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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스님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다섯 번째 강의





녹취 및 정리: 황호연 / 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제목인 <네 번째 강의>는 편집자가 임의로 부여한 것입니다. 정화스님의 실제 강의는 총 5회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한 강 한 강이 한 편의 글이 되기에는 매우 긴 편이라, 독자분들이 보기 편하시도록 조금 더 세분하여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즉 이번 글은 정화스님의 1강 원고에서 다섯 번째 부분임을 알려드립니다. 



짜라두짜는 ‘자, 이런 이야기를 해주러 내가 지상에 내려왔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이야기냐 하면, 쭉 보면 "그냥 저렇게 비웃고 있구나."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모든 사람이 짜라두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웃습니다. 노자는 비웃음도 대단히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고 이야기합니다.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도를 말했는데, 그 도를 듣고 있는 사람이 비웃지 않으면 내가 도를 제대로 말한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제가 말하는 데 하나도 비웃지 않았잖아요? 허허. 그래서 저도 도를 말하지 못했고, 여러분도 도를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도를 말했으면 여러분께서 "저 중이 사기치고 있네"라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우리 관계에서는 전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못합니다. 저는 우리가 말하는 언어문화에 충실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아, 문화가 떼를 덮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때의 ‘떼"란 미몽의 구름에 덮여있는 군중을 말합니다. 미몽의 구름을 저 사람들은 문화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문화란 단순하게 말해서 "글이 되는 것"입니다. "글월 문"이고 "될 화"자이니까, 글이 되는 것입니다. 글이라는 것은 공통 언어체계를 가지고 서로 연결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여러분들은 혹시 저의 정신을 듣는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상 그렇게 말하기는 애매합니다. 제가 머리를 열심히 굴려서 언어 개념을 발합니다. 그런데 발할 때 나오는 것은 전부 다 "소리"입니다. 기본적으로 개념을 전하고는 있지만 소리입니다. 불교에서는 소리를 "색", 즉 물질로 보고 있습니다. 소리를 물질로 봅니다. 제 정신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정신을 물질화 시켜서 여러분들께 계속 전달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소리를 듣고 물질을 정신으로 바꿉니다. 이때, 아까 말한 대로 수용체의 내용을 한번 보십시다. 수용체로 보면 사실상 우리가 소리로 공유하는 정신은 온전히 같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소리가 물질이라고 말해지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온전히 정신의 상태를 뜻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만일 아까 말한 양자적 상황, 그런 관점에서 소리라고 하면 이 소리는 여기에만 들리는 게 아니고 동시에 전 세계에 미묘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즉, 전 세계에 문화적 배경을 바꾸는 역할을 알게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딱 메이게 되면, 다시 말해서 사전을 찾아서 그 글의 개념으로 이것을 해석하게 되면 어떤 때까지는 아주 잘 맞지만 다른 때에는 안 맞는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아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맞았는데 남편이나 아내하고 말할 때에는 안 맞는 일도 발생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놓고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 글을 통해서 문화적 소양을 가졌지만, 아까 말한 시대적 배경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서 문화 자체가 시대로부터 소외되기 시작합니다.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기 시작하니까 문화에 대한 우상숭배가 일어날 수밖에 없지요. 그것은 자신이 문화 활동을 하는 게 아니고 여기서 말하는 미망에 덮여있는 그런 정신을 갖게 되는 겁니다.

*정화 스님께서 강의 교재로 사용하신 책은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백석현 옮김, 야그 출판사, 2007년)입니다. 현재 절판되었고, 이 책을 개정해 다른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 있습니다.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박성현 옮김, 심볼리쿠스 출판사, 2012년)입니다.

*강의를 직접 들으신 분들은 Ⅰ.『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와 Ⅱ.『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정동호 옮김, 니체편집위원회 감수, 책세상 출판사, 2000년), 그리고 그 외 번역본들 중 편한 것을 참고하셨습니다.

*녹취록에서는 강의 중에 언급된 위 책 두 권(Ⅰ,Ⅱ)의 해당 부분을 스님이 말씀 하신 것을 참조하여 재구성해서 옮깁니다. 페이지 표시는 가독성을 위해 옮긴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만 하였습니다.

