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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순도 100% 자발적인 후기입니다!!!

 

개근과 후기 콤보로 뜻하지 않은 선물까지 받았고 화기애매한 뒤풀이도 어색하고 즐거웠기에 후기를 또 남깁니다. 많은 정보와 영감을 주는 알찬 강의였어요! 인상적이었던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제가 들었던 고민을 정리해봅니다. 저는 2000년대 초반 페미니즘의 수혜(?)를 조금 입었다고 여기는 사람인데요. 최근의 페미니즘 담론이 낯설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최근 젊은 세대 여성들의 삶의 조건이나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혜진 선생님 강의를 통해서 궁금증이 좀 풀린 듯 합니다.

 

작년 초 <문학3>에서 주최하는 ‘문단 내 성폭력’ 관련 대담을 들으러 갔었는데요. 당시 해시태그 운동, 페미라이터 선언에 이어 ‘참고문헌 없음’이 준비되고 있는 때였죠. 제 궁금증은 두가지였습니다. ‘“문단 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세계가 남성서사의 세계인 것을 정말 몰랐는가?’. 첫 번째 질문에 관해서 저는 어쩔 수 없이 2000년 ‘운동 사회 내 반성폭력운동’을 떠올렸는데요. 그 후과는 여러 쟁점을 낳았습니다. ‘가해자 색출과 퇴출은 어쩔 수 없는 효과인가’, ‘피해자 중심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여성활동가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런 문제에 있어 같고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주주의나 평등, 반차별 등의 진보적 가치를 내걸고 신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운동의 해결방식에 비해 ‘문단’을 직업군으로 상정하는 인식 안에서는 ‘문학’을 인본주의적이고 진보적 가치가 전제된 것으로 특권화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문단을 고민하는 분들에게서 발견했어요.)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소위) 진보운동 내에서는 신의를 저버린 가해자들이 떠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 반면(사실 활동가에게는 소명의식에 기반해 자기희생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많죠. 그러니 사실 아쉬울 것도 없이 떠나버리는 사람도 많고요.) 직업군으로서 ‘문학인’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아무리 문학으로 밥벌이가 안 된다고 해도 밥벌이와 명성은 ‘문학인’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고요. 따라서 마치 ‘진보적 가치로 조직된 공동체’로서 문단을 사고하는 방식이 과연 적절한가 싶었어요. 그런 점에서 오혜진 선생님의 소위 ‘K문학’의 (밥벌이와 명성에 얽힌) 폐쇄적이며 (합의된 바 없는) 가상의 가치를 내세운 창작과 비평 관행 비판은 통쾌한 면이 있었습니다. 좀 더 까주세요~ ㅎㅎㅎ

두 번째 의문, ‘이 세계가 남성서사의 세계인 것을 정녕 몰랐던 말인가?’ 우리 모두가 남자가 쓴 고전텍스트를 자양분으로 자라온 사람들이니 그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순간 충격이 크기는 합니다. 그에 대한 대응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통으로 부정하거나, 전혀 다른 언어와 표상체계를 계발하거나, 순응하거나....) 그것이 ‘성폭력’이라는 쟁점에 함몰되어버리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대담 자리에서 ‘이제 헤밍웨이를 못 읽겠어요.’, ‘아,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요.’하는 고백들이 쏟아졌어요. 그런 면이 물론 있고 어쩔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에 몰두하면 여성들은, 소수자들은 무엇을 읽고 쓸 수가 있겠냐는 생각이에요. 그 자리에서 권명아 선생님만 외롭게 “성폭력은 성폭력이다” 외치셨는데, 1대 100 느낌이랄까... 이번 강의 1강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시민이자 정치적 주체성을 발견하는 새로운 서사”의 필요성을 재차 절감합니다.

 

2강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뭐랄까, 90년대 맹위를 떨친 여성작가들의 문학작품들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말은 박완서 작가의 <저문 날의 삽화2>에 나오는 이 대사가 아닐까 싶었어요. “듣자 하니 그 사람 참 개새끼로구나.” 8, 90년대 소위 ‘여성문학’을 지우려는 문단의 태도에 관한 강사 선생님의 지적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왜 남성작가의 후일담은 무협지의 냄새를 풍기는가’ 하는 문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구요. (몇년전 나온 손아람 작가의 디마이너스는 황당함과 동시에 동시대를 살았던 (비명문대) 여성인 제게 어떤 무력감을 주기도 했어요)

 

3강 역시 흥미로웠는데요, 따로 후기를 쓴 적 있어서 생략합니다.

