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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학기 인문사회과학연구원 과정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읽기

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제6강 발제_선완규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1. 작가의 꿈을 이루어가는 이야기

 

1909년부터 1912년까지 짧은 시간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전체적인 구상과 집필을 마친(‘마음의 불연속성’이라는 전체 제목 아래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시간」으로 구성된) 프루스트는 1912년 출판사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주인공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기 위해 예전에 보냈던 방들을 환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작품을 첫머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출판사들은 대부분 출판을 거절했고(앙드레 지드가 관여하던 갈리마르 출판사를 포함하여) 출판사를 찾는데 실패한 프루스트에게 1913년 신생 출판사였던 그라세 출판사가 자비출판을 조건으로 출판을 수락하면서 작품은 빛을 보게 된다. 그러나 800여 쪽(타이핑 분량은 712쪽)이나 되는 1편의 분량을 한 권을 묶을 수 없다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작품 권수는 처음 계획했던 두 권에서ㅏ 세 권으로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1913년 11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젖ㄴ체 제목 아래 1편 「스완네 집 쪽으로」가 출판되었을 때 예고되었던 작품은 2편 「게르망트 쪽」과 2편 「되찾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 발발로 출판이 지연되면서 「게르망트 쪽」에 포함될 예정이었던 부분과 「되찾은 시간」의 한 부분으로 계획되었던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발전시키고 알레르틴에 관 부분을 추가 집필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읽는 「꽃피는 소녀들의 그늘에서」(1919년)가 탄생한다.

이처럼 「꽃피는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뒤늦게 빛을 본 작품에 속하지만 작품 제목만은 이미 오래전에 구상된 것처럼 보인다. 1908년 여름 노르망디의 카부르 해변에서 프루스트의 친구인 마르셀 플랑트비뉴(Marcel Plantevignes)는 프루스트가 구상하는 작품의 한 제목으로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쓸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조금은 양재사들이 읽는 연재소설’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시적인 제목이라는 플랑트비뉴의 의견에 프루스트도 공감했는지 되찾은 시간애서 한 부의 이름으로 쓰고 계획했을 정도였다. 꽃과 그늘의 대조를 함축하는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지금은 활짝핀 소녀들이지만 어느 날엔가는 시들고 늙어 망각으로 추락할 존재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중요한 ‘시간’이라는 주제를 드러내며, 더 나아가 밝음과 어두움이라는 명암 대뵈와 시간의 흐름 속에 포착된 덧없는 이미지의 구현이라는 인상파이 미학에도 부합된다는 점에서 가장 시적이고 예술적인 함의가 담긴 제목으로 평가된다. 이오에도 보들레르의 「악의 꽃」(소녀들에서 다섯 번 인용)과 바그너의 「파르시팔」에 나오는 ‘꽃의 소녀들’, 네르발의 「불의 소녀들」에 대한 기억이 문화적 지시물로 작용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찾아서가 ‘마르셀, 작가가 되다’라는 이야기로 압축된다면, 특히 「꽃피는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이런 소명 의식을 고취하는 세 예술가 중 작가인 베르고트와 화가인 엘스티르를 드러냄으로써 작가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1부 「스완 부인의 주변에서」에서 화자는 베르고트라는 문학적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작가의 삶과 작품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면서 무엇을 쓸 것인가?를 성찰하고, 2부에서는 엘스티르라는 한 인상파 화가와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모색한다. 1부 파리의 겨울풍경 2부 발베크의 여름풍경, 1부 소년기의 사랑, 2부 청년기의 사람이 겹치면서 삶에 대한 구체적인 배움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1편 「스완네 집 쪽으로」가 마르셀의 유년 시절 추억과 할아버지 친구였던 스완의 불행한 사랑을 이야기했다면 , 마르셀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질베르트와 알베르틴의 사랑과 베르고트와 엘스트리라는 두 정신적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문학에 대한 꿈이 구체화되어가는 행복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는 출간되자마자(1919년 6월) 같은 해 12월에 ‘공쿠르상’을 받았다고 한다.

 

 

2. 베르고트와 삶의 글쓰기

 

아버지가 노르푸아라는 외교관을 집으로 초대하는 데서 시작한다. 어린 화자는 마르탱빌 종탑을 바라보며, 베르고트의 책을 읽으며, 게르망트 쪽을 산책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아들이 작가가 되겠다는 소망을 담탁지 않게 여겼던 아버지는 외교관이 되어 화려한 삶을 살기를 바라면서 전직 대사였던 노르푸아 후작을 집에 초대한다. 노르푸아는 작가가 되어도 외교간 못지 않은 영성과 부를 누릴 수 있다고 단언하여 아버지를 놀라게 한다. 노르푸아의 이런 발언은 문학을 출세와 명예릐 수간으로 생각하는 지식인들. 작가라는 경력을 단순히 한림원 회원이 되기 위한 수간으로 생각하는 작가군을 표상하는 것으로,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노르푸아의 방문을 계기로 화자의 가족은 작가가 되려는 꿈이 그리 허황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병약한 아들이 사회적인 성공을 성취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바람직한 길이 도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건강 문제로 화자의 극장 출입을 반대했던 부모는 극장 출입을 허용하는 등 작가 수업에 적극 동참한다. 그러나 화자는 라 베르마의 지나치게 절제된 몸짓 앞에서 그 단조로움의 의미가 「페드르」의 신화적 기원에 연유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깊은 환멸에 사로잡힌다.