* 페이지 표시의 예: Ⅰ번 책의 36쪽, Ⅱ번 책의 38쪽은 아래와 같이 표기합니다. -> (Ⅰ:36, Ⅱ: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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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 짜라두짜는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던집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채널에 전혀 감응되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인간은 인간을 극복해야합니다."라고 이야기하니까 ‘저 사람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 헛소리를 하고 있네."라고 노자가 말한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짜라두짜가 도를 제대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사람이 사람을 극복하자는 말을 한참 듣다가,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듣는데 잠깐 듣다가 보니까 짜라두짜가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지요? 그래서 옆에 있는 줄타기 곡예사에게 "야 그러지 말고 줄이나 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곡예사가 나와서 줄을 탑니다. 줄을 타고 있는데, 어떤 "광대"가 나와서 소리를 바싹 지르는 통에 줄타기 곡예사가 떨어져 죽습니다.

 자, 이때 곡예사를 부리는 사람이 광대입니다. 저 사람을 왜 광대라고 했을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에게 가장 많이 힘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의 생각을 잘 읽어서 그 생각을 그대로 전해주는 광대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줄타기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곡예사지요. 그런데 이 곡예사를 부리는 사람이 광대이니까, 곡예사의 아슬아슬한 삶의 내용은 별로 자기의 삶이 아닙니다. 광대에 의해서 부려진 줄타기입니다. 그런데 이웃과 이웃을 연결해주는, 초인이 걸어야 할 길을 그렇게 걸어가려면 자신이 걸어야 할 길에 온전히 깨어있어서 자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광대의 말을 듣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떨어져서 죽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실제로는 죽은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곡예를 열심히 부려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기본적으로는 당신은 광대의 습성을 버리지 못해서 죽은 삶을 살고 있지 않느냐, 그것은 초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광대는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무엇의 자유, 무엇의 자유 등등이 있지요? 무슨 언어, 사상, 종교, 언론, 교육 등등의 배경으로 자신의 삶을 잘 살게 만드는 것처럼 보고는 있지만, 바꿔 말하면 우리는 언론의, 종교의, 사상의, 교육의 광대가 돼서 그 사람들이 곡예사를 부리는 ‘힘’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살도록 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정확히 넘어서지 못하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조롱만 당하다가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짜라두짜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프다"고요. 꼭 강도가 나를 덮치는 것 같다고, 정신이 깨어나서 세상에 나와서 뭔가 말을 했더니 ‘아, 저 이상한 놈이 뭔가 말을 하니 들어나 보자"고 했다가 ‘아 미친놈이 말하고 있군."하고는 자기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광대 짓을 모르면서 당신은 광대가 아니라고 하는 짜라투짜의 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살아주는 그 상태를 허무로 채우고 있는 그런 것이 삶이기 때문에 허무가 엄습해옵니다. 그래서 가득 찬 자신의 존재들이 그 허무로 인해서 배고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공연 중인 광대의 사진입니다. 스님은 니체가 말하는 광대를 우리가 잘 모르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여러 질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직업으로서 광대가 되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점에서 정말 훌륭한 일이지만, 

