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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슈미트 입문 강의], 3강 세 번째 부분

수유너머웹진 2016.02.20 15:22 조회 수 : 110

칼 슈미트 입문 강의



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김상운 옮김

 



仲正昌樹カール・シュミット入門講義作品社, 2013.












3강. 『정치신학』 (1) ― 주권자, 법-질서와 예외상태 (두 번째 부분에 이어서)



* 일러두기 

1) 일본어판에는 오역도 있고, 용어 사용에서 미흡한 점이 있으나, 아무튼 일본어 번역본에 기초하여 강의가 이뤄지고 있기에 일본어판을 먼저 인용한 후, [ ] 안에는 “칼 슈미트, 『정치신학 : 주권론에 관한 네 개의 장』, 김항 옮김, 그린비, 2010”의 번역본을 표기해 둡니다. 

2) 일본어판 쪽수는 “頁”로, 한국어판은 “쪽”으로 표기합니다. 







‘주권자’의 본질 


여기서 본문에 들어가죠. 1장 제목은 「1. 주권의 정의」입니다. 다시 한 번 11頁 서두의 글을 보시죠. 



주권자란 예외상황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자를 일컫는다.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16쪽).]



인상적인 문장이네요. 게다가 이 문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만들었기에 더욱 인상이 강해집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독재관’이나 바이마르 헌법 법48조에서 규정된 라이히대통령의 비상대권에 관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겁니다만, 여기에서는 논의가 더 철학적인 차원으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48조에서는 예외상황=비상사태가 발생한 경우에 대통령이 특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가 규정되어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주권자가 “예외상황에 관해 결정을 내린다”, 즉 주권자가 “무엇이 예외상황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시사되고 있지요.


“예외상황인지 아닌지”를 누가 어떻게 결정하느냐는 것은 법철학상의 어려운 문제입니다. ‘법’과는 상관없이 권력자가 폭력으로 실행 지배하고 있을 뿐이라면, 그 권력의 재량에 따라서는 “보통의 상황 Normalsustand / 예외상황”을 어떻게든 판정해야 합니다만, ‘법’에 의해 국가 체제가 틀지어져 있고, 그 틀 안에서만, ‘독재관’이 ‘법’을 지키기 위해, 통상의 법규범을 넘어선 권한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 누가 어떻게 ‘예외상황’의 발생을 인식하고 어떤 절차를 거쳐 ‘독재관’을 임명하느냐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바이마르의 경우, 대통령이 스스로 상황을 인식하고, 스스로 자신을 독재관으로서 수권(授権)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로서는 그렇습니다만, 자신의 재량만으로 ‘예외상황’을 아무렇게라도 인정할 수 있다면, 실력 지배하고 있는 참주와 같아져버리죠. 스스로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고 해도, 어떤 법적 제약이 없으면 이상해져버린다. 그러나 보통의 법규범이 통용되는 것이 불가능한 예외적 상황이기 때문에, 예외상황이라고 말하는데, 그 예외상황이란 무엇인가를 (보통의) ‘법’의 틀을 사용해 어떻게 인식하는가? 예외가 예외라는 것을 판정하기 위한, 비-예외=통상의 기준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역설이 생기는 것입니다. 


최근 이탈리아의 현대사상가의 대표격으로 일본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조르조 아감벤(1942-)은 『예외상태 Stato di eccezione)』(2003) ― 일역본은 미라이샤에서 간행됐습니다 ― 에서 슈미트와 벤야민의 논의를 참조하면서, 이 철학적으로 까다로운 문제를 상세하게 논했습니다. 법제사적으로 꽤 파고들어 논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아감벤도 슈미트를 높이 사고 있는 현대사상가 중 한 명입니다. 벤야민의 「폭력비판론[폭력의 비판을 위하여]」(이하 폭력비판론)과 슈미트의 『정치신학』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폭력비판론」에 관해서는 졸저 『벤야민』에서 논했기에, 관심이 있으면 읽어주세요. 


