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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영원회귀] 니체와 악순환 8장,9장 (발제)

정승호 2018.12.19 21:25 조회 수 : 82

수유너머 104 <인사원-니체의 철학과 영원회귀의 사유-이진경 선생님>

 

니체와 악순환 8장,9장

발제:정승호

 

8장_병자의 가장 아름다운 발명

 

예술가는 강한 혈통에 속한다. 우리에겐 해롭고 병적인 것이 예술가에겐 본성이 된다.

그러나 정확하게 빈곤이 모든 암시를 넘어서 이상한 이해능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자도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행복한 시기들을 속죄할 필요가 없다. 예술가는 충분히 풍요롭다. 그는 빈곤에 빠지지 않은채 낭비를 할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천재`를 신경증의 한 형태로 취급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적인 암시의 힘 또한 그렇게 취급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예술가들은 히스테리 증세의 아가씨들과 아주 흡사하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을 비판하기 위한 말이고, `예술가`를 비판하기 위한 말은 아니다.

 

왜 병자, 광인,기형이 예외적 사례들과 다른, 불모성의 사례들인지를 우리는 정말 모른다. 또한 왜 이 예외적 사례들이 정상적인, 평범할 정도로 정상적인 일반 대중에게 자신의 평범성에서 일탈할 순간을 체험하게 해준다는 구실로 다산적 인지를 우리는 정말로 모른다. 다산성과

불모성이라는 용어가, 만약에 지금 문제가 되는 사례들과만 관련이 있다면, 그 용어는 우용성의 기준으로 남고, 따라서 완전히 무리적 정신에 의해 제도화된다. 그 결과 니체는 여기서 다시 찬성과 반대를 논한다. 본의 아니게 자기 자신에게는 반대하고 집단에게는 찬성하면서 니체가 다산적 개인들을 원한다면,(종의,따라서 집단의)실존을 정당화 하는 것은 오직 이 개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는 다산성을 믿고 있는 것이고, 이 용어에 의해 타자에게(즉 종의 대리인에게) 유용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실존의 풍요로움이 무엇인지를 분간하는 해석이 다시 필요해진다. 실존의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교환할 수 없는 따라서 값이 없는 풍요로 남는다.

 

종말을 향할수록, 예술가와 범죄자의 유사성이라는 테마가 점차 빈번하게 등장한다. 시뮬라르크의 창조는 공격적이고 비사회적인 힘들의 방향을 틀어서 자신의 재현, 표상을 위해 사용된다는 생각,그것이 `이 사람을 보라`에서 특이한 문장으로 만들어 낸다.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승화`의 관념이 아니라, 니체가 말하는대로, 소심함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승화의 동의하는 자에대한 비난이다. 니체에게 있어서 예술이 행위를 보상할수도, 충동을 대체 할수도 없다는 충동을 대체할수도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만약 예술이 폭력과 비탄을, 기쁨과 그 빈곤화를 재현한다고 해도, 예술은 강자의 완전무결함을 훼손하기 위한 구실이 되어선 안되는 것도 분명하다.

 

광기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동일성의 원리의 폐지로부터 출발하는 하나의 작용일 뿐이다. 니체는 이제부터 이 동일성 원리의 폐지를 선언의 영역으로 도입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유의 모든 메커니즘들을 사기의 수법들로 되돌린다. 그리고 사기는 언어의 탓이므로, 그것의 결

과물인 개인적 행동은 언저적 환유를 재생산할뿐이다. 개인과 그 주위세계 사이의 관계에서

유발된 무질서는 `우연적`비 연속성과 일상적 기호의 코드의 혼란의 성질을 동시에 갖는다.

이 양자는 무언가를 위한 가치에 의해서만 비로소 이해되는 현실의 편차이다.

 

9장_토리노의 도취

 

부드럽고 부조리한 사물들 주위에서 생활하는 것. 현실과는 무관한 곳에 가는 것. 반은 예술가이고 반은 새인 형이상학자. 현실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안 한다. 현실을 받아드리는 것도,

뛰어난 무용수처럼 가끔 오직 발끝으로만 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환희의 태양의 어떤 빛에라도 항상 애무를 받는 것.개방적이고 고뇌에 의해서 격리를 받는 것. 고뇌는 운좋은 인간의 양식이므로.

 

니체가 활동했던 최후의 시기,특히 `명석했던`마지막 해를 살펴보면,이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그것이 그의 20년 경력의 종착점이었다, 나락이었다`` 라고. 혹은 이러한 검증을 배재하고, 거기에 통속적인 만큼 무모한 시점을 대립 시킬 수 있다. 즉 20년동안 서서히 조용하게 준비된 것으로, 니체 자신에 의해 찬양되고, 연기되고, 주석이 붙여진 특이한 절정이라는 시점. 하지만 나락과 절정은 여기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1888년 말부터 1889년초 사이에 그가 갑자기 광기에 휩싸였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의 가까운 친구들도 거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광기가 분명히 `차라투스트라 이렇게 말했다`의 시점부터, 확실하게는 1887년 말부터 니체를 찾아왔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니체가 영원회귀에 대한 그의 사유를 말했을 때, 대화의 상대방은 그것이 고대의 체계들로부터 차용된 표상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니체는 질스-마리아에서의 자신의 고유한 체험을 이 표상으로 포장했기 때문에 이렇게 친구들이 느낀 기이한 인상을 유발한 것이다. 오버베크는

그것이 단순한 현혹인지 아니면 착락의 사유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 두통을 괴로워하며 자신에게 말하는 니체의 상태를 강조하고, 니체의 속삭이는 목소리의 불안한 어조를 강조하고, 게다가 영원회귀의 그리스적 개념들에 대해 말하기위해 니체가 사용했을 `객관적`어조와 대비되는 화려한 어법을 강조한다.

