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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요, 맥주 443.7ml만 주세요!”

- 로버트 L.월크, 『아인슈타인이 요리사에게 들려준 이야기』(이창희 옮김, 해냄)

 

 

 

 

노의현/수유너머N 회원

 

 

 

 

영국 드라마 ‘셜록’을 아는가? 최근 방영된 시즌3는, 영국에서 방영되자마자 KBS에서 더빙에 착수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무척 인기 있는 드라마이다. 이 때 셜록은 당신이 생각하는 홈즈가 맞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 어떤 홈즈보다 더 건방지고 더 섹시하고 더 집요하다. 이 드라마는 ‘현대판 셜록 홈즈’를 표방하고 있기에 그의 집요함은 대부분 첨단 과학을 통해 이뤄진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다. 그의 절친 왓슨 박사가 결혼을 하게 되자, 셜록은 그의 총각파티를 성심성의껏 준비한다. 하지만 물론 평범하게는 아니다. 그가 했던 총각파티 준비는, 병원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찾아가 ‘왓슨과 자신이 취하지 않고 밤새 마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체 데이터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분석하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파티 날, 자신들이 사건을 해결할 때 시신을 발견했던 ‘추억의(?)’ 술집들을 전전하는데, 바텐더에게 맥주를 주문할 때 길쭉한 실린더 두 개를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딱 443.7ml만 따라 주세요” 그리고는 테이블에 앉아 스톱워치를 꺼내들고는 혈중 알콜 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시간을 잰다. 다행히도 이 계획은, 보다 못한 왓슨이 셜록 몰래 그의 잔에 보드카를 타 넣으면서 실패하게 된다.

 

 

 

 

 

라면수프가 먼저냐, 면이 먼저냐? 

 

<아인슈타인이 요리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미국의 한 화학자가 요리잡지에서 진행했던 Q&A 코너를 중심으로 구성한 책이다. 이 책에도 다분히 ‘셜록스러운’ 질문이 등장한다. ‘하루 한 두 잔의 음주는 몸에 좋다던데, 이 한 두 잔이라는 게 정확히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죠?’ 저자는 이에 국가별로 규정된 하루 적정 알콜량을 기준으로, 그만큼을 섭취하려면 몇 도(%)의 술을 어떤 잔으로 얼마만큼 먹어야 하는지 친절히 알콜량 계산법을 알려준다. (이 설명대로라면 그날 밤 셜록이 실패한 이유는 구지 왓슨이 술을 몰래 넣어서였다기 보다는, 술집마다 알콜 농도가 다른데 그것을 간과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도 저자는 절대 술집에 가서 그러지 말라는 중요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책 제목을 보며 대충 감 잡으셨겠지만, 이 책의 의도는 독자들에게 요리와 관련된 과학상식을 알려준다는 데 있다. ‘얼음은 전자렌지에서 녹지 않는다’는 무지 신기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뼈에 붙은 고기가 가장 맛있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줌으로써 족발의 뼈를 사수하던 나의 미각에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가하면,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논쟁인 ‘라면 끓일 때 수프를 먼저 넣느냐, 나중에 넣느냐’를 빨리 넣는 쪽이 끓는 점이 1/1200℃ 높아져서 조리시간이 0.5초 빨라진다는 것 외에는 화학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한마디로 종식시킨다. (아니 어떻게 미국사람이 라면을? 이라고 놀라진 말아라. 파스타의 예시를 내가 응용한 것 뿐이니 ^,^)

 

 

‘물고기는 비린내가 안 난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비린내가 난다!’

