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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와 용병들

- ‘매수된 룸펜취급을 받던 민족들의 1848 혁명

 

 

 

라치 치카라 ,  『 저편에서의 세계사 』 ,  치쿠마 쇼보 , 1993( 초판은 미래사 , 1978), 336 쪽 , 1200 엔 + 세금 ( 良知力 ,  『 向 う 岸 からの 世界史 』 ,  筑摩書房 , 1993 

 

http://www.chikumashobo.co.jp/product/9784480080998/

 

 

 

 

 가게모토 츠요시

 

 

 

 

 

1.저자 라치 치카라에 대해

 

 

라치 치카라는 1930년생이며 85년에 사망했다. 원래 헤겔좌파 연구에서 시작하고 본서와 쌍벽을 이루는 파란 도나우의 난치기(きドナウの乱痴気)(평범사, 1988, 문고판1993)는 여전히 신간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48년 빈 혁명에 대한 책이다. 특히 파란 도나우의 난치기는 암으로 돌아가기 몇 일 전까지 구술로 작업한 책이며 빈 시민과 빈에 유입한 이민들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번에 소개하는 저편에서의 세계사는 빈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모은 자료를 통해 쓴 논문들이 수록된 책이다. ‘저편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사에 참여하지 못하다고 간주되던 동유럽의 민중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은 1978년에 간행되었다. 이 책이 간행된지 40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읽힌 이유는 이 책의 문제제기가 매우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이드 오리엔탈리즘또한 78년의 책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대위법적 동시대성을 보여준다. ‘저편에서 보면 어떻게 세계는, 역사는 달라질 것인가.

 

라치 치키라는 그 외에도 헤겔좌파와 마르크스 엥겔스의 관계에 대해 논의한 마르크스와 비판자 군상, 헤겔좌파와 초기 마르크스, 공동 번역으로 헤겔좌파의 논자들의 논문 선집인 헤겔좌파논총, 자료 초기 독일 사회주의등이 있으며 당연히 일어판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의 번역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 이름을 남기지 않는 민족들의 1948 빈 혁명

 

 

저편에서의 세계사의 첫 문구를 인용해보자.

 

세계사는, 때로 나에게의 세계사일 수 있으나 그에게의 세계사가 아닐 경우도 있다. 이때 세계사는 그에게 허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가 나에게의 세계사일 때, 나는 그 세계사를 담당함으로써, 혹은 담당하겠다고 자각함으로써 스스로의 현재적 존재가 보편적인 것이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 때의 나는 이미 나만이 아니라 나의 삶은 공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정신은 여러 고통을 겪어 인륜의 여러 규정을 통과하면서 극복하며, 이 현재로까지 도달했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사를 담당하겠다는 자각은 자연에 구속당한 협소한 에고이즘이 아니라 자유를 구하는 인류적 의지의 표현이며 인류 그것자체를 담당하는 민족의 영웅주의와 다름 아니다.”(18)

 

 

세계사에 관여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것은 세계사 없는 저편의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1848년 혁명의 주체인 이들은 저편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었다. 48년 혁명은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으로서의 성격도 가지지만 그 속에서 싸우던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48년 혁명의 성격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확인해야 한다. 4810월 빈 혁명이 오스트리아군에 포위되어 수 천 명이 희생되면서 패배했을 때 피를 흘린 자들은 비독일인들이었다. 빈 혁명은 의식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혁명’(149)이었다. 바리케이도 공방전에서 피를 흘린 것은 혁명 쪽에서는 프롤레타리아이며 반혁명 쪽에서는 크로아티아인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더러운 노동을 강요당한다. 그 중 가장 더러운 일은 빈 혁명 등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는 반혁명 용병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 여러 운동에 대한 탄압에서 더러운 일을 하는 게 하청업자 용역인 것처럼 말이다.

 

혁명 쪽이든 반혁명 쪽이든 그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혁명 쪽의 그들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은 신문에 남아 있는 사형판결문 속에서이다(272). 슬라브의 민중들, 10월 혁명 탄압의 용병으로 악명 높은 크로아티아의 빨강 망토 병사들은 확실히 반혁명의 용병들이었다. 그들은 매수된 룸펜프롤레타리아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용병이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안정적 재생산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없었다는 것이다(91). 이동하면서 도시 하층을 구성하는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것도 용병이 되는 것도 노동력밖에 팔 게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며 그것이 민족적 문제인 것이다. 민족문제를 배제하고 48년 혁명을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혁명 후에 독일 혁명가들이 강하게 가지게 된 사고를 우리도 재생산하고 만다. 즉 슬라브인은 배신한다는 혐오를.

 

역사 없는 민중이 역사 무대에 나타난다. 역사 없는 민중이 바야흐로 역사에 적극적으로 관여할지로 모른다. 역사라기보다 역사의 가치가 붕괴한 것이다. 역사를 담당했던 -- 그리고 또한 역사의 가치를 자각적으로 구성한 선택된 민중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역사에 대한 모독과 반동이다. 난세인지 혁명인지, 1848년의 유럽이 그것이다.”(52)

 

 

“48년 혁명에서의 소수민족이나 천민의 입장을 배제하며, 혁명을 부르주아적 요소의 폭발로서밖에 파악하지 않는, 혹은 파악하지 못한 역사가의 감각에 대해 불만스럽다, 아니 오히려 화가 난다.”(276)

 

이러한 저자의 지적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혁명가를 겨냥하는 것일까? 모든 독일 혁명가이며 그들 중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포함된다.

