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글쓰기다’ 2강에서는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아마도 악마가’를 다같이 봤다. 

영화 시청 후 짧은 토론 시간이 있었지만, 

영화 시청이 강의의 주였기 때문에 강좌후기로 영화에 대한 소감을 써보려고 한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위주로 말해보려 한다. 

 

- 마지막 장면:

주인공이 친구에게 자기를 죽여달라고 부탁해, 친구가 주인공을 총으로 쏘는 장면이다. 스포일러인가? 스포일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죽는다’라는 결론을 알고 보건 모르고 보건 큰 상관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게 결론도 아닌 거 같고.

세상에 염증을 느끼는 주인공이 마약에 쩔어 사는 친구에게, ‘로마 병사들이 하던 행동’이라며, 총을 쏴서 자기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묘지로 걸어가는 주인공과 친구. 가정집 창문. TV화면의 빛과 음악이 창밖으로 새어나온다. 주인공은 잠시 발길을 멈춘다. 미련인가. 내가 놓친게 있지 않을까… 하는 주인공의 아주 짧은 망설임이 느껴진다. 친구가 돌아본다. 짜증난 표정이다. 어서 안오고 뭐하냐는 표정이다. 그래봤자 소용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지금 결정을 번복해서, 다시 살아봐도, 결론을 똑같을거라는 걸, 알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 같다. 주인공도, 나도, 그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다. 맞아. 그래봤자 소용없다. 

묘지에서 주인공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친구가 총을 들고 따라간다. 

주인공이 말한다. 대충 이런 말이었다. “이런 마지막 순간에는 어떤 멋진말이 떠오를 줄 알았는데.”

그리고 말한다. 

“근데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란..”

 

그리고 말줄임표. (브레송의 이런 영화 문법을 ellipsis라고 한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말줄임표를 끝으로 친구는 주인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을 쏴버린다. 

 

주인공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걸까?

 

잠깐 궁금하다가, 

 

‘아무래도 상관없어’

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도 그랬을 것 같고. 

친구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영화는 그렇게 주인공의 죽음과 함께, 엔딩 크레딧도 없이 갑자기 끝나버린다. 

주인공의 삶도 그런게 아니었을까. 

온갖 의문과, 혐오와, 염증이 치솟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끝나버린다. 

그렇다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다. 

 

- 버스 장면:

주인공과 친구과 버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는데 정치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정치도 다 바보같은 행위라고 염증을 느끼는, 그런 대화였던 것 같다. 이 장면에서 브레송 감독이 말했다는 ‘surprise’를 엿볼 수 있었다. 

전에 본적없는 프레임. 전에 본적없는 편집. 

주인공과 친구가 대화를 나누자 버스에 앉아있고, 서 있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둔다. 그게 좀 초현실적 장면으로 보였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들의 대화에 신경쓰지 않는다.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눈에, 얼굴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버스의 손잡이에, 승하차 버튼에, 문에 신경쓴다. 큰 소리가 나고 버스가 멈춘다. 버스 기사가 밖으로 나간다. 그 소란이 있는 내내 카메라는 사고가 난(사고가 아닐 수도 있고) 버스 창밖이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승객들도 아니라, 버스 문에만 집중한다. 버스 문 밖의 세계는 이제 카메라에 같히는 대신, 내 머릿속에서 무궁무진하게 피어난다. 배끼고 싶은 장면이다. 

 

-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장면

강사님이 1강에서 말했던 ‘손 패티쉬’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여긴 손 패티쉬가 아니라 다리 패티쉬.. 

호수에서 누군가 물고기를 잡았다. 

“물고기가 잡혔다!” 누군가 외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근데 이 카메라는 또 물고기를 잡은 사람의 얼굴이라든가 모여드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표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다리가 하나 하나 모여드는 하반신만 잡는다. 

얼굴이 아닌 다리를 잡으니. 

내가 익숙한 것이 아닌 다른 게 보이고 느껴진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다리만 잡다니. 

정말 알 수 없는 감독이다. 

너무 이상해서 너무 좋다. 이 장면도 배끼고 싶다. 

 

-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 

주인공이 정신과 의사와 면담을 한다. 

대화는 겉돈다. 

뭔가, 주인공은 진실(? 본인 스스로에겐 진실. 자신의 이야기)을 이야기하는데

정신과 의사는, 

정신과 의사가 의례 할만한, 그의 머릿속에 박혀있을 것 같은 대사 같인 이야기만 한다. 

의사는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한다. 너의 어렸을 적이 지금의 너의 이런 염증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지. 네가 그렇게 죽고 싶은건 이런 저런 어쩌고 저쩌고. 

그러자 주인공이 말한다. “저 죽고 싶지 않은데요?” 살고 싶지도 않지만.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둘 다 끔찍하게 느껴진다고. 

 

여기서 또 ‘surprise’

주인공을 정신과 환자. 심리학의 공식 같은 박스 안으로 구겨넣으려는 의사 앞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개별성. 거기서 오는 surprise

 

- 기타 숏들. 

호수 장면에서도 그랬지만 인물의 얼굴이 아닌 신체 일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인상깊었다.

손이라든가, 누군가의 신체 일부가 한참 나오는데, 그게 누구의 것인지 한참동안 알 수 없고, 이따금은 끝내 알 수 없다. 

마약하는 친구가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물건을 훔치는데 왜 그렇게 아름다운 리듬처럼 보이는지.. 

그리고, 

물건을 훔칠때와,

친구를 총을 쏠 때와,

그의 행동이 주는 무게감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게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이상하고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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