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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강 여섯 번째 강의





녹취 및 정리: 황호연 / 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정화스님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강의는 총 5회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한 강 한 강이 한 편의 글이 되기에는 매우 긴 편이라, 독자분들이 보기 편하시도록 세분하여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이번 글은 정화스님 강좌 2강의 여섯 번째 부분임을 알려드립니다. 참고로, 이 코너의 앞에 업로드된 첫번째 ~ 다섯번째 강의는 1강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올린 것 입니다. 








*정화 스님께서 강의 교재로 사용하신 책은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백석현 옮김, 야그 출판사, 2007년)입니다. 현재 절판되었고, 이 책을 개정해 다른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 있습니다.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박성현 옮김, 심볼리쿠스 출판사, 2012년)입니다.

*강의를 직접 들으신 분들은 Ⅰ.『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와 Ⅱ.『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정동호 옮김, 니체편집위원회 감수, 책세상 출판사, 2000년), 그리고 그 외 번역본들 중 편한 것을 참고하셨습니다.

*녹취록에서는 강의 중에 언급된 위 책 두 권(Ⅰ,Ⅱ)의 해당 부분을 스님이 말씀 하신 것을 참조하여 재구성해서 옮깁니다. 페이지 표시는 가독성을 위해 옮긴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만 하였습니다.

* 페이지 표시의 예: Ⅰ번 책의 36쪽, Ⅱ번 책의 38쪽은 아래와 같이 표기합니다. -> (Ⅰ:36, Ⅱ:38)



(전편에 이어 계속)


