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덥다. 111년만의 폭염이란다. 한반도의 수은주가 40도를 넘은 것은 관측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존재 자체로 땀이 나는 오늘, 존재론 마지막 강의를 들으러 발걸음을 옮긴다. 역시 후회는 없었다.
철학에 문외한인 나도 이 강의를 통해 얻은 것은 있다. '이다, 있다'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의 차이, 자신의 존재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존재를 드러내는 마이크, 확성기.. 여러 문장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에 혼재 돼 있지만 가장 큰 수확은 동생의 생일선물을 고르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첫 강의 때 읽었던 책은 말라르메의 '시집'이었다. 책 뒤쪽 해설이 없으면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글들이었지만, 한 단어, 한 문장을 곱씹으며 이전까지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에 무릎을 쳤다. 말도 안되는 상상력. 한마디로 뇌를 깨우는 글들이었다.
"부채질마다 황혼의 서늘함이 그대에게 내려오고 그 사로잡힌 날갯짓에 지평선이 살며시 물러난다" 말라르메의 시들은 날갯짓을 통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지만, 부채의 종이 위에 갇혀 있다. 말라르메는 시를 통해 이상적 존재가 되고 싶지만, 그 욕망이 강렬할 수록 현실도 동시에 강렬해진다.
선물을 받은 동생의 반응은 "특이하다"는 것이었다. 성공적 선물이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마음만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의를 통해 알아낸 사실 한가지. 부채는 날개라는 것. 부채를 부칠때마다 너의 꿈도 날아 오르길 바란다. 나의 꿈도. 그대들의 꿈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