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선악의 저편에서 읽혀져가는 "여성"에 대해서 읽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다. 특히 생물학적인 면에서 보면 볼 수록 더욱더 기가 차고 코가 차는 니체의 말들은 내가 다 부끄러울 정도로 낯뜨겁지만, 그런 식으로 책을 읽기만 하면 내가 얻는 것은 분노일 뿐이지, 배움이 아니다. 일단 내가 니체를 읽었으면, 니체를 왜 읽어야하는지, 읽었으면 무언가는 얻어가야한다. 그렇다면 나의 분노를 조금은 눌러둘 필요가 있어보인다.

 선악의 저편,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그런 옳고 그름을 떠나야한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면 이 니체의 글에서 우리가 즉각적으로 반감을 가지는 것들을 일단은 다 비틀어 놓아야한다. 다른 방식으로 사유를 해야만 선악의 저편을 이해할 수 있다.

 이번 글을 쓰는 이유는 제 7장 우리의 덕에 나오는 니체의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바이다. 이미 니체가 말했듯 "여성은 진리이다."라고 했을 때, 여기서의 여성은 생물학적인 여성(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은 아니지만, 거기에서 비유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니체가 말하는 여성들의 행동들과 철학자에 대한 언급, 그리고 약자와 강자에 대한 이야기등을 섞어서 사유해보자

 

"여성은 자립하기를 원한다." p. 222

 

..그리고 그 때문에 "여성 자체"를 남성들은 계몽시키기 시작한다. 라는 의미는 "평범함의 예수회 교의" p.175 와 연결시켜보아도 좋을 것 같다. 특이성을 평범화하는 작업, 배려와 선의라는 이름 앞에서 행해지는 것들. 그러나 배려하는 남성 자체는 인식하지 못하는 것. 그런 위험한 배려 속에서 여성의 남성화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p.223의 "여성이 이와 같이 학문적으로 되려한다면…"과 "계몽한다는 것은 남성의 일이었고 남성의 재능…"이 위 계몽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뒷받침한다.

 

"여성에게는 부끄러워해야할 많은 이유가 있다 … 남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장 잘 억제되고 제어되어왔다." p.222

 

이 부분은 선악의 저편을 통해 기존 가치판단을 무너뜨리고 생각한다는 일념하에 노력했지만, 예시들의 부분이 납득이 아직도 안가 반포기한 부분이다. 그러나 일단은 "학교 선생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예시들이 기존의 남성이나 유럽사회의 전반적인 가치판단에 반하는 존재들이고, 무절제와 불손함이라는 것 자체가 기존의 척도에 반하는 것들을 의미하는 것 같으니, 그런 식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남성에 대한 두려움은 아래 "여성은 남성을 두려워해야한다"에 서술했다.

 

"자신을 꾸미는 것이 영원히 여성적인 것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p. 223

"여성은 남성을 두려워 해야한다." p.229와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두려움에 대한 것은 아래에 나와 있으나, 요약하자면 철학자의 예민함을 이야기한다고 쳤을 때, 이 위장은 살아남기 위한 위장술로도 생각될 수 있을 것 같다. 흥선대원군이 종친들이나 세도가의 눈을 피하기 위해 팔푼이와 한량을 연기하는 것도, 괴철이 한신의 죽음 이후 미치광이로 떠나는 것도 살고자 하기 위해 위장한 것이다. 물론 이런 예를 니체는 격렬하게 거절할 것 같은 느낌이 다분하니,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면, 자연의 동물들은 보호색을 띤다. 주변의 자신을 위협하는 천적들을 피하기 위함이다. 그런 동물들의 예민한 감각?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여성의 꾸밈, 거짓말, 가상은 이러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성에게 진리가 무슨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p.223

이 말은 "여성이 진리다"에 이어지는 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바로 대부분은 학자들이다. 그러니 굳이 배우는 법, 고통을 감내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 그리고 고통의 여정에서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은 이미 진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니체가 말하는 여성이 철학자를 의미한다면, 이미 그 과정을, 진리를 지니고 있는 여성은 기존 남성들의 길, 학자들의 길인 어떤 목표점, 획득해야할 진리의 추구 이런 것은 필요 없지 않을까.

