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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는 페러디다 / 2장 이원론과 일원론 너머 : 보부아르와 이리가레 비판

‘젠더트러블’의 핵심 논의는 기존 패미니즘에 대한 계보학적 심문과 정체성 논의에 대한 도발적 탐문에 있다. 기존의 패미니즘은 이성애 중심주의적 헤게모니를 구성하면서 비이성애적인 것을 주변화하였기 때문이다.

버틀러가 패미니즘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1) 과연 이성애와 동성애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인지, 2) 또 패미니즘이라는 집단 엔에 이성애 가족 중심적인 패권 질서는 없는지에 관한 것이다(68).

패미니즘 계보학은 말그대로 패미니즘의 전더 논의 내부에서 당연하거나 자연스럽게 간주되어오던 것을 문제삼고, 그 자연스러움이나 당연해보이는 외관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제도 담론의 작용을 파헤치려는 노력이다(즉 매미니즘 내부의 통용되어온 전제들에 대한 비판과 극복). 이러한 게보학적 논의는 세 가지 방향성을 지닌다(69)

1) 섹스와 젠더의 구분을 허물어 섹스조차 당대의 인식 규범이 문화적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히고,

2) 인과론을 전도해 원인처럼 보이는 이성애적 욕망이 실은 동성애를 배척하는 제도 규범의 결과임을 알리며,

3) 이런 모든 생산 권력의 기반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이성애적 가부장제 담론이 숨어있음을 폭로하기 위해서이다.

새로운 젠더 주체 논의를 위해서 기존의 여성 논의를 재검토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다음 두 사람울 젠더 이원론과 일원론을 대표하는 자로 비판적으로 다룬다.

1) 패미니즘의 대모이자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 :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실존주의 소설가, 사상가. 사르트르와의 관계로 유명하다. 그의 여성론 《제2의 성, The Second Sex》은 반향을 일으켰다.

2) 뤼스 이리가레(Luce Irigaray, 1932년~) : 벨기에에서 태어난 페미니스트, 철학자, 언어학자, 정신분석학자이자 문화이론가. 《하나가 아닌 성, The Sex Which Is Not One, 1977》으로 잘 알려져 있고 20여권의 책을 펴냈다.

버틀러는 보부아르의 이원론이나 이리가레의 이원론에 모두 반대한다.

 

보부아르에게 : 섹스는 이미 젠더이다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패미니즘 철학의 시작이자 여성학의 고전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것이다”는 명제 혹은 경구화된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경구에는 이중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72). 이 말 속에 담겨있는 문화적 분석이나 실천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태어나는 여성과 만들어지는 여성 사이의 엄격한 구분이 있고(이원론적), 태어난 여성의 열등성을 극복하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여성성 자체에 대한 폄훼가 내포되어 있다(72). 즉 성분화된 존재로서의 생물학적 여성에 열등성을 어느 정도 가정하고 있는 듯이 보이며, 생물학적 여성을 넘어 문화적 여성성으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고 실천의 방향을 주장할 때 사실 그 문화적 여성성은 남성적 가치나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보편 주체로서의 인간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보부아르에 대한 버틀러의 비판]

[1] 여성 코기토

보부아르의 명제에서 젠더는 분명 구성되는 것으로 말해진다. 그러나 이 공식에는 그 젠더를 사용하거나 전용하는 어떤 행위 주체, 즉 코기토(cogito)가 암시된다. 버틀러가 제기하는 문제는 젠더라는 것이 보부아르가 제시하는 것처럼 어미 전제된 코기토가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거나 변용(전복)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73). 몸의 의미도 맥락적 상황에서 오는 것이라면 언제나 이미 문화적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 여성 코기토는 존재하기 어렵다.

[2] 만들어지는 성 - 타고난 성

보부아르는 여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여성은 언제나 어떤 문화적 강제안에서 만들어진다. 이런 강제는 물론 해부학적 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사람이 반드시 해부학적인 여성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보부아르의 주장대로 ‘몸이 하나의 상황’이라면 이미 늘 문화적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 몸(타고난 성, 섹스)에 기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섹스는 사실상 지금껏 줄곳 해부학적 진리처럼 보였지만 실은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것이 버틀러의 주장이다. 그래서 섹스는 젠더이다.

