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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슈미트 입문강의] 6강 여섯번째 부분

수유너머웹진 2016.09.28 07:07 조회 수 : 34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비군사적∙비정치적 개념들’로서의 자유주의

 

다음으로, 자유주의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폭력 Gewalt’과 ‘부자유 Unfreiheit’를 싫어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폭력과 부자유에 대해서는 모든 자유주의적 열정이 반발한다. 원리적으로 무제한인 개인적 자유, 사유재산 및 자유경쟁에 대한, 어떤 침해, 어떤 위험도, ‘폭력’이라고 불리는 것이며, 그 자체로서 나쁜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가 국가 및 정치에 대해 약간 인정하는 가치는 자유의 조건들을 확보하고 자유의 방해를 배제한다는 한 점에 국한될 것이다.

[*홍철기 : 모든 자유주의적 파토스는 폭력과 부자유에 반대한다. 개인의 원칙적으로 무제약적인, 사적소유와 자유로운 경쟁의 자유에 대한 모든 피해와 위험은 ‘폭력’이라 불리며 그 자체로(eo ipso) 사악한 어떤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에게 국가와 정치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간주되는 경우란 자유의 조건을 보장하고 자유의 침해를 제거하는데 제한된다.]


 

‘폭력 «Gewalt»’이라고 괄호가 붙어 있는데, 이는 아마도 독일어 <Gewalt>에 ‘권력’과 ‘폭력’이라는 이중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겠죠. 일본어라면, 완전히 다른 말이 되어 버리네요.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괄호가 없는 쪽은 ‘권력’으로 번역하는 편이 좋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에서, ‘자유주의’가 ‘권력’을 싫어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권력’에 의한 자유의 침해가 ‘폭력’이며, 이런 의미에서 ‘악 etwas Böses’이라고 하는 말만으로도 속이 다 후련하네요.

91頁에서 이런 ‘비군사적∙비정치적 개념들’로서의 자유주의가 유럽에 만연해 있다고 기술되어 있네요. 자유주의는 윤리와 경제의 양극적 측면으로부터, “‘침략적 폭력 erobernde Gewala’의 영역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을 소거하려고 애쓴다”고 기술되어 있네요.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정치적 단위’로서의 국가가 존재하는 한, 전쟁의 가능성을 수반한 ‘정치적인 것’은 없어지지 않지만, [권력=폭력=악]이라는 전제에서, 소멸되고 있는 요소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이 ‘자유주의’라고 하는 게 됩니다.

 

 

이 경우 ‘법치’국가, 즉 ‘민법[私法]’ 국가라는 개념이, 지렛대역할을 하고, 사유재산의 개념이 전 구체의 중심을 구성하고, 그 양극 ― 윤리와 경제 ― 은 그저 이 중심의 대립적 방사에 불과한 것이다.

[*홍철기 : 이때 ‘법’국가, ‘사법(私法)’국가의 개념은 지렛대로서 기능하고 사적소유의 개념은 지구의 중심을 구성하는데, 그것의 양극 ― 윤리와 경제 ― 은 이 중심점으로부터 양극으로의 발산일 뿐이다.]


 

요점은 “‘법치’ 국가 «Recht»staat”라는 개념이 실질적으로는 “‘민법[私法]’ 국가 Privat«rechtstaat»”라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대목에 괄호를 붙여 강조하는 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슈미트가 어떤 의미에서, 어떤 측면에서 본 ‘법’인지에 대해 천착했기 때문입니다. ‘민법[私法]국가’라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 기반인 사유재산이나 계약자유를 법적으로 지키는 것을 임무로 삼는 국가라는 것입니다. 이 ‘민법[私法]국가’가 ‘지렛대 Hebel’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민법[私法]’ 안에 경제성이, 그리고 규칙을 지키면서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의미에서의 윤리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양극을 매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버의 말투를 빌리면, ‘자본주의의 정신’과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를 융합하는 것입니다.