 

나는 한때 일식집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서 해산물 다루는 것에 익숙한데, 그래서인지 "생선에서 나는 비린내는 물고기들의 식습관과 관계가 있다"는 설명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다른 작은 물고기들을 먹을 때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키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하긴 피라냐 정도가 아니고서야, 물고기의 이빨을 보면 그다지 잘 씹힐 거 같아 보이지 않긴 한다.) 그리고 물고기가 통째로 몸속에 들어와 버린 이 난감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의 내장에는 강력한 소화 효소가 존재한다. 바로 이 소화 효소가 우리가 물고기를 잡았을 때 죽은 물고기의 몸을 자신이 소화시켜야할 대상으로 착각하고는, 밖으로 나와서 자기 살을 공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게 비린내이다. 회를 뜰 때 물고기를 잡으면 내장을 가장 먼저 제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물고기는 비린내가 안 난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비린내가 난다!’ 저자는 이외에도 소금, 기름, 설탕 등 우리가 매일 쓰지만 잘 구별하지 못하는 이들의 종류와 요리할 때 어떻게 구분해서 다뤄야하는지를 알려주거나, 세간에 알려진 요리 상식들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타파하거나 옹호한다.

 

 

 

 

하지만 이런 책은 대부분 ‘요리 좀 하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게 된다. “진짜 실력은 ‘손맛’과 ‘감’”이니까. 그래서 이런 과학적 지식들은 레시피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요리 못하는’ 사람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 ‘손맛’이라는 것은 글로는 배울 수 없고, 대부분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체득된다. 그리고 이때의 요리지식은 ‘노하우’라는 이름으로 그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전수된다. 내가 주방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제발 그놈에 ‘왜요?’ 좀 그만해!”였다. 선배들이 내게, 이건 꼭 물에 담궈서 넣어놓아야 한다, 전분은 불을 끄고 넣어야 한다, 이건 섞을 때 꼭 계란을 먼저 넣어야한다, 이건 이렇게 씻어야하고 저건 저렇게 썰어야한다 등등 주방의 비법들을 전수해주면, 내가 늘 “왜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라고 사사건건 물어봤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결과물을 먹을 수 있는 실험입니다.

 

물론 내가 꼬치꼬치 캐묻는 게 귀찮긴 했겠지만, 선배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물어보지 마!”였다. 어쩌면 그들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워서는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주방에서의 지식은 이런 식으로 터득되고 전수된다. 사실 다시 한번 곰곰이 따져보면 그 중에는 노하우라기보다는 그냥 습관에 지나지 않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당신도 요리책이나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검색할 때 몇 가지 비교해보면, 같은 요리에 대해 너무나도 상반된 조리법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당황한 경험이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이런 방식대로라면, 새로운 비법이 생기고 노하우가 만들어지는 건 "먹을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번개 맞은 사슴을 먹었던 유인원 덕분에 인류의 화식이 시작되었다"는 식의, ‘실수로 인한 우연’이라는 신화에 맡겨 놓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주방에서 할머니의, 선배의 말에 “과학적으로 그건 말이 안된다”며 논리정연하게 반박하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오히려 ‘논리적’인 판단이 아닐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알려준 비법들에 대해 나름의 과학적 근거를 찾아서, 그로부터 새로운 노하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요리라는 게 매우 흥미진진해지지 않을까? 따라서 지금과 같은 위계적인 주방문화가 답답한 사람들에게나, 요리를 엄마에게서 아닌 요리책에서 배우는 세대에게 이 책은 요리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갖게 해 줄 지침서가 되어 줄 수 있을 듯하다. 기존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만하거나, 혹은 ‘대충 먹을 수만 있게’ 마음대로 만드는 요리가 아닌, ‘실험’으로서의 요리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결과물을 먹을 수 있는 실험입니다.”

 

 

 

당신은 어떤 "실험"을 하고 싶은가?

 

 

물론 저자가 ‘한여름의 지열로 계란후라이를 할 수 있을까’를 실험하며 던지는 농담처럼, “과학의 좋은 점은 아무도 알 필요가 없는 일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물론 모든 요리와 생활에 과학적 근거를 찾아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은지, 그를 위해 어떤 지식을 받아들여서 어떻게 이용할 지는 전적으로 당신의 몫이다. 일례로, 나는 ‘적당한 음주는 오히려 몸에 좋다’는 풍문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일 것이다. “여기요, 생맥 하나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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