[3] 섹스-젠더 이분법

몸이 이미 하나의 상황이라면 태어나는 여성과 만들어지는 여성의 구분은 이미 불가능하다. 버틀러가 보기에 “몸은 그 자체가 하나의 구성물”이다. 몸에 젠더가 표시되지 않으면 몸이 의미화 가능한 실존적 존재가 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젠더에 대한 담론은 문화 안에서 상상할 수 있고 구현될 수 있는 젠더 배치 가능성의 경계를 미리 전제해두고 또 미리 선점해둔다. 그런 경계는 보편적 합리성의 언어처럼 보이는 이분법 구조에 기초한 지배적 문화 담론의 관점에서 확립된다. 따라서 섹스나 젠더는 이미 그 언어가 상상할 수 있는 인식성의 영역 안에서 만들어진 구성물이다. 섹스는 이미 젠더이며, 몸은 몸 자체이기보다는 몸에 대한 인식가능성이자 몸에 인식성을 부여한 당대 담론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정신과 그리 다르지 않다.

[4] 정신/몸의 이분법

보부아르에게 주체는 언제나 이미 남성적이고, 그래서 여성 혐오적인 실존주의 분석의 틀 안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자신을 보편적인 것으로 세우면서 언제나 여성적인 것과 대립된다. 여성적인 ‘타자’는 인간의 보편적인 규범 외부에 있고, 보편적인 것보다 열등한 ‘특수한 것’, 불변하는 정신에 미치지 못하는 몸의 체현, 초월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내재성으로 비판받는다. 보부아르는 여성의 몸이 규정적이고 제한된 본질이 아니라 여성의 자유를 위한 도구이자 상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론은 자유/몸의 데카르트적 이분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74).

버틀러는 보부아르가 변증법적 종합을 추구할 때조차 이런 정신/몸의 이분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정신/몸의 이분법이 무비판적으로 재생산된다고 본다. 이런 이분법은 전통적으로 생산, 유지되고 합리화되는 암묵적 젠더 위계를 유지, 강화하는 것이란 것이 버틀러의 주장의 핵심이다. 버틀러는 섹스와 젠더의 구분이 불가능한 만큼 태어나는 여성과 만들어지는 여성의 이분법,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이분법, 정신과 몸의 이분법도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힌다.

“젠더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의미에서 명사가 아닌 동사이다.”

“섹스는 이미 젠더이며, 자유롭게 떠도는 인공물이다.”

 

이리가레에게 : 문제는 남성/여성이라는 구도를 만든 권력

[1] 이리가레의 ‘하나’가 아닌 성

이리가레는 여성이 정체성의 담론 안에서 하나의 페러독스를 구성한다고 했다(76). 이미 남성 중심적인 상징 질서(언어의 기표 질서, 발제자 주) 안에 여성의 위치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남성중심적 체계나 구조 안에서 여성적인 것은 재현이 불가능해서 아예 주체의 표식이 될 수 없다(70). 그래서 여성은 남성 의미화 경계 안의 재현 불가능성이라는 패러독스를 만든다. 즉 이미 전반적으로 확산되어 보편화된 남성적 언어, 남근 로고스 중심적 언어 안에서 여성이 구현하는 것은 ‘재현 불가능성’이다(영어 man = 남자, 사람, 발제자 주). 다시 말해서 여성은 생각조차 될 수 없는 성을 나타내고 언어적 부재나 공백만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은 ‘하나’가 아닌 ‘성’, 남성적 의미 질서를 벗어난 성이 된다.

[2] 이리가레의 일원론과 보부아르의 이원론

이러한 이리가레의 주장은 일원론적 남성 경제?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보부아르의 이원론과 대립된다고 할 수 있다. 이리가레는 주체와 타자가 모두 남근로고스 중심주의 의미화 경계 ‘안에’ 있는 개념이라고 보지만, 보부아르는 여성이 남성의 부정성으로 존재하며, 완전한 남성성과 대비되는 ‘결핍’이나 ‘결여’로 존재한다고 본다.

[3] 버틀러의 비판

버틀러는 보부아르에게 젠더 구조는 불균형적 변증법의 실패한 (남성-여성의) 상호관계라면, 이리가레에게는 불균형적 변증법 자체가 남성 의미화 경제의 자기 독백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남성적 의미질서 안에서 여성의 의미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 재현체제 전체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고, 패권적인 서구 재현 체제에 대한 비판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리가레에게 여성의 성은 단순한 ‘결핍’이나 ‘타자’가 아니라 그런 재현 요건 자체를 비껴가는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성은 주체의 표식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이론화될 수도 없다. 이 담론 자체가 합당한 것이 될 수 없기에 여성의 성은 기표와 기의의 닫힌 체계를 구성하는 남성 의미화 경제 안에서는 재현될 수 없다. 여성의 성을 이런 식으로 의미화하는 (남성로고스 중심주의적) 의미화 양식은 영원히 자기 증식하고 싶은 남성적 욕망의 환상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비판받는다.