 

역사철학과 ‘산업사회 industrielle Gesellschaft’로의 전환

 

이런 ‘국가’는 슈미트적 의미에서의 ‘정치’성을 잃고, 실질적으로 ‘사회 Gesellschaft’와 똑같은 것으로 변질된다. ‘사회’와 똑같은 것이라고 얘기한 것은 ‘경제’와 시민적 윤리로 움직이고 있으며, ‘정치’적 투쟁이라는 계기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유주의’가 지향하는 바라는 것입니다.

 

 

원래 처음부터 자유주의적 사고는 국가 및 정치에 대해서 ‘폭력’이라는 비난을 들이댔다. 이것은 만일 위대한 형이상학적 구조 및 역사해석이라는 관련이 이 비난에 더 넓은 전망과 훨씬 강한 설득력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정치적 투쟁 때의 많은 무기력한 욕설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계몽된 18세기는 인류의 높아지는 진보라는 명료하고 단순한 노선을 눈앞에서 봤다. 진보는 무엇보다도, 인류의 지적∙도덕적 완전화이어야 한다고 간주되며, 노선은 두 개의 점 사이를 달리며, 광신으로부터 정신의 자유∙자립으로, 독단에서 비판으로, 미신에서 계몽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향했다.

[*홍철기 : 처음부터 자유주의 사상은 국가와 정치에 대해 ‘폭력’이라고 비난하는데 목소리를 높였다. 거대한 형이상학적 구조와 역사해석이 그 비난을 더 넓은 지평과 더 강한 설득력에 연결시키지 못했더라면 그것은 정치논쟁에서의 수많은 무기력한 욕설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것이다. 계몽된 18세기는 상승하는 인류 진보의 단순 명료한 진로를 눈앞에서 보았다. 진보는 무엇보다 인류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완성으로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 진로는 두 지점 사이에서 운동했으며 광신으로부터 정신의 자유와 성숙으로, 도그마에서 비판으로, 미신에서 계몽으로 암흑에서 빛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국가를 탈‘폭력=권력’화하려고 하는 자유주의의 야망이 성공한 원인으로서, ‘진보 Forschritt’의 관념을 핵으로 하는 역사철학이 지적으로 지배적이게 됐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는 거죠. ‘인류의 지적∙도덕적 완전화 eine intellektuelle und moralische Vervollkommnung der Menschheit’를 향한 ‘진보’입니다. ‘진보’라는 형태에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게 좋다는 것이 있습니다.

다만, 이것 뒤에 단서를 붙이듯이, 슈미트는 똑같은 역사철학이라고 해도 3항도식과 2항도식이 있으며, 후자가 단순하고 알기 쉬우며, 기폭력(起爆力)이 있다고 기술되어 있네요. 전자의 예로 헤겔의 [자연적 공동체 → 시민사회 → 국가], 콩트의 [신학 → 형이상학 → 실증적 과학]을 들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2항도식으로는 기르케의 ‘지배 Herrschaft’와 ‘단체 = 조합 Genossenschaft’이나, F. 퇴니스(1855-1936)의 ‘공동사회 Gemeinschaft’와 ‘이익 사회 Gesellschaft’를 들고 있네요. 다만 알기 쉬운 2항도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장 현저하고, 역사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례는 칼 맑스에 의해 정식화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치이며, 이것은 지상의 많은 부르주아지를 단 하나로 만들어내고, 마찬가지로 많은 프롤레타리아트도 단 하나로 만들어내며, 이런 강대한 친구∙적의 결속을 만들어냄으로써, 세계사의 모든 투쟁을 인류의 최후의 적에 대한 단 하나의 최종적인 투쟁으로 집약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설득력은 19세기에 있어서 우선 첫째로는, 다음의 점에 있었다. 즉, 그것은 자유주의적∙부르주아적 적을, 경제적인 것의 영역으로 몰아넣는 것, 그리고 이 영역에서, 이른바 적 자신의 영토에서, 적 자신의 무기로, 적을 몰아세운 것이다. 이것은 경제적인 것으로의 전회가 ‘산업사회’의 승리로 결정됐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 승리의 시점으로서는, 잉글랜드가 나폴레옹의 군국주의적 제국주의와 싸워서 이긴 1814년을 그렇게 생각해도 좋으며, 그 가장 단순하고 간결명료한 이론으로서는, 인류의 역사를 군국주의적∙봉건적 사회로부터 산업적∙상업적 사회로의 발전을 보는, H. 스펜서의 역사해석이, 또한 그 최초의, 그러나 이미 완전한 기록적 표명으로서는, 19세기의 자유주의적 전(全) 정신성의 창시자인 뱅자맹 콩스탕이 1814년에 간행한 「정복력의 정신」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들 수 있다.

