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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슈미트 입문 강의] 3강 첫 번째 부분

수유너머웹진 2016.01.29 22:29 조회 수 : 151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3강. 『정치신학』 (1) ― 주권자, 법-질서와 예외상태




여기서 말하는 예외상황이란 국가론의 일반개념으로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며, 뭔가 긴급명령 내지 계엄상태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이하에서 분명해질 것이다. 예외상황이 뛰어난 의미에서 주권의 법률학적 정의에 적합하다는 것에는 계통상 또는 법논리상의 근거가 있다. 즉, 예외에 관한 결정이야말로 뛰어난 의미에서 결정인 것이다. 왜냐하면, 평상시의 현행 법규가 나타내고 있는 일반적 규범에서는 절대적 예외는 결코 파악할 수 없고, 따라서 또한 참된 예외상태가 존재한다는 결정은 완전하게는 근거지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 여기서 예외상태는 일종의 긴급명령이나 계엄상태 따위가 아니라 공법학의 일반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함은 이제부터 판명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예외상태야말로 주권에 대한 법학적 정의에 본래적으로 적합하다는 사실에는 체계적이고 법논리적인 근거가 있다. 예외상태에 대한 결정은 그야말로 결정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정상시에 유효한 법조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일반적 규범은 절대적 예외를 결코 파악하지 못하고, 진정한 예외상황이냐 아니냐에 대한 결정도 완전하게 근거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16-17쪽).]

― 『정치신학』





* 일러두기 

1) 일본어판에는 오역도 있고, 용어 사용에서 미흡한 점이 있으나, 아무튼 일본어 번역본에 기초하여 강의가 이뤄지고 있기에 일본어판을 먼저 인용한 후, [ ] 안에는 “칼 슈미트, 『정치신학 : 주권론에 관한 네 개의 장』, 김항 옮김, 그린비, 2010”의 번역본을 표기해 둡니다. 

2) 일본어판 쪽수는 “頁”로, 한국어판은 “쪽”으로 표기합니다. 





바이마르 체제와 슈미트 


이번과 다음번에 읽는 슈미트의 『정치신학』, 미라시야(未来社)에서 나온 번역본은 1922년에 출판된 초판이 아니라 1934년의 2판을 번역한 것입니다. 슈미트의 책은 판본에 따라 여러 가지 변화가 있으며, 슈미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그 이유에 관해 자주 논란이 일어납니다. 특히 나치정권시대에는 서술을 바꿨다가, 전후가 되면 다시 원래와 가까운 서술 형태로 돌아가는 패턴이 문제가 됩니다. 지난번에 읽은 『정치적 낭만주의』는 초판이 1919년에 나왔고, 2판이 25년에 나왔기에, 이런 식의 정치적 고려는 별로 없는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두 번째 판본에는 여러 가지 정보가 추가됐고, 초판에는 필자 이름이 《결혼 상대》 ― 문제가 있는 여성이라고 알려져 나중에 결혼이 무효가 됩니다 ― 의 성씨와 함께 이중성을 띱니다. 칼 슈미트-도로티치(Carl Schmitt-Dorotić)로서 말입니다. 판본에 따른 차이의 문제가 가장 부각(close-up)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입니다. 이 책은 슈미트 자신의 손으로 전전(戰前)에 세 개의 상이한 판본(1927, 32, 33)이 나옵니다. ― 슈미트는 3판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다지 언급하지 않은 듯해요. 그런 다음, 63년에 재간된 판과 2판 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논의가 있습니다. 


『정치신학』의 경우에는 이 정도의 뚜렷한 변화는 없습니다. 그러나 「2판 서문」(1933)에는 2판이 나올 때까지의 12년 정도 동안 슈미트의 견해가 변화한 것에 대해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적혀 있습니다. 이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텍스트가 써진 시대 배경에 관해 조금 얘기해둡니다. 


