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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슈미트 입문 강의] 2강 여섯 번째 부분

수유너머웹진 2016.01.15 20:25 조회 수 : 33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2강. 『정치적 낭만주의』 (2) :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다섯 번째 부분에 이어서)





국가와 신 


 184쪽부터 196쪽에 걸쳐, 헤겔 좌파 철학자·신학자인 다비드 스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 1807-74)의 논문 「황제 자리에 있는 낭만주의자(Julian the Apostate: The Romantic on the Throne of the Caesars)」(1847)에 관해 장황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 종교로서 점차 세력을 확대하던 시대에 배교자 율리아누스라고 알려진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331/332-63)가 이교도로 개종하고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게 된 것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1795-1861)가 루터의 원래의(original) 교의로 돌아가야 할 것을 주장한 루터파의 정통주의를 장려하는 것과 더불어 중세의 신성 로마 제국을 왕권의 이상으로 삼고 ‘자유와 통일’을 요구하는 운동을 탄압하고 반자유주의·반민족주의적 자세를 취했던 것 사이에서 평행적인 관계를 보려는 논의입니다. 배교자 율리아누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시도도 좌절할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을 비교할 때, 스트라우스는 둘을 ‘낭만주의자’로 묶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의 ‘낭만주의자’란 어떤 존재일까요? 낡은 교양(Bildung)이 새로운 교양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옛 신앙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고 이를 회복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낡은 신앙 자체가 아니라 환상으로 가득 찬 어둠을 정서적으로 지향하는 자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신앙이다. 


스트라우스는 이렇게 설명하는 것인데요, 슈미트는 신구가 대립한 결과, 낡은 것을 맹목적으로 고집하는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생겨난다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우선, 초기의 낭만주의자는 프랑스혁명을 찬미했으며, 자신들을 ‘새로운 것’ 편에 위치시켰습니다. 낭만주의자들 자신이 늙어감에 따라 점차 ‘낡은 것’을 지향하게 됐을 뿐입니다. 그것은 우인론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19세기의 민주적인 학생조합(Burschenschaft) 사이에도 신비주의적 경향이 퍼져 있었습니다. ‘낡은 것’을 지향하는 것도, 신비주의적이라는 것도 낭만주의의 특징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가톨릭 보수주의를 옹호하는 슈미트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적 좌파인 스트라우스는 자신이 보기에 ‘낡은 것’을 지키려는 듯이 보이는 세력을 모조리 싸잡아 ‘낭만주의적’이라고 엉성하게 묶어 놓았습니다. 


슈미트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종교’를 지향하는 사상 중에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명확한 ‘정치성’을 지닌 것도 있음을 지적합니다. 



나폴레옹 전쟁 후에, 가톨릭과 개신교 중 어느 한쪽을 불문하고 독일에 자연발생적으로 발흥한 종교적 생명은 정치적 방안과는 독립적으로 생긴 것이지만 정치적으로만 이용됐다. 교회의 요소들은 정말로 넓은 형태에서는 정치적 복고와 제휴하여 작동한 것이지만, 그것은 그 역사적인 일정한 정치적·사회적 질서와의 연결 때문에 이것에 봉사하는 것이 됐던 것이다. 그것이 지도력이었던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복고정치와 관련되는 정신적 생산성이라는 것을 말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국가철학적인 달성이다. 즉, 사회적 연대에 관한 그 이념을,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그것과 완전히 마찬가지로 새롭다고 부를 수 있는 체계가 생겨난 것이다. 보날이 그의 『권력론』(1796)의 처음과 끝에서, 또 투쟁이라는 테마를 말하는데 있어서 이용한 반대 명제는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인 것이었다. 유럽에서 별의별 인간과 사회 등을 분열하게 하고 있는 큰 문제, 인간이 스스로 생기고 사회를 만드는가, 사회가 스스로 생기고 인간을 만드는가(la grande question qui divise en Europe les homes et les société, l’homme se fait lui-même et fait la société, la société se fait elle-même et fait l’homme)가 그것인데, 그는 이 안티테제를 철학적 환상과 명상에서 사실로 되돌렸다는 것을 스스로 뽐내고 있다. 복고시대의 이론가가 그 적에 무신론이라는 비난을 행한다면, 거기에는 신학적 개념이 정치적인 것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나폴레옹 전쟁 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샘솟은 종교적 삶은 정치적 조치와는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만 이용됐을 뿐이다. 물론 대부분 정치적 복고에 크게 협력한 〈교회〉의 요인들(agents)은 대대로 특정한 정치적․사회적 질서에 결부됐기 때문에 [정치적 낭만주의자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맘대로 다룰 수 있도록[=정치적 목적을 위해 교회의 요인들[=교인들]을 이용하도록] 놔뒀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적 지도자들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복고와 연결된 지적 생산성은 본질적으로 정치철학의 산물이다. 사회적 연대라는 관념과 더불어 발전된 체계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보날이 『권력이론(Théorie du pouvoir)』(1796)을 시작하고 끝을 맺을 때, 그리고 갈등이라는 테마를 설명할 때 사용한 안티테제는 종교적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다. “유럽에서 인간들과 사회들을 분할하는 거대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만들고 인간이 사회를 만든다. 또 사회는 사회 자체를 만들며 사회가 인간을 만든다.” 그리고 보날은 자신이 이 질문을 철학적 환상(fantasies)과 사변의 수준에서 사실의 수준으로 환원시켰다며 스스로 뽐낸다. 복고의 이론가들이 무신론이라는 혐의를 갖고 자신들의 반대자들을 비난할 때, 신학적 개념은 정치적 개념이 된다(pp.154-155).]



