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몽동X번역기계] 시몽동과 빅데이터 - 마지막

수유너머웹진 2016.09.30 08:50 조회 수 : 0

시몽동과 빅 데이터 #마지막

 


 

Simon Mills(De Montfort University), Simondon and Big Data, Journal of Media and Communication vol. 6, "Simondon: Media and Technics"  

 


 

 

번역: 최유미 (수유너머 N 회원)


 

 

 

 

 

 

 

 

목적론(Teleology)

 

새로운 사회학을 위한 펜트랜드의 제안은 사이버네틱의 전통 속에서 작동하는 다른 것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펜트랜드는 목적론과의 관련을 간과한다. 시스템과 관련된 목적에 대한 이해가 이 작업의 상당부분에서 얼마나 중심적인지를 참작할 때, 그러한 간과는 유감스럽다. 베니거(Beniger)가 제어 과정들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프로그래밍을 구분했다는 것은 이미 언급되었다. 프로그래밍의 문제 또한 스태포드 비어(Stafford Beer)가 자신의 VSM과 관련하여 씨름하던 것이다. 그의 비전은 사회 시스템이 사회집단으로부터의 피드백을 통해서 스스로 결정한 자발적인 최종결정에 대하여 능동적인 적응을 떠맡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어는 이 최종결정을 “eudemony" 혹은 소셜웰빙이라고 불렀다.(Pickering, 2010, p. 272) Beer에게 있어서, 그 목표는 집단적으로 사회적인 적용을 결정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사이버네틱으로 강화하는 것이었다.

 

사회물리학에서는 그런 최종결정의 현존이나 요구는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주장되는 것은 사회의 습관적인 성질에 관한 거의 실재론자적인 이해다: “사회물리학은 인구집단, 즉 거의 모든 사람, 거의 모든 시간에 해당하는 사실에 걸쳐진 통계적 규칙성들에 근거한다.” (Pentland, 2014, p. 189) 내가 이미 논증한 것처럼, 그런 실재론자적인 정식화는 사회의 과목적성이라는 모호한 상태로 인도한다. 그러나 추가적으로 그것을 향해서 사회적 적응들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목표들의 생산의 문제에 맞서는데 실패한다.

 

시몽동(2001, p. 119)도 또한 자기 조절적인 시스템에서의 목적론에 관심을 두었다: “자기-조절 기능에서, 모든 인과성은 최종결정에 대한 감각(sense)을 가지고, 모든 최종결정은 인과성의 감각(sense)을 가진다.” 여기서 감각(sense)”라는 말의 사용은 (감각의) 방향뿐만 아니라 의미론적인 것도 가리키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시스템들에 목적이 적용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과목적론과 규범성의 위험을 무릅써야할 것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 개체화가 실재성의 새로운 레벨을 창조한다는 인식인데, 실재성의 새로운 레벨은 반복적인 인과성이 그것들 자신의 미학적이고 가치론적인 고려를 요구하는 창발적이고 일관성 있는 경향성을 가지는 통일체들(unities)로서 작동한다. 시몽동은 그 자체로서 개체화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에 그것들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그들의 발전과 조절의 양식을 추적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기술철학은 전통적 문화가 창발적인 기술 사회적인 개체화들에 부적절한 가치를 어떻게 부과했고 그래서 갈등을 일으켰는지에 관심을 두었다.

 

시몽동(2014, p. 317)은 문화를 기술 발전에 뒤떨어진 가치들의 저장소로서 이해하는데, 전통적인 가치는 기술의 발전에 무관심하다. 그 자체로서, 문화는 기술적 수단의 사용을 계획하고, 기술의 자유가 진화하는 것을 훼방한다는 점에서 시몽동이 노예제의 조건이라고 서술하는 것을 기술적 수단에 부과한다. 따라서 현재의 가치 코드가 최종적이라고 하는 가정은 기술을 길들이는 목적의 지배”(같은 책)를 규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봐 온 것처럼,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인식의 도식및 이것과 더불어 새로운 가치론적 내용의 기회를 가능하게 한다. 빅 데이터 또한 그 자체는 용인된 가치들에 도전할 새로운 기술적 진보로서 인정되어야 하고 (펜트랜드는 이미 프라이버시를 논쟁의 지대로서 확인했다) 사회적인 규칙을 통해서 수립된 문화적 가치들을 부과하는 중립적 수단으로서 보다는 그 자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인 것의 새로운 상상의 산물뿐만 아니라 새로운 필요와 욕망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환경의 변형을 구성한다.

