정말 못 먹는 체질인데요. 날 때부터 그래요, 마치 장애인처럼. 근데 우리엄마는 매운걸 아주 좋아하셔서 모든 음식에 몰래 청량고추를 빻아 넣어서 정말 고역스러워요. 자신의 눈높이에서 왜 못하냐 강요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히틀러가 아리안족인 게르만족만 남기고 유대인, 집시, 장애인들을 홀로코스트에서 얼마나 비인간적인 살상을 했어요? 당시 독일인들도 침묵으로 동조를 했고요.”

“그 말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일반사람들의 성향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저 놈이 잘산다고 해서 내도 똑같이 잘 먹고 잘살아야한다고 왜 생각을 해? 그러고 돈 없다 소리한다고. 그건 아니 다는 거지.”

“근데 사실 그런 사람도 있는 반면에 이건 어때요? 예를 들면 똑같이 H사 공장에서 일하는데 앞바퀴노동자는 정규직이라 보수를 1억을 받아요. 뒤쪽 바퀴를 끼우는 노동자는 비정규직이여서 겨우 월160만 원 정도 받는다면?”

“정규직이 너무 많이 받아가서 비정규직이 생긴 거야. 정규직을 없애야지.

“정규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정규직노조의 이익만 찾는 그 사람들이 일부가 있어서 그 사람들의 권익만 내세우고 심지어 비정규직은 노조에 가입도 안 시켜주잖아요.”

“홍이 하는 얘기가 그거 아냐? 강경노조 없애야 한다고. 홍이 한 얘기가 맞는 얘기야.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하면 안 돼. 연봉1억씩 받는데 무슨 파업을 해? 그러고 수당 더 올려 달래. 집단 이기주의가 우리나라는 너무 커. 딴 세대가 죽는 건 아무 상관 안 해.”

“그건 문제가 분명히 있죠. 그런 구조는 바뀌어야죠. 대기업에 1차밴드, 2차밴드 나눠지고, 1차 밴드에 하청이 있고 2차 밴드에 또 하청이 있고, 하청에 또 하청 그 하청에 또 영세하청업체...이러면서 대기업에서는 이익규모가 아주 작은 것만 중소 업체에 넘겨주는데, 그 걸 받은 업체는 거기서 또 마진을 남겨먹고 밑으로 넘기고요. 더 싼 임금으로 부리는 하청에서 하청으로 넘겨주고 단계단계 거치면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제 값을 못 받는 그런 거에 대해서는 충분히 개선을 해야죠. 그니까 싸잡아서 정규직 비정규직 이분화 시킬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서 개선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근데 선배 직업의 특성상 중견기업이상 대기업 같은 큰 업체 오너들을 상대하면서 느낀 점이 있어요?”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어떤 면에서요?”

“저렇게 생각을 하고 사니까 저만큼 재산이 생겼구나하고 생각을 해 보통사람들이 아니야.”

“재벌 3세들은 완전 생각이 없고요?”

“그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불합리하거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없었어요?”

“그런 것들보다는 오너와 노동자의 차이는 직원들은 내만큼 고민을 안 하다는 거야. 자기만큼 고민을 안 하는 거지, 결국은 자기가 고민을 제일 많이 한다는 거야. 직원들이 잘 때 자기는 일어나서 고민하고 앉아있다니까.”

“근데 그런 쪽으로는 접근안하지요? 예를 들면 개인적인 자기 철학이라든가 하는 사담 같은 거 나누는 거요. 워낙 비즈니스로만 만나니까요. 더구나 증권사는 거의 을의 입장이 많고요.”

“개인적인 철학은 얘기할게 없는 게 노는 놈이 가난한건 당연하거 아냐? 부지런한 놈이 가난한건 개선해야해. 근데 게으른 놈이 가난하게 사는 걸 그걸 왜 고쳐?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지. 내가 얘기 했잖아 나머지 20프로. 너의 생각과 다른 게 내가 아까 얘기했지. 인간은 뭐야? 논리적이거나 비논리적인 종교를 갖고 있는 동물이야. 너 동물의 세계를 한번 봐봐. 진짜 삐구리 같은 동물들이 있어. 평생 삐구리처럼 살다 죽어. 그거도 한 번 못하고 죽어.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야. 인간의 존엄성이란 말을 갖다가 붙이는 바람에 일이 복잡하게 된 거야, 지금. 그냥 최저 생계비로 밥 먹고 살게 해주면 되는 거야. 기본소득은 무슨! 그냥 동물의 세계에서도 밥만 먹고 살다가 죽어. 동물의 세계에서는 좀 있다 바로 죽어버려. 그렇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도움을 준거라니까. 딸리면 그냥 딸린 대로 사는 거야. 왜 자기 머리가 모자란 걸 탓 안 해?”