슈미트는 보날의 가톨릭 보수주의와 같은 유형의, 종교를 기반으로 한 보수주의를, 나폴레옹 이후 서유럽국가들의 정치의 주류였던 복고주의와 구별하려는 거군요. 보수주의는 종교적 전통 속에서 길러져 왔던 “특정한 정치적·사회적 질서 eine bestimmte politische und soziale Ordnung”를 지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복고’의 흐름에 이용되었지만, 단순한 ‘복고’로 환원될 수 없는 국가철학을 구축하는 데 이르렀다. 그것은 ‘사회적 연대 soziale Solidarität’와 관련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그것과는 다른 이념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인간이 자신과 사회를 만든다”는 전제에 서는 반면, 보날의 국가철학은 “사회가 자신과 인간을 만든다”는 전제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뚜렷한 정치성을 가진, 즉 자신의 정의에 관해 결단하고 있다. 


마지막의 “신학적 개념이 정치적인 것이 되고 있다”는 주장은 『정치신학』의 주요 테마가 됩니다. 단순히 낡은 신학적 개념을 도입하고 맹목적으로 추앙할 뿐 아니라, 그로부터 독자적인 정치철학을 끌어내고 그 정수(essence)를 명시하고 있네요. 1강에서 봤듯이, 보날은 ‘신’관과 정치체제가 대응한다고 진단한 다음, 가톨릭적인 인격신에 대한 신앙을 기초로 한 신성정치를 목표로 한 것입니다.


그러한 포스트-나폴레옹 시대의 정치철학적인 대립상황에 비하면, 율리아누스는 그리스도교에 의해 국가체제가 직접적으로 위협 받고 있었던 게 아니며, 그가 이교도를 부활시키려 한 시도한 것은 순전히 종교적 동기에 기초한 것이며, 정치적 대립은 전면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슈미트의 시각입니다. 율리아누스는 그리스도교의 ‘신’이 자신이 믿는 신플라톤주의·비교적(秘敎的)인 ‘신’의 이미지와 다르기 때문에 종교투쟁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황제[율리아누스]는 그의 적, 즉 종교적 신앙에 대해 종교적 논증을 좇아 대항했다. 신학론을 부르짖는 낭만주의자는 정치적 토론을 피하고 종교적 증명에 벗어나며, 게다가 그 때 현정부 의 정책에만 봉사하는 데 이른다. 정통적인 역사적 국가라고 해도 수많은 다른 국가들과 나란히 하나[의 국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절대적 성격을 가질 수 없다. 모든 국가를 포괄하는 절대적 종교는 절대적인 고대의 세계국가가 각각의 종교를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국가를 상대적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낭만주의적인 사이비 논증에 따르면, 정부지상주의조차도 절대적인 종교사업으로 할 수 있었다. 그 이른바 국가라는 것은 언제나 동시에 뭔가 다른 것, 즉 신 혹은 신이 직접 만들어낸 것,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신은 형이상학적으로는 육체와 영혼이라는 대립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정당성과 자유주의라는 대립 속에서 활동한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이렇게 언뜻 보기에 낭만주의자는 오늘날의 구체적 정통[국가]를 넘어선 듯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낭만주의에 있어서는 항상 그렇듯이, 낭만주의자가 자기 결단을 하지 않고 구체적 이질성을 ‘더 높은 제3의 것’으로 속성시키기 위해서, 구체적인 대립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높은 것이란 여기서도 정부이며, 그 정당성은 이제 고차적인 정당성으로서, 현실의 구체적 사실, 예를 들어 1830년대의 합스부르크국가를 종식시키지 않고서 절대적 요구를 갖고 등장할 수 있게 된다. 

