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뚱보들: 뚱뚱한 사람도 중요하다![part 2]

수유너머웹진 2014.12.15 14:00 조회 수 : 3

급진적 뚱보들: 뚱뚱한 사람도 중요하다!

Radical Fatties: Fat People Matter!

 by Tina Phillips

 

 수유너머N 번역세미나팀

(정리 : 아샤/수유너머N 회원)

 

아래의 글은 The Socialist 미국 웹사이트에 실린 Tina Phillips의 Radical Fatties: Fat People Matter 후반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나머지 부분은 추후 계속해서 올릴 계획입니다. 이 글의 원문은 http://www.thesocialist.us/radical-fatties-fat-people-matter/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진출처: http://www.thesocialist.us/radical-fatties-fat-people-matter/)


[Part 1 보기] -> 클릭



[Part 2]

 

뚱뚱함의 교차점들

 

최근 어렸을 때와 청년 시절에 쓴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 모든 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살을 빼려고 절박하게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나는 뚱뚱한 사람들은 사랑받을 수 없고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믿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내 머리 속에는 나는 절대 연애를 할 수 없을 것이며, 내가 뚱뚱한 이상 아무도 나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이점을 깨달았을 때 나는 훨씬 더 행복한 사람이 되었고 진실로 내 자신을 좀 더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사랑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나는 내 자신이 뚱뚱한 동시에 건강할 수 없다고 믿었었지만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뚱뚱함에 대한 저항을 내려놓음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해방감과 자유를 맛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그야말로 뚱뚱함으로부터 해방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뚱뚱함으로부터의 해방은 퀴어 해방과 교차점을 가진다. 많은 면에서 퀴어의 투쟁과 뚱뚱한 사람들의 투쟁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이에 대해 애나 몰로우가 쓴 훌륭한 글이 비치 매거진에 실린 적이 있는데 그 제목은 다음과 같다. “사이즈 업: 뚱뚱함은 왜 퀴어적이고 여성주의적인 문제인가” 이 글은 이 두 공동체가 어떻게 낙인과 차별, 수치심을 직면하고 있는지 그리고 뚱뚱하거나 퀴어인 것은 건강하지 못한 것이고 스스로가 한 선택이며 질병이라는 생각에 대면하고 있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 글은 뚱뚱함을 근절하기 위해 현재 어떤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다루면서 이것이 과거 게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과 어떻게 유사한지를 밝히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게이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뚱뚱함에 대한 공포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특히 게이 남성들은 서로에게 점점 더 가혹해지고 있다. 마르면서 근육질의 몸을 가져야 한다는 압력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들이 겪는 사회적인 거부는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동성애자로서 경험하는 사회적 배척을 상대하는 것만 해도 벅찬 마당에 몸매가 나쁘다거나 “못 생겼다”는 이유로 데이트 상대나 삶의 동반자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은 퀴어들의 투쟁을 더욱 버겁게 만든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퀴어 공동체가 외모나 매력에 대한 이런 제한적이고 협소한 생각들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뚱뚱함은 또한 인종 문제와도 교차한다. 질병관리본부(CDC)에 따르면 흑인과 라틴계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체중이 더 많이 나가는데 그 비율은 각각 47,7% 그리고 42.5%이다. 유색 인종은 환경적 인종주의로 인해 고통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들의 공동체에는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혹은 운동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같은 것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유색 인종은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하는데 가난할수록 그 지수는 더 높다. 그리고 유럽-아메리카인에 비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도 불균형적으로 낮다.