 

4강은 최근 부각되는 페미니즘적 서사를 다루는 시간이었는데, <미지의 세계>는 제가 처음 본 것이라 무척 쇼킹하고 흥미로웠어요. ‘편안하고 안전한 민주주의’라는 개념 하에 ‘착한 서사’의 주체로 여성을 가두려는 태도에 대한 비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걸 넘어서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강의였습니다.^^

 

5강은 퀴어서사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역시 ‘소비되는 이슈’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해주셔서 좋았어요. (레즈비언) 소녀들의 사랑이 언급되는 방식에 대해서 공감 가는 지적을 해주셨는데요. 언급하신대로 듀나가 지적한 “한국영화에서 레즈비언 서사의 주인공은 왜 항상 교복 입은 소녀인가”하는 문제. 중고등학교 시절 여학교를 다니며 누구나 한번쯤을 경험해보았을 묘한 감정은 ‘미성숙한 시기의 불안정하고 모호한 감정’이라는 지배적인 규정에 여전히 억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단 스스로의 성정체성 발견의 가능성 차단 문제만이 아니라 우정과 애정, 타자와의 깊이 있는 관계맺음을 방해하고 한계지우는 것일 수도 있다고요. 저는 (문단에 끼지 못한) 소설 쓰는 사람인데 항상 고민되는 것 중 하나가 성별을 적시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성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예요. 어떤 텍스트에서는 여성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떤 텍스트에서는 경계를 모호하게 해야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무척이나 헷갈리거든요. 그런 점에서 이번 강좌에서 ‘퀴어서사’를 배치하신 점은 중요한 대목이었던 것 같아요. 70년대 어슐러 르귄의 소설만 보아도 성별이 자꾸 바뀌기도 하는데, 퀴어서사를 담은 한국문학은 여전히 화해나 포용의 대상에 성소수자를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좀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선생님 지적처럼 퀴어의 현실을 ‘정상인, 보편성으로 넘어서야 한다’는 강박이 이 초고도 신자유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한국사회에서 어째서 여전히 지배적인 걸까 의문이네요.(말은 이렇게 해도 나보고 하라면 어떻게 할지 막막하지만요)

 

마지막 6강에서 ‘위안부’ 서사를 다루셨는데요. 많은 고민이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사회적 비극의 가장 ‘불편한’ 생존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눈길>은 <귀향> 같은 것일 줄 알고 안 봤는데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아이 캔 스피크>는 제게 불편하기만 했는데 다른 의미를 읽는 눈이 트였고요. (밑도 끝도 없이 강인한 캐릭터, 착한 남성 청자, 현대의 제국 미국의 의회, 커밍아웃 후 남동생의 인정(이 역시 이제훈이 해낸 일) 등등 불편한 요소가 너무 많아 질질 짜면서 보고 나서도 찝찝했어요.) 박유하처럼 자기 편한 대로 ‘사료’와 ‘증언’을 갖다 쓰지 않으려면 어떤 윤리성을 찾아야 할 텐데, ‘위안부’ 문제는 다루는 것 자체가 윤리적이라는 전제에 대해 지적하신 말씀에 공감이 갔어요. 저는 그 윤리성 문제가 피해, 희생된 이들(죽은 자)과 생존, 증언하는 이들(산 자)의 시각을 제대로 결합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최근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공동정범>에서 드러난 것처럼요. 특히 영화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관찰자의 시선이기 때문에 그걸 다루는 창작자가 스스로는 윤리적 시각이 있다고 전제할 때(윤리적이려 하는 노력과는 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관객들은 그 전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대상을 스테레오타입화거나 위계적으로 평가하는 위험에 빠지는 것 같아요.

 

뒤풀이에서 그런 고민을 더 나눌 수 있어서 좋았구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위안부 서사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오혜진 선생님의 연구에 좋은 결실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상 강좌 후기를 빙자한 제 얘기를 마치겠습니다. 알차고 즐거운 강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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