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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2

minhk 2018.12.10 12:52 조회 수 : 37

첨부파일 : 09권 발제.hwp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갇힌 여인. ~ 103.》 2018. 12. 10 민혁

 

망각.

노르푸아 씨는 독일과의 동맹이 실현되지 않았음이 지적되면 기억이 없다고 하는데, 이는 거짓말이 아니다. 단지 잊어버리고 있던 것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던 것, 남을 모방하거나 주위의 여론에 자극되어 머리에 박힌 것은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자키 클럽 회장의 죽음으로 차기 회장 선거가 있었다. 쇼스피에르의 부인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이 드레퓌스파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게르망트 공작은 회장에 당선되지 못하였다. 야회에 참석한 쇼스피에르 부인의 인사에도 답례하지 않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은 결국에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던 그 야회에 쇼스피에르 부인이 참석한 사실조차 망각하였다. 사교계 모임에서 쇼스피에르 부인을 염두에 둘 정신이 있었겠는가. 그래도 마르셀은 붉은 드레스는 물론 다른 여러 드레스며 구두에 관련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있었다. 정치가들의 망각은 기억의 결핍 탓이다.

 

말투.

회장에 떨어진 그 사건 이후로 게르망트 공작은 ‘분명히’라는 말투를 쓰곤 했는데 수 년이 지난 후에도 드레퓌스 사건이 언급되면 자동적으로 ‘분명히’가 되돌아오곤 했다.

말투와 관련하여, 알베르틴의 ‘정말? 정말 그래?’라고 질문하는 태도는 그녀의 일된 사춘기부터, ‘당신처럼 아름다운 분을 본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당신을 매우 사랑합니다, 나는 무서운 흥분 상태에 놓였습니다’라는 말에 대한 대답인 듯 싶었다. 이렇듯 마르셀은 아주 사소한 말투에서도 드레퓌스라는 사회적 사건과 연결시키거나 또는 한 인간의 과거를 파악하게 할 수 있는 실마리로 삼는다.

반면 쥐피앙의 질녀가 ‘차를 한 턱 낼 테니’라는 말투를 사용하지만 그 말의 주인은 그녀가 아니라 모렐의 것임을 마르셀은 알아차린다. 그녀의 고운 말씨 가운데 그 추함이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알베르틴의 이런 말투, “어머! 난 몰라요, 그 여자를 바라보지도 않았는걸, 하찮은 여자겠지 뭐”를 예전에 그녀가 말한 “누구를 사랑하는지 남의 눈에 보이다니 어리석어요. 나는 반대죠. 아무개가 내 마음에 들자 그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는 체하죠. 그러면 아무도 눈치 못 채거든요.”라는 말투에 비교하면서, 마르셀은 알베르틴이 무죄를 선언하는 고백이 이미 그 말투로 거짓말인 것을 알아차린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가.

여인은 회오리바람 속에 연달아 비치는 광선과 같다. 우리는 여인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여인의 매력에 사로잡혀 우리는 달려가는 것이다. 그녀들 쪽으로, 늘 다른, 늘 우리의 기대를 앞지르는 황금의 방울인 그녀들 쪽으로. 만날 때마다, 여인은 전번과는 어찌나 비슷하지 않은지, 우리가 그녀에게 돌리는 성격의 안정성은 한낱 허구이고, 용어상의 편의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발베크의 그녀는 숫처녀의 얌전함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더욱 대담한 여인인가? 노인들의 머리를 뛰어 넘었던 여인인가, 아니면 “소심하기 짝이 없는” 여인인가? 어쩌면 우리의 탓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녀에게 다정하라고 암시한 결과가 됐는지 모르니까.

빛나는 아가씨들에게 뚜렷한 성격을 지정한다면 더 이상 그녀들은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관심을 잃었을 때에 비로소 활동을 시작하는 지성의 그릇된 판단에 의하여 아가씨들의 성격을 안정된 것으로 규정짓지만, 그 성격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는 못한다.

공상적인 젊은이들의 경우만이 아니다. 쥐피앙의 질녀가 그러했다. 모렐이 깊은 섬세한 정이 있다는 운전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고, 모렐이 샤를뤼스를 사형 집행인처럼 군다는 말을 그대로 들었다. 그렇게해서 그녀는 모렐과 샤를뤼스를 잘 몰라했는데, 다만 나중에는 모렐의 불성실함과 샤를뤼스의 선량함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모렐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다. 처음때의 그녀와 마찬가지로 화자는 날마다 앙드레를 만나고, 알베르틴과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을 명확히 판단할 줄 몰랐다나.

 

갇힌여인.

알베르틴의 매력 속에는, 바닷가를 따라 벌어지던 꽃피는 아가씨들의 건방진 행렬, 해수욕 생활에 있기 마련인 흥분, 사회적인 혼란, 불안스런 허영심, 방황하는 욕망 따위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녀는 새장 속에 어찌나 꼭 갇힌 몸인지, 누구의 욕망도 미치지 못하는, 차후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그녀, 어떤 때는 내 방에 있고, 어떤 때는 제 방에서 데생이나 조각에 열중하고 있는 그녀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발베크 체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두 번째 체류에서 알베르틴의 동아리, 각자의 얼굴에는 장점도 단점도 또렷이 새겨져 있어서 이제 그 싱싱하고 신비로운 미지의 여인들은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녀들에게, 전에 단지 바다를 배경삼아 윤곽을 드러낸 모습에, 윤색이, 응결이, 양감의 증가가 일어났던 것이다.

 

알베르틴의 잠.

알베르틴은 마치 식물이 되어 버린 듯 잠들어 있다. 혼자 있을 때, 나는 그녀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가 나에게 결핍되어 그녀를 소유할 수 없었다. 그녀가 눈앞에 있으면, 그녀에게 말을 건네지만, 내 자신에게서 멀어져 그녀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잠자고 있으면, 그녀에게 말 건네지 않아도 무방하고, 이제는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보지않고 있음을 알고 있다. 더 이상 나 자신의 표면에 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눈을 감고, 의식을 잃어 가는 동안에, 알베르틴은 내가 그녀를 알게 된 날부터 나를 실망시키던 그 갖가지 인간의 성격을 하나하나 벗어 갔다. 이제 그녀는 초목의 무의식의 생명, 내 생명과는 더욱 다르고 더욱 이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의 것이 된 생명에 생기가 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녀의 자아는 둘이서 이야기할 때처럼, 마음속에 숨긴 사념이나 눈길의 출구를 통해 끊임없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바깥에 있는 온갖 자기를 불러들여, 그 육신 안에 도피시키고, 가두어 집약 되어 있었다. 그 육신을 눈길 밑, 두 손 안에 안으면서, 나는 그녀가 깨어 있을 때에 느끼지 못한 인상, 그녀를 오롯하게 소유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의 목숨이 내 손 안에 놓여 있고, 가벼운 숨결을 새액새액 이쪽으로 내뿜고 있었다.

그녀가 좀 깊이 잠들어 버리자, 그녀는 금새 그때까지의 한낱 식물이던 존재를 그치었다. 그때에 그녀의 잠은 나에게 하나의 풍경인 듯싶었다. 그녀의 잠은 내 곁에, 고요한, 감미로운 관능을 유발하는 그 무엇, 마치 보름달 밤에 발베크의 해만이 호수처럼 고요해지고 나뭇가지들이 흔들릴 듯 말 듯, 사람들이 모래에 드러누워 한없이 썰물이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싶어질, 그 무엇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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