 

 

3.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구도의 너머에서

 

48년 혁명 시기 헤겔좌파의 혁명가들의 발상은 실제적이라기보다 이론적이자 세계사적이었기 때문에 뒤떨어진독일을 세계사의 일부로 파악할 수 있었다. 한편 그들은 독일의 저편, 즉 슬라브인들에게는 역사가 없다고 생각했다.

 

엥겔스는 슬라브의 여러 민족에 대해, 방치해놓으면 토키한테 침략당하며 이슬람이 되어버릴 터이니 그렇게 될 바에야 독일인이나 마자르인(헝거리인)이 흡수 동화해주는 것으로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다(53). 엥겔스는 48년의 오스트리아를 진보의 담당자(독일인, 폴란드인, 마자르인)와 몰락하는 사명을 가지는 슬라브인(체코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바키아인, 슬로베니아인, 루테니아인Ruthenian, 세르비아인, 왈라키아인Walachian)으로 나눠 논의한 바 있다(62). 엥겔스에게 러시아 증오는 독일인에게 처음으로 부여된 혁명적 정열로 긍정적인 것이었다(67). 왜냐하면 슬라브의 운동은 절대주의 권력과 반혁명적으로 유착할 수 있기 때문에 독일인은 이를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혐오해도 된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슬라브의 운동 속에서 유일하게 폴란드 독립투쟁만은 열렬히 지지했다. 그런데 이 또한 그들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자기스스로를 해방하기 때문이었다(88). 그리고 이러한 엥겔스의 발언들이 게재된 신 라인 신문의 편집장은 마르크스였다(마르크스 카테고리 사전, 青木書店, 1998, ‘1848년 혁명항목, 366).

 

마르크스 또한 48년의 빈 혁명의 배신자로 크로아티아인을 지명했다. 크로아티아인=매수된 룸펜프롤레타리아트가 사고할 줄 아는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섰다는 구도이다(61). 그런데 마르크스는 빈의 바리케이드 내부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슬라브민족의 민중을 놓쳤다. 슬라브인은 빈에 흘러온 이주노동자들이었으며, 빈 시민들한테 항상 멸시된 존재였다.

 

빈 혁명은 184810월에 수 천 명의 프롤레타리아가 살해되면서 끝나는데, 그 이전 시기 487-8월경에 마르크스는 빈을 방문했다. 마르크스는 빈 혁명이 단지 시민혁명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이기도 하다는 점을 감지했다. 마르크스가 일찍 독일적 빈곤이라고 했던 구도는 오스트리아에서는 더욱 해당되었다. 산업이 없기 때문에 산업예비군은 영원한 예비군이었다. 혁명 시기, 빈에는 설탕을 향하는 개미처럼 비독일인들이 유입했다. 그들이 빈 혁명의 프롤레타리아들을 구성했다. 베를린의 1848년과 마찬가지로 공공사업이 시작함에 따라 품팔이의 자리를 찾아 이주민들의 유입이 계속 늘어났다. 빈 시민들은 그들을 게으름뱅이취급을 했다. 시민들은 빈 외부에서 유입한 이들을 쫓겨내려고 했으며 유입한 자들은 빈 내부에서 빵집을 습격하는 등 소동을 일으켰다. 혁명 빈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대립은 유혈사태까지 상승했다. 물론 프롤레타리아는 살해당하는 쪽이었다. 혁명 빈에서는 노동자에게도 선거권을 준 보통선거를 했음을 선전했지만 프롤레타리아를 분할하며 날품팔이와 공공사업노동자를 배제한 위에서의 선거였다.

 

맑스과 엥겔스의 한계를 지적하기는 쉽다. 그러나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그 구도를 모르는 사이에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하면서 마르크스=엥겔스적인 구도에서밖에 1848혁명을 볼 수 없는 이들에게 경고한다.

 

사회주의의 토대가 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원래 도시공동체로서의 시민사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민사회 외부에서 게다가 시민사회에 사는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그야말로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시민사회의 외각에 살기 시작했다. 서구적 시민사회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을 가지고 얼음처럼 차갑게 등에 붙어오는 이 유령에 경악한 게 아니었는가.”(307)

 

“1848년 빈 혁명은 프롤레타리아의 피를 내포한 폭력적 민주주의혁명이다. 슬로건은 부르주아적이다. 그러나 그 글씨는 프롤레타리아의 피로 쓰여졌다. 따라서 빈 혁명의 역사는 하층민의 시체 위에 세워진 기념비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빈 혁명의 슬로건은 독일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독일인에 의한 독일혁명임을 욕구했다. 그러나 하층민은 혈통 같은 것에 인연이 없다. 사실 빈 혁명은 적도 아군도 비독일적인 슬라브의 피에 칠되었던 것이다. ‘서구적독일의 역사가(歷史家)가 보려고 하지 않는 사실에야 말로 우리 관점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148)

 

2019년 현재는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말에 금언처럼 기댈 수 있는 시대가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한때 그들의 민족차별적인 인식까지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수용하면서 그들의 구도에 따라간 역사인식이 있었다. 이 책은 이름 없는 존재들의 흔적을 하나씩 모아 내어 그러한 인식에 대해 내재적으로 시도된 비판이다. 일본의 마르크스학의 여러 성과들을 읽어나가는 의미는 이렇듯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선 작업들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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