여기에 덧붙여, 슈미트는 ‘주권자’의 본질은 ‘보통의 상황’이 아니라 ‘예외상황’에서 드러나게 된다는 《보통》과는 반대의 발상을 하고 있네요. 《보통》은 “보통으로 법이 타당한 상황”에서, ‘주권’을 정의한 다음에, 그것이 ‘예외상황’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예외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가를 사고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슈미트는 ‘예외상황’에서야말로 주권의 본질이 드러나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만, 그가 말하는 ‘주권’이란 법전화된 ‘헌법’에 의해 규정되는 국가의 의지 같은 게 아니라, 헌법 질서가 어떤 것인지를 규정하는, 헌법제정권력적인 차원의 힘을 포함한 것, 법을 넘어선 권력이라고 한다면, 그 나름대로 이치에 닿습니다. 헌법을 필두로 하는 법규범이 《보통》으로 기능하는 동안은, 국가 최고의 의지로서의 주권의 소재(所在)를 별로 생각할 필요는 없으나, 보통의 법규범이 통용되지 않는 ‘예외상황’, 법의 제로상태가 되면, 무엇이 타당해야 할 법규범인가를 결정하는 ‘주권’의 힘이 표면화되고, 그 의의가 재인식됩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글은 원문에서는 〈Souveräne ist, wer über den Ausnahmesustand entscheider〉입니다. 〈über〉라는 전치사는 영어의 〈about〉에 해당하는 “~에 관하여”라는 의미 외에, 영어의 〈above〉에 상당하는 〈~의 위에(로)〉라는 의미, 혹은 〈over〉에 상당하는 “~을 넘어서(초월하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보통으로 읽으면, “예외상황에 관해서~”입니다만, “예외상황을 넘어서~”라는 뉘앙스도 보태져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에서 독일어를 배운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를 넘어서” 혹은 “~ 위에(로)”라는 의미에서의 〈über〉는 3·4격 지배입니다. 3·4격 지배의 전치사는 뒤에 오는 명사, 대명사가 3격인 경우는 단순히 장소를 가리키며, 4격의 경우는 운동·이동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den Ausnahmesustand〉은 4격이어서, “예외상황을 넘어선 (차원에까지 미치는) 결정을 내린다”는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깊게 읽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예외상황’을 둘러싼 역설을 염두에 두면, 이렇게 깊이 읽고 싶어집니다. 


좀 더 독일어 문법과 얽힌 얘기를 한다면, 만일 여기서 ‘주권자’라고 불리는 존재가 독재관이나 라이히대통령과 같은 수준의 권한밖에 갖고 있지 않다면, 아마도, “예외상황 속에서(Im Ausnahmesustand) 결정을 내린다”는 표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im〉이 아니라 〈über〉라는 전치사를 사용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주권자는, 기존의 법질서 아래서 ‘결단할’ 뿐 아니라, 무엇이 ‘예외상황’인가를 정할 수 있는, 뒤집어 보면, 무엇이 ‘보통 normal’인가, 다시 말하면, 무엇이 ‘규범 Norm’인가를 정한다는 의미를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약간 다른 말의 선택에 의해, 중대한 정치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네요. 그것이 슈미트가 잘 하는 부분입니다. 



주권자

Über den Ausnahmesustand

 

주권자는 기존의 법질서 아래서 결단할뿐 아니라 무엇이 예외상황인가를 정할 수 있는, 뒤집어 보면 무엇이 보통 normal’인지, 더 나아가 무엇이 규범 Norm’인지를 정한다.

재판관, 라이히대통령

Im Ausnahmesustand

 

예외상황 속에서(Im Ausnahmesustand) 결정을 내린다

 

 




‘극한영역 die äußerste Sphäre’ 혹은 ‘한계상황 Grenzfall’



이 정의는 한계개념으로서의 주권 개념에 관해서만 타당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계개념이란 통속서(通俗書)의 조잡한 용어에서 볼 수 있는 혼란된 개념이 아니라, 극한 영역의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정의가, 통상의 경우에서가 아니라, 한계상황과만 관련될 수 있는 것임은, 이것에 대응한다. 


[이 정의는 오로지 주권 개념을 한계개념으로 생각할 때만 타당하다. 왜냐하면 한계개념은 대중문학에서 통용되는 엉터리 용어법과 같은 혼란스러운 개념이 아니라 극한에 다다른 개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정의가 정상사례가 아니라 한계상황에 연관될 수 있음은 이러한 사실에 조응하는 것이고 말이다(16쪽).]



앞서 말씀드렸듯이, ‘주권’을 “통상의 경우 Normalfall”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극한 영역 die äußerste Sphäre” 혹은 “한계상황 Grenzfall”에서의 ‘한계개념’으로서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것이네요. “통상의 경우”에는 그 ‘통상성’을 근저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권’이라는 힘의 본질은 드러나지 못합니다. 그런 《통상성》이 교란되고 무질서가 퍼지며 “무엇이 보통인가?”를 누가 다시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한계상황’에서야말로 ‘주권’이 드러납니다. 