[* 황제는 자신의 적, 즉 종교적 신앙에 대해 종교적 논증으로 맞섰다. 신학을 다루는 낭만주의자는 정치적 토론에서 종교적 증명으로 후퇴했다. 낭만주의자에게 신학은 낭만주의적 알리바이로 봉사했다. 이것이 정치적 낭만주의였다. (이하 대목은 영어판에 없음.) (p.157).]



너저분하게 얘기했습니다만, 논지는 알 수 있죠. 율리아누스는 종교에 종교로 대항했지만, 19세기의 낭만파는 정치문제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신학 비슷한 개념을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네요. 도망칠 뿐, 결국 현체제를 추종하게 됐다. 


다만 낭만파가 비록 말로만 그랬을 뿐이라고 해도, ‘절대적 종교’를 내걸면 이상해져버립니다. 아무리 오래된 유서 깊은 국가라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국가 중 하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절대적인 성격을 가질 수 없다. 고대 로마에서는 국가가 절대적이고 그 아래에서 개별 종교가 공존했다. 종교끼리 부딪혀도 그리스 신화 같은 다신교적 시스템을 해석에 의해 만들어내고, 무리를 써서라도 공존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대두 이후, 입장이 역전되어 절대신의 본질을 역설하는 그리스도교가 보편적이고, 로마도 포함해 모든 국가는 상대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다. ― 율리아누스는 그런 [보편국가 vs 보편종교]라는 틀로, 그리스도교 비판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낭만주의자의 《속임수》 


낭만파가 ‘절대적 종교’를 설파하려 한다면, 국가를 상대화시켜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사업=종교사업]인 듯한 사이비 논증에 의해 국가를 절대시하고 복종하는 태도를 유지하려 합니다. 또‘자유주의 Liberalismus’와 ‘정통주의 Legitimität’는 육체와 영혼 같은 관계로, 신의 두 가지 작동방식을 보여준다고 하는, 말 자체는 좋지만, 구체적으로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논법으로, 오랜 국가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입장과 자유주의적 입장을 강제로 《양립》시켜버린다. 그래서 종교, 국가체제, 개인의 자유가 조화로운 듯한 이야기가 됩니다만, 슈미트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것은 대립을 얼버무리는 말의 속임수입니다. 


낭만주의자는 자유주의와 정당성을 넘어선, ‘더 높은 제3의 것 das höhere Dritte’을 보이고 보여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결단하는 sich entscheiden’ 것을 피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더 높은 제3의 것’이란 실제로는 자유주의와 정당성을 양 측면으로서 갖는, 현존하는 오스트리아 국가라는 것이 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현상태를 추인할 뿐인 얘기가 된다. 슈미트는 그런 무책임한 말투에 짜증을 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 대상을 고려하지 않는 이런 논증 방식이 모든 성실한 반대자 속에서 불러일으켜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허위의 인상 때문에 레베르크와 졸거 같은 아담 뮐러의 반대자는 그를 소피스트라고 명명했다. 그들은 이 말을 성실과 실질성의 결여에 대한 일반적인 비난으로서가 아니라, 정확한 의미에서 풀이했다. 그리스의 궤변론으로 나타난 주관주의와 감각주의도 마찬가지로 대상성을 폐기하고, 실질적인 논증을 주관의 자의적인 산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 정치적 문제에 대한 낭만주의자의 취급이 성실한 반대자들 속에서 쉽사리 불러일으키는 객관성의 결여라는 인상 덕분에, 특히 아담 뮐러의 반대자들인 로베르크와 졸거와 같은 이들은 뮐러를 소피스트라고 불렀다. 이 말은 실정적인(positive)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말의 공허한 남용이 아닌 것이다. 그 때문에 그리스의 궤변술에서 제시된 주관주의와 감각주의 사이의 연결도 모든 객관성을 무화시키고, 실체적 논증을 주체의 변덕스런 생산성으로 만들어버렸다(p.158).]



