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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코너는 근간 예정인 이진경 선생님의 [파격의 고전] 원고 중 일부를 출간 전에 미리 보내드리는 코너입니다.



<이진경의 "파격의 고전">






2장 구미호와 인간의 대결, 혹은 변신술의 유형들





이진경




첫 번째 부분에 이어 계속 (첫 번째 부분 보기)




3. 인간화된 동물과 인간을 침범하는 동물


<왕수재전>는 용왕의 아들과 구미호라는 두 인물의 싸움을 통해, 변신이 쟁투의 영역임을 보여줍니다. 누가 무엇을 두고 싸우는 것인가? 용왕의 아들와 구미호가, 용왕 아들이 사는 ‘집’을 두고 싸웁니다. 용왕도 구미호도 모두 동물인 동시에 인간으로 변신하는 동물입니다. 즉 인간과 동물의 중간에 있는 존재고, 인간과 동물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구미호와 용, 양자는 어떻게 다른 걸까요? 돌다 동물이면서 또한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동물이란 점에서 동일한 듯 보입니다. 그런데 왜 이리 다르게 다루어지며, 또 이들은 서로 무엇을 두고 싸우고 있는 것일까요?


둘 다 다른 이야기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고, 원래 동물인데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다는 점에서 같지만, 용왕의 아들은 원래 용이긴 하지만 ‘왕’이라는 지위를 갖고 그 휘하에 신하를 부리는 존재입니다. 용궁이나 수궁이라는 독자적 ‘세계’를 갖는데, 그 세계는 인간세계와 일정한 상응성을 갖는 인간화된 세계입니다. 반면 구미호는 ‘세계’를 갖지 않습니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 ‘빈곤한 세계’를 갖고 있습니다.[각주:1] 구미호는 대개 홀로 나타나는 고립된 존재로 서술됩니다. <왕수재전>에 등장하는 구미호는 매우 특별하여, 화려하게 차린 시비(侍婢)들을 데리고 나타나지만, 모두 새끼여우들을 변신시킨 것으로, 구미호가 죽자 모두 동시에 죽습니다. 즉 구미호가 속한 독자적 ‘세계’가 아니라, 구미호에게 속한 것들, 구미호 신체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용왕의 아들인 용은 그렇게 인간들처럼 조직되고 안정된 위계나 체계를 갖지 않는 구미호와는 아주 다른 존재입니다. 즉 용왕이나 그 자식은 나름의 ‘세계’를 갖고 있는, 이미 충분히 인간화된 동물입니다. 



용왕은 용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용왕이 인간 세계의 연장이며 인간화된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한국 콘텐츠 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2&cp_code=cp0224&index_id=cp02240112&content_id=cp022401120001&search_left_menu=2)



따라서 용왕의 일족은 굳이 인간화되려고 할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애초부터 충분히 인간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용궁이란 인간의 세계에서 수중의 동물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원래 동물세계란 인간이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용궁이란 이 알 수 없는 세계를 인간화된 동물을 통해 인간의 관점에서 포착한 세계입니다. 즉 원래는 알 수 없는 수중의 세계, 동물의 세계를 인간의 눈과 귀로 포착하여 인간적 관점에서 장악할 수 있게 해주는 영역입니다. 『금오신화』의 <용궁부연록>은 인간이 용궁에 가는 얘기인데, 거기에서 용왕은 자기 딸을 위한 궁의 ‘상량문’을 짓기 위해 한생을 용궁으로 불러들였다고 말합니다. 인간인 한생이 지은 상량문을 궁전에 붙인다 함은, 그들의 집 자체를 인간의 가치와 관념으로 채색함을 뜻합니다. 용궁의 다른 신과 게나 거북이 같은 신하들이 모여서 잔치를 벌이고 노는 방식 또한 당시 인간들이 하듯이 시문을 짓고 가무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과 다른 것은 없으며,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충분히 인간이 아는 범위 안에서, 인간이 하는대로 행동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변신한 존재고, 또한 다른 변신의 능력을 갖는다고 해도, 거기엔 불안해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한생이 용궁을 두루 구경하지만 “다 볼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확실히 ‘다른 세계’임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돌아가려 해도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안내자’가 있어서 안전하게 원하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용궁이란 다른 세계지만, 안내자가 있는 세계고, 인간화된 왕과 신하들의 호의에 의해 구성된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는 인간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인간의 눈으로 포착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반면 구미호가 사는 세계는 이와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입니다. 구미호에게는 ‘세계가 없습니다’. 구미호는 대개 홀로, 혹은 한 둘의 시종을 데리고 등장합니다. 드물게 <왕수재전>처럼 구미호가 변신한 다른 인물들을 동반하는 경우에도, 이들은 ‘용궁’이나 천계와 같은 ‘세계’를 갖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구미호는 언제나 고립된 존재입니다. 세계를 갖지 않는다 함은, 구미호의 행동이나 행적을 포착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어떤 안정적인 틀을 갖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구미호는 언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어디서 무엇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구미호는 인간의 눈에 들어왔어도 사실상 눈 바깥에 있는 존재고 인간의 예측이나 예상을 벗어난 존재입니다. 공포와 불안의 대상인 것입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다가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떤 서사에서도 구미호가 용왕처럼 시문을 짓고 상량문을 부탁하는 식의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개 ‘어둠’으로 묘사되는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슬그머니 다가와, 인간을 ‘홀리는’, 다시 말해 인간의 것이 아닌 감각이나 관념으로 인간을 사로잡는 두려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세계의 바깥으로부터 인간계 안으로 침투하려는 자들이고, 동물적 힘에 의해 인간세계의 질서를 교란하려는 자들입니다. 구미호에 대한 이런 식의 태도는 그런 존재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의 표현이고, 구미호의 능력에 대한 묘사는 그런 것들이 갖는 능력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의 표현입니다. <왕수재전>라는 작품이 탁월한 것은, 보통은 두려움과 불안을 억지로 감추기 위해 흔히 저급하고 대단하지는 않은 것으로 묘사되는 구미호의 능력을, 더 없이 강력한 것으로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의 것과는 다른 청아한 음악, “귀신이 되었다간 인간이 되고,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게 하며 앞에 있는가 싶으면 어느새 뒤에 가 있는” 능력, 왕수재로 하여금 활을 쏠 수 없게 만든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달처럼 고운 자태,...위엄있는 의장(儀仗)”, 그리고 “한 번에 백 발의 화살을 쏜다 한들 한 손으로 막아낼” 능력 등등(175~177). 천년 가까이 섬에 살며 수련을 했다는 용왕 아들조차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이는 인간의 꿈과 소망이 섞여 만들어진 최대치의 인물마저 초과하는 동물적 능력입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 자연의 능력을 뜻하는 것일 겁니다. 자신들이 알 수 없는 외부의 힘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존재일 것입니다.