‘한계’라든가 ‘극한’이라는 문학적인 표현이 어려운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건 조금 추상도를 떨어뜨려서, 우리가 ‘국가권력’에 의한 치안유지의 본질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문제에 입각해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상시(=통상적인 경우), 경찰이 어느 정도의 기능을 담지하고 있는지, 그다지 의식하지 않습니다. 경찰의 치안유지기능이라는 말을 들어도, 감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뭔가 사건이 일어나서(=예외상황), 경찰이 출동하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범인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손을 쓰는 걸 보면, “이것이 경찰의 힘인가”라고 새삼 느끼는 겁니다. 매스컴의 보도에서, 일본의 주권이 구체적으로 화제가 되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사이의 영토문제나, TPP를 체결한 경우의 주권의 제한 같은 문제에 관해서입니다. 주권이 통용되는가 되지 않는가의 아슬아슬한 상황을 접하고 처음으로 ‘주권’이 의식되는 것이죠. ‘주권’을 가장 강하게 의식하는 것은 아마도 혁명이 일어났을 때나, 전쟁에서 져서 국가 자체가 소멸하고 있을 때겠죠. ‘한계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보통의 일상에서는 느끼기 힘든, ‘주권’의 작동방식을 아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와 나란히 20세기 독일의 최대 철학자로, 아내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나치정권 때 대학에서 추방된 야스퍼스(1883-1969)는,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 Grenzsituation’에서, 인간의 ‘실존 Existenz’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기점으로, 자신의 실존철학을 전개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슈미트가 야스퍼스의 철학을 의식해서 이 서두를 썼는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계’에서야말로 사물의 감춰진 본질이 드러나게 된다는 발상을 양자가 공유했다는 것은 분명하죠. 야스퍼스와 마찬가지로, ‘실존’의 문제를 추구한 하이데거도 같은 발상을 했다고 볼 수 있겠죠. 



여기서 말하는 예외상황이란, 국가론의 일반개념으로서 이해해야 할 것이며, 뭔가 긴급명령 내지 비상사태의 의미가 아님은 아래에서 분명해질 것이다. 예외상황이, 뛰어난 의미에서 주권의 법률학적 정의에 적합한 것임에는 체계상 또는 법논리상의 근거가 있다. 즉, 예외에 관한 결정이야말로 뛰어난 의미에서 결정인 것이다. 왜냐하면 평상시의 현행법규가 나타내고 있는 일반적 규범에서는, 절대적 예외는 결코 파악할 수 없고, 따라서 또한 참된 예외사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결정은 완전하게는 근거지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 여기서 예외상태는 일종의 긴급명령이나 계엄상태 따위가 아니라 공법학의 일반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함은 이제부터 판명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예외상태야말로 주권에 대한 법학적 정의에 본래적으로 적합하다는 사실에는 체계적이고 법논리적인 근거가 있다. 예외상태에 대한 결정은 그야말로 결정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정상시에 유효한 법조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일반적 규범은 절대적 예외를 결코 파악하지 못하고, 진정한 예외상황이냐 아니냐에 대한 결정도 완전하게 근거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16-17쪽).]



‘예외상황’은 ‘긴급명령 Notverordnung’이나 ‘계엄상태 Belagerungszustand’ 등과 의미적으로 같은(equal) 게 아니라, ‘국가’의 본질에 관한 개념이며, 주권의 법학적 정의에 대응하는 셈이네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평상시의 현행법규 der normal geltende Rechtssatz”의 형태를 취해 나타나는 “일반적 규범 eine generelle Norm”에서는 “절대적 예외 eine absolute Ausnahme”를 미리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대응조치를 규정하는 것은 정의상 불가능합니다. 그 반대로, “참된 예외상태 ein echter Ausnahmefall”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대처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면, ‘일반적 규범’의 체계를 초월한, 질서 유지의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예외에 관한 결정이야말로 뛰어난 의미에서(im eminenten Sinne) 결정인 것이다”라는 문장은 추상적이고 까다로운 느낌이 듭니다만, 거꾸로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외’가 아니라 ‘통상적인 경우’에서의 ‘결정’은 어떤 형태로 ‘일반적 규범=평상시의 현행법규’에 묶여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미리 주어진 규칙에 기초한 《결정》입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규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뿐이고 ― 슈미트의 이치에서 보면, 순수하게 기계적인 적용이란 있을 수 없으며, 뭔가의 작은 결정은 수반하고 있을 테지만 ― 자신의 의지와 판단능력을 갖춘 존재에 의한 ‘결정’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 예외’가 되면, 그런 참고기준이 되는 ‘규범=보통’은 없어집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적 예외’와 대립함으로써, ‘주권’의 본질이 (일반적 규범을 넘어선, 순수한) ‘결정’이 드러납니다. “절대적 예외에 관한 결정”이라는 한계적 상황을 빼고서 ‘주권’을 정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최고로 (그것 이외의 것으로부터) 연역할 수 없는 지배권력 höchste, nicht abgeleitete Herrschermacht’ 