아우구스트 빌헬름 레베르크(August Wilhelm Rehberg, 1757-1836)는 영국왕이 왕을 겸하는 하노파 왕국의 정치가·작가·철학자로, 왕국의 반동적인 귀족 서클의 대변자 같은 역할을 맡은 인물입니다. 영국의 의회정치를 이상으로 삼고, 당초는 프랑스혁명을 겪으면서 프랑스가 영국처럼 되는 것에 기대를 걸었습니다만, 프랑스혁명이 자기 생각과는 달리 점차 급진화되고 있었기에 보수주의·반합리주의적인 관점에서 반혁명의 논의를 전개하게 됐습니다. 그는 낭만주의의 자기도취적이고 방종한 체질을 싫어하고, 아담 뮐러에 관해서는 그의 신비주의, 몽매주의를 비판했습니다. 칼 빌헬름 페르디난트 졸거(Karl Wilhelm Ferdinand Solger, 1780-1819)는 독일 관념론의 철학자, 문헌학자입니다. 낭만파에 속하는 문예비평가이기도 하며, 루트비히 티크와 친한 관계였습니다. 슐레겔의 그것과는 다른 아이러니 이론을 전개했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도 뮐러에게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논의 대상이 되는 ‘사물’로부터 구체적인 ‘대상성’을 벗겨내어 자의적으로 조작 가능한 문제로 전화시켜 버리는 뮐러의 논법은 바로 ‘소피스트’였던 거죠. 


현대의 포스트모던 비판의 논의에서 비슷한 느낌의 얘기를 자주 듣네요. 뮐러 등 정치적 낭만주의자가 이항대립을 해소(탈구축)한다고 말하면서 메타관점(=가치의 중지상태)을 설정하고, 자신은 거기에 들어가며, 자기 자신의 실질적 가치판단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슈미트에게는 얼버무리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슈미트 자신은 ‘역사’와 ‘민족’, ‘국가’ 등의 실재적인 개념에 의거한 정/부정의 ‘결단’을 ‘정치’의 본질로 봤던 것이죠. 





질의응답 


Q : 낭만주의는 자아에 천착하지만, 자아의 바닥이 빠져 있는 모습이 되는 것에 머물지는 않죠. 제 육감입니다만, “그치지[머물지] 않는다”는 모종의 그침[머묾] 같은 것, 반성적 자의식이라고 말해도 좋을까요, 그런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대충 이런 것들이 다양한 입장에 서 낭만주의를 비판할 때의 포인트가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자아의 바닥이 빠져 있다고) 알고 있다면, 좋아?”라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을 짐짓 모른 체 하고 문제 삼지 않으며, 자의식을 뛰어난 의견[高見]으로 확보할 수 있다. 그렇게 자의식이 항상 지켜진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상처 입지 않은 자의식의 형태 같은 것이 가장 고차적인 자기 동일성의 양상을 보이는 게 아닌가 느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피히테에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합니다. 낭만주의자가 목표로 한 반성적 자기의식의 무한 연쇄 속에서의 자기 상대화와, 상처 입지 않은 채로 온존되는 자기 동일성은 어떤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A : ‘주체’의 낭만주의적 행태를 이론적·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과 그 이론을 다루는 필자의 《주체》성의 상관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있는 나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나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나에 관해 … 라는 무한 연쇄의 문제는 “생각하고 있는 나”를 절대적인 것으로서 규정할 때에, 반드시 나오는 역설입니다. 초기 낭만파는 그 무한 연쇄에 주목했다. 이 사실 자체는 이론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을 사는 법, 혹은 공동체적 삶의 방식으로서의 ‘정치’에 응용하려 할 때에, 말씀하신 듯한 “자신을 지킨다”라는 태도가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나’란 말야, 점점 변화하는 모호한 존재이고, 지켜야 할 ‘진정한 나’ 따위란 없다!”고 정색하고, ‘결단’하는 방향으로 가도 되겠지만, 그런 방향으로는 가지 않는다. 자기가 선 위치를 상대화하고, 실질적인 가치판단을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는 ‘소피스트’로 보이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의 방식으로라면, 그렇게 자신을 계속 지키는 것은 본인 마음입니다만, 그런 태도가 현실의 ‘정치’에 도입되고, 정치사상가들의 자기 정당화에 이용되게 된다면, ‘정치’가 제대로 기능의 하지 않게 된다. ‘결단’의 필요성이 인식되기 어려워진다. 


