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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통계학] 화폐와 고독한 개인

수유너머웹진 2015.07.06 15:15 조회 수 : 11

화폐와 고독한 개인

 




 

수유너머N 회원 / 조원광




 

 

 돈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물론 돈이 많으면 많은 것을 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여러 불편이 생긴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돈을 쓰고 돈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가지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그러니까, 돈이 많은 사람에게나 적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작동하는 돈 자체의 영향 같은게 있지는 않을까요?

 

이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어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심리학자인 캐슬린 보오스를 포함한 세 명의 학자는(Kathleen D. Vohs, Nicole L. Mead, Miranda R. Goode) 돈을 머리에 떠올릴 때 사람들이 어떤 무의식적 경향을 가지게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무의식 중에 돈을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을 부여한 실험 참가자와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이 여러 가지 상황에서 어떤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한 것입니다. "돈의 심리적 결과들"(The psychological Consequences of Money)이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 Science(사이언스) 라는 유명한 잡지에 실렸고, 검색 해보시면 쉽게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우선 링크를 소개해드립니다.



사이언스(Science) 홈페이지에서 위 논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ciencemag.org/content/314/5802/1154



실험의 조작은 이런 식입니다. 실험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두 집단 혹은 세 집단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한 집단에게는 돈과 관련된 일을 수행하도록 만들거나 돈과 연관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실험 전 참가자들에게 단어 짜 맞추기를 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생각” “아버지” “아들” “” “마신다와 같은 단어를 주고 문장을 완성시키도록 하는 겁니다. 이 경우 아버지는 아들 생각을 하며 술을 마신다와 같은 문장으로 완성시킬 수 있겠지요. 그런데 돈을 암시하는 조건을 조성하려 한 집단의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은행” “적금” “오후” “2년 만기” “가다와 같은 단어를 주는 겁니다. 그러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오후에 은행에 가서 2년 만기인 적금을 들었다와 같은 문장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돈과 관련 없는 단어를 배열한 참가자들에 비해, 돈과 관련된 이미지나 인상을 무의식 중에 가질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이것 말고도, 사람들을 스크린 세이버에 돈이 둥둥 떠다니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집단(돈 암시 집단)과 스크린 세이버에 물고기가 둥둥 떠다니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집단(중립적 이미지 집단) 그리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집단으로 나누는 방법 등을 씁니다.

 

이런 방법을 심리학에서는 점화(Priming)라고 합니다. 마치 어느 한 부분에만 불을 붙이듯, 인간의 여러 면 중에서 특정한 면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이는 매우 사소한 조작입니다. 실험자들이 돈에 대해서 뭔가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메시지를 준 것도 아닙니다. 그냥 돈과 관련된 단어를 다루도록 하거나, 이미지를 보도록 한 것일 뿐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소한 조작은 실험 참가자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드라마틱하게 바꿔놓았습니다. 돈과 관련된 점화 조건에 있었던 실험 참가자들이 그렇지 않은 실험 참가자들에 비해 훨씬 자기 충족적’(self-sufficient)인 행동과 생각을 보이는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돈과 관련된 이미지를 보거나 단어를 다룬 이들은 남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합니다. 거꾸로 도움을 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스스로 많은 것을 하려고 합니다.

 

연구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참가자들 중 일부는 컴퓨터에서 이와 같은 화폐 그림을 보거나, 그와 관련된 단어를 재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드라마틱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림 출처: "Billets de 5000" by Wazouille - montage photo sur photoshop à partir de la numérisation de plusieurs billets.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illets_de_5000.jpg#/media/File:Billets_de_5000.jpg


이를 검증한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연구자들은 총 9가지의 실험을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 몇 가지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 번은 참가자들에게 일부로 실험참가비를 동전으로 줬습니다. Quarter, 25센트짜리 동전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실험 이후에 기부를 받았습니다. 동전으로 지급한 것은, 기부할만한 돈을 가지고 있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돈과 관련된 단어를 다룬 이들은 중립적인 단어를 다룬 이들에 비해 훨씬 적은 돈을 기부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단어 맞추기가 끝난 실험 참가자들에게, 뭔가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접근시켜봤습니다. 접근한 사람은 참가자들에게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하는 코딩 작업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이 경우에도 돈과 관련된 단어를 다룬, 즉 돈으로 점화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훨씬 적은 양만을 도와주려 합니다. 참가자들 앞에서 일부러 연필을 쏟고, 몇 개나 주워주는지 살피는 재미있는 일도 하는데(^^;;), 이 경우에도 주워주는 연필의 양이 더 적습니다. 돈으로 점화된 집단이 말이죠.

