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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_후기] 즐거운 학문 제5부

황보영 2019.03.30 00:01 조회 수 : 82

  주변을 돌아보면 기독교라는 환경 탓인지 일반적인 도덕적 인간에 가깝다고 여겨지는(혹은 가까워지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적 인간이란, 곧 사회구성원으로서 적합한 태도를 가졌다고 생각되었던 이들이다. 나에게는 그러한 개념에 가까웠다. 법 없이도 살 정도로 개인적인 양심에 비추어 사는 사람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 공동체를 형성하기에 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도덕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신의 이름 아래 모이긴 하지만, 어떠한 도덕은 기독교에서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질서를 만들고, 가치를 함께 공유하며, 그것을 지속시키는 것만이 삶에 대한 두려움을 최소화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이상적인 삶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은 그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였다. 그들은 고통 받았다. 신이 내린 말씀에, 도덕적 잣대에, 자신의 마음을 자로 재듯이 재며 죄의식으로 고통스러워하였다. 고통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느낀 그들의 고통은 질병에 가까웠다. ‘사랑’이란 포장지로 감추려하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보며 안타까움과 동시에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이 끝날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힘든 일을 겪은 후에 ‘그래, 그것은 신의 뜻이었지.’라고 의미를 덧붙이며 생각해왔다면 니체를 만나진 못했을 것이다.

  지난 세미나에서 니체는 도덕이 가진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345, ‘문제로서의 도덕’(p324.)에서 도덕의 가치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이라고 말한다.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서 도덕은 문제로서 다가왔다. 시간과 몸을 바쳐 그것을 지키지만, 여전히 울고 있는 그들의 눈물을 신은 닦아주지 않았다. 삶과 도덕을 별개로 나누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것은 나에게 문제였던 것이다. 니체의 말이 이 시대에도 유효함은, 여전히 우리는 도덕의 지배 아래 살고 있으며 도덕이 가진 결함에 대해서는 지적하지만 도덕 그 자체가 지닌 가치를 문제 삼지는 못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도덕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문제를 삼기 시작한 순간 의심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고, 결국에는 파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삶의 조각이 붕괴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 위에 건설될 ‘발전’이란 것을 기대하기에 니체는 그 자신부터 도덕을 무너뜨린 것은 아닐까?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두려움을 최소화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도덕 아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 세미나에 모인 선생님들 또한 새로운 도덕을 꿈꾸고, 타인의 기대 속에 사는 수동적인 삶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니체를 만나러 이 자리에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너 자신의 삶을 살라는 친구의 말을 회상했던 프라하님, 아이들을 키우신 후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시는 정화님,  자신의 믿음에 대해 고민하며 그 고민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시는 엇결님 등, 폐허에서 방황하지 않고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시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이 세미나를 만들어가며, 그것이 니체 세미나의 진정한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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