그것이 ‘정치적 낭만주의자’입니다. 그것보다는 결말이 보이지 않고 불안해도, 돈키호테적으로 돌진해 들어가는, ‘낭만주의적 정치인’ 쪽이 오히려 낫다고 하게 됩니다. 


몇 번이나 거듭 말합니다만, 현대의 포스트모던 사상가, 예를 들어 데리다에 대한 비판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슈미트의 말투를 흉내 내서 말한다면, 비판자들은 데리다를 ‘정치적 탈구축론자’로 보고, 그의 실질적인 비정치성을 비난하지만, 옹호하는 사람, 데리다 연구자들의 대부분은, 그의 본질은 ‘탈구축적 정치인’임을 논증하려 한다. 탈구축을 순수철학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동안은 좋지만, ‘정치’적인 실천에 응용하려 들면, 문자 그대로 《정치》적 문제가 생긴다. ―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낭만주의적인 거죠.(웃음).



Q : 로티(1931-2007)의 문화좌파비판으로 통하는 대목이 있군요. 


A : 아시다시피, 로티 자신에게도, 철학적 태도에 있어서는, 포스트모던적이네요. 그는 지식을 인식론적으로 정초하기를 거부하고, 우리 지식의 패러다임의 우연성을 강조하며 아이러니컬한 태도를 취한다. 그는 일단 분석철학자로서 출발하지만, 포스트모던의 상징과도 같은, 하이데거나 푸코를 꽤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런 지식의 중지 상태와 같은 것을, ‘정치’에 도입하고, 실천의 구체적인 지침을 내놓지 못한 채, 끝도 없이 탈구추적인 수다를 계속하는 ‘문화좌익’적 태도는 용서하지 않는다. 이론적인 정초가 없더라도, 정치적 행동의 지침을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는 인식론적인 진리성을 괄호에 넣은 채,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실천해 온 프래그머티즘적인 좌익의 전통이 있다. 미국에는 이따금 자유주의적인 문화가 있다. 그것이 보편적인 것이라는 근거는 없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적인 정의의 기준 등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따금 있는 것에 헌신·관여해도 좋잖아라는 느낌으로 아이러니컬한 결단을 권한다. 로티 자신이 슈미트가 말한 바의 ‘낭만주의적 정치가’인 것이네요. 


슈미트는 돈키호테처럼 절대 확실한 근거가 없더라도 아무튼 ‘결단’하여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까는 시간이 없어서 생략했지만 『정치적 낭만주의』의 마지막 부분에, 슈미트 자신의 결의 같은 것이 표명되어 있습니다. 199쪽을 보세요. 



그 방법은 여기서도 또한 우인론적인 회피, 투쟁적 대립이 속하는 영역, 즉 정치적인 것에서 더 높은 것으로, 즉 복고 체제의 시기에서는 종교적인 것으로의 회피다. 결국, 그것은 절대적 정부지상주의, 즉 절대적 수동성이다. 이를 달성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타자의 결단과 책임에서 산출된 서정적·추리적 사조의 트레몰로(tremolo)이다. 정치적 행동이 시작될 때, 정치적 낭만주의는 끝난다.