[*홍철기 : 가장 인상적이고 역사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사례는 칼 마르크스에 의해 정식화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반명제]인데, 이를 통해 세계사의 모든 투쟁을 인류 최후의 적에 맞선 하나의 단일한 최후의 투쟁으로 집중시키려한다. 그 투쟁에서 지구상의 다수의 부르주아 계급들은 하나의 단일한 부르주아 계급으로, 다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들은 단일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통합되며 이런 방식으로 강력한 친구-적의 결집이 쟁취된다. 이 대립[반명제/반정립]의 설득력은 하지만 19세기에 무엇보다 자유주의-시민적[부르주아적] 반대자를 경제적인 영역에서 추적하였는데, 말하자면 반대자에게 속하는 영토에서 반대자의 무기를 갖고 반대자를 조준한 셈인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는데, ‘산업사회’의 승리와 함께 경제적인 것으로의 방향전환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승리의 날짜는 1814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해에 잉글랜드가 나폴레옹의 군사적 제국주의 승리하였기 때문이다. 그 승리의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통찰력 있는 이론으로서 허버트 스펜서의 역사해석은 인간사를 군사-봉건 사회에서 산업-상업 사회로의 진화로 보며, 이 승리의 최초이면서도 이미 완전하게 기록된 문서는 ‘정복하는 힘의 정신’, 즉 정복의 정신(esprit de conquête)에 관한 벵자멩 콩스탕(Benjamin Constant)의 논문인데, 콩스탕은 19세기 자유주의 정신성 전체의 시초로서 1814년에 이 논문을 발표하였다.]

 

 

맑스주의가 ‘친구/적’ 결속의 논리를 따른다는 이야기는 지난번에도 나왔는데요, 여기서는 그것을 역사철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거론하는 겁니다. 맑스주의의 유물사관=계급투쟁사관에서는 ‘역사의 최후’에 ‘인류의 최후의 적 der letzte Feind der Menschheit’인 ‘부르주아지’에 대한 최종 투쟁이 벌어진다고 주장되며, 그 하르마게돈[아마게돈]의 싸움에 동참하라고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호소한다. 아까는 제1차 대전 후의 국제정치에서 영미불 등의 서구국가들이 ‘인류’의 이름으로 상대를 비인간화한 다음, ‘최종전쟁’을 벌이려고 한다는 얘기가 나왔는데요, 맑스주의는 그것을 19세기 중반부터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사상에서도 자주 듣는 겁니다만, 알기 쉬운 이항대립 도식은 사람들을 끌어당기지요.

슈미트는 맑스주의가 설득력을 얻게 된 요인으로 부르주아적 자유주의를 ‘경제’의 영역으로 완전히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어려운 것 같지만, 중요한 대목은 단순합니다. 앞에서도 나왔듯이, 부르주아적 자유주의는 ‘경제’와 ‘윤리’라는 두 기둥 위에 성립되어 있습니다. ‘경제’뿐 아니라 ‘윤리’도 있다는 것이 열쇠입니다. 자유주의는 단순한 돈벌이를 추구하는 것일 뿐 아니라 행위주체로서의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서로 공평하게 행위(play)하기 위한 ‘정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스미스, 밀, 롤즈 등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은 경제 속에서 윤리를 찾으려는[요구하는] 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맑스주의는 그런 도덕성을 부정하고, 자유주의=자본주의의 본질이 탐욕스럽게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은 반쯤은 자유주의 자신의 주장이었던 겁니다.

