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즐거운 학문』 2019. 1.14 후기: 뮤즈(박연희)

토론 범위: 『들뢰즈의 니체』 P9-P27

 

의도하지 않은 유혹자. 그는 그저 시간을 때우려고 공허한 말을 던졌다.

아무 생각없이- 그런데 거기에 한 여자가 맞고 쓰러졌다. 니체 『즐거운 학문』 중에서

 

*** 나의 니체          

우리가 토론하기로 한 책은 “들뢰즈의 니체”이다. 들뢰즈가 니체를 만났던 것처럼 나도

니체를 만났고 그러므로 나의 후기의 처음은 나의 니체가 되어야한다는,,,,..

니체가 처음 내게 온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때 윤리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밝고 명랑하게 나를 보았던 친구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온통 허무주의 천지였다.

그 때 나에게 인생은 이유 없이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했으며 나는“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있었다.

자살한 여성 문학가 전 혜린의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 혜석 이라는 미술가의 생애와 그녀가 엄청 욕을 먹은 불륜에 매료되기도 했다.

한 서른 살까지만 멋지게 아니 방탕하게 살다가 어느 날 버지니아 울프처럼 바다에 빠져 죽는다는 생각은 근거도 없이 나를 매혹시켰다.

막연하게 서른 이후의 삶은 의미 없고 낡고 퇴색했을 것만 같던 무지함 어리석음......

그러던 중에 윤리 시간에 들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무작정 샀던 것 같다.

아마도 참고서 산다고 거짓말하지 않았을까?

짜라투스트라는 이름이 뭔가 끌렸고 그것이 독일어로 ‘알조 쉬프라크 짜라투스트라’ 라 하는 선생님 말씀...

나는 그 때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배웠는데 무작정 독일어 사전도 샀고 선생님께 독일어 원본을 빌리기도 했던 거 같다.

물론 한 페이지도 원서로 읽지 못했다.

난 그 때 읽었던 책의 내용을 많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책을 읽을 때의 고조되고 들뜨고 가슴이 벅차기도 했던

그 신체의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도 니체라는 이름은 나를 설레게 한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내가 어쩌면 더 솔직하고 옳을 지도 모른다는 자만심!!

오독의 어리석음이라 할까 제도에 순응해서 열심히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하는 친구들이 마냥 어리게 보였고

나는 참고서 밑에 니체 책을 숨겨 놓고 몰래 몰래 읽곤 했다.

특히 “인간은 초극해야 할 무엇이다” 라던가 “줄타는 광대”라는 말에 연극부에 들어가 ‘창조적인 삶’을 잠시 살아도 봤다.

친척들이 모두 열렬한 교회 신자였는데 내 어린 생각에 무척 위선적인 그들이라서 “신이 죽었다”는 니체의 말은 통쾌하기도 했다.

이미 죽어서 아무 영향력 없는 신에게 열심히 비는 모습은 얼마나 우스운가?(물론 지금은 종교도 인정하고 많은 좋은 예수의 제자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위버멘쉬! 초인! 최근에야 그것의 정확한 개념을 좀 더 잘 이해했지만 2. 30대의 나는 초인이란 나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인생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었으며 번번이 그때 마다 나는 초인의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 같다.

30살에 죽고 싶지도 않았으며 뭔지 모르지만 다가오는 내 인생을 사랑해야할 것 만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한 때 오만했으므로 “신이 오해하여 나를 데려가지 않을까”하는 걱정까지도 하면서 “이세상은 사랑의 터전“이 되어버렸다.

(물론 니체는 사랑인 인생만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부정도 긍정하는것이지만).

물론 기억이라는 것이 과장되고 왜곡되기 마련이지만 “사랑은 가도 추억은 남는 것처럼”그렇게 남았다.

 

*** 우리의 니체          

 

그리고 작년부터 시작한 니체 세미나!!! 유난히 더운, 연일 최고 기온을 경신하던 무더운 8월

그것도 우연히 제주도 여행 중에 수유너머 홈페이지를 보게 되었다. 니체 세미나!!!

중증의 빈혈에서 조금 회복되고 있었던 때였는데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증의 빈혈이란 내 사고가 느리게 흘러가고 차를 타고 내려도 나는 계속 가는 그런 느낌과 모든 진이 다 빠져 나가는 그런 상태.

생각이 정지된 느낌.......뭐라도 해야 했는데 내키는 게 없었다.

여행도 운동도 다 시들했다. 알 수 없는 허무의 그림자가 덥쳐 왔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이상한 병이 도졌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어느새 백수의 아줌마가 되어 잠시 행복했을 뿐...

삶의 권태와 무기력 신체의 병은 나를 지치게 하고 나는 생기를 일어가고 있어서 친구의 강권으로 제주도에 갔던 거였다. 바보 같이 몸이 병드니 정신까지 병드는 어리석은 상황이 된 것이다. 다시 니체를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아니 만나야했다. 그럴 때 유쾌하고 통쾌한 니체는 얼마나 큰 위안이며 벗인지...

아마 니체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

아포리즘 208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책은 거의 인간화 된다- 작가는 책이 자신으로부터 떨어지자마자 스스로 독자적인 삶을 영위해나가는 것에 새롭게 놀란다.

그것은 마치 곤충의 일부가 절단되면 그것이 그때부터는 제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2명과 세미나를 하면 두 명의 니체를 만나고 10명이 세미나를 하면 10명의 니체를 만난다.

같은 책을 때론 다르게, 때론 공명하며, 때론 반박하며 자신의 삶과 결합시켜 이야기들은 풀어냈다.