노르푸아와 라 베르마로 표상되는 예술에 대한 일련의 부정적 이미지와 이로 인한 화자의 환멸은 특히 베르고트라는 인물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베르고트를 스완네 집 만찬에서 처음 대면하면서 ‘온화한 백발 시인을 상상했던 화자 앞에 “젊고 투박하며 키가 작고 다부진 체형에 근시이며 코가 달팽이 껌데기 모양으로 붉은, 검은 더수염 남자’의 출현은 커다란 슬픔을 안겨준다.

 

이처럼 볼품없고 투박한 인간에게서 어떻게 작품이 주었던 그 고귀한 시적 감동을 찾을 수있단 말인가? 그러나 화자는 베르고트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작푸이 주는 감동은 절대적으로 작가의 외형이나 도덕적 자아와는 무관한 창조적 자아의 산물이며, 아무리 초라하고 시시한 삶을 보낸 작가라 할지라도 일단 그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객관적인 성찰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면 예술의 창조적 기쁨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이들은 가장 세련된 환경에서 살고 가장 재치 있는 화술과 가장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갑자기 그들 자신만을 위해 살기를 멈추고 자신의 개성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만들어, 비록 현재의 삶이 사회적으로 또 어떤 점에서는 지적인 면에서조차 초라하다 할지라도 그 삶을 거울에 반영하는 자이다. 천재란 사물을 반영하는 능력에서 나오지 반영된 광경의 내적인 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_「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A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1(3권) 227쪽.

 

프루스트가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작가의 창조적 자아는 그 도덕적 인격이나 겉모습, 즉 사회적 자아와는 다르다는 명제를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베르고트는 이기적이고 천박하며 인색하며 재치도 없는 속물이자만, 자신의 삶을 비우고 투명하게 만들어 그 삶을 작품 속에 반영할 줄하는 위대한 작가다. 이처럼 작가에게서 중요한 것은 내면 깊은 곳에 울리는 목소리이며, 자기만의 못고리를 작품에 반영하기 이해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존재여야 한다.

 

즐거운 구절의 마지막 단어에서는 뭔가 거칠고도 쉰 소리가 났으며, 구슬픈 구절 끝에서는 쇠약하고도 숨이 꺼질 듯한 소리가 났다. 이 ‘거장’의 어린 시절을 알았던 스완은 내게 당시 베르고트나 그의 형제자매들에게서 들었던 격한 즐거움의 외침과 우수에 찬 느린 속삭임이 번갈아 나타나는 이런 일종의 가족적 억양에 대해 말해주었는데 (……) 나는 거기서 나중에 베르고트 가족의 금관악기 같은 발성법과 동등한 음악적 표현을 발견했다._「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A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1(3권) 225~226쪽.

 

프루스트의 창조적 자아론과 다른 서술처럼 보인다. 베르고트 스타일의 특징을 이루는 행복한 숨결 가운데 터져나오는 갑작스러운 이질적인 목소리, 삶의 즐거운 외침. 그와 동시에 삶의 고뇌를 드러내는 그 거칠 쉰 목소리가 바로 ‘베르고트 가족의 금관악기 같은 발성법’에서 연유한다는 화자의 설명은.....베르고트의 스타일에는 순전히 작가 자신의 닫힌 과거 속에서 솟아나는 개인적인 신화가 담겨 있다. 수직적인 차원에서 분출되는 이런 스타일은 문화적인 습득이나 후청적인 배움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작가 자신의 새인적이고 생리적인 가족적인 삶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다.

 

프루스는 베르고트라는 허구 인물을 통해 창조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분리를 주장했을까? 그리고 작가의 스타일이 바로 작가 개인의 개인적인 신화와 연결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프루스트는 문학이 구현하는 진정한 삶과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자아가 구현하는 표면적인 삶을 대립시킨다. 그러나 이 진정한 삶이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서 매 순간 살고 있다면” 프루스트가 꿈꾸는 문학은 우리 몸이 매일 같이 느끼는 감동이나 감각, 욕망, 충동의 표현임을 말해준다.

진실의 순간은 하찮은 기분이나 날씨, 일상적인 소일거리를 통해, 가까운 친구나 연인이 우리 몸에 일으키는 다양한 감각의 파장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지, 거창한 철학적 담론의 추상화와 관념와 작업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베르고트 문학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작가 자신만의 그 거칠고 이질적인 불협화음에 있으며, 이것은 베르고트 개인의 가족적 기원을 통해서만 솟어날 수 있다. 이처럼 작가는 자기가 체험한 삶을 바탕으로 거기에 스토리를 부여하고 수많은 상상의 자이들을 통해 자신을 분산시키고 비개성화하는 자로서, 이런 모순된 역설이 프푸스트의 소설. 이처럼 ‘무엇을 쓸 것인지에 대한 화자의 모색’에 ‘삶을 글쓰기(ecrire la vie)라는 베르고트의 울림이 닿아 있다.

 

※ 이 글은 민음사에 출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에 있는 번역자 김희영 선생님의 작품 해설을 요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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