 

 ‘산업사회 industrielle Gesellschaft’로의 전환이 ‘경제’ 중심적 견해를 강하게 했다는 것이죠.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가 확립되고 노동자는 자유로운 경제 주체가 아니게 되며, 시민사회적 도덕은 점점 쇠퇴됐습니다. 맑스주의는 그것을 마구 공격한 것입니다. 스펜서는 밀과 나란히 고전적 자유주의의 완성자로 알려진 정치∙경제사상가로, 사회진화론으로 유명합니다. 뱅자맹 콩스탕(1767-1830)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사상가로, 프랑스 혁명 후에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구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헌법에는 민주주의의 폭주를 억제할 수 있게끔 자유권적 권리들이 반드시 명기되어야 한다고 논했습니다. 또한 ‘고대인의 자유 liberté des Anciens’와 ‘근대인의 자유 liberté des Modernes’를 구별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근대인의 자유’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타자에게서 간섭을 당하는 것을 배제하는 개인의 자유입니다만, ‘고대인의 자유’란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국가에서 보이는 집단적 자기통치에의 참여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18세기에도 아직 주로, 인도적∙도덕적이고 지적이었던, 즉 ‘정신적’이었던 진보의 신념이, 19세기의 경제적∙산업적∙기술적 발전과 결부된 것이다. ‘경제’가 스스로를, 이 실제로는 대단히 복잡한 것의 담지자라고 느꼈다.

[*홍철기 :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18세기의 여전히 주로 인도-도덕적이고 지적, 즉 ‘정신적’인 진보에 대한 신념이 19세기의 경제-산업-기술적 진화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경제’는 스스로를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한 위력의 담지자로서 자각했다.]

 

 

현대의 우리의 감각으로는, 경제성장과 기술의 발전이 ‘진보’의 중심이라는 시각은 당연한 것인 양 느껴지지만, 프랑스혁명 이전에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으며, 인간의 ‘정신’, 도덕성이나 인간성이 ‘진보’의 원동력이라는 발상이 아직 있었던 겁니다. 루소는 『학문예술론』(1755)에서 학문과 예술의 발전이 인간의 습속을 개선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했는데, 18세기에는 이런 물음이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19세기에는 ‘자유’와 ‘이성’이 결탁한 경제가 ‘진보’의 추진동력이었던 반면, ‘봉건성(Feudalität)∙반동(Reaktion)∙경찰국가’가 그것을 저지한다는 역사의 이항대립도식이 성립됐다고 기술되어 있네요.

 

 

 

이리하여 19세기에 있어서 특징적인 다음의 구분이 생긴다.

독재로서의                   대    의회주의로서의

국가∙전쟁∙정치와 결부된    대     경제∙산업∙기술과 결부된

봉건주의∙반동∙폭력          대     자유∙진보∙이성

 

[*홍철기 : 그래서 19세기의 특징적인 다음과 같은 결집이 생겨난다.

자유, 진보, 이성은             대       봉건주의, 반동, 폭력행위는

경제, 산업, 기술과 결합한         대      국가, 전쟁, 정치과 결합한

의회주의                                대          독재]

 

 

즉, 슈미트의 ‘정치’ 이해의 핵심이 된 것은 ‘독재’, ‘국가’, ‘전쟁’ 등이 ‘진보’를 방해하는 악역으로 취급되고 배제되어야 할 것으로 다뤄져왔다는 것입니다. 콩스탕이 이런 대립도식을 그렸다고 기술되어 있네요.

그러나 ‘경제∙자유∙기술∙윤리∙의회주의’의 ‘복합적 연합체 komplexe Koalition’가 봉건제나 절대주의 국가를 일소하면, 이 복합적 연합체는 의미를 잃으며, 새로운 연합체가 생겨났다는 것이네요.