“선배가 말한 삐구리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아감벤이 말한 호모사케르도 안는 게 진정한 정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루소도 사회계약론에서 비슷한 개념을 얘기 했고요. 일단 인구수가 좀 많아지게 하고 노인복지와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죠.”

“인구수는 안 많아도 돼. 그건 잘 못 생각한 거야. 틀린 산수야. 한명이 노인 20명분을 벌면 되잖아. 20배를 벌면 되잖아. 고부가가치 산업을 해야 한다고 이 사람아.”

“너무 좋은 얘기지만 너무 이상적이죠. 수익 잘나는 공기업을 지난 십년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많은 부분을 민영화 시키고, 사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공기업 흑자는 올해도 어마어마하잖아요. 정치가 근본적인 역할만 잘해주고 구조적인 장치도 제대로 만들고 잘했으면, 지금 메르켈의 독일처럼은 대한민국도 살았죠. 지금은 바보들이라서 5프로 정도밖에 영업이익을 못 내는 건 아니고요.”

“아무튼 지금 고부가 가치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맨날 죽겠다 하면서 7프로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난리가 나잖아요. 0.5~0,1 많이 떨어지면. 근데 그런 확장기도 있지만 계속 고성장을 할 수는 없어요. 재화는 계속 넘쳐나지만 소화하는 인구수가 한정이 되어있는데 그리고 수용할 수 있는 산업도 한정이 되어있고요.”

걱정하지마세요. 인구가 다 줄어요. 할배들 다 돌아가셔요. 우리가 인구 오천 만 명이 꼭 유지되어야할 이유가 어딨어? 뭐하게? 근본을 생각하라니까. 한사람이 얼마를 번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자꾸 생각을 하면 안 돼. 한 사람이 세 배를 벌면 되잖아. 그거를 위해서 국가가 해야 하는 작업들이 많다니까. 그래서 기초산업이나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워서 전체 파이를 키워서 나눠먹자고 하는 거 아냐? 그래 쓰잘데 없이 쌀농사나 짓지 말고.”

“잠깐 에너지산업과 먹거리는 특히 주식은 국가가 지원을 해서 철처히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됐다. 핀란드 가서 소고기 먹어봤어? 스웨덴은 소를 안 키워. 개네는 다른 거 수입해서 먹고 살지. 생선이랑 소도 싼데서 수입해서 먹고살고. 청정구역에서 키운 소만 수입을 한다니까.”

“그러면 글로벌 농업회사에서 어느 날 단가를 확 높이면 어떻게 돼요? 수입에만 의존해서 농지는 다 없어졌는데요. 공장에서 당장 막 찍어 낼 수 없는 식량은 환경과 세월이 필요한데, 더군다나 글로벌 농업회사는 대개 미국 등 최강대국이라 협상에서도 늘 울며 겨자 먹기로 불합리를 다 떠안잖아요. 기본적으로.”

“소 안 먹어도 살아요.”

“그거 말고 쌀은요? 밀가루 값도 높이고.”

“쌀이 왜 높아지지? 쌀 생산하는데 버글버글 해.”

“아니 어느 국가가 항상 쌀만 고정해서 생산해요? 그 나라도 부가가치 산업을 안 하고 계속 가난만 하라는 법이 있어요? 그리고 가난한 국가일수록 사실 글로벌 기업이 이미 다 접수했거나 정부 뒤에서 조정하며 실질 운영 주체잖아요. 제 3국가 농장들 주인이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 정도 조절할 정도는 된다. 전 세계에서. 걱정 안 해도 돼. 말도 안 되는 얘기하는 거야. 경쟁력 없는 한우. 소한마리가 차 한 대 값되는 그런 나라가 어딨어? 그런 소를 왜 키우지? 미쳤지. 그런 소를 왜 키워?”

“소 대신 콩이나 두부를 먹으면 그만이고 생존을 위협하는 쌀과 밀가루등 주식에 대해서 얘기 하는 거예요.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도 마찬가지고.”

