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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리다 덕분에 레비나스를 읽고 있어요! 정의에 대해 말하려면 알아야할 것이 많네요. 그런데 레비나스는 사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눈빛, 사랑, 정의에 관하여 (2)         /        종헌

 

  통상적으로 타인을 사랑하려면 나와 닮거나 나에게 이익이 될 만한 재화나 가치 등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보다 미워하는 사람과 더 많이 부딪치는 게 우리의 일상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누군가를 사랑해야한다는 요구는 상당히 비상식적이고 논리로 꿰맞추기 힘든 것 같다. 내 마음에 들어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하기도 쉽지 않는데 대체 어떻게 낯설고 익숙지 않고 어쩌면 나를 해칠 수도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 ‘자연스럽지’ 않은 말을 하나의 도덕률로 간직하려고 하는 것일까? 아마도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명제에 대한 믿음만이 인간적인 삶을 가능하게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이 명령한 ‘욕망’에 도전하는 것, 반항하는 것이다.

  욕망에 도전한다는 말은 나 자신의 일차적인 본능과 이미 이루어진 것에 저항한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가 정한 사랑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삶, 혹은 사랑으로 초월적인 것을 추구하지 못하고 있는 삶, 즉 살만한 가치가 없는 삶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안다. 이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만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뜻한다고 말해야 한다. 너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기 위한 실천이다. 결국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명제에 전제된 것은 나는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 자신이 사랑의 대상임을 잊거나 부정하는 것은 파괴적일 뿐이다. 따져보면 이미 우리가 타인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먼저 타인에게 사랑을 받아야만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고 나아가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해야할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일 것이다. 레비나스는 타인에 대해 무조건적인 책임을 져야한다고, 이것이 사랑이라고 말했는데, 타인에게서 내게로 온 사랑이 내게서 타인으로 가는 사랑의 전제조건이라고 우리는 덧붙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정말 사랑받을만한 삶인지, 사랑받을만한 삶이란 무엇이고 이를 요구해도 되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런 물음 앞에서 우리가 타인을 사랑해야한다는 준칙은 단지 하나의 믿음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솔직해지자. 우리가 사랑받을만하다거나 타인을 사랑하고 책임지고 보살펴야하는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사랑이다. 하지만 타인이 우리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거나 응답해줄 때 우리는 이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즉 우리 자신의 삶이 타인에게 그 자체로 존중받을 때 우리는 대체가능하고 일시적인, 일회용품처럼 가볍게 쓰다가 버려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때 비로소 타인을 사랑하라는 말, 나는 사랑받을만한 인간이라는 말, 이런 윤리적 믿음이 공상적인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세계의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존재로서의 나, 나의 부재가 세계의 손실이 될 것이 분명한 나에 대한 믿음을 통해 나는 타인 또한 그의 삶 자체로 온전한 존재의 이유임을 알길 바라게 되는 것일 것이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사랑이란 파악되기를 거부하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그리고 파악될 수 없으나 특정한 존재인 타인을 받아들일 때 윤리의 영역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또한 그는 내가 이웃의 얼굴을 안다는 사실로 내게 이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하고, 이러한 책임은 어떤 규율이나 계약에도 우선한다고 한다. 즉 내가 어떤 약속을 맺거나 사회화되기 이전부터 내게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은 타인의 얼굴을 본 순간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정해진 규정이 없는 책임이다. 그리고 윤리란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타자성을 인정하고 그때그때마다 우리의 행동으로 책임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사랑, 책임, 윤리는 인간이라는 종이 소멸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인간의 조건이라고 본다. 맞는 말이다. 레비나스의 말처럼 사랑하는 인간은 자신이 충분히 윤리적이지 못한 것이 아닌가 끝없이 의심해야 한다. 사랑하는 인간은 불확실한 책임과 윤리의 바다 위에서 어떻게 더 잘 사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사랑에 생각이 끼어들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가. 우리가 타인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말로 표현해버리면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게 되지 않는가. 따라서 말은 사랑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해야 한다. 사랑 안으로 들어온 말은 자신의 길을 잃게 돼있다고 말해야한다. 차라리 말이나 생각은 사랑보다는 욕망과 관계하는 것일 것이다. 실제로 생각은 대체로 나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일어나는 생각은 자신을 중심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자신의 밖에 있는 것들을 모두 제거해야할 장애물이나 수단으로 취급하면서 말이다. 이런 점에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사랑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처럼 생각의 법정 앞에 서자마자 피고라는 이유만으로 유죄를 선고받는 죄인이다.

  그러나 생각이 욕망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해서 욕망의 암초를 피해 막막한 바다를 헤쳐 나아가는 사랑이 생각을 피해야하는 걸까? 사랑이 윤리적 행위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면 사랑하는 타인에게 정말 무엇이 좋은 것인지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전까지 욕망과 관계를 맺었던 생각이 사랑과 관계를 맺도록 치열하게 생각해야 한다. 생각이 욕망과 가깝다는 이유로 우리가 윤리적이지 못한 것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만이 인간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삶은 분명 편하게 살기 위한 처방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바다로 스스로 침수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끔찍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권위의 그늘로 들어가 확실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이렇게도 많을 것이다. 독재자에게 복종하거나, 관료시스템에 순응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사회나 지배적인 가치관을 당연시 받아들이는 이들은 항상 말한다. 시켜서 했다거나 규정이라거나 남들도 그렇게 한다고. 당연한 것이라고.

  사실 일상에서는 인간적인 삶이 아니라 순응하는 삶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이유를 불문하고 권위에 저항하는 사람은 비합리적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마주한 세계와 생각을 구분해야 한다. 세계는 세계일뿐이다. 특정한 생각을 통해 세계는 특정한 무엇이 된다. 생각이 사랑에 따른 행동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취급하면서 세계의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할 때, 즉 욕망의 변호인이 사랑에서 비롯되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변론할 때,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세계를 만드는 틀린 생각임을 알아야 한다. 사랑이 생각과 사이좋은 관계가 아니라고 해서 생각이 실패한 사랑에 대한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랑을 이유로 최선을 다해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자 권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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