매번 세 시간 넘는 토론이 이어졌으며 집이 먼 나는 아쉬워하면서 먼저 가야 했다.

우리는 각자의 호흡과 리듬으로 통찰력으로 니체를 읽었으며 토론했고 간식을 나누어 먹고 걷기도 했다.

나는 니체 책을 니체가 되어 읽으려고 노력했다. 원래 나의 독서법은 “거리두기” 인데 왜 여기서 그는 이렇게 말했을까?

그때 그는 어떤 상태였을까 헤아려보며.

 

*** 들뢰즈의 니체          

 

이제 구성원들은 구성도 변하고, 각각의 사람들도 다른 ‘나’들이 되었겠지만 다시 우리들이 되어 『학문의 즐거움』 읽기 전에

먼저 『들뢰즈의 니체』를 읽기 위해 모였다. 만났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나는 들뢰즈에게서 니체를 만나기도 하고 니체에게서 들뢰즈를 만나기도 한다.

아마도 둘 다 기존의 질서나 형식 개념을 전복하는 철학자들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들뢰즈의 니체』를 읽는다는 것은 들뢰즈의 눈으로 니체를 새롭게 보는 것이 아닐까?

물론 니체의 생애나 철학적인 면모들은 잘 알려져 있지만 들뢰즈가 보는 니체는 어떤가하고

우리가 보는 ‘이중의 봄’의 세미나인 것처럼 느껴진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기억력 부족으로 다 적을 수도 없고 『들뢰즈의 니체』니까 들뢰즈가 주장한 것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충분하지 않으므로.....

 

##위대한 건강: 들뢰즈의 말처럼 철학자가 개념을 창조하는 자라면

니체는 ‘위대한 건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 틀림없다.

니체는 병에서 건강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보며, 건강에서 병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본다.

건강으로부터 병으로, 병으로부터 건강으로의 이동이 탁월한 건강이며,

그러한 이동에서의 경쾌함이 ‘위대한 건강’의 징표다. 몸은 타자들의 공통체이며 힘들의 지배를 받는 곳이다.

병이란 어느 한 힘이 커졌을 때 발현하는 것이며 병 때문에 몸이 고통스럽다하더라도

병이 절대로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오히려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자신의 병마저도 환대하는 니체야말로 ‘위대한 건강’의 소유자가 아닐까?

자신의 신체를 탐구하고 병을 부정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라는 장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다양성이라고 인식하는 것.

그것이 곧 긍정의 철학이며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다.

건강의 가치평가로서의 병, 병의 가치평가로서의 건강, 그것이 ‘전도=관점의 이동’이며,

니체는 ‘가치들의 전환’이라는 자신의 방법의 본질, 자신의 사명의 본질을 본다.

건강도 병도 니체에게는 ‘가면’일 뿐이다. 하나의 통일성을 믿지 않는 니체에게는 ‘광기’조차 ‘최후의 가면’인 것처럼.

광기는 단지 가면들이 소통하고 이동하는 것을 그치면서 죽음의 경직 안에서 뒤섞이는 순간을 가리킬 뿐이기 때문이다.

고통이 계속되지만 그의 신체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열정’에 의해서 자주 지배되며 자신의 높은 상태를 느낀다.

니체는 자신이 아팠을 때는 세상에서 빠져나와 건강한 이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몸이 건강해지면 세상에 뛰어들어서 거기서 가능한 통찰을 활용했다고 한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정신마저 우울해서 병든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관점주의: 퍼스펙티브 적인 것

관점주의는 니체의 사유의 방식이며 가치 평가의방식이다.

니체의 세계는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처럼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세계가 아니라,

보편적인 눈이란 없는 세계이다. 다시 말하면 ‘사실은 없고 해석만이 존재하는 세계이다‘라고 했을 때

이는 “절대적인 진리는 없으며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관점 주의를 말한다.

개구리 눈에는 가까이 낮게 있는 사물이 크고 길게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연못 표면의 곤충을 잡는다. 개구리 눈의 오류지만 이 오류 때문에 개구리는 산다.

니체가‘퍼스펙티브적인 것’을 모든 생명의 근본 조건이라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고병권은 그의 책 『다이너마이트 니체』에서 니체의 서술도 하나의 관점으로 볼 수 있지만

니체의 퍼스펙티비즘에는 개별 퍼스펙티브로 환원되지 않는 '퍼스펙티브들에 대한 태도‘의 차원이 존재한다고 한다.

니체의 퍼스펙티비즘은 세상을 보는 눈들이다?

더 많은 눈을 가질수록 다양한 것을 보고 모든 것에서 ’덕성을 찾아내는 미덕‘을 갖게 되지 아닐까?

인간이 신을 창조하고 믿는 오류 (유신론자의 입장)가 세계 곳곳의 대성당이나 멋진 교회음악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덧붙여: 나는, 우리는 니체가 기대리던 미래의 독자일까? 아니면 우리 중에 니체가 바라던 도래하는 철학자가 있을까?

아직도 니체는 도래할 독자를 기다려야하는가? 이 모든 의문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행복한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이 먼 나라에서 그가 죽은 먼 후일 한글로 그의 책들을 읽고 토론하며

인생의 안내자로 친구로 스승으로 혹은 적으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이 있으니......

아직도 어구에 설레고 공허한 말들에게 속곤 하지만

니체는 자신의 삶이 곧 그의 철학인 것 같아 믿음이 가긴 한다. 그러나 믿음이 안가면 어떠랴?

믿음이 안가면 불신으로 읽어야지...

오류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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