무의식적인 질서에 따른다는 의미에서 광대처럼 사는 것은, 광대가 시키는대로 사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출처: "Colorful Clown 3".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olorful_Clown_3.jpg#/media/File:Colorful_Clown_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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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곡예사가 죽었으니까, 정신 깬 사람이 죽은 시체를 묻으러 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람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아, 산 사람 하나와 죽은 사람이 간다."고 하는데, 이 뒷이야기가 의미심장합니다. 노인이 먹을 것을 줍니다. 그러면서 그냥 살아있는 짜라두짜에게만 먹을 것을 주면 되는데, 죽은 시체의 몫까지 줍니다. 짜라두짜가 ‘이 사람 죽었는데 왜 먹을 것을 주느냐?"고 하니까, 그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살았건 죽었건 상관없어. 내 집 문을 두드린 사람은 내가 주는 것을 얻어먹어야지. 먹으시오."라고 말합니다. 아.. 살아있는 사람만 조종을 당하는 게 아니고, 죽은 사람까지도 조종을 당하고 있는 세태를 이야기합니다. 죽음까지도 우리는 마음대로 죽지 못하는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대로 짜라두짜가 그런 것을 쭉 보면서 죽은 사람을 땅에 묻습니다. 하늘로 보내지 않습니다. 축도를 해서 이 사람을 하늘나라로 보내지 않고 땅에 묻습니다. 땅이야말로 모든 생명이 나오는 자리입니다. 그곳이야말로 영혼이 편안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따라서 지혜는 하늘에 있는 게 아니고 땅에 있다고 하면서, 하늘에 있는 추상적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면 떼로서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여도 미망의 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이 이런 율법 서판을 만들어두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율법 서판대로 사는 것이 훌륭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잊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이 율법 서판이 나오기 전에는 율법 서판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없던 것이 새로 나옵니다. 바꿔 말하면 있던 것도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이것을 딱 손에 쥐고 있으면서 ‘이제야말로 진리가 완전히 드러났으니까 이 서판 밖의 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마치 그 율법서판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시대정신을 꿰뚫어내는 새로움을 전혀 발생하지 못하는 그런 역할을 하게 하는 것, 짜라두짜는 그래서 말합니다. ‘율법서판을 깨뜨리는 사람이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죽음조차 관장하는 그런 힘으로부터 벗어나야한다. 그런 힘으로부터 자신을 넘어서야한다고 얘기하면서 (땅으로)내려가면서 동시에 인간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듣지 않지요.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다시는 인민에게 말을 하지도 않을 거요. 나는 다시는 죽은 사람에게 말을 하지도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산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은 사람조차 자신이 왜 죽었는지 모르는 그런 상태에서 누가 내 말을 알아듣겠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나는 내려가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넘어서게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인간을 넘어서서 자신의 삶을 살 것인가? 봤을 때, 중천에 뜬 해처럼 환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그런 눈을 갖는 동시에 독수리처럼 세밀한 관찰력과 뱀처럼 지혜로운 판단력을 가지고 자신을 보게 되는, 그래서 누군가는 온전히 자기를 살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말을 했는데 아무도 알아들은 사람이 없다고요. 부처님도 거의 비슷한 느낌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자기가 깨달음을 얻고 난 다음 보니까 당시에 다른 수행자가 옆에서 공부한다고 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경험했다’고 말하니까, ‘그래. 뭐.. 잘했어."라고 하면서 듣지 않고 가버립니다. 그런 정도의 이야기가 아주 가장 가까운 이야기지요. 멀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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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라두짜도 아무도 안 듣고 가버리니까 혼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 좀 더 지혜로워져야 하는데. 저 뱀처럼 본능적으로 지혜로워져야 하는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지혜의 특징은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떤 것에도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는 굉장히 훌륭한 이야기가 다른 곳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니까, 그 상태에 대해서 온전히 깨어있어서 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다른 느낌으로 그 인연을 꿰뚫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언어나 형태에서도 머물러있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억하되 그 기억에 메여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허망한 생각을 끌고 가면서, 그것이야말로 온 시대를 관통하는 생각인 것처럼 여기면 안 됩니다. 세 번째는 내외의 이미지에 먹혀서는 안 됩니다. 에리히 프롬은 우리를 끌고 가는 것이 광고라고 이야기합니다. ‘네가 이렇게 걷고 있으면 굉장히 자유로운 선택과 활발한 생명활동으로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아니야. 광고가 너를 그렇게 걷게 했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광고가 어디 텔레비전에 나오는 15초 광고만 있겠습니까? 많은 곳에서 행해지는 그런 광고 이미지가 우리를 조종할 때 그것을 알아차리면서 그런 이미지에 먹히지 않고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조금 더 지혜로워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지혜가 없는 것들을 한탄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어느 날 지혜가 날을 떠나는 날이 되면, 지혜가 사람을 버리고 훌쩍 떠나버리는 그런 날이 되면 자존심도 지혜와 함께 떠날 것"이라고 합니다. 지혜 없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존감 있게 살아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까 억울한 일들을 많이 당했는데 사실상 돈이나 권력 등등의 힘을 가지고 억울함을 해소하려고 하면 궁극적으로 자신의 자존의 억울함을 해소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온전한 위대성을 갖춘, 생명의 한 순간인줄을 자각하며 그 한순간이 모든 우주의 역사성과 시간성을 다 담고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만이 지혜로우면서 자존심이 자신으로부터 떠나가지 않게 됩니다. 어느 날 지혜가 떠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자존감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프롤로그를 마치고 있습니다. 모두들 자신의 위대한 생명성을 그대로 잘 보시면서 떠나지 않는 지혜로 자존감 있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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