요컨대 용왕의 아들이 인간화된 동물의 형태로 자연이나 동물을 포착하고 장악할 인간의 능력을 표현한다면, 구미호는 인간의 세계로 침투해 들어오는 동물의 능력을, 인간의 시야나 예측을 벗어난 동물적-자연적 변화의 능력을 표현합니다. 용왕의 아들과 구미호의 대결은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 ‘세계’와 그 외부가 뒤섞이는 지대에서 벌어지는, 상반되는 두 능력의 대결입니다. 하나는 인간의 상상과 관념이 동물의 형태를 통해 인간세계의 바깥을 향해 밀고 확장되어 가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인간의 관념 바깥에 있는 동물이 인간의 세계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전자가 인간이 실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인간의 감각과 관념 안에 두려는 시도요, 통상은 적절한 자리를 할당할 수 없었던 것에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할당하려는 시도라면, 후자는 인간의 지각이나 관념이 파악/장악하지 못한 어떤 예측불가능한 것이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계 안으로 밀고 들어와 그것을 교란시키고 와해시키려는 시도를, 그런 시도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용왕이란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동물인 용일 뿐 아니라, 인간이 제공한 왕의 자리에 들어앉아, 수궁의 다른 동물들로 하여금 ‘제 자리 있게 만드는’ 통치자라면, 구미호란 통상의 여우와 달리 인간이 부여한 동물의 자리를 이탈한 여우, 그래서 여우이기를 중단한 여우인 것입니다.[각주:2]

 

그렇게 주어진 자리에서 이탈한 여우가 문제인 것은 그가 천 년간 살던 노인의 집을 빼앗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집이란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요 인간의 ‘존재가 거하는 장소’입니다. 고향을 뜻하고 세계를 뜻합니다. 인간의 집을 빼앗으려 한다 함은 여우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려 함입니다. ‘협박과 회유’ 없이는 왕수재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할 수 없었음에도 용왕 아들의 변신을 속임수라 하지 않고, 청아하고 고상한 음악과 함께 천변만화의 탁월한 능력을 구사하는 구미호의 변신을 속임수라고 한다면, 이는 변신술과 능력이 인간 자신을 겨눌 때에만 ‘속임수’라고 말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즉 이 ‘속임수’란 말은 인간의 눈, 인간의 지각능력을 초과한 변신술을 인간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비난’하는 말인 것입니다. 







  1.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세계-내-존재와 대비하여, 동물이란 "세계의-빈약함"으로, 바위 같은 사물은 "세계-없음"으로 특징짓습니다(하이데거, 2001: 325~344). 식물은 어떠한가는 접어둔다해도, 이는 사실 동물에 대한 매우 인간중심적 통념의 산물입니다. [본문으로]
  2. 푸코는 통치란 ‘사물들의 올바른 정렬’이라고 정의합니다(Foucault, 2012). 이는 랑시에르 식으로 말하면, “있어야 할 것이 제 자리에 있도록 관리하는 것”입니다. 이를 랑시에르는 ‘치안’(la police)이라고 명명합니다. 반면 주어진 자리에서 이탈하고, 주어지지 않은 몫을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la politique)라고 봅니다(Rancière, 2008; 이진경, 2009).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어진 자리에서 이탈하려는 구미호야말로 ‘정치’를 가동시키는 ‘정치적 동물’인 셈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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