결국 정치적 낭만주의자는 스스로 ‘결단’하지 않고, 《정치》의 큰 조류에 올라타 있을 뿐이죠. 자신이 결단하지 않고 타자의 결단과 책임의 귀결을 받아들이고, 잘 모르는 종교적 견지에서 그것에 감동한 척 하기도 한다. ‘결단’을 토대로 진정한 ‘정치적 활동politische Aktivität’을 시작할 때, ‘정치적 낭만주의’에 의한 책임회피의 구조는 종언한다. 



Q : 그간의 얘기를 들어보니,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70)와의 관련을 생각하게 됩니다. 당연히 슈미트는 미시마를 읽지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슈미트는 웃기는 짓을 한 잔트(Sand)를, 이른바 정치적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낭만주의적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로는 평가하고 있네요. [그러면 슈미트는] 미시마도 정치적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낭만주의적 정치가라고 했을까요?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린 게 있는데요, 잔트는 온통[ベタに, 여기서는 맥락상 ‘자신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전면적으로’라는 의미인 듯하다]자신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그런 것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미시마의 경우, 결단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가장 웃기는 짓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A : 기본적으로 미시마도 ‘낭만주의적 정치인’으로 분류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전면적으로[ベタに] 헌신·관여하는 것과 알면서도 헌신·관여하는 것은 슈미트가 본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느냐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네요. 


다음번에 읽는, 『정치신학』에서 슈미트의 사유의 특징이 분명해집니다만, 그는 닥치는 대로[마구잡이로] 무에서 결단하는 것을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신학적 개념과 결부된 명확한 ‘질서’관에 기초한 ‘결단’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간단히 말하면, 그 나름의 ‘목적’이 필요합니다. 


슈미트가 미시마의 행동을 ‘정치적인 것’으로서 평가할지 여부는 단순히 미적 퍼포먼스로서 ― 우인론적 사고에 몸을 맡기고 ― 자결한 것이 아니라, 어떤 질서를 목표로 한 헌신·관여로서 했다고 확인할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시마는 확실히 자위대법 개정을 위해 자위대원의 궐기를 촉구한다는 목적을 명시했기에, 자위대의 이치가야(市ヶ谷) 주둔지에 서 있는 셈입니다만, 그것이 그 나름의 정치적 질서관, 정치신학에 뿌리를 뒀다고 말할 수 있는지, 판단이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는 천황제에 정치신학적으로 헌신·관여했을까, 아니면 정치적 낭만주의적으로 헌신·관여한 것일까? 말씀하셨듯이, 자신이 한 것의 해학성을 자각하고, 처음부터 무리라고 알고 있고, 정치적 효과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했을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19세기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교회와 국가가 일체가 된 정치신학적 질서를 부흥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에, ‘정치적 결단’이 아직 리얼했는지도 모릅니다. 슈미트가 살던 시대의 독일에서는 두 개의 대전이 일어나고, 그에 따른 커다란 사회·경제·정치적 변동이 잇따르면서 그런 ‘정치적 결단’이 다시 리얼하게 보였습니다. 슈미트 자신도 여러 가지 정치적 조류에 우롱당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 즉, 정치적 낭만주의자인 것처럼 ― 보이지만, 결단에 의해 관여·헌신해야 할 질서가 있다고 믿고, 돈키호테적 편력을 진심으로 계속했는지도 모릅니다. 


전후의 일본을 살고, 문학가로서 매우 아이러니한 시선을 갖고 있는 미시마가, 자신이 관여·헌신해야 할 질서가 아직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렵네요. 믿고 있는 것의 장벽은, 슈미트의 경우보다 높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예술적인 정치인가, 정치적 예술인가라는 문제로 수렴되고 있네요. 



(2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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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동영상] 예술이론의 이데올로기 / 최진석 file oracle 2020.05.04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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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번역 :: 실재의 정치 : 들뢰즈의 루소 강의 수유너머웹진 2016.10.07 103
119 [칼 슈미트 입문 강의] 3강 네 번째 부분 수유너머웹진 2016.03.01 103
118 [동영상] 욕망하는 기계들의 철학과 정치학 (5강) / 최진석​ file oracle 2020.04.29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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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칼 슈미트 입문 강의] 4강 첫 번째 부분 수유너머웹진 2016.05.04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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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칼 슈미트 입문 강의] 1강 두 번째 부분 수유너머웹진 2015.11.06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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