그 다음에 다섯 번째 장입니다. (:56, :55)기쁨과 정열이라는 장입니다. , 우리는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고 그 미덕에 이름을 붙이면서 이것이야말로 궁극적인 무엇"이라고 말합니다. ‘이름 붙이기"입니다. 이름 붙이기. 그런데 처음에는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이름을 붙이는데, 한참 지나면 이름이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이름이 우리를 지배하는 순간 우리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고 합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이름을 만들어가는 것은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가도 비상도"라고요. 노자의 책의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거지요? ‘명가명 비상명." 도에 대해서 무리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도라는 것이 각자마다 다른 양상으로 그 도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 도를 실현할 때 항상 외부와 조율을 합니다. , 이런 손톱은 손톱의 도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피부는 피부의 도를, 피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피부 속에 들어있는 정보나 손톱에 들어있는 정보나 다 똑같다고 합니다. , 60조개나 되는 체세포의 모든 정보는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는 손톱이 되고 저기는 피부가 되냐 하면, 이것들이 상호 위치하면서 저이는 손톱이 될 테니까 너는 피부가 되렴."하는 식으로 안에서 역할을 분담하며 조절하는 유전자가 중매쟁이처럼 함께 작용하면서 그 줄을 타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에 손톱을 가지고 다시 피부가 되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실험적으로 자유자재로는 안 되지만 가능하게는 됐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런 상태의 역할을 할 때는 손톱이 손톱의 도이지만, 다른 양태가 되면 지금 손톱이 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손톱의 도가 피부의 도로 바뀝니다. 어느 한곳에 오랫동안 그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이야말로 변함없는 도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도라는 것은 이름 붙여서 도라고 말할 수 있어도 그렇게 붙여진 말처럼 항상 그렇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노자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런 것을 딱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이름"도 이름을 붙여서 뭐라고 하는 거지만, 이름 또한 ""와 똑같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손톱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손톱이라는 역할 상에서만 그렇게 이름 붙여 주는 것이지 다른 길로 들어서는 순간 이미 그 이름은 연속성을 갖지 않은 것처럼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의 활동을 주역에서는 일음일양위지도(一陰一陽謂知道)라고 부릅니다. 한번은 음이 되고 한번은 양이 되는 것을 일러 우리는 도라고 말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태극기를 보면 건괘와 곤괘가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것이죠? 건괘를 보면 음이 하나도 없습니다. 곤괘를 보면 양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역의 64()를 지나면 이 다음순간에 어디선가 갑자기 음이 나타나서 이런 상태로 변합니다. 어디선가 양이 나타나서 이런 식으로 변합니다. 순양인 것처럼 보이는데, 순양은 순양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 속에 음을 보이지 않는 식으로 가지고 있고, 순음이라고 생각했던 곤괘에는 순음만 있는 게 아니고 묘하게 양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에 보면 다시 양과 음을 받아주면서 자기를 변화시킵니다. 어느 한 가지가 궁극에 이르면 다른 상태로 변해가는 것이 사건의 진실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 붙여질 때 그 이름이 아주 유용한 상태로 쓰이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름이 변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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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야말로 이 책에서는 ""이라고 합니다. 땅이라는 것은 대단히 풍부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사방 1cm정도의 면적으로 아주 좋은 흙을 들어서 그 속의 미생물들을 세어보면 수억 마리 정도의 생물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땅이 흙이 아니라 온전히 생명체의 덩어리라는 겁니다. 이 땅 속에 들어있는 미생물들은 흙들과의 관계망을 잘 만들어서 거기에 뿌리가 내려오면 에너지가 뿌리 속으로 들어가서 나무가 잘 크게 만듭니다. 나무가 잘 크게 만들어주면 나무는 밑에서 오는 자양분만 받아먹고 그냥 두는 게 아니고, 햇빛으로 이 빛을, 뿌리를 통해서 흙으로 보내줍니다. 그래서 나무와 흙과 태양이 함께 잘 순환하면서 살기 좋은 곳을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료를 계속 주기 시작합니다. 이 비료를 계속 주기 시작하면 뿌리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별로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미생물들도 뭔가 이상하다."고 해서 흙이 생생한 생명력을 상실해갑니다. 아까처럼 생생한 생명력으로 살아가면 음식으로 치면 좋은 발효가 일어나서 우리 삶에 굉장히 유용한 것이 되는데, 반대로 그런 생명체가 사라지면 부패해서 썩은 것처럼 됩니다. 냄새나는 흙이 되거나 향긋한 흙이 되는 것, 이 땅 냄새의 미덕이 니체가 사랑할 미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미덕은 깊은 생각에 들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에는 남들도 같이 할 만한 지혜 따위는 더더욱 없습니다. 제 생각 따위에는 여러분이 함께 할만한 지혜가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지혜는 여러분의 몸에 고스란히 갖춰져 있고, 그것이 24시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재잘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미덕은 작은 새 같죠. 살다보니까 제 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었네요. 그래서 사랑하게 되었고 아끼게 되었을 뿐이죠."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안에 둥지를 튼 작은 새처럼 땅의 미덕은 어느 순간 그렇게 있으면서 나에게 사랑을 주는 그런 것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덕을 추구하면서 삽니다. 이때의 미덕은 만들어진 언어 속에 들어있는 미덕을 말합니다. 그 미덕 중 가장 큰 것이 사실상 여기서는, 약간의 종교적 미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미덕을 갖춘다는 건 뛰어난 일이지. 하지만 가혹한 운명이야. 우리 지구상의 인류는 많은 미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미덕들이 질투가 심합니다. 그래서 이 질투가 한번 탁 부딪히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오랜 시간동안 지속된 전쟁의 미덕. 그것은 굳건한 종교 사상 등의 대립적 가치입니다. 이런 대립적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영역인데, 땅에 있는 생명체들이 함께 있으면서 새처럼 노래 부르고 사랑을 이끌어내는 것을 잃어버린 미덕입니다. 말로는 미덕이지만 실제 미덕은 다른 미덕을 질투하는 미덕이 되고, 질투는 무서운 미덕이 되어 나중에는 미덕조차 파괴하게 됩니다. 만들어진 이미지로 갖추어진 미덕은 궁극적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생명조차도 파괴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짜라두짜는 이렇게 깐죽거립니다. ‘자네는 미덕을 사랑해야해. 그래서 그 미덕을 위해 파멸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미덕을 숭상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미덕에 의해서 파멸만을 보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몸이 가지고 있는 만들어지면서 동시에 그것을 해체하고 있는 관계성의 지혜 속에서 자신의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는, 파멸되지 않는 그런 미덕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짜라두짜가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두 다 미덕에서 미덕을 떠나면서 그 속에서 생명의 힘으로 가면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2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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