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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의 현행화와 혁명의 제도화-네그리·하트『공통체』

수유너머웹진 2014.06.05 15:01 조회 수 : 19

다중의 현행화와 혁명의 제도화

  •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공통체』 (정남영·윤영광 역, 사월의 책, 2014)

                                                                                           




                                                                                                  정정훈/수유너머N 회






방향들

<공통체>는 전지구적 지배질서의 동학에 대한 분석을 담은 <제국>, 그 질서에 맞서는 주체성을 규명하는 <다중>에 이어지는 책이다. 앞 선 두 저작의 문제의식과 논리적으로 연속적인 이 저작은 결국 ‘제국’에 맞서 투쟁하는 ‘다중’은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투쟁을 조직하며 어떤 대안적 질서를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즉, 이 세 번째 텍스트는 다중이 제국과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대어야 하는 조건들과 취해야할 전략들 그리고 대안적 질서구축의 원리들을 향해 그 방향이 설정되어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마키아벨리와 그람시의 문제설정을 따라 그 방향성을 ‘다중의 군주되기’라고 명명한다.


전선들

저자들이 이 텍스트를 짜가는 방식은 매우 논쟁적이다. 많은 ‘정치적 저작’들이 그렇듯이 이 책 또한 자신이 대결하는 ‘적’을 분명히 설정하고 그 적과의 싸우는 자신만의 독특한 입장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동일한 적과 싸우는 또 다른 정치적 ‘경쟁자’를 비판하는 형식을 취한다. 마치 맑스가 자본주의라는 적과 보다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서 프루동과 같은 아나키스트 경쟁자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던 것처럼, 레닌이 멘세비키라는 경쟁자에 대한 매서운 비판을 통해 러시아 전제정이라는 적과 투쟁방향을 보다 분명히 한 것같이.






네그리와 하트의 ‘적’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통치권력이라면 그들의 경쟁자는 아감벤을 비롯한 ‘비관론적 정치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자신들의 경쟁자를 비판하기 위해 칸트의 비판철학을 도입한다. 네그리와 하트가 보기에 이들은 현재의 지배 권력에서 모든 사회적 관계를 넘어서서 그 관계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초재적"(transcendent) 강권만을 발견하고 있을 뿐이다.


대신 네그리와 하트는 지배 권력의 성격을 초재적인 것이 아니라 "초월적"(transcendental)인 것으로 파악하자고 제안한다. 초월적인 것은 “지식과 경험의 가능성의 조건”이다. 오늘날 지배 권력은 시민적 권리의 폭력적 박탈과 무력화하는 예외상태의 창출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삶의 가능조건을 주조하는 것을 그 근본적인 특징으로 한다.


네그리와 하트의 이러한 칸트적 권력비판의 기획이 유의미한 지점은 지배 권력의 분석에만 초점을 맞출 뿐 저항의 가능성을 탐구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는데 있다고 하겠다. 권력이 일방적인 지배의 힘만으로 드러난다면 그에 대한 저항은 결국 그것과 싸우겠다는 의지적 결단이나, 아니면 모든 사회적 관계를 넘어선 어떤 신비한 지점으로부터 도래하는 불가해한 힘에 기대는 신학적 믿음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배 권력의 힘에 저항하고 그것을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의 지대를 주어진 사회적 관계와 조건으로부터 발견하려는 시도는 맑스로부터 이어지는 유물론적 정치학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네그리와 하트의 입장은 이 미덕에 충실하려는 것만은 분명하다.



조건들

그렇다면 지배 권력을 초월적인 것으로 파악하여 비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일차적으로 오늘날의 지배 권력과 이에 저항하는 힘이 동시적으로 기반하고 있는 조건들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조건들을 지배 권력은 자신의 강화를 위해서 어떻게 전유하는지, 혹은 그 권력에 맞서는 자들은 자기 해방을 위해 이 조건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재전유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조건이 바로 ‘공통적인 것’(the common)이다. 네그리와 하트에게 공통적인 것은 모든 사회적 존재가 존립하고 활동하기 위한 기반이다. 가령 토지, 물, 공기, 바람, 햇빛 등과 같은 자연물(“물질적 세계의 공통적 부”)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조건이며, 그것은 그 어떤 개체에게도 배타적으로 귀속될 수 없는 ‘모두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태적 차원의 공통적인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구축되는 공통적인 것을 더욱 강조한다. 지식, 언어, 코드, 정보와 같이 “사회적 상호작용 및 차후의 생산에 필요한 것들” 자체가 바로 공통적인 것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공통적인 것이 현대 자본주의 생산의 근본과정을 규정하는 핵심이라고 파악하며 이 과정을 ‘삶정치적 생산’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에게 삶정치적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공통적인 것에 기반 하는 생산방식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율적인 주체성을 구축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언어와 상징을 바탕으로 한 지식과 정동의 소통이 부를 창출하는 현재의 생산방식은 자본에 의한 매개와 통제 없이도 생산자들의 협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자본은 소유라는 초재적 강제권에 입각하여 생산의 기초이자 결과인 공통적인 것을 수탈하는 기생적 권력일 뿐이다.