이어서, 그런 ‘예외상황’의 법학적 의의를 부정하는 학자의 견해가 비판되고 있습니다. 



몰(논집, 626페이지)이 실제로 긴급상태인지 아닌지의 검증은, 아무런 법률학적 검증도 될 수 없다고 논하는 경우, 그는 법적 의미에서의 결정은, 규범의 내용으로부터 완전히 연역되는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전제에 서 있다. 하지만 이 점이 문제이다. 몰이 제창하는 듯한 일반적 형태에서는, 이 정언은 법치국가적 자유주의의 표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그는 결정이라는 것의 자립적인 의미를 간과하고 있다. 


[몰이 눈앞에 긴급사태가 벌어졌는지 아닌지 가늠하는 일은 법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전제로 두고 있었다. 즉 법적 의미에서 결정은 규범의 내용으로부터 남김없이 도출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문제이다. 몰이 밋밋하게 말한 것처럼 이는 법치국가적 자유주의의 표현일 뿐이며, 그는 결단이 갖는 고유의 의미를 오해한 것이다(17쪽).]



로베르트 폰 몰(Robert von Mohl, 1799-1875)은 19세기 독일의 국가학자로, 1848년의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의 의원으로 선출된 정치활동가이기도 합니다. ―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란 통일과 자유를 요구하는 독일 연방들의 지식인들이 자주적으로 만든 의회입니다. ‘경찰국가’에 대립하는 형태로, ‘법치국가’ 개념을 확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법적 의미에서의 결정 eine Entscheidung im Rechtssinne”은 “규범의 내용으로부터 완전히 연역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법실증주의적 사고방식을 하고 있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슈미트의 ‘결정’ 해석에서 보면, 넌센스입니다. 자유주의자는 누군가 특별한 인물의 ‘결정’이 아니라, 가치중립적으로 설정되는 ‘규범’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된다고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인데, 슈미트더러 말하라고 하면, ‘규범 Norm’이 ‘보통 normal’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과 주권적인 ‘결정’이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는, 비논리적인 소망의 표명에 불과합니다. 



주권의 정의로서 세워지는 추상적 도식(주권이란 최고이자 연역할 수 없는 지배권력이다)은, 이것을 승인하든 하지 않든, 거기에는 일반적으로, 논쟁, 특히 주권의 역사에 있어서의 논쟁은 없을 것이다. 싸우는 것은 구체적 운용에 관해서이며, 그것은 곧, 공공 내지 국가의 이익, 공공의 안전 및 질서, 공공의 복지 등등이,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관한 결정을, 분쟁 때에는, 누가 내리는가라는 것에 관해서이다. 예외사례, 즉 현형법규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사례는, 잘 해야 극도의 급박, 국가의 존립의 위급 등으로 나타낼 수 있는 데 머물며, 사실에 입각해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례가 있기에 비로소, 주권의 주체의 문제, 즉 주권 일반의 문제가 현실화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 급박 사태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추정 가능한 명백함으로 제시할 수도 없다면, 또한 만약 현실에서 극도의 급박 사태가 되거나, 그 제거가 문제가 되는 경우, 이런 사태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가를, 내용적으로 열거할 수도 없다. 권한의 전제도 내용도, 여기서는 필연적으로 무한정인 채인 것이다. 


