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무엇인가]_2 철학은 어떻게 철학이 되었나

수유너머웹진 2014.05.13 06:51 조회 수 : 4

철학은 어떻게 철학이 되었나




 

문한샘/ 수유너머N 회원





그때 그리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철학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많이 알려져 있듯, 철학은 그리스에서 탄생했다고 합니다.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했다는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라든가, 이데아의 존재를 설파한 플라톤의 이야기를 흔히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철학이 등장하기 전에도 사람들이 무언가 생각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철학이 아니더라도 사유는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철학은 그리스에서 탄생했다’라는 말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철학이 그 이전의 사유와 다른 것이라는 것이죠. 철학 이전의 사유와 철학은 어떻게 다를까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이하 들뢰즈)는 철학을 ‘개념을 창조하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개념을 창조한다? 이 말의 의미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들뢰즈가 철학의 발생을 설명하는 부분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철학이 그리스에서 발생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의 질문은 이런 것이 됩니다. 그때 그리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전의 사유와 다른 철학을 탄생시켰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먼저 대답함으로써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들뢰즈가 던지고 있는 커다란 질문,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접근하려고 합니다.



두 가지의 탈영토화


그때 그리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들뢰즈는 어떤 ‘만남’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철학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그리스의 환경과 사유의 내재성 구도 사이의 만남이 필요했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이라는, 매우 다른 탈영토화의 두 운동들의 결합이 필요했었다. 사유의 구도에 있어서의 절대적 탈영토화가 그리스 사회의 상대적 탈영토화에 덧붙여지거나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했다.”(137) 들뢰즈가 볼 때 철학의 탄생을 위해서는 특정한 흐름들의 만남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흐름은 이전과는 다른 흐름이어야 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어 떤 흐름들의 만남, 이것을 들뢰즈는 ‘탈영토화된 흐름들의 결합’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탈영토화’는 들뢰즈의 고유한 개념입니다. 우선 영토란 특정 환경에 익숙해지고 고착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방은 나의 영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 숟가락과 젓가락에 영토화되어 있는 것이겠죠. 그런데 우리는 보통 특정한 환경에 영토화되어 있지만, 그 영토로부터 벗어나기도 합니다. 해외여행을 간다면 수저가 아니라 포크, 나이프나 손으로 식사를 하게 되겠죠. 이렇게 특정 영토에서 벗어나는 것을 ‘탈영토화’라고 합니다. 들뢰즈는 철학의 발생을, 이전의 영토에서 탈영토화된 두 흐름의 결합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두 가지 흐름은 무엇일까요? 먼저 들뢰즈는 그리스 환경에 있어서의 상대적 탈영토화를 이야기합니다. 철학의 발생에 있어서 특수한 지리적인 조건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철학이 탄생했던 그리스의 이오니아 지방은 제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형태를 유지했는데, 거기 살던 사람들은 제국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었다고 해요. 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우연히’ 모여 살았던 것이죠. 때문에 지역들 간의 교류가 활발한 일종의 ‘국제적 장터’ 역할을 했습니다. 즉 서로 동질성이 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다가 누구나 돈 앞에 평등해야 하는 ‘시장’이라는 환경은, 제국에서라면 감히 가능하지 않았을 ‘친구들 간의 토론’이라는 상황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동등한 위치에서 논쟁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제국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의견에 대한 취향, 의견 교환, 대화에의 취미”(129)가 생겨납니다. 이것이 ‘그리스 사회의 상대적 탈영토화’입니다(들뢰즈는 이러한 지리적인 탈영토화 역시 탈영토화이긴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다른 층위로의 탈영토화는 아니라는 점에서 ‘상대적 탈영토화’라고 합니다).