 

 

경제는 이제 그 자체가 자유인 것은 아니다. 기술은 쾌적함에 봉사할 뿐 아니라, 완전히 같은 정도로 위험한 무기∙도구의 생산에 봉사한다. 그 진보는 그 자체로서, 18세기에 진보라고 생각된 인도적∙도덕적 완전화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적 합리화는 경제적 합리화의 반대일 수도 있다.

[*홍철기 : 경제는 더 이상 그 자체로 자유를 의미하지 않으며 기술은 편안함에 봉사할 뿐만 아니라 같은 정도로 위협적인 무기와 도구를 생산하는 데에도 봉사한다. 그리고 그 진보는 18세기 사람들이 진보[의 목표]라고 생각했던 인도-도덕적 완성을 그 자체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며 기술적 합리화는 경제적 합리화의 반대가 될 수 있다.]


 

요점은 기술이 우위에 서게 됨으로써 ‘자유’에 반하는 면도 낳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기술에 봉사하게 되는 사태가 생겨났습니다. 기술의 발전 때문에 인간의 행복, 생활의 풍요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맑스주의적으로 말하면, 소외입니다. 그리고 ‘기술’ 지배 하에서는 ‘정치’가 애매해집니다. 사실은 관료가 «결정»하지만, 관료의 인격은 전면에 나오지 않고, 마치 사물이 기계적으로, 현대식으로 말하면, 컴퓨터로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듯한 양상을 띤다. 이 문제는 논문 「중성화와 비정치화의 시대[*중립화와 탈정치화의 시대]」에서 자세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 논문은 미라이샤에서 나온 󰡔합법성과 정당성󰡕 번역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 책의 말미에 해당되는 101頁부터 102頁에 걸친 부분을 보시죠.


 

결국 모두, 그저 윤리∙경제의 양극을 둘러싼 만큼의, 이러한 정의나 논리 구성을 갖고서는, 국가∙정치를 근절할 수 없으며, 세계를 비정치화할 수도 없다. [오히려] 경제적인 대립이 정치적인 것이 되며, ‘경제적인 권력적 지위’ 개념이 생겨났다는 것이, 경제에서 출발해도, 다른 어떤 분야에서 출발해서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것이라는 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홍철기 : 결국 윤리와 경제의 양극을 따라 운행할 뿐인 그러한 정의와 논리구조의 도움으로는 국가와 정치를 근절할 수는 없으며 세계를 탈정치화시킬 수도 없다. 경제적 대립이 정치적이 되고 ‘경제적 권력의 지위’의 개념이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다만 모든 사안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로부터 정치적인 것의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아까 맑스주의의 계급투쟁론에 관련해서 나왔듯이, 경제적 이해를 둘러싼 대립에서도, 심화되면 경제적인 ‘친구/적’의 양상을 띠게 되는 셈입니다. 계급투쟁에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경제적 이해를 둘러싼 각국의 대립은 제국주의적인 투쟁에 도착하며, 제1차 대전을 일으켰습니다. 대전 후에도 전승국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전후 체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자주 인용되는 발터 라테나우의, 오늘날에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가 운명적이라는 말은, 이런 인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즉, 정치는 여전히 운명적인 것이지만, 다만 경제가 정치적인 것이 되며, 그 때문에 ‘운명적’으로 된다는 사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홍철기 : 이러한 인상으로부터 자주 인용되는 발터 라테나우(Walther Rathenau)의 다음과 같은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즉 오늘날 정치가 아니라 경제가 운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치는 언제나 변함없이 운명이고 경제가 정치적 문제가 되고 그에 따라 ‘운명’이 되는 일이 발생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발터 라테나우(1867-1922)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제2제정기에 재계인물로서 활약한 후, 바이마르 시대에 정치가가 됐습니다. 베버도 참여한 독일민주당(DDP)의 공동설립자가 되며, 외교부장관을 역임하고, 연합국과 소련과의 긴장 완화에 공헌했지만, 극우 청년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경제’는 일단 ‘정치적’으로 되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운명 Schicksal’이 된다는 거네요.

