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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자들의 근접성 없는 친밀_임진광

 

1.

나는 작년 11월 8일 저녁식사를 위해 합정역 근처 식당 ‘생생아구찜김치생삼겹살’에서 제육덮밥을 시킨 날을 기억한다. 그날 식당 아주머니를 제외하고 식당은 어느새 온통 남자였다. 그들의 목소리와 대화는 내가 가진 한국 헤테로 남성이 가진 수혜에 대한 인식과 만나 ‘왜 난 남자로 태어났을까?’라는 질문을 만들었고, 인생 처음의 혐오감을 먹고 나왔다. 1월 20일 새벽 서울 종로구 서울장여관에 성매매여성을 요구하다 주인에게 거절당한 남성은 방화를 저질렀고 무고한 5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나도 한국 남성이다.

이번주 월요일, 친구는 인간이 너무 쉽게 살고자 해서 지구가 오염됐을 때, 인간만 없으면 지구가 더 괜찮아지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나는 친구에게 ‘사실 인간 세포의 10%가 인간만의 게놈이 있고, 전체 세포 중 90%는 미생물의 세포’라고, ‘사람은 결코 혼자 성장하는 존재가 아니다’고 말을 했다.

 

무력감이 들었다. 아직 내 스스로를 감염시킬만한 생각을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린 마굴리스는 생명만들기에 대해 “낯선 자들의 친밀성“이 생식보다 일차적이라고 말한다. 마굴리스가 주장하는 공생(symbiogenesis)의 핵심은 새로운 종류의 세포들과 조직과 기관들, 새로운 종들은 주로 낯선 것들의 오래 지속된 친밀성을 통해 진화한다는데 있다.

 

카를라 휴스탁과 나타샤 마이어스는 종간의 친밀성이나 미묘한 유혹들의 생태학을 진화(evolution)와 대비해서 인볼루션(involution)이라고 부른다. 다나 해러웨이는 인볼루션을 예술-과학의 worlding과 공생물발생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로  사용한다.

과학저술가이자 큐레이터인 Margaret Wertheim과 시인 Christine Wertheim은 프로젝트 <CROCHET CORAL REEF>는 해러웨이가 제시한 4가지 모델 중 하나이다.  쌍둥이 자매 Margaret과 Christine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울이나 면, 합성수지포장지나 비닐백을 소재로 코바늘뜨기한 산호와 산호표백에 대해서 목소리를 낸다.

해러웨이는 이 프로젝트가 바다에 직접 들어가는 실천이 아니라 “근접성이 없는 친밀“이라고 말한다. 근접성이 없는 친밀은 가상이 아니다. 이러한 코바늘뜨기는 일과 놀이로서 산호들과 함께 공생물발생의 매듭 속에 들어간다. 심해의 일부 산호초들이 죽어가는 산호군락의 피난처가 될 수 있는 거서럼, 이들의 예술-과학 실천은 산호들에게 또 다른 피난처가 될 것이다.

 

3

‘낯선 자들의 친밀성, ‘근접성 없는 친밀성’이라는 말은 내게 덧없게 느껴지기도 했고, 어떤 새로운 연결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미처 ‘함께-되기’를 의식하지 않아도 어느새 되어버린 상태처럼 연상되기도 했다.

위 개념들을 맹목적으로 넘기고 싶지 않다. 다시말해, 난 지금 스스로 어렴풋이 큰 영향력을 내게 끼칠 것을 기대해왔던 해러웨이가 2016년에 쓴 책 『곤란함과 함께하기』의 선언 내용에 대해 응답-능력(response-ability)이 없다는 것을 이 발제문을 쓰면서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지금 나는 ‘살기’에만 특권화되어 있고, ‘살리기’, ‘죽음’, ‘죽이기’에 직면하기를 꺼린다. 

Van Dooren은 애도하기가 응답-능력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애도는 얽혀 있고 공유하고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나와 얽혀 있는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앞으로 살아낼 수 있나. 앞으로 어떻게 구체적인 관계가 만들어질 것인지 궁금하다.

 

사진 출처: 양병찬 페이스북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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