『정치적 낭만주의』의 초판이 간행된 것은 1919년입니다. 제1차 대전이 종결되고 바이마르 공화제가 발족한 직후로, 실제로 집필한 시기는 제1차 대전 말기라고 합니다. 『정치신학』이 쓰인 22년은 바이마르 초기입니다만, 패전 처리의 문제도 있고 [해서], 공화국이 아직 불안정한 시기입니다. 20년에 우익 군인에 의한 공화국 전복의 시도인 카프 폭동(Kapp Putsch)이 터집니다. 22년에 런던 회의에서 배상액이 정해지고, 오랜 기간에 걸쳐 프로이센령이었던 오버슐레지엔을 폴란드에게 분할 양도하는 것이 정해집니다. 독일에 의한 배상금의 지불이 늦어지기도 하고, 23년에는 프랑스가 그 《담보》로 루르 지방을 점령합니다. 그런 불안요소가 있었지만, 24년에 영미를 중심으로 제안된 도즈 안(案)에 의해 배상의 부담이 경감된 것을 계기로, 독일경제는 순조롭게 회복되며, 29년의 세계공황 무렵까지는 상대적으로 안정됩니다. 30년대에 들어서부터 경제의 부진과 연동되어 정당 간 대립이 격화되고 정권이 안정되지 않게 되며, 대통령 주도로 내각이 형성됩니다. 히틀러가 33년에 정권을 장악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은 14년으로 종언됩니다. 



‘독재 Diktautur’ 


이 바이마르 말기에, 대통령이 대권(大権)을 행사하여 혼란을 수습했는데, 슈미트는 이 문제에 관해 독특한 논의를 전개합니다. ‘독재’론입니다. 『정치신학』을 내기 전년에 해당하는 21년에 『독재』[카를 슈미트, 『독재론』, 김효전 옮김, 법원사, 1996]라는 책을 냅니다. 『정치신학』의 일역본 16頁에 「독재에 관한 소론」(뮌헨 라이프치히, 1921)이 나오는데, 이 책입니다. 이 『독재』에서의 ‘독재’를 둘러싼 법제사적 논의와, ‘주권’의 본질에 관해 법·정치철학적으로 논하는 『정치신학』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신학』의 이듬해인 23년에는 샹탈 무페가 자유민주주의 비판의 맥락에서 참조하는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카를 슈미트,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 나종석 옮김, 길, 2012]이 나옵니다. 역자인 다나카 오사무(田中治) 씨의 해설(190頁)을 보면, 『정치적 낭만주의』부터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에 이르는 기간의 저작은 “넓게는 서구민주주의, 특히 그 사상적 표현인 법치국가적 사상·다원적 국가론·의회주의”에 대한 비판서라고 합니다. 이들 저작은 각각 상이한 각도에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밑도 끝도 없이 수다를 떨 뿐인 의회제 민주주의를 《정치》의 이상으로 삼고, 질서를 만들어내는 궁극의 결단=결정 주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으며, 부르주아적 민주주의를 비판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1928년에 슈미트는 논문 「라이히대통령의 독재」[슈미트, 「라이히 대통령의 독재」, 김효전 옮김, 『동아법학』, 1991]를 냅니다. 모두 제목에 ‘독재’가 들어 있기에 헷갈릴 수 있지만, 『독재』와는 일단 다른 논문입니다. 다만 이 두 가지는 당연히 내용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28년에 『독재』의 2판이 간행될 때 「라이히대통령의 독재」가 부록으로 수록됩니다. 『독재』의 법제사적인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바이마르공화국의 대통령에 의한 ‘독재’를 논한 것이 「라이히대통령의 독재」입니다. 일역본으로는 「라이히대통령의 독재」와 29년의 「헌법의 수호자 Der Hüter der Verfassung」[칼 슈미트, 『헌법의 수호자』(1931), 김효전 옮김, 법문사, 2000]라는 논문을 곁들여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대통령의 독재』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어 있습니다. 역자는 『정치신학』과 마찬가지로 다나카 오사무와 하라다 다케오 콤비입니다. 「라이히대통령의 독재」를 뺀 『독재』 본체도 역시 다나카와 하라다 콤비에 의한 번역이 간행되어 있습니다. 