이런 지리적 요인 말고도 또 하나의 결정적인 탈영토화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들뢰즈가 ‘사유의 구도에 있어서의 절대적 탈영토화’라고 부른 것입니다. 철학이라는 것이 등장하기 전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어떤 형태로든지 사유해왔습니다. 그러나 들뢰즈가 볼 때 그것은 철학일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그 사유가 ‘초월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단일성 혹은 영적 권력, 이 두 경우 모두 내재성의 구도 상에 투사된 초월성이 신을 형상들로 뒤덮거나 채운다.”(131) 들뢰즈는 그것이 제국의 왕이든 민족이 섬기는 신이든, 고대적인 사유는 초월적인 대상을 갖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종교적인 사유가 되겠지요. 종교에서는 그 사유의 구도 상에 이미 신이라는 초월적 대상이 존재합니다. 신은 사유의 전개에 따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이 구도 상에서 무조건적으로 존재합니다. 그것을 ‘초월적 대상’이라 부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구도에서 나오는 사유란 이미 신의 그림자 속에 있는 사유일 수밖에 없습니다. 철학을 ‘개념을 다루는 것’이라 하는 들뢰즈의 입장에 따르면, 이런 초월적인 구도 상에서 개념은 초월적 대상, 즉 ‘형상’이 ‘투사’된 형태로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합시다. 초월적인 사유에서는 이 개념을 ‘신’이라는 초월적 대상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신의 자유를 나누어 받은 것이다’와 같이 신이 개입하는 형태로만 사유가 전개되는 것이죠. 이렇듯 들뢰즈가 보기에 철학이 등장하기 이전의 사유는 초월성에 사로잡힌 사유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월적 사유에서 내재적 사유로


그럼 철학이 초월적 사유가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초월적 사유와 대비되는 철학의 특징을 들뢰즈는 ‘내재성’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들뢰즈가 말하는 내재성이란 외적인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철학 이전의 초월적 사유에서는 초월적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그 사유의 구도 전체를 지탱하는 출발점이자 기준이 되었던 것이죠. 이제 그런 대상이 사라질 때 비로소 철학이 등장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의 초월적인 기준이 사라지면서 이제 초월적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개념들 간의 관계, 그리고 개념의 요소들 간의 관계를 묻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개념 속에 무엇을 넣을 것이며, 무엇과 함께 넣을 것인가? 이 개념 옆에는 어떤 개념을 놓을 것인가? 각각에는 어떤 구성요소들이 있는가?”(133) 이제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 겁니다.


즉 초월적 사유에서는 초월적 대상이 사유 구도의 중심이었고 그것은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면, 철학이 내재적 사유라고 할 때 그것이 뜻하는 바는 인접한 개념들 간의 관계를 바꿈으로서 구도 자체를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자유’ 개념에 대해 규정하려 할 때, ‘신’이라는 초월적 대상과의 관련 속에서 생각하는 사유를 떠나 ‘예속’ 혹은 ‘가능성’ 등과 같은 다른 개념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개념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규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설사 ‘신’이 그 구도에 들어온다고 해도 이때의 ‘신’은 내재성의 구도 상에서 다른 개념들과 똑같은 위상을 갖는 하나의 개념일 뿐, 초월적 대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들뢰즈는 사유의 구도 상의 이러한 탈영토화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층위로 바뀐다는 점에서 ‘절대적 탈영토화’라고 부릅니다. 초월적 대상과의 지긋지긋한 관계로부터 ‘절대적으로’ 탈영토화된 것이지요.



          



철학이 하는 일? 개념을 창조하는 것!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봅시다. 그때 그리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질문에 대해 들뢰즈는 탈영토화된 두 흐름의 결합이 있었다고 대답합니다. 지리적 환경에서의 상대적 탈영토화, 그리고 초월적 사유로부터의 절대적 탈영토화. 이 두 흐름의 결합을 통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내재적 사유’로서의 철학입니다. 철학은 개념을 다루는 것이고, 이때 개념은 내재성의 구도 상에서 전개됩니다. 따라서 개념들 간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사유를 전개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철학은 개념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명제의 의미를 이제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철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개념을 다룹니다. 그러면서 철학은 내재성의 구도 상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개념들 간의 관계를 바꾸고 다른 항들과 접속시키면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개념을 창조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이전의 사유가 하지 못했던 일이고 동시에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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