 

비록 이것이 시몽동의 입장의 주해이지만, 빅데이터 사회학이 연구 대상의 감각(sense)에 관한 문제에 대처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는 데는 충분하다. 연구대상의 감각(sense)은 사회 시스템들의 목적이 기술적 발전과 관련해서 어떻게 예언되는지(가치론적 문제), 어떤 더 없이 중요한 의미에 관해서 데이터가 질문되는지(인식론적 문제) 양쪽의 결합된 의미에서다.

 

편향된 이론들이나 가설의 필요 없이 데이터가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 자동적으로 그것의 비밀들을 드러낼 것이라는 앤더슨(Anderson)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펜트랜드는 수집하고 있는 데이터에 그 자신의 존재론을 부과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채택된 인식론적 프레임워크들 속에 목적이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의 사이버네틱 전통을 감안할 때, 펜트랜드의 사회존재론이 은연중에 테크노크라트적인 자유주의를 홍보한다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다. 모버트위너(Norbert Wiener)의 원래의 프로젝트도 또한 자유주의적인 휴머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테크노크라트적인 배움과 불편한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결론 (Conclusion)

 

일부 사람들이 빅데이터에 대해 만들어내고 있는 다소 상대적인 결정론적인 시스템들의 이해와 효율을 돕기 위한 주장들을 기각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표는 아니었을지라도, 우리는 빅 데이터가 사회를 이해하고 관리하기 위한 새롭고 보편적인 방법을 제공한다는 주장들의 몇몇에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다.

 

요컨대, 우리는 사회물리학이 일종의 사이버네틱 세계관의 전개라는 점을 주장하고 그 자체로서 이 분야에서의 이전의 작업, 특히, 시몽동에 의한 사이버네틱의 재작업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온당할 것이다. 우리는 빅 데이터가 사회시스템들의 상호간 그리고 환경과 갖는 관계들의 범위와 성질의 중요성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연관 밀리우와 전-개체에 의해서 매우 잘 포착된다. 게다가 적응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한계가 인식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렇게 통제되는 사회가 과목적적이게 되지 않으면, 조절되고 있는 어떤 시도도 좌절시킬 것이기 때문에 시스템들을 발명으로 인도하는 변화하는 환경과 통합이 위기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사용된 인용에서, 펜트랜드는, 빅 데이터 그 자체가 사회의 상전이를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현상에 대한 인식은 환영 받을 것이긴 하나, 요점은, 그런 전이는 어떤 비결정론의 개입을 의미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정의상 사회물리학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데이터는 시몽동의 의미에서는 정보가 아니다. 빅 데이터는 준안정성과 공명에 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비어(Beer)도 또한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를 조절할 능력은 대규모의 데이터베이스 그 이상을 요구한다. VSM과 관련한 비어(Beer) 자신의 문제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복잡한 규칙적인 인과적 루프 속으로의 개입은 어느 것이나 그 자체가 시스템 속으로 피드백 할 것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우리는 그 자체가 새로운 개체화들과 가치들을 생산할 새로운 기술적 발전으로서의 빅데이터의 현사실성(facticity)에 또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것은 시몽동주의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기술적인 정신성 (technical mentality)이다. 때때로 펜트랜드의 프로젝트에서 그의 확실성은 미끄러지고, 그가 실제로 다루고 있는 인식론에 관해 구성주의자적 성질을 인정하는데, 그것은 이론의 날들은 끝났다는 앤더슨의 확신에 훨씬 못 미친다:

 

 

이들 데이터는 많은 경우에 간접적이고 잡음이 섞여 있어서 해석에 평소보다 더 많은 주의를 요구 한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디어들을 테스트하고 증명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실험실들- 사물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을 기꺼이 시도하는 공동체들 혹은, 험하게 말해서, 기꺼이 모르모트가 되려는 공동체들 - 을 구축해야 한다.

 

 

 

빅 데이터를 사회적인 항상성(homeostasis)을 조절하는 수단으로서 강매하는 대신에, 빅 데이터가 어떻게 사회 발달의 새로운 지향들을 구성할지에 관해서 질문되어야 한다. 이 입장과 빅데이터가 결국은 사회학을 위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초를 준다고 보는 입장 사이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정말 위기에 처한 것은 새로운 심리-사회적 개체화들로 이끌 새로운 실천들, 인식론들, 그리고 기술-사회 집합(techno-social assemblages)이다. 시몽동은 우리에게 심리-사회의 생산에 있어서의 그것들의 역할뿐만 아니라 그런 프로젝트들을 위한 존재론의 중요성도 더 분명하게 보는 방식을 제공한다.

 

 

References:

 

Pickering, A. (2010) The Cybernetic Brain: Sketches of Another Futur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entland, A. (2014) Social Physics: How Good Ideas Spread – The Lessons From a New Science. Melbourne: Scribe Publications.

 

Simondon, G. (2001) 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 Paris: Aubier.

 

Simondon, G. (2014) Sur la technique.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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