「라이히대통령의 독재」의 정식 원제는 〈Die Diktatur des Reichspräsidenten nach Artikel 48 der Weimarer Verfassung〉, 즉 「바이마르헌법 48조에 기초한 라이히대통령의 독재」입니다. ‘라이히 Reich’란 ‘제국’이라는 의미의 독일어입니다. 독일사에서 ‘제국’이라고 말하면, 일반적으로 ‘신성로마제국’과 ‘독일제국=제2제정’을 가리킵니다. 제2제국이 해체된 시점에서 이미 ‘제국’이 아니게 됐기에, 정말로는 ‘공화국 die Deutsche Republik’라고 하는 편이 좋은 것 같지만, 헌법제정을 위한 국민회의에서는 전통적 이름에 집착하는 세력이 다수였기 때문에, 새로운 국가는 〈das deutsche Reich(독일라이히)〉를 정식 국명으로 하는 ‘공화국’이라는 이상한 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공화국의 대통령은 〈Reichspräsident〉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바이마르 헌법 48에는 ‘비상=예외사태 Ausnahmezustand’가 생겼을 때, 대통령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1항에는 새로운 국가가 연방제로 몇몇 주로 구성되지만, 어떤 주가 헌법 혹은 법률로 정해진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해 그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강의의 1강에서, 1932년에 중앙 정부와 사회당이 이끈 프로이센 주정부가 대립했을 때, 파펜 내각이 대통령 대권에 의해 주정부의 기능을 정지시켰다는 얘기를 했습니다만, 그때 이 48조 1항이 적용됐습니다. 또한 제2항에서는 공공의 질서와 안전이 현저하게 혼란에 빠지거나 혹은 위협받을 때에는 헌법 114조(인신의 자유), 115조(주거의 불가침), 117조(통신의 비밀), 118조(의견표명의 자유), 123조(집회의 자유), 124조(결사의 자유), 153조(소유권)에서 보장되는 기본적 인권을 일시적으로 정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슈미트의 「라이히대통령의 독재」는 이 48조를 헌법 전체의 목적·구조 속에 위치지은 다음에,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대권은 실제로 어디까지 미치는가를 논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독재』는 ‘독재 Diktatur’라는 개념을 역사적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분석한 저작입니다. 일본어로 ‘독재’라고 말하면, 곧바로 히틀러(1889-1945)나 스탈린(1879-1953)이나 북한의 총비서나 허황된 명령을 내리고 인민을 괴롭히는 1인(one-man) 지배자를 연상합니다. 영어의 〈dictator〉나 독일어의 〈Diktatur〉도 일상적인 용법이라면 그런 느낌입니다. 다만, 그렇다면 참주(despot)나 폭군(tyrant) 등 비슷한 이미지의 말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일본어라면, ‘참주’나 ‘폭군’은 잘 사용하지 않아서 그 점은 아직 좋지만, 영어나 독일어라면 그 나름대로 사용합니다. 슈미트 시대의 독일어권의 학계 담론에서도 꽤 애매해졌던 것 같습니다. ‘독재’는 권위주의, 카이사리즘(카이사르 식의 지배), 보나파르티즘(나폴레옹 식의 지배) 등과 거의 등치되며, 꽤 적당하게 사용됐던 것 같습니다. 러시아혁명의 영향도 있었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투도 점차 일반적이게 됐습니다. 개인에 의한 1인 지배라는 것에 중점이 있는지, 집권적 조직에 의한 통치인지 잘 모르게 됐습니다. 



슈미트의 ‘독재’ 해석 


『정치적 낭만주의』에서도 진가를 발휘했지만, 슈미트는 이렇게 애매하게 사용되고 있는 개념의 《본래 의미》를 분명히 하고, 그 간극을 기점으로 하여 독자적인 견해를 전개하는 것이 특기입니다. 독특한 해석학으로 진가를 발휘하는 바가 하이데거와 비슷합니다. 슈미트는 『독재』에서 근대의 〈Diktatur〉 개념의 기원인 고대 로마의 〈distator(독재관)〉 제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본질을 분명히 하려고 합니다. 어원적으로 말하면, 〈dictator〉란 〈dictare〉하는 사람입니다. 〈dictare〉는 현재의 영어의 〈dictate〉와 거의 같은 의미로, ‘받아 적게 하다, 베껴 쓰게 하다’나 ‘지시하다’라는 의미입니다만, 그것만으로는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합니다. 


고대 로마의 ‘독재관’은 공화국에 비상사태가 생겼을 때, 그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통상의 정무관의 권한을 넘어서는 절대권위를 총령과 원로원으로부터 위임받은 특별한 정무관을 의미했습니다. 독재관은 로마의 모든 군대의 지휘권을 장악하고, 모든 정무관을 지배하에 두고 사태의 수습에 임합니다. 법률을 변경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만, 임기는 반년으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기원전 100-기원전44)는 자신의 독재관으로서의 임기를 점차 연장시키고, 최종적으로 ‘종신 독재관 dictator perpetuo’으로 임명됩니다. 세계사의 교과서에도 나옵니다만, 카이사르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기원전 63-기원후14)는 ‘독재관’의 직을 형식적으로 사임했습니다만, 그 대신에 ‘황제 imperator’의 칭호를 얻고, 실질적으로 종신 독재관에 상당하는 권력을 획득합니다. 즉, 원래는 한시적인 비상시대권을, 법적 절차를 따라 얻게 된 자가 ‘독재관’이었던 셈입니다. 