전략들

네그리와 하트는 공통적인 것을 수탈하고 지배하는 초월적 정치권력의 형식을 "공화국", 보다 정확히는 그러한 수탈과 지배에서 소유권이 중핵적이라는 의미에서 ‘소유공화국’이라고 표현한다. 오늘날의 전지구적 소유공화국의 형태가 바로 제국이며 이는 ‘협치’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네그리와 하트가 협치라는 통치방식을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제국적 주권은 결코 아감벤식의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폭력적 힘으로 환원되지 않다는 것이다. 제국적 주권의 작동방식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들은 차라리 푸코의 통치 개념에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유연성과 유동성을 가지며 변화는 상황에 끊임없이 적응하”하는 상황 적응적이며 가변적 통치방식은 푸코식으로 말자하면 권력의 합리성, 권력의 테크놀로지다. 제국적 주권의 테크놀로지가 바로 협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국과 투쟁하는 다중의 화살은 일차적으로 제국의 협치를 겨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네그리와 하트는 종속되고 억압당하는 주변적 정체성들의 투쟁들이 공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노동계급, 여성, 흑인, 동성애자 등 종속적 정체성의 반란은 제국의 지배에 대항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다만 정체성의 정치가 혁명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반란이 기존 정체성을 고착하는 방향이 아니라 정체성 그 자체의 폐지라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그리고 정체성의 반란들이 혁명적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로 환원될 수 없는 평행적 정체성들이 번역과 소통의 과정을 통하여 공통적 투쟁으로 변형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반란적 교차가 현재의 투쟁에서 필수적인 전략이라고 그들은 파악한다. 그리고 이러한 교차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의식적인 시도와 실험, 즉 정치적 기획의 일환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정체성에 입각한 반란들의 교차라는 개념은 특이성들의 협력으로 제시되는 다중이라는 개념이 구체적 현실에서 실천적으로 표출되는 형태를 모색하기 위해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삶정치적인 생산의 지평이 다중이라는 전복적 주체성을 구축하는 가능성의 조건을 만들어내지만 이는 어디까지 잠재적 차원에서 그렇다. 이 잠재성을 현행화하기 위해서는 개입과 실험이 필요하다. 네그리와 하트는 노동자운동, 페미니즘운동, 성소수자 운동, 반인종주의 운동 등, 구체적 쟁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운동들이 서로 소통하며 협력하는 공동투쟁의 양상을 다중의 정치로 파악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반란의 교차는 다중이라는 주체성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 또 ‘다중 만들기’ 위한 전략적 지침을 보여주지만 네그리와 하트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반란은 부정과 해체의 계기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란의 교차는 기존 정체성의 폐지를 넘어서 새로운 삶의 형태를 구성하는 긍정의 과정인 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혁명은 구체적인 제도로 설립되어야 한다고, 즉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네그리와 하트는 강조한다. 이때 제도는 자유와 평등, 자율과 협동의 형태들을 안정화하고 구체화는 장치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안정화 장치로서의 제도들은 항상 잠정적인 것이며 그것은 다중의 요구에 의해 언제든지 변형될 수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다중의 요구를 반영하여 항상적으로 변형될 수 있는 가변적 제도의 구축 과정을 네그리와 하트는 ‘혁명을 다스리기’라고 부른다. 그들이 말하는 ‘다스리기’(govern)는 다중의 통치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푸코는 통치성을 국가라는 권력 형태에 독특한 테크놀로지로 보았으나 네그리와 하트는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국가로부터 탈맥락화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형태가 아닌 다중의 자기 통치를 위한 테크놀로지 바로 그들이 말하는 ‘혁명의 다스림’이다.


남는 것들

이상으로 이 책의 핵심적인 쟁점들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결국 이 책은 오늘날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지배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이 취해야할 전략에 관한 책이며 적지 않은 영감들을 촉발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또한 많은 논쟁들과 토론을 예비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다중의 군주되기를 위한 전략들은 여전히 모호한 지점이 많다. 가령 다중이 혁명을 제도화여 다스리기 위한 구체적 기술로 제시되는 ‘구성적 협치’라는 개념은 어떤 권력 장치들을 통해 가능한 것인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그 장치가 국가형태가 아니라고 할 때 혁명은 어떤 심급에 의해 제도화될 수 있으며 그것의 변형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일까? 여전히 핵심적 문제는 제기만 되었지 답변은 되지 않고 있다. 또한 과연 그들이 말하는 삶정치적 생산의 지평에서 형성되는 협력적 주체성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일반화될 수 있는지도 논란거리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시스템이 버려버린 제4세계 대중들의 주체성 문제는 여전히 해명되고 있지 않다. 아마도 더 많은 쟁점이, 더 많은 강점과 약점이 이 책에는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그리와 하트의 <공통체>는 그러한 강점과 약점을 발견하기 위해, 풍부한 쟁점들을 드러내기 위해 숙독하고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책을 둘러싼 이후의 논쟁들이 기대된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크> 6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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