 

도움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움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화 조건을 거친 후, 참가자들에게 굉장히 풀기 어려운 문제를 풀라고 합니다. 그리고 원하면 옆에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으로 점화하는 조건을 부여한 집단에 속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속한 이들에 비해 도움을 잘 요청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깁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는 경향이 줄어듭니다. 사람들에게 돈과 관련된 이미지 혹은 그와 상관없는 중립적인 이미지를 보여준 후,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테니 의자를 배치해달라고 합니다. 이 경우 관심사는 참가자들이 의자를 얼마나 가까이 배치하느냐 입니다. 돈으로 점화된 조건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의자들을 훨씬 멀리 놓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가까이 앉고 싶지 않은 것을 표출한 것이지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체크하라는 설문에, 같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선호하는 응답을 합니다.

 

 굉장히 신기하고 인상적인 결과입니다.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우리는 이미 돈에 매우 익숙합니다. 이미 돈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고 있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돈과 관련해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날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돈과 관련된 이런 사소한 조작으로도 우리의 행동과 생각이 이렇게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이를 보면, 인간은 구조의 영향에 따라 100% 정해지는 존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복잡한 존재이며, 자극에 따라 다양한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이지요. 보오스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혹은 이런 일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을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몫으로 남겨둡니다.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 ~ 1918), 근대 문화와 제도를 세심한 눈길로 파헤친 독일의 사상가입니다.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등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연구결과를 보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했던 독일의 사상가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이 떠올랐습니다. 짐멜이 살았던 당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여러 특징이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입니다. 짐멜은 현대 사회의 새로운 여러 요소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이들의 영향을 검토하는데, 화폐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짐멜은 화폐가 인간의 개인주의를 강화하는 한편, 사물과 인간들을 모두 수평화하고 평등화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시장에서 돈이 사용되고 모든 물건과 사람에 가격이 붙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수평화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대상의 질적 특성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진 연필은 얼마짜리라고 불릴 뿐,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개별화됩니다. 중세와 달리, 내 삶에 필요한 것을 얻는데 돈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시장에 돈을 들고 가면, 내가 필요한 것을 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빵이 필요하다고 하면, 빵집에 돈을 들고 가면 됩니다. 빵집 주인과 개인적 인연을 맺을 필요가 없고, 거꾸로 빵집 주인에게 제가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매일 가는 빵집이라 해도 빵집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그 주인도 우리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날 다른 사람이 빵집을 운영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는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진 돈을 얻기 위해 그 사람은 빵을 만들 테니까요. 요컨대 시장에서 돈을 사용하는 이상, 우리는 완벽하게 독립적인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짐멜의 이런 설명은, 보오스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이 내놓은 이런 결과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단서가 됩니다.

 

 화폐는 우리를,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고독한 개인으로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 많건 적건, 그냥 그것을 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말이죠. 물론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 고독을 필요로 하는 순간도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삶의 많은 기쁨과 의미를 관계에서 얻습니다. 우리가 여러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를 이겨내기 위해 친구를 찾는 것은, 나만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요. 어쩌면, 돈은 우리가 이런 기본적인 기쁨과 경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데 한 몫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고민해 볼 일이라 생각합니다




*<왕초보 통계학> 코너의 새 글을 기다리신 독자분께 알려드립니다. 미리 예고된 바와 달리, 당분간 <왕초보 통계학>은 재미있는 실증연구들을 소개하는 글을 내게 되었습니다. 주 필자인 제가(조원광) 아직 재미있는 방식으로 통계를 설명할 능력이 되지 않음을 절감하였기 때문입니다. ㅜㅠ 이 점 널리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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