 

234절 여성과 요리 p.225

 

 요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음식을 먹는 문제는 신체를 감각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결코 요리를 학문적으로 접근해서는 우리의 신체를 접근하기 힘들다. 물론 우리는 네이버와 백종원의 레시피를 봐야만 요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따지고보면 학문적으로 요리를 하고 있지만, 니체는 스마트폰도 없거니와 요리책을 펼쳐들고 정신없이 따라가며 요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저 사람은 학자적이다 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니체의 요리는 적어도 마냥 레시피를 따라가는 요리가 아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의 요리도, 좋은 음식의 요리도 아니다. 그것은 신체의 탐험이자, 감각들의 교육인 것이다. 재료들 하나하나를 알고 재료들의 관계들과 관계들을 통해서 나오는 재료들의 효능등을 따져가며 나의 신체가 어느 상태에, 어느 시간대에, 어느 장소에서 그것이 필요한지를 알아가는 세심하고 세밀한 탐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를 생각하면서 하면 최대의 생리학적 사실들을 발견하고 의술도 획득했어야 할 것이다!라며 열심이 이죽대며 비꼬는 것이 아닌가. 니체가 말하는 여성의 요리는, 철학자의 예민함과 세심함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 그리고 철학자의 더듬거리며 감각해나가는 배움 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터무니 없는 짓을 하더라도 크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 아니면 결코 해서는 안된다." p.225

 

"그들은 사유 자체를… 결코 어떤 가벼운 것이나 신적인 것, 춤이나 들뜬 기분에 가까운 것이라 느끼지 않는다." p.192 에서 처럼 철학자들은 어떤 사유를 할 때, 고통만이 오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더듬거리며 자신이 알고 있지 않은 감각들을 감각해 나가면서 오는 공포감과 동시에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수영을 하면서 느껴보는 감각들은 낯선 것이기에 우리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신체가 그 감각을 찾아가면서 우리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은 이야기로 철학자의 길에는 고통과 즐거움은 동반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철학의 길은 미리 알 수 없는 것을 사유하는 것이기에 끝이라는 것을 상정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큰 즐거움은 결과물이 아니다. 언제나 과정 속에서 느껴지는 것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점원으로서의 여성", "여성이 퇴보해하는 것이다."  p.229

 

 왜 니체는 여성의 경제권을 얻어가는 과정에 대하여 진보하고 있는 것이아니라 퇴보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일까?

그 맥락은 니체가 노동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뻗어나가야 할 것이다. 니체가 노동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노동자의 시대인 산업시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지, 그리고 그 산업시대에서 노동자가 되어 경제적 권리를 얻어가는 과정이 니체에게는, 선악의 저편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생각되어야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추후 수정}

 

"여성은 남성을 두려워 해야한다." p.229 

 

 여기서 니체는 왜 여성은 남성을 두려워 해야한다 라고 생각했을까? 여성은 남성을 모셔야하는 시종, 시녀, 종복이라서? 사실 글자 그대로만 바라보면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고, 문맥상으로 바라봐도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이 선악의 저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뒤집어보자. 두려워한다. 두려워하는 것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약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니체는 약자와 강자에 대한 프레임을 비틀어놓은 사람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약자와 니체가 생각하는 약자는 다른 개념이다. 일단, 이 7장의 문맥상 여성과 가장 가까운 것 또는 여성은 철학자를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철학자에 대해서 니체는 강자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니체의 강자라는 것은 사회의 특이점으로 낭중지추이며 눈에 잘 띠는 존재로, 언제나 약자(예수회같은 사람들이나 학자의 부류들)에게 호시탐탐 평이해지게 만들어질 위협을 받고있는 강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위협에 대해서 항상 예민해야하고 신경이 바짝바짝 곤두서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니체의 우리의 덕 7장에서 남성은 여성과 대조적으로 주로 학자의 모습등 약자의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을 두려워 해야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여성은 진리다. 비약컨데 여성은 철학자이다. 반면, 남성은 학자적이거나 학자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남성은 여성의 특이성을 제거하여 평범한 존재로 만들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예민한 감각으로 남성들의, 약자의 의도를 피해야한다. 고로 여성은 남성은 두려워 해야한다. 이것을 환원해보면 니체적 강자는 니체적 약자를 두려워해야한다. 살아남기 위하여.

 

"남성"과 유럽적 "남성다움"이 앓고 있는 모든 어리석음을 흉내내게 한다.  p.230

같은 맥락으로 남성의 학문적인 길 등등…

 

<뒷 말>

 

씹어 삼키기 어려운 글이었고 힘들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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