이리가레의 재현 불가능성이나 규제 불가능성, 지칭 불가능성은 그 자체로 어떤 재현물을 세우고 있고, 그 역시 남성 의미화 경제의 대립물로서 어떤 재현물을 세우려는 재현 정치의 결과로 생긴 것이다(78). 여성을 남성 체계 내의 재현 불가능성으로 의미화하는 것은 여성을 미숙한 남성으로 개념화하는 만큼이나 보편적이고 통일된 여성 주체를 세우려는 시도로 간주되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된다. 또한 이리가네는 남성중심주의와 대립되는 여성 중심의 대안적 의미화 경제를 추구한다(여성성, 모성성, 섹슈얼리티, 여성적 글쓰기 등).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또 다른 초문화적 구조로 이해될 수도 있다(79). 이러한 대안적 개념화는 언제나 역사적 맥락이 배제된 일반화나 보편화의 위험이 있다(79).

버틀러에게 젠더는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특수한 일련의 관계를 둘러싼 수렴점이다(78). 버틀러는 개념의 내용을 이미 전제하지 않는 연합의 정치학과 대화적 만남을 추구하며 그 대화 가능성에 조건과 한계를 만드는 권력 관계를 우선적 심문의 대상으로 삼는다(79).

버틀러가 볼 때 더욱 중요한 것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당대의 그 정체성을 구현하게 만든 제도 권력이나 그 권력이 만든 인식성이나 담론 체계에 대한 분석과 고찰이다. 남성 의미 체계를 대신할 여성, 신성으로서의 여성, 상상계나 여성적 상징계라는 대안적 이상향보다는 이 사회 속에서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이런 방식으로 구현한 구체적인 맥락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계보학적 탐색이 더욱 중요하다. 버틀러가 보기에 일원론(이리가레)이든 이원론(보부아르)이든 여성 범주의 일관성이나 통일성에 대한 주장은 구체적인 ‘여성들’의 층이 구성되는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접점을 경시한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의 경계를 정하는 권력 관계에 대한 1) 계보학적 심문이자 2) 인접 경계한 영역과의 대화적 가능성이다(80).

 

쟁점 정리 : 이분법과 보편주의에 대항하는 패미니즘 비평은 가능한가

보부아르와 이라가레는 버틀러의 젠더 이론 형성에 많은 영향을 준 여성철학자들이다. 이들은 방식은 다르지만 젠더 불평등의 근본적 구조가 재생산되는 구조를 규명하고자 했다. 보부아르는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하고 비대칭적인 상호 관계를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이리가레는 그 관계성을 나타내는 인식론적 틀 자체가 여성이 배제된 남성 의미화 경제라고 비판했다. 버틀러는 기본적으로 이 두 사람의 비판적 관점에는 동의하지만 이들의 이원론과 일원론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모색하고자 했다(81).

[비판의 핵심 요약]

보부아르 비판 - 버틀러는 몸 자체가 상황의 산물임을 강조하면서, 몸과 정신, 섹스와 젠더, 타고나는 성과 만들어지는 성의 이분법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리가레 비판 - 이리가레가 주체/대상의 논의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전체 질서가 남성적이라고 여성은 아예 재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남성중심주의를 일반화하거나 다른 대안적 인식의 틀의 가능성을 고려하기 때문에, ‘완전하게 있는 전체’와 ‘아무 것도 없는 부재’라는 또 다른 이분법적 구조가 생겨난다.

버틀러가 이들은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그것이 일원론이든 이원론이든 하나의 보편 구조를 설정하게 되면 그 일원론과 이원론을 발생시킨 당대의 담론 질서나 제도 권력에 대한 맥락적이고 역자적인 계보학식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84).

 

[패미니즘의 방향성 제안]

패미니즘 비평은 남여의 이분법 속에 숨겨진 남성우월론이나 남성 의미화 경제라는 전체주의적 주장도 탐구해야 하지만 패미니즘 자체가 갖는 전체화의 움직임과 관련하여서도 자기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억압에 대한 저항을 논의할 때는 최소한 인종적, 계급적, 이성애 중심적 종속과 관련된 복합 요소와 상충하는 요소들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버틀러는 남성 억압자/여성 피억압자, 남성 지배자/여성 희생자의 이분법에 의거한 패미니즘 구조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여성 내부의 여러 차이로 인한 패미니즘 지평의 확대를 모색한다(83).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역사적이고 맥락적인 의미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다양한 여성 지층에 대한 탐색이다.

문제는 통일성과 보평성에 의거한 여성의 범주적 재현 양상이라기보다는 그런 방식으로 통일성과 보편성을 부여해 재현한 권력 관계의 정치적, 역사적 맥락에 대한 탐구이다(계보학적 방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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