마키아벨리(1469-1527)의 『티투스 리비우스의 최초의 10권에 관한 논고 Di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1517)에도, 로마 공화국을 안정시키는 구조로서, 이 ‘독재관’에 관한 기술이 있습니다. 리비우스(기원전59-기원후17)는 로마의 역사가로, 142권에 달하는 로마건국사를 쓴 인물입니다. 마키아벨리의 이 책의 제목은 길기 때문에, 통상 〈discorsi(디스코르시)〉라고 약칭해서 불립니다[* 한국에서는 『로마사 논고』로 불린다]. ― 일본에서는 내용에 입각해서 『정략론』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츠쿠바(筑摩)의 학예문고에서 나온 일역본은 『디스코르시 「로마사」론(ディスコルシ「ローマ史」論)』이라는 제목입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1762)의 4편 6장에서도 로마의 ‘독재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루소는 마키아벨리의 영향을 받아 『사회계약론』에서도 공화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를 언급하고 있기에, 마키아벨리를 경유해 독재관 제도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본래적 의미의 ‘독재’입니다만, 르네상스 시기 이후, 예를 들어 장 보댕(1529-96) 등은 왕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은 행정관 등에 의한 ‘독재’에 관해 논하게 됩니다. 슈미트는 보댕 등에 의한 근대적인 ‘독재’론의 계보를 차근차근 더듬고 있습니다. 보댕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싸움(위그노전쟁)이 격렬했던 시대에 앙리3세(1551-89)의 왕제(王弟)인 알랑송 공(Jean II de Valois, duc d’Alençon, 1555-84)을 섬긴 프랑스의 법률가·정치이론가로, 주권론과 화폐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가론 Les Six Livres de la République』(1576)은 근대국가론의 효시로 간주됩니다. 슈미트도 『정치신학』에서 보댕의 논의를 꽤 참조하고 있습니다. 보댕 등이 문제 삼았던 것은 주권자인 군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고 문제의 해결에 임하는 ‘특명위원 commissaire’이라 불리는 특별한 관리[官吏]에 의한 ‘독재’입니다. 슈미트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나 신성로마제국의 군정(軍政)에서도 그런 ‘특명위원’에 의한 ‘독재’의 제도가 채택됐던 것 같습니다. 




공화국에 비상사태가 생겼을 때 그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통상의 행정관의 권한을 넘어서는 절대권위를 총령과 원로원으로부터 위임받은 특별한 행정관. 다만, 임기는 반년으로 한정.

고대 로마

〈dictator (독재관)〉 제도

dictator

dicatare하는 사람

(영어) dictate ‘받아 적게 하다, 베껴 쓰게 하다’, ‘지시하다’


중세유럽

장 보댕 (1529-96)

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행정관 




프랑스혁명 때에는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공안위원회와 지방에 파견된 〈위원〉이 ‘독재’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프랑스혁명에서는 주권자가 왕이 아니라 인민으로 상정되고, 인민 자신이 직접 독재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형태를 취했기에, ‘독재’의 의미가 애매해졌지만, 특정한 직위의 인물이나 기관에 임시로 비상사태 수습의 대권을 부여한다는 형식 자체는 유지됩니다. 맑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조차도 혁명이라는 비상시에 발동되는 대권이라고 이해할 수 없지 않습니다.  