 

 

그리고 만일 어떤 민족 또는 다른 인간 집단이 이 ‘평화적’ 수단의 작용으로부터 피하려 든다면, 제국주의는 그것을 ‘경제 외적 폭력’으로 삼을 것이다. 제국주의는 또 더 외롭지만 여전히 ‘경제적’이기 때문에 (용어상으로는) 비정치적인, 본질적으로 평화적인 강제 수단, 예를 들어 제네바의 국제연맹이 국제연맹규약 16조(1921년, 제1차 국제연맹총회 결의 14호)의 실질적인 ‘준거’로 들고 있는, 비전투원에 대한 식량수송의 억제나 기아봉쇄 같은 강제수단을 이용할 것이다. 나아가 제국주의는 여전히 폭력적인 육체적 도살의 기술적 수단, 즉 자본과 지성을 동원한 결과, 일찍이 없었을 정도로 유용한 것이 되며, 여차하면 실제로 이용되기도 하는, 기술적으로 완전한 현대적 무기를 수중에 넣고 있다. 이러한 수단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상 본질적으로 평화주의적인 용어가 만들어지는 것이며, 거기에는 더 이상 전쟁이란 말은 없으며, 다만 집행∙비준∙처벌∙평화화∙계약의 보호∙국제경찰∙평화확보의 조치만 나온다. 대항자는 이제 적으로 불리지 않고, 그 대신 평화파괴자∙평화교란자로서, 법 바깥에 방치되고 비인간시된다. 또한 경제적 권력 지위의 유지 혹은 확장을 위해 행해지는 전쟁은, 선전의 힘으로 ‘십자군’으로 간주되고 ‘인류의 최종 전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홍철기 : 어떤 국민이나 어떤 다른 인간집단이 이 ‘평화적’ 방법의 작용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그것은 제국주의에 의해 ‘경제외적 폭력’의 행사로 간주될 것이다. 제국주의는 더 혹독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 용어법 상) 비정치적이고 본질적으로 평화적인 강제수단을 사용할 것인데, 이는 예를 들어 제네바의 국제연맹이 국제연맹규약 제16조 시행을 위한 ‘방침’(1921년 제2차 국제연맹총회의 결의 14호)에 열거된 바와 같다. 거기에는 민간인 주민에 대한 식량수송 저지나 식량봉쇄가 포함된다. 결국 제국주의는 여전히 폭력적 신체적 살해의 기술수단, 즉 자본과 지력을 투입하여 전례 없이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또한 필요에 따라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기술적으로 완성된 현대 무기에 대한 재량권을 갖는다. 그러한 수단의 사용에 관해서는 물론 새롭고 본질적으로 평화주의적인 어휘들이 생겨나는데, 그 어휘들에는 전쟁이란 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집행, 제재, 처벌을 위한 파병, 평화회복, 조약의 보호, 국제경찰행위, 평화유지조치가 있을 뿐이다. 반대자는 그 결과 더 이상 적이 아니라 평화의 파괴자이자 교란자로서 법외추방되며 인류[의 범주]로부터도 추방 된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우세한 지위의 보존과 확대를 위해 수행되는 전쟁은 선전을 통해 ‘십자군’이자 ‘인류 최후의 전쟁’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경제’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평화=제국주의적 세력은 그 체제로부터 이탈하려 하는 나라에 대해, 유엔의 규약 등을 근거로 삼고, 경제 제재를 가하고, 이어서 첨단기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기를 도입하고 위협합니다. 기술과 결부된 경제력 덕분에, 등을 진 상대를 다양한 각도에서 끝까지 몰아넣는 것이 가능하게 된 거죠.