 

 

 

 

 

조르바 아저씨를 도와 파주 출판단지의 출판사 창고에서 일을 거드는 지영은 수요일 저녁이면 퇴근해서 원주 치악산 밑의 작업실에서 나머지 나흘을 보낸다. 수요일 저녁 파주에서 나와 오랜만에 신논현역 근처에서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가진 지영은 다음날 새벽 일찍 청량리에서 원주행기차를 타기위해 전철을 탔다. 경의중앙선으로 갈아타는 왕십리역에서 청량리 행 전철을 타기위해 오르막 계단을 걷고 있었다. 바로 그때 10미터 위쪽을 힘겹게 걷고 있는 어느 중년여인이 지영의 눈에 들어왔다. 한쪽 엉덩이가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고 다리는 약간 절고 있었다. 중년여인은 등산복 차림이었고 등에 멘 등산가방 안에는 둘둘 말린 태극기와 약간 펼쳐진 성조기가 무심히 꽂혀있었다. 계단을 다 올라와 전철을 기다리며 지영의 바로 옆에 서있는 중년여인은 한참을 서있어도 열차가 안 오자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한 기색으로 왔다갔다를 반복했다. 어디선가 걸려오는 전화를 계속 받으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열차가 오지 않자 중년여인은 지영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어찌 15분이 넘게 기다려도 열차가 올 생각을 안 하네요.”

“네, 경의중앙선 열차는 좀 뜸하게 와요. 그런데 어디 가시나 봐요? 가방에 성조기랑 태극기가 꽂여 있네요.”

“네, 청량리 역에서 경남으로 집회를 가는 버스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 저 때문에 출발을 못하고 있어요. 교회에서 연합을 해서 단체로 가요. 이번 4.27남북 정상회담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두고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이 손잡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웃으면서 가볍게 왔다 갔다 하는 쇼를 보고 있으니 이 나라가 걱정 되서 집에만 있을 수가 있어요? 죄 없는 우리 박근혜 대통령은 불쌍하게 감옥에서 저러고 있지. 역사가 나중에 꼭 제대로 심판할 거예요. 그래서 경남에 가서 집회라도 참석하려고요. 예전엔 하루 일당이 육칠 만원은 받았는데 요즘은 삼사만원 밖에 못 받아요. 점심도 주고요. 학생이신가? 학생도 집회참석 하러 나와요. 오늘도 젊은 사람도 많이 가요. 교회도 안다니시면 나오시고요, 우리 교회는 영등포에 있어요.” 중년 여인은 서둘러 등산가방을 들추더니 약간 구겨진 교회예배 전단지를 건넸다. 지영은 중년여인이 안타깝고 안쓰럽기도 해서 그냥 전단지를 묵묵히 받았다. 열차가 곧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시 전화가 걸려오자 중년여인은 약간 거리를 두고 싶은지 십 미터쯤 걸음을 옮겨 이제 열차가 곧 들어온다며 연신 죄송하다고 허리를 굽혔다.    

 

 

 

 

8월 중순의 햇살이 눈부시게 따갑다. 지영은 원주 치악산 밑 부곡리에 위치한 작업실의 창을 열고 가까이 손에 잡힐 듯 우뚝 솟은 초록의 산들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응시를 하니 만 가지 종류의 초록의 향연이 느껴졌다. 산 밑에 터를 잡은 작업실은 여름에 특히 좋다. 집에서 나와 오 분 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치악산 향로봉 쪽 입구가 나온다. 입구부터 온갖 앙증맞은 보라색 달개비 꽃들이 무릎높이에서 허리까지 지천으로 널려있고 분홍빛 물봉선화도 여기저기서 지루하지 않게 반겨준다. 산죽이 널려있는 입구를 조금 걸어가면 부곡폭포가 0.6km나 이어지는데 물이 얼마나 깨끗하고 시원한지 맑은 계곡물 소리를 듣노라면 매일 신선이 된 기분이다. 1시간 정도 계곡이 끝나는 데 까지 산책을 하는 지영은 특히 생강나무를 좋아한다. 다양한 나무들의 싱그러운 자태를 감상하며 생강나무 가지를 조금 꺾어 맛을 보았다. 달콤하면서 쌉쌀하다.

잠시 앉아서 물소리 오래 감상을 하려고 계곡의 넓은 바위에 앉았다. 멀지않은 곳 바위 틈새로 핀 커다란 두 개의 원추리 꽃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내려오는 길에는 숲의 향기에 취해서 발걸음은 더욱 가볍고 푹신한 흙은 지영의 마음까지 보드랍게 만져준다. 앙증맞은 길동무인 갓버섯과 계란버섯도 수줍게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어느새 집 앞 입구에 다다르니 멀리 산들의 들쑥날쑥한 능선들이 이어진다. 살짝 가늘게 뜬 눈으로 오래 바라보니 사람의 희노애락 주기율표를 말해주는 것 같이 오르락내리락 정신이 없으나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지영은 작업실로 사뿐히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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