슈미트는 주권자로부터 위임된 독재관이 행하는 ‘위임독재 die kommissarische Diktatur’와 주권자가 직접 독재를 행하는 ‘주권독재 die souveräne Diktatur’를 나눠서 논합니다. 로마의 독재나, 보댕이나 루소가 논하는 것은 ‘위임독재’입니다. ‘주권독재’란 영국의 청교도혁명이나 프랑스혁명 무렵부터 나온 독재의 새로운 형태로, ‘헌법제정권력 pouvoir constituant (constituent power)’의 보유자이며, 주권자이기도 한 ‘인민’이 혁명 등의 비상시에, 직접적으로 독재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도, ‘주권독재’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민이 주권자라고는 해도, 실제로는 누군가 특정 인물이나 기관이 인민을 대표해 독재권력을 휘두르게 되므로, ‘위임독재’와의 구별이 썩 명료한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는 혁명 등의 체제 전환기에 인민이 새로운 체제를 완전히 ‘구성 constituer (constitute)’을 끝낼 때까지의 사이, ‘헌법 constitution’을 비롯한 법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무제약의 주권적 권력을 발휘하고 여러 가지의 것에 관해 결정하는 상태가 ‘주권독재’라고 생각됩니다. ― 다만, 새로운 ‘헌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기에 법규범에 얽매이지는 않습니다. ‘헌법’이 제정되면, 주권자인 ‘인민’ 자신도, ‘헌법’에 의한 제약을 받게 됩니다. “헌법에 의해 제약된 권력 pouvoir constitué (constituted power)”이 되는 셈입니다. 다만, 혁명의 과정이 완결되지 못하고, 아직 잠정적인 헌법밖에 제정되지 않았다고 하면, ‘주권독재’가 계속되고 있는지 아닌지 애매한 상태가 됩니다. 주권자로서의 인민의 권력에, ‘헌법제정(구성하는) 권력’과 ‘헌법에 의해 제약(구성)된 권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것은, 프랑스혁명 시기의 활동가 시에예스(1748-1836)가 유명한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1789)에서 제기한 논의입니다. 


슈미트는 그런 ‘독재’ 개념의 본래 의미, 즉 법질서 전체를 지키기 위한, 잠정적으로 통상의 법규범을 넘어선 명령(dictum)을 발동하는 권한을, 특정한 관직에 있는 인물에게 준다는 의미를 확인한 다음, 바이마르 헌법 48조에서 규정된 대통령의 비상대권도 그런 독재의 일종, 어쩌면 ‘위임독재’로서 이해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 세세하게 말하면, 48조에서는 “자세한 것은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그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기에, 대통령의 독재에는 본래의 의미에서의 제약이 없고, 주권독재에 가까운 상태에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슈미트는 이처럼 법 개념사적인 지식을 헌법해석, 헌법판례해석에 기입하고 깊이 읽어내는 것을 특기로 했습니다. 헌법학자에는 이런 심층 독해가 특기인 인물이 적지 않습니다만, 슈미트의 경우 그런 심층독해의 해석에 문학적·철학적으로 세련된 감각이 덧붙여져 있는 대목이 매력입니다. ― 그것을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만. 


이처럼 슈미트는 ‘라이히대통령’을 ‘독재관’적인 직책으로 자리매김한 다음에 다시, ‘헌법의 수호자 Hüter der Verfassung’로서도 자리매김 합니다. 그것이 논문 「헌법의 수호자」의 테마입니다. 헌법의 해석을 둘러싸고, 주와 정부, 국가를 구성하는 기관들 사이에서 대립이 생겨난 경우, 대통령이 중립적인 독재자로서 판정을 내릴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논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따라, 헌법, 그리고 국가의 통일성이 붕괴하지 않도록 지키는 역할을 맡는 것입니다. 



슈미트

  ‘위임독재 die kommissarische Diktatur’

로마의 독재, 보댕, 루소 


  ‘주권독재 die souveräne Diktatur’

영국의 청교도혁명이나 프랑스혁명 무렵부터 나온 독재의 새로운 형태로, ‘헌법제정권력 pouvoir constituant (constituent power)’의 보유자이며, 주권자이기도 한 ‘인민’이 혁명 등의 비상시에, 직접적으로 독재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의미




‘주권자란 예외상태에 관해 결정을 내리는 자를 가리킨다.’ 