 

뚱뚱함은 또한 여성주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나 여성들은 날씬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사회적 압력과 맞서 싸우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은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도달하기 꽤 어려운 것이지만 바로 그 점이 중요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 완벽함에 대한 사회-문화적 구조에 부응하기 위해 여성들이 벌이는 악전고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에 대한 압박과 불가분의 관계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짓 패러다임지지만 자본주의 메커니즘은 광고, 미디어, 연예사업 등을 통해 모든 곳에서 그 패러다임을 강화시킨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아주 거대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뚱뚱함에 대한 히스테리를 받아들이고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을 들여 스스로를 “고치고” 그에 대한 승인을 받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외부로부터의 승인을 구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뚱뚱함에 대한 선전을 통해 팔리는 제품들은 여성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자신에 대해 나쁜 감정을 느껴야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그 제품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뚱뚱한 남성보다 뚱뚱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더 심한데 그것은 “아름다움”(날씬함)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높게 잡혀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에게 힘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그들은 자신에게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세상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곧 그들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억압적 사회·경제적 구조에 저항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그 안에 가두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동시에 이러한 자본주의는 가부장제를 떠받들어 남성의 권력과 여성에 대한 통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결국 뚱뚱함에 대한 억압은 이 체제가 작동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또 하나의 도구인 것이다.

 

우리가 뚱뚱함에 대한 히스테리를 거부해야 하는 이유

 

사회주의자로서 우리가 뚱뚱함에 대한 히스테리를 거부해야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존엄성과 자존감, 자기 결정권과 개인의 해방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위계적 사회를 근절하고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지 주류 사회가 “규범”이라고 여기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타자”로 느끼게 만드는 것을 멈춰야만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적 규범이 어디에서 오는지 질문하고 사회적 통제에 저항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기업도 인간의 삶을 해지면서까지 이윤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느껴서는 안 되며 어떤 임의적인 범주에 속하기 위해 사회가 “좀 더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하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뚱뚱한 사람에게도 정체성이 있으며 그 정체성은 지켜지고 존중받아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뚱뚱한 사람들이 단순히 뚱뚱한 신체에 갇혀 빠져나오기 위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마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존중한다. 뚱뚱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뚱뚱한 사람-일 뿐이다.

 

사회주의자 그리고 여성주의자로서 우리는 뚱뚱함에 대한 낙인과 내재화된 억압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줘야 한다. 이는 수치심-그리고 비난-을 근간으로 하여 이윤을 남기는 산업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이즈를 포함한 모든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듦으로써 그리고 뚱뚱함에 대한 혐오를 퍼뜨리는 사람들을 차단함으로써 뚱뚱함에 대한 불안, 몸무게에 대한 극심한 공포, 사이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뚱뚱함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이슈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건강할 수 있도록 도우려면 우리 사회가 사회주의를 향한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전환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 의료 보장 제도, 공적으로 소유되고 통제되는 보편적 의료 보험 제도를 지지하는 것도 뚱뚱함에 대한 과대 선전과 히스테리를 거부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뚱뚱함에 대한 선전이 떠들어대는 병리학을 무턱대고 믿기보다는 건강한 신체를 만들기 위한 좀 더 포괄적이고 수용적인 방법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한 예로 린다 베이컨 박사(베이컨 박사는 그 자신이 체중에 대한 집착을 극복해낸 연구자이다)가 개발한 모든 체격에 관계없이 건강하게 사는 방법(HAES)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베이컨 박사의 HAES는 누구나 자신의 사이즈에 관계없이 건강을 위해 노력할 수 있으며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하지 않아도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운동이다.

 

뚱뚱하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뚱뚱한 것은 질병이 아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뚱뚱한 것은 경멸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니다. 뚱뚱한 사람은 통제되거나 제한을 받아야 할 대상도, 뚱뚱함에 대한 일종의 학살에 의해 절멸되어야 할 대상도 아니다. 뚱뚱한 사람들도 다른 이들과 같은 그냥 사람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우며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뚱뚱함-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사랑한다. 나는 뚱뚱함을 긍정하며 비만공포증과 뚱뚱한 사람에 대한 차별을 거부한다. 나는 뚱뚱함을 수용하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용감하게도 뚱뚱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자신들의 권리, 즉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권리, 자기 자신과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뚱뚱함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해 맞서 싸울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모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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