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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영감회] 액트 오브 킬링 후기

홍바바 2019.04.22 01:39 조회 수 : 98

 

 직접 영화를 만나기 전 작위적인 설정이 불편했다. 워낙 유명한 작품으로 영화 출시와 함께 명성을 얻어 감상의 정도(正道) 같은 것이 느껴졌다. 감독이 짜놓은 각본에 따라 극중 가해자와 관객이 마치 심리 게임처럼 가설을 향해 수렴되는 수동적인 느낌이 먼저 들어 제대로 영화를 마주하지 못 했다. 영화 위에 쌓인 풍성한 담론이 불러일으키는 외적인 화제성이 주요한 작품같았다. 제3세계 인도네시아 현대사의 비극을 서구 중심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거부감이 설정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비극적인 역사를 환기 시키는 장치를 준비해 피해자와 가해자 도식의 쉬운 결론인 동전 양면같은 감정의 전복을 꾀하는 것은 분명하다. 현실에서 승자의 위치에 있는 가해자를 포섭해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시킨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맞다. 가해자의 승리의식을 고취하는 영웅서사담을 액자 형식으로 도입해 피해자의 비극성을 극단적으로 대비 시키는 설정이 빛을 발했다. 관객이 그 과정을 가해자의 시선을 따라 영화에서 체험하고 가해자와 심리적인 거리감이 좁혀지고 넓혀지는 간극에서 감상의 깊이를 얻는 것은 훌륭한 연출이다. 

 감독은 살아 남은 자의 역할에 충실한다. 같은 동시대인로서 가해자와 관객과 함께 살아가는...... 현실에서 부재하는 피해자는 다큐 안 영화에서 다양한 생존자를 통해 소환된다. 감독은 인도네시아 비극의 현대사를 영화제작을 통해 역사의 희극 역할을 수행한다. 코미디영화 속 주인공처럼 가해자는 자신이 한 짓이 그리고 지금 영화를 만드는 일이 무언지도 모르는 양 재미를 좇는다. 안정적인 삶에서 인생을 희극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한 짓을 지우고 바라볼 때 그들은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는 누군가이다. 가해자 입장에서 보면 그들도 역사의 광풍에 휩쓸려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다행히 승자 편에 섰을 뿐이다. 이제는 풍족한 노년을 보내며 지난날을 미화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감독은 그들을 직접 만난다. 당사자가 살아있고 힘의 관계가 여전히 유효한 현실에서 감독은 길을 모색한다. 사건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감독은 대학살의 재연 굿판을 액자 영화형식으로 짜놓는다. 영화에서 화면 밖 감독의 존재가 처음부터 의식된다. 감독은 가해자의 이야기를 친절히 들어준다. 클라이막스로 가기 위한 작업을 세심히 준비한다. 공산당원을 살해한 사건 현장을 동행하고 안와르 주인공의 생활동선을 따라가며 개인의 서사를 적극 활용한다. 안와르와 주인공 무리에 동화돼 영화를 만드는 일원으로 가까워진다. 다큐의 시선이 자기 위치를 찾았다. 감독의 시선은 화면 가까운 곳에 늘 존재한다. 그림자 역할을 충실히 한다. 다큐의 흐름을 성실하게 이어나간다. 보이지 않는 내부 시선은 영화 밖의 목소리를 빌어 스스로 들어난다. 신적인 심판의 목소리가 아닌 보편적인 사람의 목소리를 빌어 정확하게 영화의 메시지를 관통한다. 피해자를 떠나 같은 사람의 정서를 모아서 피해자 고통의 깊이를 파고든다. 간접적일 수 밖에 없는 영화체험에서 가해자의 역할극을 거쳐 더 깊숙이 들어간다. 안와르가 피해자 역할로 분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스스로 비애감에 빠져들 때 감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살아있는 책임감으로 사건을 마주하는 최선의 방법을 시도한 느낌이 이 대목에서 들었다.   

 영화에서 클로즈업숏의 활용이 인상적이다. 마을 숙청 상황 재연장면에서 안와르 표정이 재연 상황보다 당시 사건을 더 많이 설명한다. 실제 사건의 가해자로서 당시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주인공은 재연 촬영 현장에서 큰 감정의 기복을 겪는다. 정확하게 계산된 상황에서 감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은 것은 기본이다. 가해자에서 피해자의 심리까지 넘나들면서 안와르의 얼굴 표정이 비극적인 역사를 보여준다. 감정을 담은 클로즈업 기능으로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키면서 실제 사건까지 깊이를 좇는 힘이 있다. 서사가 있는 인물 클로즈업 숏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마지막 씬에서는 의도적으로 클로즈업 숏을 배제했다. 감정이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희생자가 발생한 공간에서 뒤늦은 회한의 고통을 겪는 주인공과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한 연출이다.     

 마지막씬에서 피해자의 시선이 얼핏 느껴지기도 한다. 유령같이 이승에서 사라진 장소를 배회하며 안와르의 다른 모습을 다른 세상에서 바라보는 장면같다. 분절된 컷의 배치로 구성되었는데 롱테이크의 스테디캠 촬영으로 끊지 않고 부유하는 시선으로 담아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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