왜 이런 헌법상의 대통령의 역할에 관한 문제에 슈미트가 천착했는가 하면,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급조되어 만들어진 바이마르 공화국이 불안정했기 때문입니다. 제정에서 의회중심의 정치로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세력을 대표하는 정당이 난립하고, 주정부와 중앙정부의 관계도 불편하기 일쑤였습니다. 공화국은 사회민주당(SPD)을 중심으로 한 중도좌파세력을 중심으로 건국됐습니다만, 제1차대전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SPD를 이탈하고 ‘스파르타쿠스단’을 결성해 독자적인 활동을 계속한 로자 룩셈부르크(1870/71-1919)나 칼 리프크네히트(1871-1919)는 부르주아 세력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표방하며 봉기했습니다. 이 봉기는 진압되고, 공화국은 뭔가가 발족했습니다만, 1920년에, 이번에는 우익 군인에 의한 쿠데다, 카프 폭동(Kapp Putsch)이 일어나고, SPD 출신의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Friedrich Ebert, 1871-1925)는 한때 수도인 베를린을 탈출하고, 노동자들에게 파업으로 대항하라고 호소합니다. 나치에 의한 뮌헨 폭동(1923)도 일어납니다. 에베르트는 서민출신의 SPD 정치가로, 어쩐지 온건한 평화주의자 같다는 이미지도 있으나, 정치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몇 번이나 대통령의 대권을 사용했습니다. 에베르트 뒤에 대통령이 된 것은 제1차 대전 중의 육군참조총장을 역임하고 원수가 된 힌덴부르크입니다. 그는 제정부활론자였기에, 대통령선거에 나오는 것 자체를 망설였지만, 보수·우파진영에 의해 추대되어 중도우파세력의 단일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정치 경험은 거의 없었으나, 독일제국의 영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힌덴부르크가 대통령에 선출됐다는 것 자체가 ‘독재관’ 겸 ‘헌법의 수호자’의 역할을 짊어지는 강한 대통령이 요구됐음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힌덴부르크 아래서,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48조에 기초하여 프로이센 주정부가 해체됐습니다. 


헌법=국가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공화국의 정치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최종적으로 판정하고 결말을 짓는 권위를 누가 갖고 있는가를 확실히 하는 것이 현실적(actual)으로 중요한 문제였던 셈입니다. 슈미트는 법적 질서를 지키는 데 있어서의 ‘독재’라는 제도의 중요성을 법철학적으로 고찰하고, 그것을 ‘라이히대통령’에 적용하고, 그 역할을 분명히 하려고 한 것입니다. 슈미트에 대해 나치의 어용학자라는 이미지를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의외라고 느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슈미트는 ‘법’을 지키기 위해, 법을 넘어선 차원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위라는 역설적인 존재의 필요성을 계속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 그의 주장의 정수(essence)가 『정치신학』 본문의 서두에 있는 “주권자란 예외상황에 관해 결정을 내리는 자를 일컫는다”(11頁;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16쪽)이라는 문장에 의해 표현되고 있습니다. ‘예외상황’의 원어는 〈Ausnahmezustand〉로, 이것은 ‘비상사태’로도 번역됩니다. 헌법 48조에 의한 대통령의 ‘독재’에 관한 규정을, ‘주권자’의 본질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상의 주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인민 Volk’일 테지만, 슈미트는 본래적 의미의 ‘주권자’란 구체적인 인격성을 갖춘 결정 주체라고 생각한 것 같네요.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2판 서문」을 읽어봅시다. “자유주의적인 규범주의 및 이것과 비슷한 ‘법치국가’를 비판한 논술도 자구 그대로이다”(7頁; 또한 자유주의적 규범주의와 그것의 ‘법치국가론’을 논박한 부분도 한 글자도 고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놔두었다, 8쪽)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슈미트는 ‘자유주의적 규범주의 der liberale Normativismus’, 그리고 이것과 결부된 ‘법치국가 Rechtsstaat’ 개념을 비판하고, ‘법’의 본질에 관한 상이한 이해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규범주의’에 관해서는 조금 후에 나오며, 본문 속에서도 꽤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일단 그것이 ‘규범 Norm’이라는 관점에서 ‘법’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며, 슈미트가 그것을 ‘자유주의’적 뉘앙스를 띠고 있다고 이해한다는 것만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죠. ‘법치국가’란 문자 그대로 국가권력이 ‘법’에 의해 제약되는 국가라는 의미입니다만, 19세기 초반 이후의 독일에서는 국가가 경찰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경찰국가 Polizeistaat’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쓰이게 됐습니다. 슈미트는 ‘법치국가’를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법=규범이라는 추상적인 것이 지배하고 있는 상태로서 네거티브하게 파악하는 것 같습니다. 7頁에도 나오듯이 슈미트는 강연 「중성화와 비정치화의 시대(中性化と非政治化の時代)」(1929)[* 원문을 감안하면 “중립화와 탈정치화의 시대”라고 해야 한다] 등에서, 근대 이후의 국가 이미지의 변천에 관해 논합니다. ‘중성화[중립화] Neutralisierung’란 국가는 가치중립적인 것이며, 정신적·정치적 대립에 대해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여겨지게 됐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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