우리는 전쟁보다는 경제 제재가 계속 평화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슈미트더러 말하게 하면, ‘제재’라는 형태를 취하는 것 자체가 ‘대항자 Gegner’를 ‘평화파괴자·평화교란자 Friedensbrecher und Friedensstörer’로 간주하게 되며, 경제적으로 몰아넣고 ‘전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까지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고,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는, 어쩔 수 없는 불량배에 대해 ‘십자군’을 보내는 명목이 나오는 것입니다. 상대는 그러는 사이, 제재로 인해 상당히 약해져 있을 겁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일극지배를 비판하는 좌익계의 문맥에서도, 이 ‘손’의 논의가 자주 있었죠. 슈미트도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를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인간성의 이름 아래, 폭력을 독점하고 경제 제재와 군사 제재에 의해 상대를 몰아넣고, 칼날에 맞서는 곳에서, 철저하게 두드린다. 한때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국제관계론에서, ‘세계 내전화’라든가 ‘전쟁의 스펙터클화’ 등이 논의된 적이 있었죠. 세계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괴물을 퇴치하기 위한 경찰행동이라는 설정을 만들어내고, 미디어를 사용해 시청자가 그 게임에 참가하고 있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친구/적’이라는 위험한 것을 말하고 있는 듯 보이는 슈미트가, 최종적으로 그런 포스트모던 좌파적인 문제의식에 다가선다는 것은 흥미롭네요.

󰡔대지의 노모스󰡕에서는 유럽에는 원래 국가 간의 ‘공법질서’가 있으며, 상대를 ‘올바른 적’, 달리 말하면 대등한 적으로 서로 인지하는, 규칙을 지키고 싸웠다는 것이 강조됩니다. 그런 전쟁 억제 시스템이 있었는데, 어느새 ‘전쟁=폭력은 악하다’라는 일견 자유주의∙평화주의적인 명목 아래서, ‘정전’이 정당화되는 보편주의의 체계가 완성됐다는 얘기가 되어 버립니다.

 

 

 

‘복합적 연합체

komplexe Koalition’

=

‘경제∙자유∙기술∙윤리∙의회주의’

 

봉건제∙절대주의 국가를 일소

‘독재’, ‘국가’, ‘전쟁’은 «악역»으로

맑스 ‘소외’

기술이 우위

인간이 기술에 봉사하게 되는 사태가 생겨났다. 기술의 발전을 위해, 인간의 행복, 생활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기술’ 지배 아래서는 ‘정치’가 애매

 

 

‘경제’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 평화=제국주의적 세력은 그 체제로부터 이탈하려고 하는 국가에 대해서, 유엔의 규제 등을 근거로 하여, 경제 제재를 가하고, 이어서 첨단 기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무기를 도입하고 위협

기술과 결부된 경제력 덕분에, 등을 진 상대를 다양한 각도에서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

 

 

 

 

질의응답

 

Q : 친구/적 대립을 없애면 유엔이 어떠한 ‘폭력행위’도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처리할 뿐이라는 이야기는 재미있는데요, 거기에서 슈미트가 말하는 유럽공법 같은 것으로 회귀함으로써 질서가 유지된다고 생각해도 좋을지 의문입니다. 슈미트가 일찍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유럽공법의 질서는 원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한 점은 유럽공법 질서에서는 친구/적의 관계가 줄곧 계속됐고, 국제관계는 좀처럼 안정화되기 어렵다는 논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안정성의 문제에 대해 슈미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A : 현실에 안정성이 있었느냐는 얘기는 『대지의 노모스』 등을 읽는 한, 슈미트는 도망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대답할 마음은 없는 것 같아요. 자기는 법학자이기에 어디까지나 법학적 관점에서 ‘질서’가 안정된 것인지, 되고 있는지를 논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닐까요? 서로 싸움의 룰을 알고 있었기에 싸움이 절멸에까지 이르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었다고 하는 곳까지가 그의 영역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지리학이나 역사학, 군사학 등의 지식을 동원하고, 폭넓은 시야에서 논의를 전개하는 대목이 슈미트의 매력입니다만, 중요한 점이 되면 ‘법학자’로 되돌아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치사하다고 말한다면 치사하네요.

