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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코너는 근간 예정인 이진경 선생님의 [파격의 고전] 원고 중 일부를 출간 전에 미리 보내드리는 코너입니다.



<이진경의 "파격의 고전">






1장 심청전과 ‘반인륜적’ 독서





이진경






4. 심청전의 ‘반인륜적’ 윤리학



집, 고향, 아버지가 있는 곳, 그리고 하늘마저 감동시킨 효행의 공덕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이는 <심청전>의 해석에서 어쩌면 가장 결정적인 지점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이는 <심청전>이 효에 대한 단순한 찬양이 아니라 차라리 그에 대해 역설적인 방식으로 비판한 텍스트라고 하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은 지점이기도 합니다. 심연 속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간 심청은, 지상에 올라와서도 집이 아닌 다른 세계로 갑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나중에 황후가 되어 아버지를, 맹인들을 집밖으로 불러냅니다. 무언가에 눈먼 모든 이들을 집으로부터, 고향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듭니다. 


이건 대단히 중요하기에 강조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심청이 벌인 맹인잔치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반대로 아버지를, 맹인들, 눈먼 자들을 집으로부터 밖으로 불러냅니다. ‘집’이라는 말로 표상되는 익숙한 관념이나 양식, 익숙한 도덕과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강력한 탈영토화의 벡터를 가동시킵니다. ‘맹인잔치’로 표상되는 그 힘에 이끌려가면서 심봉사는 심청을 보낸 뒤 같이 살던 아내(뺑덕)을 잃고 입고 있던 옷마저 잃어버립니다. 벌거벗은 알몸이 됩니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선 이전 세계에 속했던 것들을 이처럼 떠나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탈영토화의 흐름을 타고서 눈먼 아비는 ‘눈을 뜹니다’.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다른 세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잔치에 참가한 맹인들이, 전국의 모든 맹인들이 눈을 뜹니다. 무명의 세계에서 벗어나 눈을 뜨는 것이고, 다른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돌이켜 말하면, 바로 이러한 사건이 심청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귀향하지 않았던 행위의 또 다른 의미입니다.


집이나 가족이 누구에게나 익숙한 곳이며 익숙한 양식과 규범이 지배하는 세계라면, 그로부터 떠나는 것은 단지 익숙한 공간에서 떠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양식과 규범에서 이탈하는 것, 다른 세계를 향해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인물이 집으로 되돌아가는지, 혹은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지, 대체 어디로 가는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가 어떤 식으로 떠나며 어떤 식으로 되돌아가는지를 보는 것은 작품이 무엇과 대결하며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를 가늠하는데 없어선 안될 요인입니다. 더구나 양식이나 통념과 대결하며 다른 세계를 향해 가는 출구를 찾으려는 시도를 추적하려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단순한 서사의 진행과는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익숙한 집을 떠나 길을 찾아가는 일은, 내가 당연히 여긴 여러 생각과 관습, 예를 들어 효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일이다.(사진 출처: http://magdeleine.co/photo-by-jared-erondu-n-406/)



연꽃 속의 심청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눈먼 아버지가 있는 곳, 효라는 눈먼 도덕이 지배하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 눈먼 아버지와 눈먼 도덕을 따라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눈 먼’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게 하는 대신 심청은 어버지를 그 집에서 불러내고 맹인들, 즉 눈먼 삶을 사는 모든 이를 집이라는 익숙하지만 작은 세계에서 불러냅니다. 낯설지만 넓은 세계로 불러냅니다. 그리고 눈먼 삶에서 눈 뜨게 합니다. <심청전>이 효에 대한 텍스트라면, 눈먼 부모와 도덕에 순종하는 눈먼 삶이 아니라, 그들을 집 바깥의 넓은 세계로 불러내 눈 뜨게 하는 것이 진정한 효임을 설파하는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상에서 다룬 몇 가지 지점을 볼 때, <심청전>은 통상적으로 이해되듯이 목숨을 건 효를 설파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효라는 도덕적 명령에 대한 지나친 복종을 통해 그 명령 자체를 당혹 속으로 모는 역설적 비판의 텍스트고, 효로 되돌아가지 않는 비인칭적 죽음을 통해, 거기서 열리는 다른 잠재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텍스트요, 그럼으로써 아버지나 맹인들, 눈먼(맹목적, 무조건적!) 도덕적 명령을 ‘집’에서 벗어나 밖으로, 다른 넓은 세계로 끌어내는 텍스트입니다. 그런 점에서 <심청전>은 효라는 잘 알려진 ‘답’을 엽기적 사례를 통해 설파하고 강권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효이기를 중단한 효, 집 밖으로 끌려나간 효를 통해 효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텍스트라고 할 것입니다. 효에 대한 다른 관념을 제안하는 텍스트라고 해야 할 겁니다. 


<심청전>이 이처럼 효로 표상되는 것과는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작품이라고 한다면, 삼강오륜으로 표상되는 도덕과 규범을 다룬 것으로 읽히는 다른 소설들은 어떨까요? ‘윤리적 이념의 소설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물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효’를 명시하는 <심청전>이 이러하다면, 근대 이전이 많은 고전 소설들 또한 표면에 드러나는 것과 달리 윤리적 이념을 등진 것일 수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대개의 작품은 윤리적 극과 그 반대극의 중간에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윤리적 극을 향해 읽은 독해는 이미 충분한 반면, 반대의 극을 향해 읽는 것은 아직도 흔하지 않다고 해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일부러라도 더 이상의 ‘해석’조차 필요한지 의문인 윤리적 독해와는 반대방향을 향해 읽는 독해의 시도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작품 안에서 표명되고 있는 윤리적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읽을 수 있다면, 우리는 많은 소설들이 자신이 표명하고 있는 윤리적 이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박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윤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건, 가능한 한 이들 텍스트를 ‘인륜’이라고 불리던 당시의 도덕적 양식(良識)이나 그 주변을 맴도는 우리의 통념에 반하여 밀고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윤리’라고 한다면, 차라리 다른 종류의 윤리를 향해 밀고 가야 합니다. 윤리에 쩐 것으로 보이는 고전 소설을 읽는 이런 방식의 독해를 ‘반인륜적 독해’라고 비난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위해 자식이 살을 베고 목숨을 바칠 걸 요구하는 게 ‘인륜’이고, 남편이 죽으면 여성에게 따라 죽을 걸 은근히 요구하는 그런 게 ‘인륜’이라면,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런 ‘인륜’에 반하는 ‘반인륜적 독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식의 ‘인륜’에 반하여 정녕 ‘좋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제대로 된 ‘윤리’--제일 앞의 주에서 말했던, ‘도덕’과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윤리’--를 사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작품들을 시작하면서 이미 결론짓고 있는 게 그런 ‘인륜’이라면 고전소설에 접혀들어가 있는 잠재성을 여러 방향으로 펼치기 위해서라도 그런 ‘인륜’에 반하는 독해가 정말 필요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기꺼이 그 ‘반인륜적 독해’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그런 방향으로 작품들을 읽어나가고 싶습니다. 그것은 통념화된 뻔한 독서, 그렇기에 시험이나 의무감 아니면 읽을 생각이 나지 않게 만드는 독서 대신, 수많은 이본마저 찾아서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독서가 시작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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