 

니체 자신도 1888년도 초에 도이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겪었고, 의지했고 그리고 또 손에 넣어서 그것들로부터 멀어지고 떨어지기 위해서는 일종의 폭력이 필요하다네. 내 내부에서 일어나는 요동은 경이적이었네. 그것은 말하자면 멀리서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라네. 이는 독일의 비평가들이 내게 부여한 희한한 수식어들(별난/탈중심적인, `병리학적`,`정신의학적`따위들)로부터 얻은 결론이지. 이 사람들은 내 중심에 대해서, 내 삶이 헌신하는 커다란 열정에 대해서 어떤 개념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내가 지금까지 내 자신의 중심 밖에 있었고, 정말로 `탈중심적인/별난` 곳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도대체 어디인지를 전혀 알지 못할거야. 하지만 내 주체에 대해, 내 인간관계에 대해 그들이 나를 오해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나! 최악은 사람들이 아무짓도 안하는 거라네(그것은 내가 나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들거야)

 

이 편지(도이센에서 쓴)의 문장을 회상하면서, 오버베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니체 자신이 그의 `별난 성격/탈중심성`을 고백하는 것, 그리고 그 별난 성격/탈중심성에는 자신의 판단도 접근 할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그것만이 유일하게 고려할 사안이다. 그리고 자기자신의 인식에 대한 모든 판단이 갖는 논증의 힘을 이판단도 어쨌든 갖는다. 즉 자기의 인식엔 어떤 증거도 없으므로 그 자체가 최고의 증거라는 논증의 힘. 최소한 니체는 자신의 고유한 중심을 발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주 정당하게 증명했다.

 

``사상은 정서들의 유희와 투쟁에 관한 기호이다. 그것은 항상 그것의 숨겨진 뿌리들과 연결되어 있다``

강도,자극,음조, 이런 것들이 사유이다. 사유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할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고 사유가 무언가에 적용된다면, 다른강도들,다른 자극들, 다른 음조들이 생겨난다.

 

카오스, 즉 비일관성/비논리가 야기한 유혹이 니체안에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현전했더라면,니체가 그 유혹을 그렇게 충격적인 방법으로 백일하에 드러내지 않았다면, 붕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병의 예감, 파토스의 시간과 자신의 신체에 주어진 시가 사이의 불균형의 예감은 일종의 교환을, 일종의 타협을 초래했다. 이 신체(이도구, 이 육체)는 파토스의 대가였다.

 

사건이, 행위가, 표면적 결단이, 세계 전체가 ,태곳적부터 언어의 영역에서 볼수 있었던 양상과는 너무나 다른 양상을 가진다는 것,그것이 항상 니체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지금 니체는 언어의 이쪽 또는 저쪽에서 세계를 본다. 그것은 절대적 침묵의 영역인가, 또는 반대로 절대적 언어의 영역인가? 일단 작인이 더 이상 아무것도 자기자신에게로 환원시키지 않자, 오히려 자신이 모든 사물들로 환원되어,모든 사물들이 동일한 신속함으로 각각의 `자기 자신들`을 지시하게 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니체가 (이전의 단편안에서)말한 시간의 전도인가. ``우리는 외부세계를 그것이 우리에게 끼치는 작용의 원인으로 믿고 있지만, 사실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작용을 우리가 비로소 외부세계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리 맞은편에 그렇게 서 있는 세계가 이제 우리에게 거꾸로 영향을 끼치는 우리의 작품인 것이다. 세계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시간은 너무나 짧다.``

 

토리노의 도취는, 현재 체험된 맥락안에서, 과거를 형성하는 모든 것의 잔재들을 일종의 해석적 자유 안에서 유지하도록 니체를 이끈다. 매일매일의 사실만을 받아들이기 위해 일상이 멀리 하는 것, 그것이 돌연 일상안으로 침입한다. 과거의 지평이 가까워져서 일상의 차원과 융합되어, 과거의 일상 안으로 침입한다. 과거의 지평이 가까워져서 일상의 차원과 융합되어, 과거와 일상은 같은 수준이 된다. 그 대신에 일상의 사물들은 갑자기 멀어진다. 어제는 오늘이 되고, 그제는 이튿날 위로 넘쳐 흐른다.

 

도취는 `즐거운 해체`이므로 그것은 니체에게 있어 휠덜린의 명상적 정신이상 만큼 길게 지속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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