다만, 30년 전쟁부터 제1차 대전까지의 서구의 대국들끼리의 관계만을 본다면, 분명 상대의 절멸을 지향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폴란드나, 약소국을 강제로 통합하고 세력권을 개편하는 일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슈미트를 떠나서 일반론을 말하면, 네이션(nation) 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나폴레옹 전쟁 이전의 유럽에서는 설령 적국의 군대에 의해 영토가 점령되고 병합됐다고 해도 민중에게 있어서는 지배자가 교체된 것일 뿐입니다. 영주와 원래 접점이 없어서 영주가 누구냐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네이션 의식이 명확해지는 가운데, ‘타자’에게 지배되는 것이 싫다고 하는 정서가 민중(Volk) 사이에서 확산됩니다. 거기에 자본주의의 확대에 따른 제국주의 경쟁이 겹치면서 ‘국민’ 간 전쟁이 어디까지나 급격하게 진행되기 쉬운 환경이 생겨납니다. 이 부분은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자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제1차 대전은 유럽 국가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절멸에 이르는 듯한 전쟁이었습니다. 그 반성에서 유엔이 생겼다……라고 보는 게 상식이지만, 슈미트는 역발상을 합니다. ‘적’의 존재를 허용하지 못한 불관용의 사상이 인류의 이름으로 ‘적’을 소멸시키는 유엔이라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슈미트는 ‘적’이 항상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쪽이 오히려 ‘전쟁’을 억제하고 지정학적 세력 균형에 뿌리를 둔 ‘질서’를 유지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던 계열의 폭력론에서도 적이 없고 보편적 정의가 통용되는 세계를 실현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욕구 불만을 높이고 폭력을 폭주하게 만든다는 것이 논해지고 있군요.

 

Q : 마지막에 유엔 비판이 나왔는데, 슈미트가 나치의 어용학자라고 하신 이유의 하나에는 베르사유-제네바 체제 비판이 있잖아요.

 

A :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는 나치에 기울어져 있었지만, 가톨릭계의 보수 사상을 배경으로 한 그의 ‘질서’관은 나치즘의 진화론적 인종주의나, 기술과 신화의 융합 같은 얘기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슈미트에게 중요한 것은 자유주의적 보편주의가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현실을 없게 하려는 것에 대해서, ‘정치적인 것’의 심층을 파고들며 ‘친구/적’ 관계를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유주의 ‘정치’의 결과로 베르사유 유엔 체제가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서 사상 내용적으로는 그렇게 가깝지 않는 나치에 기대를 걸게 된 것은 아닐까요? 보편적 인간성의 이름으로 세계 평화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에게 나치와 슈미트가 한 패거리의 악당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죠.

 

Q : 하이데거와는 다를까요?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시절 본질적으로 나치의 철학과 사상에 공명했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A : 하이데거도 본질적인 곳에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이데거는 존재 자체에서 보내지는 목소리=사명(Bestimmung)을 듣고, 그것을 언어화하고 민족의 삶의 방향성을 규정하는 ‘시인’의 특권적인 역할을 중시하였습니다. ‘민족’ 중심주의적 발상은 하고 있지만, 나치와 필연적인 관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총장 취임 연설인 「독일대학의 자기주장」(1933년)에서 독일 민족의 역사적 사명에 걸맞은 학문 방식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말은 나치에 대한 오마주라기보다는 당시의 내셔널리즘적 수사의 일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하이데거는 철학자로 체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발언할 기회가 없었던 만큼 나치에 기우는 자세는 슈미트만큼 눈에 띄지 않습니다. 총장에 임명됐기에 할 수 없이 반유대주의적인 조치를 취하고, 나치에 동조하는 것처럼 언뜻 보이는 발언을 했다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자신의 사고방식이 어느 정도나 타자배제적인 형이상학에 의거하고 있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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