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계보 서론부터 1장의 중간 부분까지 발제를 하는 것은 저에겐 제법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읽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는 도덕의 계보 자체가 그 이전의 작품들을 망라하여 정리한 것이기 때문기도 하고  앞서 진행하고 읽었던 선악의 저편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발제를 하며 정리를 하고 요약을 하려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읽고나서 어렴풋이 아는 것을 명확하게 만드는 작업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허나 어려운만큼 남는 것이 저 자신에게도 많은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니체는 도덕의 계보를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왜 이 글을 썼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발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에 대한 개인적인 답은 니체는 삶에 대한 긍정, 힘과 삶에의 의지를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사유를 펼쳐나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인지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다.

 세미나를 해오면서 느끼건데, 개인적으로는 니체가 말한 내용들을 가지고 "어떤 것은 이러하고 어떤 것은 저러하다."하며 정의를 내리는 것은 니체가 원하는 바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는 접근하기가 힘든 것 같았습니다. 정의의 용도로 니체의 생각을 어떤 사례에 주입했을 때 그 사례를 온전히 덮지 못하고 빈틈이 있고 논란이 될만한 부분이 계속 해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물론 저만 그랬을지도;;) 때로는 모순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온전히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던가, 어느 부분은 이해되지만 어떤 면에서는 또 들어맞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 덕에훨씬 입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고 다른 사유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평을 열어줄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니체가 이야기를 서술할 때 어떤 한 사례, 그런 사례들에 각각 다 들어맞는 그런 지엽적인 진리를 만든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좀 더 근원적이면서도 그렇기에 폭 넓은 사유. 어떠한 원동력. 긍정적인 삶과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 힘에의 의지, 창조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그런 것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왜 니체는 그러한 것을 이야기했을까요? 왜 그는 스승같은 바그너와 반목하고 어떠한 판단의 기준들에 반대하며 자기 자신의 긍정과 힘에의 의지 그리고 스스로의 입법자를 이야기했을까요? 

 처음에는 유대인과 성직자들의 힘을 증오의 힘이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증오가 힘이 될 수 있는거지 싶었지요. 그러나 세미나에서 주고 받는 이야기와 다시금 책을 살펴본 것을 통해서 제가 나름의 답을 찾아낸 것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상대방의 우월함, 신이 준 선물같은 재능, 스스로 빛나는 그 고귀함에 대하여 그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질투, 증오. 그들은 그것을 통하여 삶을 이끌어나가는 것. (물론 이에 대하여 이견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단순히 니체가 논하는 텍스트를 분석한다는 하에…)즉, 대상이 있어야만 이끌어낼 수 있는 반동적인 힘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힘을 밀고나가서 세상을 구성하고 무력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평등한 세상, 고통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평등은 언제나 규율과 기준이 필요했고 그것의 형태가 종교든 정치든 간에 그들은 반동적인 힘으로 만드는 평등을 기반으로 세상을 구성해 나가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성직자들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런 반동적인 힘 또는 외부에서 정해주는 기준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 모든 것들을 통틀어서 말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반동적인 힘으로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그 대상이 항구적이고 영구적이면 무너지지 않겠지만, 그 목적이 사라져버리면 혼란이 오게되기 마련이며, 다른 것으로 또 대체하여 그 증오를 옮겨가며 그 기준을 유지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끝끝내 찾지 못하면 기대는 힘에 익숙해져 있는 스스로는 자멸하게 될 것임이 자명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니체는 그것에 대해 그렇게 경고하고 비판하며 자기 자신의 긍정적인 의지를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우리의 삶 속에 도구로, 우리의 사유의 구성으로 녹일 수가 있을까? 그것을 우리의 삶 본연의 힘으로 만들 수 있을까? 뭐 이러저러한 의문들을 남겨두며 마무리 하겠습니다. 엉성하고 의식의 흐름처럼 두서없는 후기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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