[주권에 대한 정의(주권은 무엇인가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지고의 지배력이다)로서 정립된 추상적 틀을 인정하든 안 하든 커다란 실천적 혹은 이론적 차이는 생겨나지 않는다. 적어도 주권의 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그 개념 자체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체적인 적용을 둘러싸고, 즉 공공적 혹은 국가적 이익, 공공의 안전과 질서, 공공 후생 등이 관건이 되는 갈등상황에서 누가 결정하는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을 뿐이다. 현행 법질서에 규정되지 않은 사례인 예외사례는 기껏해야 극도로 긴급한 사례라거나 국가의 존립이 위험에 처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규정될 뿐, 실제 사태에 맞게 규정될 수는 없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런 사례야말로 누가 주권의 주체냐는 물음을 시급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물음이 바로 주권 일반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긴급상황에 처한 것이 언제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명백한 항목들을 제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극한의 긴급상황이 발생해 그것을 진압하는 일이 관건이 되엇을 때, 무엇이 그런 상황 속에서 허용되는지 내용적으로 열거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권한의 전제조건과 내용은 필연적으로 한계를 모른다(17-18쪽).]



여기는 알기 쉬운 얘기네요. 일단 ‘주권’을 “최고이자 (그것 이외의 것으로부터) 연역할 수 없는 지배권력 höchste, nicht abgeleitete Herrschermacht”이라고 정의하는 것에 관해서는, 거의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구체적으로 운용될 때에는, 누가 ‘결정’하는가가 문제가 됩니다. “실증주의+규범주의적” 발상에서 보면, ‘법’에 의해 판정기준이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적용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슈미트는 특정한 누군가가 “△△ 같은 경우는 ○○라는 규범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권적인 결정을 하지 않으면, 범규범은 실효적인 것이 되지 못하며, 무산되어 버린다고 보고 있는 셈입니다. 평소에는 누가 ‘결정’하는가에 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관료적으로 처리하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예외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의상 ‘예외상황’에서는 법규범을 자동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며, 누군가가 “이것이 규범이다!”라고 ‘결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주권자’입니다. 


세세한 표현상의 문제입니다만, “~, 사실에 입각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대목의 “사실에 입각해”는 원문에서는 〈tatbestandsmäßig〉입니다. 〈Tatbestand〉는 보통은 ‘사실’이라든가 ‘정황’ 같은 의미입니다만, 법학 용어로서는 범죄의 ‘구성요건’이라든가 (특정한 ‘법률효과’를 낳게 하는 전제로서의) ‘법률요건’ 같은 의미가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날것의 사실이 아니라 법률상 고려해야 할 ‘사실’, 법적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할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런 엄밀한 법학용어로서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문제가 되는 것이 “예외사례 Ausnahmefall”의 ‘요건’을 정할 수 있는가 아닌가이기에, 이 점을 알 수 있게 번역해 두는 게 좋겠죠. ‘요건사실에 입각해서’라든가, 혹은 의역해서 ‘요건을 제시하는 형태로’라든가. 


“현실에 극도의 급박사태가 되며, 그 제거가 문제가 되는 경우, 이런 사태에서 무엇을 행하는 것이 허용되는가를 내용적으로 열거할 수도 없다”는 문장을 보는 한, 여기서의 주권론은 헌법 48조의 대통령의 대권의 틀을 넘어서네요. 라이히대통령의 권한은 그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는 셈이니까요. 



주권자는 평상시의 현행 법질서의 바깥에 위치하면서, 더욱이 헌법을 일괄 정지시킬 수 있는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행 법질서의 안에 있다. 현대의 법치국가적 발전의 경향은 모조리, 이런 의미에서의 주권자를 배제하는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 주권자는 통상적으로 유효한 법질서 바깥에 서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 속해 있다. 따라서 헌법을 완전히 효력정지시킬 것인지 어떤지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모든 근대적 법치국가의 발전 경향은 이런 의미에서의 주권자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18쪽).]



주권자가 “법질서의 바깥에 서 있으면서”, “법질서의 안에 있다”는 것은 선문답처럼, 깊은 표현이네요. 엄밀하게 말하면, “바깥에 선다”는 원문에서 〈~ steht außerhalb ~〉로, 문자 그대로 그런 표현입니다만, “안에 있다”는 〈~gehört … zu~〉로, 보통은 “~의 일부를 이룬다”고 번역합니다. 주권자 자신은 “법질서의 바깥”에 있지만, 그것은 법질서와 관계없다는 것이 아니고, 주권자의 존재가, 법질서가 법질서이기 위한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법을 초월하고 무엇이 법인지 결정할 수 있는 존재, 법의 영점(zero点)이라고도 말해야 할 특별한 존재가 없으면, 법은 법으로서 기능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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